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와 편의점 알바생의 상관관계
05
유리창을 쳐다보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남자가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것도 웃음을 참으며.
화장이 이상한가? 오늘 아침에 엄청 공들여서 한건데. 불안한 마음에 거울을 꺼내 확인하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였다.
아니면 얼굴에 뭐가 묻었나? 그럼 더 심각한데. 의자에 놓아둔 핸드백을 흘긋- 거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쩔 수 없었다.
"혹시 제 얼굴에..뭐 묻었어요?"
"네?"
"아니면 화장이 이상하다던지..."
의심쩍은 눈초리로 묻자 남자는 참았던 웃음을 흘리더니 턱을 괴어 조금 거리를 가까이 했다. 그러곤 조곤조곤,
"얼굴에 묻은거없고,"
"화장도 예쁘게 잘됐어요."
말을 내뱉었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꼭 그래야 쳐다보나요. 좋아서 쳐다볼 수도 있는거지. 흘리듯 덧붙이는 말에 겨우 그, 그럼 다행이구요- 말을 더듬었다. 연애 안해본 티가 이렇게 나는구나 싶었다.
"근데, 저 거의 처음이에요."
"뭐가요?"
"이렇게 누군가랑 단둘이 밥먹는거."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남자는 저도 처음이네요, 이렇게 예쁜 연예인이랑 밥먹는거. 내 말투를 곧이곧대로 따라하며 대답을 해보였다.
연예인이라. 문득 그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가게 안을 두리번거렸다. 역시나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근데 막 연예인이면... 알아보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
"뭐, 팬도 있어야 하고..."
"......"
"근데 저는 아니라서..."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거리다 어정쩡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반대편에 앉아있는 나는 기대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 한마디를 가지고 쩔쩔맸다. 가만히 내 말을 듣던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돌렸다.
"여기 있잖아요, 알아보는 사람."
"네?"
"바로 앞에."
"......"
"김여주 1호팬."
남자가 말을 끝마치며 자신을 콕콕 가리키는 손짓에 가만히 말을 되뇌다 풉- 하고 웃어보였다. 그러네요. 너무 친해서 잊고있었어요. 나의 말에 남자는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여유롭게 답을 해보였다.
-
밥을 먹는 동안 이것저것 얘기를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어색하면 어쩔까, 하고 집에서 한참을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생각이란걸 깨달았다.
나보다 한 살 어리다던 임창균씨는- 하고 장난스럽게 하는 일에 대해 물으니 전자공학과를 나왔다며 과외 몇 개를 하고 있다는 말에 머리로는 내가 한참을 밀리는구나- 하고 잠시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근데 누나는- 남자가 드라마에 대해 질문을 할때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하며 열심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뭐 마실래요?"
아, 남자의 말에 잠시 멍했던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들어올려 메뉴를 살폈다. 아메리카노부터 시작해 빼곡히 적혀있는 글자들을 쳐다보고만 있자니 나를 빤히 쳐다보는 종업원의 시선이 느껴져 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 그러니깐, 저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눈치를 보자 남자는 다정히 괜찮아요. 천천히 해요- 다독여주었다. 그래도 도통 정하지를 못해 나 혼자 안달이었다. 결국 그냥 아무거나요- 손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곤 뒤로 물러나야했다.
카운터에서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던 남자는 두 잔을 쥐고 나에게 다가왔다. 나에게 내미는, 분홍색으로 물들어있는 꽃 모양 장식이 가득 올려져있는 음료를 손에 쥐었다.
"이게 뭐예요?"
"벚꽃라떼요."
우와, 이름 예쁘다. 꽃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벚꽃라떼를 시킨 이유가 궁금해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왜 이거 시켰어요? 하고 물었다.
"누나랑 어울려서요."
"네?"
"예쁘잖아요."
담담하게 내뱉는 말에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올렸다. 표정 또한 담담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 그만 예쁘다고 해주셔도 되는데... 말을 웅얼거리자 남자는 손에 쥔 커피를 한 입 마시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무 자주 말하면 실례예요?"
"아, 아니요. 그건 아니죠."
"다행이네요."
"근데, 제 말은..그러니깐.."
"......"
"제가 뭔가 괜히 강요시킨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오늘 엄청 신경써서 나온건데 길거리 돌아다니니깐 아닌 것 같아서 더, 민망하네요."
그냥, 그러니깐, 예쁘다는 말 그만 해줘도 돼요. 주위를 힐끔거리며 말을 빠르게 내뱉곤 입을 앙다물었다. 내 기분을 살려주기 위해 예의상 내뱉은 말이 아닌가 하고 또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곧 허리를 조금 숙여 나와 시선을 맞추곤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얼굴이 가까이 닿았다.
"누구한테 그렇게 잘보일려고."
"네?"
"방금, 신경썼다면서요."
내 얼굴을 천천히 훑으며 묻는 말에 아무 대답을 못했다. 아차, 싶었다. 나도 모르게 진심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말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내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여 오므렸던 입술 사이로 데이트, 기대한다고, 한게 누군데. 띄엄띄엄 말했다.
"나도 오늘 엄청 신경썼는데."
"......"
"누나한테 잘보이려고."
"......"
"멋져보여요?"
아무 대답을 못했다. 그저 고개를 두어번 끄덕거렸다. 그제서야 남자가 허리를 펴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내 말 한 번 믿어봐요."
"......"
"누나가 그렇게 보는 것처럼, 나도 누나 예뻐보이거든요."
눈을 올려떠 남자와 눈을 맞추다 지지않고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알겠어요. 대답하면서도 나를 쳐다보는 그 얼굴이, 꽤 달달했다는 생각은 남몰래 삼켜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