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악연이었고, 변하지 않을 일이었다.
혁콩, 이미지 메이킹
"지금까지, 리얼 브이! VIXX, 빅스였습니다!"
이번 활동에 들어서서, 이상하게도 나와 한상혁이 자주 엮이고 있었다. 하필이면 서로가 근처에 있거나 오늘처럼 라디오 자리가 옆자리여서 엮이는 일이 많다.
부스를 나오면 잔뜩 인상이 구겨진 한상혁이 보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멤버들은 자기가 이겼다며 좋아하며 떠들거나,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만 들을 뿐이다.
내가 기분이 나빠진 한상혁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니까.
"인상 풀어. 너도 나도, 좋아서 한 거 아니잖아."
멤버들이 들을 수 없게 작은 소리로 네 옆을 지나가며 말을 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씨발, 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나도 그렇지만, 한상혁은 굉장히 영악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할 때, 앞에선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일을 끝낸다.
하지만 끝나자마자 표정이 변한다. 영악한 이유는 그것 뿐이 아니다. 인상이 구겨진 표정을 다른 멤버들에게 보이지 않고 오로지 제게만 보인다.
자기가 그 일을 하게 된 것이 모두 내 탓이라는 것처럼. 그래, 딱 그런 표정이다.
사실 어쩌면, 내가 한상혁과의 사이를 이렇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데뷔 전, 마이돌이라는 프로그램을 했었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 들어온 한상혁과 금방 친해진 멤버들과는 다르게 난 그 아이를 아니꼽게 보았다.
내가 버틴 연습생 기간이 얼만데, 넌 한 번에 이 프로그램에 합류해? 그런 마인드로. 그러니 한상혁의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도 멤버들은 어색한 우리 둘의 사이를 완화시키겠다며 별의 별 행동들을 다 시켰고, 제작진들은 우리 둘을 짝을 지어 카메라를 주었다.
한상혁은 나에게 모든 걸 맞추려고 했고,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한상혁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던 난 그 여린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어린 애처럼 굴지 마. 친한 척도 하지 마. 난 네가 하는 모든 게 싫어. 알아? 대원이도 너만 없었음 여기 있었어.'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여린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 없이 방으로 가 그 늦은 밤에 연습실로 갔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난, 좋다고 원식이의 방으로 가 조잘조잘 떠들었고, 걱정하는 형들에게 연습실에 가서 연습을 하는 것 같다고, 걱정 말라고 이야기 했었다.
그리고 새벽에 회사에 늦게까지 계시던 대표님에게 연락이 왔다. 상혁이가 눈이 퉁퉁 부어서 탈진 상태로 쓰러져 병원에 있다고.
그 사건 이후로 나에게 말을 한 번이라도 더 건네려고 하던 한상혁은 나를 보지도 않았고, 눈이 마주치면 인상을 쓰기에 바빴다.
다른 멤버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 한다. 단지 우리 둘은 아직 어색한 멤버일 뿐이었다.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둘의 일이기에 다른 멤버에게나, 팬들에겐 알려지지 않게 둘은 각별한 사이라며 연기를 했다. 아마 영화제에 나가도 손색 없을 연기력일 것이다.
이젠 달라진 막내라인, 하고 마이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ㅡ물론 둘의 연기ㅡ를 편집한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오늘처럼 라디오에서 일부러 서로의 이름을 적어 같은 팀이 된다던가, 둘도 없는 형, 동생 아이인 듯 연기하는 일 즈음은 카메라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한상혁을 마주하고 있는 나는, 사실 변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부터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고, 억지로 부정하고 있었다.
언젠가, 교과서에서 읽은 글에서 나온 구절이 떠올랐다. 동정과 연민은 애정과 비슷하지만,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던가.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날 대단하게도 잘 피해다니고 무시하는 한상혁에 대한 동정과 연민인 건지, 연기하는 중에 생긴 애정인 건지, 헷갈렸다.
전자이길 바라고, 또 바랐다. 내가 애정이라는 걸 한상혁에게 가질 이유가 없잖아, 하며.
하지만 그 알 수 없는 감정은 매일 더 커져만 갔고, 고민에 묻혀 멍하게 지내는 날이 늘었다.
한상혁의 옆을 지나치면 늘 한상혁의 향이 난다. 그렇게 싫어했던 그 향은 아이가 더 크고, 굳건하게 자라며 더 강해졌다.
늘 나는 그 향처럼 아이는 여린 소년에서 어른이 되고 있었고, 난 그 아이가 어른이 되기 전에 이 감정을 정리해야 했다.
어떤 감정이든 우린 모래알처럼 금방 부서질 사이일 뿐이니까.
"제가 저번에 제 앞으로 걸어 나오지 말라고 했죠. 보기 싫다고."
어느 사이 걸음이 다시 느려진 제 옆으로 한상혁이 왔고, 아무 감정 없는ㅡ아니, 어쩌면 혐오스럽다는ㅡ목소리리로 이야길 했다.
그 목소리에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당당하게 행동하던 난 천천히 곁눈질로 한상혁의 표정을 스캔했고, 입을 꾹 다 물었다.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건 단지 내 착각일 뿐이었다. 한상혁이 눈 앞에 있을 땐 누구보다 더 먼저, 더 많이 그 아일 눈에 담는 게 나였다.
자각하고 난 뒤,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 동정이든, 애정이든. 그런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음 뭐 해, 이젠 한상혁이 날 싫어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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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하고서 처음 구독료를 걸어요. 사실 구독료를 걸 퀄리티는 전혀 아니지만... T-T...
요새 혁콩이들이 왜 이렇게 눈에 밟히는 건지. 우이 빈이가 상처를 받을 결말일까요, 아닐까요...
늘 하는 이야기지만 못난 글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