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오직 당신만의.
W. JPD
14
"예, 그럼 그 금액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이 세상은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이건 분명 나에게 독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돈이 없었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돈이 생기고 나니, 그 좆같던 말도 너무나 다행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내가 널 유일하게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상식적으로는 내가 바빠서 시간이 없어야 하는 건데 애가 타는 건 나뿐이었다. 시간만 나면 너를 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했지만 너를 마주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학교, 학원, 독서실, 과외. 넌 집에서도 쉬지 않던 학생이었기에, 난 너를 사진으로밖에 마주하지 못했다.
"... 성적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겠네, 또."
국내 활동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일본에서의 활동을 시작했고, 동시에 회사에서는 다음 국내 활동에 대한 회의가 시작됐다. 듣기론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테마라고 했다, 그만큼 회사에서는 애정이 있었던 거고. 무조건 성공시킨다는 생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단지 이 아이템을 언제 써먹을지가 고민거리였는데 회사 자체에서 우리를 믿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상남자 때부터 반응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고 도약할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의 강력한 찬성이 한몫했었다. 화양연화, 청춘의 위태로움을 표현한다는 것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었지만 나는 주제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 찬성한 것이 아니었다. 화양연화의 첫 번째 앨범이 나올 땐 네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인데, 그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너는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에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았다. 워낙 수준이 높았던 학교였기 때문에 최상위권은 바라볼 수도 없고, 중상위권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너였기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그 시점 동안 죽도록 공부했던 것을 알았다.
나는 그저 네가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정신 차리자."
동시에 나를 향한 비난이기도 했다.
일본 활동을 이어가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너의 소식을 접하고 있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멤버가 있었다. 김남준, 예전부터 나와 함께 음악을 하던, 꽤 의지할 만한 좋은 아이, 그건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단지, 그게 너와 관련된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뿐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처음 알아차렸을 때의 반응은 신기할 정도로 침착했다. 아마 너보단 나를 먼저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이유가 나를 더 오래 봐왔기 때문은 아니었을 거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판단하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그게 그 아이의 신념이자 닮고 싶은 부분이었다. 그저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우리들끼리의 비밀이 존재하기도 했었고, 워낙 속에서 문드러진 사람이라는 건, 같이 생활하다 보면 다 알게 되는 사실이었기에. 그랬기에 나를 가만히 내버려 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멈추려고 했다.
물론 실패했지만.
"와, 아까 봤어?"
"진짜 많이 왔더라"
"나 지금 실감이 안 가."
"때려줄까요?"
"아니. 뒤지고 싶어?"
화양연화의 첫 번째 활동 땐 최대한 자제했다, 너에 대한 마음을. 체념하기로 했다, 그럴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또 했다. 그 와중에 널 생각하면 또 물 흘러가듯 잘 이어지는 작업에 미칠 지경이었다. 이젠 내가 널 좋아하는 건지, 필요에 의해 써먹으려는 건지, 아무것도 아닌 건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 마음을 정확하게 알기라도 하면 더 괜찮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스케줄이 점점 바빠졌고 생각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감사했다, 감사하기는 했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을 뿐이다. 나는 나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었고, 내가 감수하기엔 너무나 큰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이 바닥에서 좋게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성공이었다.
"형, 작업 마무리했어요?"
"어, 거의."
"이번에 가사가 저번보다 더 격해진 것 같아서 놀랐어요."
"어, 좋은 의미면 고맙고."
"좋은 의미죠, 당연히."
"... 아, 그리고."
"네?"
"미안하다."
너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더 이상은 그 앞에서 당당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남준이는 계속해서 암묵적으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이어갔다, 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걸 알기에 그 정도 선에서 끝냈을 것이다. 좆같은 상황 속에서도 나를 먼저 생각해주는 사람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주기 전에 사과 한 마디는 하고 싶었다, 그게 내 마지막 대답이었다.
더는 나를 막을 수가 없었다, 막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너무 힘들어서.
"윤기야, 내가 여태까지 지켜보기만 했는데."
"... 예?"
"남준이한테 미안하다고 했다며."
"형은 또 어떻게 알았어요, 여태 왜 모른척했는데."
알고 있었던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다. 유일하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멤버, 그래서 말은 안 해도 의지가 많이 되는, 항상 묵묵히 잘 이끌어주는. 여태 모른 척하다 이제야 저를 막아서는 게, 역시나 미안했다. 여태 저를 배려하다가 이제야 내가 다칠 걸 알아서 대신 막아준다는 게, 역시나 미안했다.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너무 과분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많아지는 팬들 역시 나에겐 너무 과분했고, 나에게 쏟아지는 빛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바라고 바랐던 것임에도 과분했다.
"이번 가사로 보면, 너 절대 안 멈출 것 같길래."
정확하게 알고 있네요, 형. 그래서 내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요.
화양연화의 두 번째 활동은 더 절박해진 상태였다, 내 직업의 성공이 절박한 게 아니라 너에 대한 마음이 절박했다. 타이틀곡의 가사는 극에 달했다.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는 듯, 그렇게, 전부 뱉어냈다. 그렇게 해서 이겨낼 수 있다면, 너를 외면할 수 있다면, 그저 감사하며 더 악에 받친 소리를 낼 수도 있었다. 남준이와 석진이 형이 이젠 눈에 보이게 움직이기도 했고, 나를 막아서며 자제시키려고 했던 노력도 있었고, 스스로도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래서 멈추고 싶어서, 그래서 그만하고 싶어서, 그만둬야 하는 게 맞는 걸 알아서.
그런데 너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사라지지 않았다.
"형 가사만 좀 동떨어져있지 않아요?"
"딱히."
"... 그래요, 그럼 그냥 할게요."
화양연화를 마무리 짓는 세 번째 앨범이 준비되고 있었다. 너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내신에 비해 모의고사 성적이 더 좋아서 그 학교의 학생들 대부분이 그렇듯 정시에 더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작업에 찌들어 살아갈 때, 너 또한 공부에 찌들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것 하나에 동질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던 내가, 이젠 스스로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감정들은 내 가사에 그대로 녹아내렸고, 결국 '불타오르네'에선 술에 취한 미친놈이 되어버렸다.
"예? 뭐라고요? 고척? 고척?!"
"헐, 아니, 진짜, 예?"
"대박..."
화양연화는 대박을 쳤다, 그냥도 아닌 존나게 대박을 말이다. 올해의 마지막 활동을 하고 나면 고척 스카이돔에서 콘서트를 할 것이라는 소식에 멤버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한편으론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물론 나 또한 기뻐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올해의 마지막 활동을 하기 전 믹스테이프를 낼 예정이었다. 너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여태 뭐가 그렇게 힘들었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회사 내에서도 이미 동의를 구한 상태였고 틈틈이 준비해왔던 작업이었다.
너에게 떳떳한 사람이고 싶었다.
암호닉
땅위 / 윤기윤기 / 굥기 / 봄 / 굥기윤기 / 왼쪽 /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 슉아 / 쿠크바사삭 / 김까닥 / 레드 / 찡긋 / 호비호비뀨 / 윤맞봄 / 둘셋 / 1472 / 피치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