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친왕이시여, 황제께서 찾으십니다."
뒷짐을 지고 서서 문밖을 바라보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정중히 고개를 숙여보이고 자신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신하의 모습에 그는 곧,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걷던 쑨양은 내정도, 침소도 아닌 곳으로 향하는 신하의 뒷모습을 갸웃거리며 바라봤다.
말없이 앞서 걷는 신하를 따라 궁의 뒷편으로 돌아서 들어가자 눈앞에 펼쳐진 또다른 세상.
따스한 봄의 기운으로 활짝 만발하여, 바람에 살랑이는 수많은 꽃을 발견한 쑨양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색색히 고운 옷을 입고 피어난 꽃을 바라보던 그는 그 사이로 모습을 비치는 황제의 모습에 서서히 걸음을 멈춰섰다.
"찾으셨습니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자 꽃을 바라보던 황제의 시선이 천천히 그를 향한다.
"왔느냐, 나의 아들아."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고 쑨양을 향해 의자에 앉으라 손짓을 한 황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속에 작은 꽃잎을 띄우는 다정한 손길.
황제의 손이 찻잔에서 거둬지자 하얀 꽃잎 하나가 그 안에서 살랑살랑 춤을 춘다.
"들거라."
"네."
마주 앉아 따스한 차 한모금을 삼킨 황제는 하얀 꽃잎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쑨양을 바라봤다.
입가에 살며시 매달린 미소.
반짝이는 눈동자가 그의 기분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 조선에 다시 돌아가려는 연유가 무엇이냐."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 황제의 물음에 쑨양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내 너를 가슴 깊이 신임하여, 곧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될 왕슌의 곁에 계속 머물러주길 바라고 있다."
"...................."
"그럼에도 급히 조선으로 돌아가려는 연유가 무엇이냐."
"저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황태자를 보필할 좋은 인물들은 많습니다.
그들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지금은...사신으로써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을 묵묵히 듣던 황제는 물러섬이 없는 쑨양의 모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조선에 혹, 중요한 무언가를 두고 왔느냐."
"................"
"그게 무엇이든 너에게 소중한 것이라면 지켜야겠지."
"................"
"너의 의중은 잘 알았다. 현명한 아이니... 잘 해내겠지."
흐뭇한 표정으로 웃어보이는 황제에게 쑨양은 대답 대신 미소만 지어보이고 찻잔을 맴도는 하얀 꽃잎에 시선을 두었다.
"언제 돌아갈 생각이냐."
"곧, 돌아갈 예정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아 급히 서둘러야 할 듯 싶습니다."
"그래... 왕슌이 많이 섭섭해 하겠구나."
"황태자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황제를 바라보던 쑨양은 찻잔을 들어 코끝에 닿아오는 향을 음미했다.
입술 끝에 살며시 닿아오는 꽃잎.
입을 맞추듯 부드럽게 닿아오는 꽃잎의 느낌에 그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황제가 자리를 떠나고 꽃밭에 홀로 머물던 그의 곁으로 작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익숙한 향.
익숙한 발소리.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쑨양의 얼굴에 편안한 기운이 번진다.
"장린."
"여기에 계셨습니까."
"나를 찾아다녔느냐?"
"예."
장린에게서 시선을 거둔 쑨양은 다시 꽃으로 시선을 돌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하얀 꽃잎에 손끝을 댔다.
"이 꽃밭은 언제 만들어진거지? 없었던 것인데..."
"봄이 오기전에 황제께서 손수 가꾸신것입니다."
"...여전하시구나..."
대국을 거느리다 그 자리를 떠나려하는 이때에 작은 위안을 삼을수 있는 곳이 필요하셨을 것이다.
어릴적 자신의 손을 잡고 꽃이름을 알려주시던 다정했던 얼굴이 떠올라 쑨양은 살포시 웃었다.
꽃이름을 몇번이고 묻던 아이들은 이미 장성해 각자의 일을 위해 떠났지만 이 작은 공간은 마음이 허해지신
황제의 곁에 머물며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활짝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바라보던 쑨양은 천천히 몸을 돌려 장린을 향해 섰다.
"이제 돌아갈 것이다."
".................."
"내가 그리워하는 이가 있는 곳. 그리고... 나를 그리워하는 이가 있는 곳."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은 그는 머릿속에 누군가를 떠올렸다.
눈앞에 몽글몽글 떠오르는 꽃처럼 환한 그 얼굴에 쑨양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지었다.
"준비하겠습니다."
"그전에... 먼저 돌아가 있거라."
"저와 함께 가시는 것이 아니십니까."
"며칠 늦어질듯 싶다."
"그럼, 기다렸다가 함께 가겠습니다."
"아니... 걱정이 되어 그런다. 나보다 네가 먼저 가서 그를 보살펴 주거라. 곧, 따라가마."
고개를 숙여보이고 돌아서 걸어가는 장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쑨양은 다시 꽃으로 시선을 돌렸다.
따스한 봄 햇살에 반짝이는 하얀 꽃잎.
그 꽃잎을 바라보는 그의 깊은 눈매에 웃음이 서린다.
"그대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평상에 올라앉아 비단 보자기를 내미는 그의 손에 금옥의 시선이 멈췄다.
뭐요? 라고 눈으로 묻는 여인의 물음에 태환이 활짝 웃어보인다.
"봄을 맞아 새옷 준비했소. 금옥과 딸아이 것이오~"
"에?? 아이고~ 이런걸..."
반가운 기색으로 보자기 매듭을 풀어낸 금옥은 그안에 단정히 개어있는 고운 빛깔의 옷에 눈을 동그랗게 떠올렸다.
"요즘 주문이 밀려 바쁘다고 하더만... 이런건 언제 준비했소? 내 품은 어찌 알고?"
"짬짬이 만든거요~ 내가 금옥을 하루이틀 보오? 딱! 보면 알지~"
"맞네 그려~ 눈썰미가 좋아서~ 아이고...너무 곱네~고맙소!"
한복을 꺼내들고 신이난 여인의 모습에 태환은 마주 웃어보였다.
"요즘 장사는 어떻소?"
"뭐~ 늘 그렇지~ 여유는 되오. 예전 대화방보다야 마음도 편하고...몸도 편하고 좋지~"
여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린 태환은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이마를 긁적였다.
"나 궁금한 것이 있소."
"뭐가 궁금하오?"
"예전에... 대화방이 그리 되고 다음날 바로 주막을 차렸잖소. 아니... 그럴수가 있나? 이 자리가 딱 맞춰 나온것도 아닐거고..."
갑작스러운 태환의 질문에 금옥은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곧, 곤란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별 뜻 없이 물은것이었는데... 자신이 모르는 비밀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당황한듯한 금옥의 모습에 태환은 의심의 눈길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금옥은 뭔가 알고 있었소? 그날 포도청 사람들이 올거라는 것도... 이 주막에 주인 자리가 빈다는 것도."
"아..아니..뭐..."
"우리 사이에 말 못할 이야기도 있소? 섭섭하네..."
미간을 찡그리고 입술을 앙- 다무는 그의 모습에 금옥은 안절부절하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태환의 곁에 주저 앉았다.
"뭐...지난 이야기니까...해도 되겠지...?"
"..........?!............"
"포도청으로 포졸들이 몰려오던 날 새벽에... 당상관 어르신이 나를 찾아왔었소."
이른 새벽시간.
손님도.. 일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대화방을 정리하던 금옥은 조용히 들려오는 인기척에 흠칫 놀라 돌아섰다.
급히 왔는지 얼굴 가득 땀범벅을 한 당상관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서 금옥을 향해 손짓을 해보였다.
"아니, 이 시간에 어쩐 일로..."
"긴 이야기는 할 시간이 없고.. 오늘밤 포졸들이 이곳에 들이닥칠거요. 그들이 들이닥치기전 이곳에 와서 알려줄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대피하시오."
"포...포졸이라...니요...? 누가 포도청에 고하기라도 했단 말이십니까...?"
"그것까지는 말할 수 없소. 자네가 다시 장사를 할곳은 이미 마련해두었으니... 먹고 살 걱정은 마시게.
그리고... 이 일은 금옥과 나, 둘만이 알고 있어야 하오."
"예?! ...아니.. 그것이 아니라.."
"내가 말해줄 수 있는건 이것뿐이오. 모든 일이 다 끝나고 저잣거리에서 만납시다."
"나..나으리..!"
탁자를 닦던 수건을 내려두고 급히 당상관 나으리를 붙들었지만 그는 급한 걸음으로 돌아갔다.
포도청에서 온다니...
금옥은 덜컥 겁이 났다.
그보다...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일을 하고 있는 태환에게 큰일이 생길까 두려웠다.
정리를 하던 손을 놓고 의자에 주저앉은 금옥은 날이 밝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해가 질때까지
대화방을 떠나지 못했다.
흐르는 시간에 손톱만 깨물며...별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랄뿐이었다.
손님들이 가득 차고 활기를 띈 영업을 하는 동안에도 금옥은 목채 건물 밖을 서성였다.
포도청의 포졸들이 오기 전, 도망가야 할 때를 알려줄거라는 얼굴 모를 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시린 겨울바람에 얼마나 몸을 떨었을까...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이 아닌 목채 건물 뒷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낯선이의 모습에 금옥은 잔뜩 긴장했다.
"이곳의 여주인이십니까."
"...ㄴ...네..."
어두운 복색을 한 날카로운 눈빛의 사내는 금옥의 대답을 듣고 이리저리 훑어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알리시면 됩니다."
"지금이요...?"
"모란실로 가서 먼저 알리십시오. 그럼.."
금옥의 대답도 듣지 않은채 숲길로 내달리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금옥은 서둘러 목채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당상관 나으리께서...무슨 연유로..."
"그건 나도 모르오. 지금까지 말씀을 안해주시니..."
금옥은 자신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그 날 밤, 찾아왔던 낯선 이의 모습은 어땠소? 본 적 있는 사람이었소?"
"아니... 처음 보는 사람이었소. 그러고보니... 이곳 말이 좀 서툴렀는데..."
손뼉을 치며 낯선 이를 떠올리려는 금옥의 모습에 태환은 여인에게로 몸을 돌려 앉아 기억을 떠올려보라며 재촉했다.
"어두운 복색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졌는데... 그 모습이..."
태환을 바라보며 그 날의 기억을 더듬던 금옥은 주막의 싸리문 안으로 천천히 들어서는 누군가의 모습에 크게 놀랐다.
천천히 손을 들어 그를 가리키는 금옥의 손끝.
그 끝을 따라 태환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저..저 자였소."
두 눈을 커다랗게 떠올리고 입만 벙긋거리는 금옥.
여인의 손끝이 머무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태환은 자신을 바라보며 서있는 누군가의 모습에 들릴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장..린....."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눈이 내리지 않은 곳도 있겠지만...지금 제가 있는 곳에는 눈이...우와...
나뭇가지에 활짝 핀 눈꽃이 가득입니다.
눈 내리기 전에 '설화' 연재가 끝날거라 예상해서...
마지막 인사로 준비해둔 말이 있었는데!!ㅎㅎㅎ 눈이 내렸네요.
"설화가 끝나도 올 겨울에 눈꽃을 보시면... 제 글을 기억해주세요~~~" 였는데...;;;
헝ㅠㅠㅠㅠㅠㅠㅠㅠㅠ
뭐~ 눈과 함께 '설화' 연재도 나쁘진 않네요ㅎㅎㅎ
다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포도청에 고한 이가 쑨양이었답니다ㅎ 뒷북ㅋㅋ
깜짝 반전! 뭐 이런거 쓸줄 몰라서ㅋㅋ 이미 스포 다 깔고..
뭐 흥미진진하지도 않고 그렇네요ㅎㅎㅎㅎㅎㅎㅎ
다음이야기로 다시 찾아뵐께요~
길이 미끄러우니 항상 조심하시고요~건강 유의하세요!
늘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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