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거슨 배포했던건데 다들 홍보를 안해주시기에
다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숴열!!!!
| 이상한 남자 |
우리집은 단독 주택이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 강남에 있는 집 부럽지 않은 주택에서 나는 단란하게 가족들과 살고 있었다. 그 아싱한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가지고 있던 관념이 철저한 편이였다.
"새로 이사왔어요?" "네. 반가워요."
띵동. 가족들이 모두 출타하고 혼자 집에서 레포트를 작성하고 있을 때 벨이 울렸다. 인터폰을 확인하고 대문으로 나가보니 매소를 지으면서 한 남자가 서있었다. 이사 떡이에요. 일화용 접시에 담긴 붉은 시루떡. 갓 배달되었는지 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른다. 김성규에요. 멀뚱히 서있는 나에게 떡 접시를 넘기더니 유유히 사라졌다. 뜨끈한 떡 접시를 받아들고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던것 같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이상한 남자의 집 앞을 계속 지나다녔다. 그러나 사람 하나 살지 않는 듯 조용했다. 어느 날. 나는 그 남자가 궁금해서 옆 집을 기웃거렸다. 띵동. 대문 앞에서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옆집, 학생이요."
아. 들어와요. 대문을 밀자 기이한 소리가 나왔다. 11월이라서 휑한 정원을 지나 집의 문 앞에 다다랐다. 벌컥. 급작스레 놀라 뒤로 물러서니 그 남자가 이상하단 표정으로 문을 엵 바라보았다. 뭐해요? 아, 아니에요. 손사래를 치면서 남자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참. 학생 이름은 뭐에요?" "남우현 이요."
남우현. 몇살? 스물 셋이요. 그럼 난 스물 일곱이니까 말 놓을께. 네. 쉽게 쉽게 넘어기는 스타일에 당황했다. 게다가 저 얼굴에 스물 일곱은 정말 어메이징했다. 성규형이 끓여 내어준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넣으면서 궁금한걸 다다다 쏘아 붙였다.
"직업이 뭐에요?" "인테리어 디자이너. 주로 자택근무지." "큰 곳에 근무하나 봐요." "아니야. 그냥 소규모지. 동료 몇이랑 같이 일해."
비스킷을 깨어 물며 족족 대답한다. 이 집도 내가 디자인한거지. 자랑스러운 어조로 거실을 죽 소개한다. 형에게 잘 맞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냥 별것 없는 소소한 이야기에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그 집 대문을 나서면서 자주 놀러와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며칠 후에, 가뿐히 레포트를 제출하고 일찍 집에 오던 나는 검을 수트를 입고 차에 타려고 하는 성규형을 볼 수 있었다. 검은 수트가 우중충해 보였다. 한달음에 그 앞으로 달려가자 성규형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안녕. 우현아?
"어디가요? 초상 났어요?" "초상 났지. 근데 그런 의미로 가는건 아니야."
그런 의미. 친인척의 초상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해 봤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너도 같이 가자. 잘 빠진 세단에 올라 타더니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고 차가 부드럽게 출발한다.
아버지는 옆집에 사는 남자가 이상한 사람이라며 식사 시간에 형의 뒤를 흉봤다. 젊은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는지 원. 계란 말이를 이로 뚝 끊어버리며 아버지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국을 푸던 어머니는 꼭 그런 소리를 밥상 앞에서 해야 하나며 짜증을 내셨다. 아무튼. 가까이 하지는 말아라. 국을 한 술 떠서 넣으시는 아버지를 소리 없이 쳐다봤다.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아 보이던데. 입에서 꺼내면 골프채가 날아 올까봐 목 구멍 깊숙이 박아 둘 수 밖에 없었다.
방이 2층이라 옆집이 잘 보였다. 맨날은 아니고 자주 검은 수트를 입고 검은 세단에 올라 타 동네를 유유히 나가는 성규형. 처음엔 별거 아니곘지 하고 넘겼지만 가면 갈수록 궁금해져서 미칠 지경이였다. 성규형이 다시 자택에 콕 박혀 있는 듯 했다. 며칠째 얼굴을 대면하지 못했다. 안달이 나서 성규형의 집을 찾아갔다. 대문은 너무나도 쉽게 열려 있었다. 집 문 옆에 달린 초인종을 누르면서 다급함이 목을 죄여왔다.
"우현이?" "좀 들어가도 될 까요?" "어질러져 있어도 이해 좀 해줘."
거실에는 여러가지 색연필과 마카. 도면 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자의 길이도 각양 각색. 컴퓨터는 얼마나 썼는지 모니터 뒤편이 뜨거웠다. 화면에 띄워져 있는 인테리어 도면. 성규형은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인다.
"부끄럽게. 그만 보고 앉아."
억지로 내 팔을 끌어 소파에 앉힌다. 어질러진 마카를 대충 거실 바닥에 내려 두고 커피를 내온다. 치익 치익. 커피 포트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도자지컵이 종이가 쌓여진 탁자에 올려진다. 동그란 물자국이 깊게 남는다.
"주변에서 다들 날 이상하게 봐?" "네? 아니 뭐..." "얼버무릴꺼 없어."
서양에서 만든 비스킷을 한 입에 털어 넣으며 말한다. 으득 으득. 성규형 입 안에서 잘게 부셔지는 비스킷.
"나도 알아. 내가 봐도 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거든."
잼이 박힌 비스킷을 집어 들어 반을 뚝 분지른다. 나는 급하게 식어버린 커피를 꿀꺽꿀꺽 마셨다. 무슨 취미 인데요? 탁자에 컵을 내려 두며 성규형과 시선을 맞췄다.
"장례식엘 가."
응? 장례식? 순간 당황해서 빈 컵을 손으로 넘어 뜨렸다. 태연한듯 웃으면서 나를 본다. 괴상한 취미네.
"그렇다고 친인척도 아니야.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 "진짜 괴상한 취미네요." "거길 가서 엄숙하게 있다가 보면 죽음의 끝 의식이 경건하고 신성하게 느껴진달까. '그곳' 에 가면 모든걸 구원 받잖아. 나쁘던 착하던, 인간적이건 비인간적이건."
다음에 같이 가보자. 아무렇지도 않게 비스킷 부스러기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말한다. 정말 괴상해. 이제 작업을 해야겠다며 나를 보내려고 하는 성규형. 언제 같이 가요. 뒷 인사를 하면서 집 현관을 나섰다.
여전히 아버지는 식사시간에 성규형 언급을 한다. 이상한 사람.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지라 무관심 했다. 와작 와작. 김치가 오늘따라 매웠다. 잊을 수 없는 커피맛과 으득 으득 부서지던 서양 비스킷. 나는 그 맛에 이끌려 일주일에 한 번. 성규형에 집엘 갔다.
"어디 가요?" "장례식. 너도 한번 가볼래?"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 대답했다. 옷은 저기 드레스룸에서 입고 나와.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성규형에 드레스룸에서 적당한 검은 수트를 찾아 몸에 꿰었다. 다행히 몸에 잘 맞았다.
"잘 어울린다." "고마워요. 형."
어색해서 이곳 저곳 신경쓰인다. 나를 위 아래로 훑어 보더니 옷을 정리해 준다. 가자. 흰 봉투를 안주머니에 챙기며 앞서 나간다. 나도 부모님이 볼세라 얼른 뒤를 따라 나섰다. 쿵쿵. 심장이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뜀박질을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목례를 하고 빈소에 들어가 두번 절을 헀다. 어렸을때 딱 한번 와본 장례식장은 성인이 되어 다시 와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영정 앞에서의 절이다. 느낌이 오묘해서 아랫 입술을 꾹 물었다. 상주와 그의 가족들 앞에 가서 절을 한번. 힘드시겠네요. 성규형의 나긋한 목소리에 그 상주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 내린다. 옆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도우미가 간단한 식사거리를 내온다. 절편을 우물우물.
"느낌이 이상해요. 왜 이런델 오는거죠?" "말 했잖아. 경건하고 신성한 느낌."
이내 성규형은 자리를 일어서 주차장으로 향한다. 나도 놓칠세라 서둘러 뒤를 쫒았다. 거칠게 차를 몰아 그가 도착한 곳은 일본식 술집인 「레드 문」이었다. 분위기가 좀 그렇네요. 처음 와본 곳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나를 성규형은 비식 웃으면서 자리로 잡아 끌었다. 종업원이 살갑게 다가오자 익숙하다는 듯이 먹던걸로 할께요. 라고 대꾸했다. 이어서 정종 한 병과 일본식 안주거리가 나왔다. 미지근한 정종.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장례식에서의 그 느낌을."
콜콜콜. 정종이 유리컵에 따라진다. 투명한 액체가 빛에 반사되어 영롱한 빛을 낸다. 성규형은 정종을 마시면서 대답했다.
"그냥 서있으면 경건해지더라구. 또 구원받는 느낌?"
안주로 나온 타코야키를 이쑤시개로 콕콕 찔르면서 멀끄러미 성규형을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 형이야.
"맨날 여기 오나봐요." "맨날은 아니고, 자주겠지? 장례식 끝나고 거의 들르니까."
빈 잔에 정종을 따라 주었다. 미지근하게 먹어야 맛있다구. 야채 절임을 일본 특유의 젓가락으로 쿡쿡 들쑤셨다.
그 날 이후, 나는 성규형네 가는걸 즐겨했다. 식에 다녀온 날 밤, 오밤중에 집에 와 빌린 수트를 천천히 벗으며 그 때의 경건함을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 느껴지지가 않아. 그래서 다음날. 조간 신문을 집어 들고 옆집으로 튀어갔다. 조그만 칸에 나있는 부고자 명단과 빈소 명. 수트가 든 종이백과 신문등을 동시에 내밀자 성규형은 당황한 눈치로 두갤 받아 들었다.
"부고자 명단? 어제 갔는데?"
의아해 하다가 비슬 웃으면서 칸을 툭툭 친다. 호기심이 많구나. 웃음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쌀쌀한 바람이 휑 불어온다.
"그게 무슨 느낌인지. 뭘 느끼게 해주는지. 알고 싶네요." "전에는 괴상하다고 하더니."
그럼 저녁 시간때 맞춰서 가자구. 그건 너 입어. 들고있던 쇼핑백을 다시 나에게 넘긴다. 아버지를 꼬드기거나 어미니를 꼬드겨서 수트를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닥 유명하지도 않고 존경만 받던 늙은 교수의 장례식이였다.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의 전인지 빈소는 아직 한산했다. 부조금을 내고 빈소로 들어가 영정 사진 앞에서 절 두번. 상주 앞에서 절을 한번. 형식적으로 상주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넨다. 이번 상주는 체념했다는 듯이 손을 약간 흔든다. 옆의 여자는 탈진했는지 초점이 풀려 있었다.
"조금 알 것 같기도 해요."
장례식 후엔 정종이라며「레드 문」으로 성규형은 차를 몰았다. 콜콜콜. 투명한 정종이 유리컵을 채운다.
"인간은 모두 그날을 준비하잖아." "그렇죠."
성규형은 방울 토마토가 잘 안집히는지 미간을 구긴다. 결국엔 젓가락으로 폭 찍어 입안에 넣는다.
"학연. 혈연. 지인관계도 아닌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나는 온갖 느낌을 다 받아." "경건함. 성스러움. 구원. 이런가요?" "그런 셈이지."
「레드 문」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뭔지 모르게 울적한 내음이 났다.
어머니를 조르고 졸라 검은 수트를 장만했다. 조간 신문을 찾는 손길도 바빠졌고, 성규형과 함께 지내는 날도, 학교의 과 모임에서 빠지는 날도 늘어갔다. 동기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나는 그런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일주일에 네번은 장례식을 찾았다. 학연. 지연. 혈연 관계도 아닌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을 계속 갔다. 갈수록 느껴지는 경건함. 그리고 인간에게는 끝이 있다는 것. 조문을 끝내고 가만히 서 있다가 나오면 성규형은 익숙한 손길로 차를 「레드 문」으로 몰았다. 그러길 몇날 며칠 몇달. 오랜 시간이 흘렀다. 「레드 문」에서 나눈 이야기는 시시콜콜했다. 그러나 몇개의 이야기는 정종을 과하게 털어 넣은 성규형 덕에 특별해 지기도 했다.
'난 게이야. 근데 사귀어 본 남자는 없다?'
얼굴이 잔뜩 발개져서 손을 내 앞에 휘저으며 말했다. 안주로 나온 다코야키를 먹던 나는 켁켁 목에 걸려 고생을 했다. 게이라니.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타코야키를 게워넀다. 침과 함께 어지럽게 섞여 뭉그러닌 음식물. 그걸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성규형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였다.
'어차피 다 같은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그런게 뭐가 상관 있어요?'
휴지 뭉탱이를 테이블 구석에 두면서 대답했다. 오오. 우혀니 멌있다. 헤헤 웃으면서 테이블에 머리를 콩 박아버린 성규형을, 그날 대리를 불러 꾸역꾸역 집에 가야 했다. 또 이런 얘기를 했었다. 그 날은 맨 정신 이였을라나. 여김없이 장례식이 끝나고「레드 문」에 갈 줄 알았다. 근데 성규형은 차에 있으라며 가게로 들어가 정종과 안주거리를 포장해 나왔다. 오늘은 집에 가서 먹자. 뒷 좌석에 조심스레 그것들을 놓아두며 비싯 웃는다. 네. 부드럽게 차가 출발한다. 어두 컴컴한 거실에 들어서자 오한이 느껴졌다. 형은 거실 불을 키고 보일러의 온도를 올렸다. 조금 있자 거실의 온도가 상승한 느낌이였다. 정종의 병을 폭 땄다. 형은 금세 부엌에서 유리잔 두개와 젓가락을 가져왔다. 성규형이 유리잔에 정종을 콜콜콜 부었다.
'ALONE AGAIN, NATURALLY.' '음? 뭐라고 한 거에요?' '글쎄다. 나중에 알아봐.'
지금도 생각해 보면 저 어투는 우울해 보였다. 너무 장례식에 가자고 그랬나. 그러던 어느날, 책을 보다가 그 어구의 뜻을 알았다. 또다시 혼자가 돼버렸어. 당연하듯 말이야. 어림잡아 형의 과거사가 우중충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 생긴 동정심. 연민. 그리고 그 후에 마음 한 구석에 성규형을 향한 연심이 크게 자리잡았다. 주변에서는 날 아니꼬운 눈길로 쳐다보는 듯 했다. 식사시간때마다 아버지는 날 추궁한다.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느는 거냐? 김치를 와삭와삭 씹으시면너 날 쳐다보신다. 이젠 말리는 어머니도 없으시다. 가만히 맞은편에 앉으셔서 어서 말하라는 눈치를 주신다. 드그극. 의자와 바닥이 마찰하며 내는 이질적인 소리. 잘 먹었습니다. 하고 조용히 부엌을 나섰다. 뒤에서 들리는 큰 한숨에 나는 기가 죽을 순 없다는 듯이 몸을 꼿꼿이 폈다.
이름 모를 의사의 장례식이였다. 이번엔 화장을 하는 납골당까지 뒤따라 가기로 했다. 부고 칸에 표기된 인적 사항과 장소, 날짜를 보고 화장을 하는 그날. 빈소에서의 마지막 날에 성규형과 동행했다. 하늘이 울었다. 톡톡. 솨아아. 춥게 떨어지는 빗소리에 빈소 안의 사람들이 웅성댄다.
"왜 비가 내릴까요?" "글쎄. 생전에 저 의사분이 좋은 일을 많이 하셨나봐."
안 그래. 우현아? 날 보면서 방긋 웃어보이는게 오늘따라 슬퍼 보였다. 왜? 커다란 십자가가 그러진 붉은 실크소재의 천으로 반듯이 덮인 관이 빗속을 뚫고 사람들 손에 들려 운구 차량으로 실려 들어갔다. 차 안에서 그걸 지켜보던 성규형은 아무말이 없었다.
"내가 나중에 저렇게 된다면, 이 세상에 나 하나 있었다는걸 사람들이 기억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항상 간직하고 있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던 소리의 볼륨을 잔잔히 낮춘다.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꺼에요."
짧은 정적.
"그들에게 형이 특별한 기억을 남긴다면. 그럼 후에 형을 이렇게 회상할 지도 몰라요. 그 사람은 유난히도 특별했던 사람이였지. 라구요."
성규형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잔잔히 끄덕였다. 낮춘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이나마 끌어 올린다. 운구차와 유가족이 탄 버스가 출발하자 성규형도 빗속을 헤집으며 차를 운전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거리는 매우 한산했고 차의 속도는 훅훅 올라갔다. 토독 토독. 조수석 창문에 맻힌 물방울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흘러내려 섞인다.
"형." "왜불러." "뭔가가 힘들어요?" "글쎄. 그건 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차 시트에 얼굴을 기대었다. 싱겁긴. 성규형은 날 비웃더니 오르막길을 올랐다. 연신 발로 브레이크를 꾹꾹 밟는다. 비가 조금 잦아든 느낌이였다. 검은 장우산을 펼쳐 성규형과 함께 썼다. 연민이 더욱 커진 느낌. 광이 나는 형의 구두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매끄럽게 흘러 내려가는 빗방울. 형은 날 끌어당기며 화장터로 들어갔다. 몇분 밖에 있었을 뿐인데 장우산이 흠뻑 젖어버렸다. 입구에서 우산을 털자 후둑 후둑 소리가 경쾌하다. 유가족이 아니고, 아는 사이도 아니여서 멀찍이 바라보았다. 보통 같았으면 관을 잡고 오열했을텐데. 이번엔 경건히 서 있었다. 가끔 손수건으로 눈가를 꾹꾹 누르는게 전부다.
"이젠 알 것 같네요."
화장을 하려 관이 뜨거운 불구덩이에 넣어지는 그 순간. 나는 무심코 말을 뱉었다.
"경건함. 구원. 그리고."
나는 살풋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동정과 연민을."
성규형도 따라서 살풋 웄었다. 아마「레드 문」엘 가야 할 것 같아. 형은 다시 시선을 화장소로 돌렸다. 고운 뼛가루가 되어 나오는 관. 유가족들은 도자기함에 가루를 담아 보자기로 정성스레 싸서 옆쪽으로 옮겨간다. 한 켠에 사들인 유골함을 보관할 장소. 미리 문패가 달려있는 그 곳에 함을 넣고 추억이 담긴 사진과 고인이 살아 생전에 좋아했던 물건을 넣는다.
"어차피 나도 죽으면 저렇게 되거나 썩힐꺼야. 아니면 어딘가에 뿌려 지겠지."
구석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뽑아 든다. 많이 피곤한가 봐요. 나도 옆에서 커피를 홀짝였다.
"그래도, 기억하는 사람들 때문에 영혼은 남아 있을거라고 봐요." "풉. 그런가."
내 말이 웃기나. 먹다 남은 커피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낙하시켰다.
「레드 문」으로 차가 도착했다. 익숙한 붉은 풍경. 익숙한 종업원이 나타나 익숙하게 성규형이 주문을 하면 동이어 익숙한 정종과 안주거리가 나온다. 콜콜콜. 유리잔에 부어지는 투명한 정종.
"이젠 형의 그 취미, 이해가 가네요."
정종을 한 모금. 그걸 달래줄 타코야키 한입.
"내 취향도?" "뭐든지."
그럼 다행이고. 느긋하게 정종을 목으로 넘긴다.
"그 연민 말이야."
젓가락으로 싱싱하지 않은 얓 절임을 헤집던 내 젓가락질이 멈췄다.
"혹시 나를 향한 거야?"
긴 정적.
"...그렇다면요?"
음. 성규형은 이쑤시개를 손가락으로 굴리면서 천장을 을시했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야채 절임을 입 안에 넣었다.
"존중해줄께." "진짜요?" "그럼 가짜로 말하냐?"
너, 보면 볼수록 괜찮은 애야. 정존 잔을 살짝 흔들더니 한 모금 마신다. 호감이 있었다는 건가. 너털 웃음을 지으면서 형의 입에 다코야키를 하나 넣어줬다. 맛있다. 우물거리면서 눈꼬리를 휜다.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같이 웃었다.
「레드 문」에서의 고백 아닌 고백으로 나와 형은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형은 디자인 일을 계속 하고 나는 다니던 대학을 잘 다닌다. 식사시간에 아버지의 히스테리는 좀 줄었다. 가끔은 옆집 남자랑 자주 만나냐며 인부를 묻기까지 한다. 뭔가 달라진 느낌이였다.
신문을 들고 형네 집엘 찾아갔다. 우리의 데이트는 특이했다. 꼭「장례식」과「레드 문」이 들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레드 문」에서 꼭 먹고 마시는 정종과 안주거리들. 우현이에요. 라고 인터폰에 대고 말하는 순간 대문이 열리고 형이 다다다 달려 나왔다. 왔어? 내게 폭 안기는 형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진한 커피향과 으득으득 부서지는 서양 비스킷.
"이번엔 그냥「레드 문」만 갈까요?" "「레드 문」은 장례식 후에 가는게 제맛이라구."
색연필을 치우며 형이 툴툴댄다. 알겠어요. 나는 금세 수긍하고 거실에 널브러진 마카를 줍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야 될 지 모르겠지만 성규형을 만나고 부터 이상한 남자라는 시각이 180도 변해 버린 것 같다. 말마따나 이런 인생 유쾌하게 살아 보고 싶기도 했다.
우리는 여전히 장례식엘 다니고 얼마 전엔 한적한「레드 문」에서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서로가 황홀하고 즐거운 마음을 확인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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