* * * *
한동안은 손의떨림이 멈추지않을 정도였다. 원두찌꺼기를 모아 정리를 하고있을즈음에 유권이 등뒤에 머리를 쿡 박았다.
"미안...잠을방해해서..."
하는말에 그가 느리게 허리를 감싸안는다. 배위를 배회하는 아직 짤막한 손톱, 커피기계를 정리하던 손을 포개어 곂쳤다.
...봤구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야
조금은 침울한 목소리에 유권이 고개를 들었다.
물론, 지금은 ...
감겨있던 손을 치운 민혁이 뒤로돌아 멀뚱히 서있는 그에게 짧은 이마키스를 건넨다.
그래도, 옛날 생각나네
민혁의 예쁜 목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다가, 뜨여진 유권의 눈에 잠시 쓸쓸함이 스친듯하다.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볼을 부비던 그가 민혁이 손을뻗자 한걸음 뒤로 물러서 이내 서재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를 어루만지려다 허공을 휘젓게된 손을 거두고, 얕은 한숨을 쉬며 커피기계에 손을 얹었다.
오늘은 꼬박 잠을 설친 것 같다. 불 꺼진 오피스텔의 침대위에서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기를 수십번. 결국 밝아지고 만 창밖을 보곤 이내 몸을 일으켜 커튼을 휙 걷어버렸다. 아직 새벽추위가 풀리지 않아 푸른빛마저 감도는 도시가 이제 막 일어나 뻐근한 몸을 푸는 것 마냥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재효는 무엇이 자신을 이리도 신경쓰이게 하는지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삼류 퀴어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저도 모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난입해버린 그녀 덕분에 얌전히 제지 당하고 있던 감정이 제멋대로 불거지기 시작한다.
냉장고로 천천히 걸어와 물을 꺼냈다. 그러다 미처 다 먹지못해 반쯤남아 쌓인 바게트를 보게된다. 너무 달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그것이, 그와 너무도 비슷한 느낌이라 자주 들르지도 않던 빵가게를 들락날락했던 기억이 수없이 리플레이 되었다. 아직 삼류로밖에 취급받지 못하는 동성애코드가 자신에게 있다는것을 결국은 인정할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냉장고 문을 닫자 붙여진 일정표가 보였다. 2주에 한번, 담당자라는 핑계로 그를 만났던 날들, 그리고 다음 만남이 3일가량 남아있었다. 그동안 좋은 인생의 선배로, 마음이 힘들 땐 위로로, 함께 있을땐 행복으로만 다가오던 그가 이젠 너무도 커져 버린것을 부정할수 없다. 들고있던 컵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위로받고 싶다, 그에게. 사실대로 말한다 해도...나에게 미소 지어줄것 같기에.
별안간 재효가 외투를 찾아 현관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살을애는 추위였다.
♩♪♪♩
특별히 신경 쓴 식탁에 미소를 짓다가, 고개를 들었다. 유권이 좋아하는 달콤한 파베 초콜릿을 후식으로, 기분이 상했던지 두 시간동안 서재에 숨어 나오질 않는 그를 이제 부르기만하면 되는데.
메신저 알림소리에 거실로 향했다.
'민혁아, 출판사에 물어물어 연락할 방법을 겨우 알아냈구나. 널 못 본지 십년이 넘었어...아비로써 면목이 없단다. 너의 책은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봤어..정말.....장하구나...내 아들. 어린고집이라고 생각 했던것에 대해서는 사과하마. 다름이 아니라...한번만이라도 네가 장성한 모습을 보고싶은 마음에 연락했단다. 공항에 도착하면 오전 아홉시쯤이 될 것 같아. 점심이라도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 네 아빠가'
현관문이 닫기는 소리가 들리고, 서재에서 느리게 걸어나온 유권이 식탁에 곱게 놓여진 초콜릿을 천천히 치웠다. 식탁 모서리까지 밀려난 초콜릿이 씁쓸한 코코아가루와 함께 바닥에 흩뿌려진다. 혼자 식탁에 앉은 유권이 무릎을 끌어다 안았다. 나만의 신, 나만을 바라봐주던 그가, 이젠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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