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에게 있어 황궁 생활은 아직은 많이 낯선 것이었지만, 그래도 타국에서 왔고, 그 전에는 궁이란 곳에
발도 들여본 적 없는 사람인 것 치고는 꽤나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정국의 성격상 "나 잘 적응하고 있어요." 하며 자기자랑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본인 입으로 딱히
그러한 이야기들을 말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국보다 훨씬 빨리 황궁에 발을 들인
석진과 지민이 정국에게 이제는 제법 궁인인 태가 난다는 칭찬을 해 댔으니, 정국도 '아, 그렇구나.'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딱히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궐 안의 모든 사람들이 흰 옷을 입고 은빛 가면을 쓰고 다니는 날이었다.
즐거운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날이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월은국 황궁에서는
꽤나 중요하면서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슬픈 날이었다.
선황(先皇)의 기일(忌日). 월은국의 선황폐하께서는 말년에 얼굴을 뒤덮은 종기로 인해
가면을 쓰고 사시다가, 결국에는 그 종기가 심해져 승하하셨다고 했다.
물론 궁주인 석진은 선황폐하의 죽음에는 또 다른 음모가 얽혀 있었을 것이라며,
그 말을 온전히 다 믿지는 않는 눈치였지만, 여튼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선황 폐하를 추모할 때는
월은국 안의 모든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선황의 기일은 하늘도 슬퍼하는 모양인지, 밤에 달을 볼 수 없는 것 빼고는 항상 맑은 날씨인 월은국이
오늘따라 거센 빗방울로 뒤덮였다. 하지만 이 거센 빗방울을 뚫고 '황자 전하'가 오신다는 이야기를
다른 궁인들에게 전해들었던 정국이었다. 그러나 황자 전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쩐지 석진의 낯빛이
많이 어두워 보였기 때문에, 정국은 '황자 전하'라 불리는 사람이 궁금했지만, 더는 묻지 못하고 바쁘게
선황의 기일 준비를 해야만 했다.
황릉이 있는 곳은 황궁에서 그리 멀지 않았지만, 그래도 산 중턱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렸기 때문에,
발이 미끄러웠다. 게다가 자신보다 덩치가 작아서인지 좀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낑낑대는 지민이
보기 안쓰러웠던 정국은, 다른 궁인들의 눈을 피해 지민을 업고 황릉을 오르느라 벌써 체력이 바닥난 기분이었다.
사정은 내관들과 신하들도 비슷한지라, 다들 힘들어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현 황제의 아버지이자,
현 황제가 보위에 오르기 전에 무려 20년 동안이나 이 나라를 통치했던 선황이었기에,
각자 묵묵히 자기 자리에 서서 묵념을 시작하던 중이었다.
이 때, 황제와 신하들의 묵념을 가볍게 뚫어버리는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히힝-"
한눈에 보기에도 지체높은 사람이 탈 법한 하얀 명마(名馬)였다. 그리고 하얀 명마와 딱 맞춘 듯한,
금실이 수놓아진 하얀 망토를 입은 키 큰 남자가 성큼성큼 황제의 앞으로 다가와,
위압감을 주는 은빛 가면을 천천히 벗은 채 황제 화홍의 앞에 서서 천천히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전정국/김남준] 화홍(華紅)의 남자 F (부제: 화홍의 또다른 남자)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4/18/22/31ddc8d9a050e1d295a71df80c9b97c1.jpg)
"황자 남준, 폐하를 뵙습니다."
분명히 남매인 관계일텐데. 황자의 인사를 받는 황제의 표정은, 어쩐지 남동생을 바라보는 누이의 표정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보인다고 생각하는 정국이었다. 아무리 존칭을 쓴다 해도, 저렇게까지 유대감이 없어 보일 수 있을까.
그러나 자신을 남준이라 칭하는 황자는 황제의 그런 반응이 익숙한 듯 황제보다 한 발짝 뒤에 선 채,
화홍과 마찬가지로 선황의 신위를 들고 묵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짧은 묵념이 끝나고, 내관이 "제례가 끝났소이다, 화란들과 신료들은 속히 하산을 준비하시오." 라는
말이 들리자 사람들은 하나 둘씩 하산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하산을 하는건 화홍과 궁녀, 그리고 내관들이었고,
그 뒤는 자신과 같은 화란들, 그 다음 차례가 황자인 남준, 마지막으로 신료들이 직위가 높은 순서대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정국이 생각하기엔 참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아무리 선황의 제례일이라 해도,
황제가 자신의 인사를 무표정으로 받았으면 마음이 서운할 법도 한데, 분명히 그 상황에서,
황자는 남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다정한 미소를.
그리고 남준의 속내를 알 수 없는 그 다정한 미소는 정국의 머릿속을 좀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석진과 지민이 자신에게 말을 걸기 전까지는.
"야, 너 내가 오늘 밤에 할 작전을 설명하고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앉아있냐?"
"맞아요 형, 이거 중요한 작전이란 말이에요. 무려 황제 폐하의 밀명에 의한 작전인데."
"어, 미, 미안하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어쨌든 잘 들어, 정국이 너도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그렇게 정국을 집중시킨 석진은, 오늘 밤에 있을 작전을 예전과는 달리 진지한 모습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화란 제3궁의 화란들이, 어젯밤에 작전을 하다 암살을 당했어. 그들이 하려던 작전은, 백성들을 착취해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고 있는 구 중서령의 창고를 털어, 그 재산들을 전부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작전이었지."
"그런데 그들이 창고를 무사히 빠져나오나 싶었더니, 엄청난 수의 화살이 그들의 몸을 관통했어. 그리고 그 화살들은
죄다 독화살이었지. 월은국에선 폐하께서 즉위하시고 난 후, 독화살의 반입과 유통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데 말야."
"그래서 내가 며칠간 조사를 다녔던 결과, 구 중서령이 비밀리에 자객단을 조직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어.
그 자객단이 화란들의 사망사고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여섯 살 먹은 아이도 알겠지?"
정국과 지민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오늘 밤은, 그 자객단들을 소탕하는 게 목표야. 오늘만큼은 모두가 같은 가면을 쓰고 같은 옷을 입고 다니니,
자객단들도 우리의 정체를 쉽게 눈치채지 못할테니까."
"그러니까, 다들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궁 밖을 나와. 혹시나 궁 안에 내통자가 있을지 모르니, 내관들을 비롯한
어떤 궁인들한테도 우리가 출궁한 사실을 들키면 안 돼. 알았지?"
곧이어 밤이 찾아왔다. 정국은 지민이 알려주는 지름길을 따라 조심스레 궁 밖을 나와 석진과 마주했다.
그리고 셋은 숲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어둠의 늑대마냥 자취를 감추었다. 인적없는 고요한 숲 속에서는 부엉이 소리만
그들을 맞이할 뿐이었다.
"쉿-"
석진이 자객단의 본거지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그 뒤를 조심스레 정국과 지민이 따랐다.
빠르면서도 고요한 발걸음. 부엉이 소리가 아닌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소리. 이 안에는 필시 자객단들이 밀담을 나누고
있으리라. 동료를 죽인 원수들을 마주하는 석진의 표정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침착한 모습의 석진이 조용히 손짓으로 뒷문을 가리켰다. 그 손짓을 따라
정국과 지민이 뒷문을 에워쌌다. 곧이어 굳건한 나무문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원래의 형체를 잃고 허물어지며,
안에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의 대리인으로서 명한다. 이 곳의 사람들을 전부 남김없이 제거하라."
화란관 안에서 보이는 궁주의 모습과는 백팔십도 다른 표정과 다른 말투였다. 곧이어 고개를 끄덕인 정국과 지민이
칼을 빼어든 채 그 명을 따랐다. 고요하던 숲 속은 순식간에 칼이 맞부딪히는 소리들로 어지럽게 뒤덮였다. 때마침, 한 자객이
정국을 유인하듯 도망치기 시작했다. 정국은 그 뒤를 맹수의 기세로 뒤쫓았다.
그 때, 정국을 유인한 자객이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었다. 이대로라면 어디서 자객이 나타날지 알 수가 없었다.
킬킬킬. 정국을 더 깊숙한 숲 속으로 유인한 자객이 소름끼치는 웃음으로 어딘가에서 웃고 있었다. 정국이 그 소리에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며 자객을 찾으려던 순간, 자객은 정국이 미처 보지 못한 키 큰 고목나무에서 뛰어내려 정국의 등을 베려고 했다.
으윽.
정국을 베려던 자객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소리였다. 놀란 정국의 등 뒤에는 이미 절명한 자객과,
![[방탄소년단/전정국/김남준] 화홍(華紅)의 남자 F (부제: 화홍의 또다른 남자)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1/11/14/95e8f99b95368eaf5b97a78a2ddfa083.jpg)
방금전에 사람을 벤 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순수하면서도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황자 남준이 있었다.
-
+) 와 드디어 김남준이 등장했습니다. 박수 주세요!! 제가 어느 타이밍에 등장해야 남준이가 멋있을까 고심하다
드디어 남준이를 투입시켰습니다. 제가 얼마나 고민에 고민을 했는지 여러분들은 모를 거에요 흥칫뿡!
++) 가슈윤민기님 윤기설탕님 땅위님 입틀막님 하설님 몬모니님 둘셋님 호비호비뀨님 밍죠님 알파카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글로 보답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 암호닉은 항상 환영이지만, 쓰니가 연재하는 가장 최근 화에서 신청하시는 것이 작가의 빠른 암호닉 등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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