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차였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차일 예정입니다.
브금필수
※ 어서 이어폰을 들고 오시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제가 데려다 줄 거니깐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그니깐 제 말은 앞으로 이렇게 셋이 같이 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
"저는 탄소랑 단둘이 가고 싶거든요."
지민이가 윤기 선배에게 탄소랑만 하교 하고 싶다고 말한 뒤로는 윤기 선배와 하교 할 일은 없었다. 물론 그 다음 날 윤기 선배는 날 따로 불러 쭈쭈바를 사주며 내게 지민이의 험담이란 험담은 모두 내려놓았다. 거기에 나는 지민이는 나쁜 애가 아니라는 말만 계속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자 재미없는지 윤기 선배는 하다 말았다. 쭈쭈바를 얻어먹었는데 하소연도 들어주지도 않냐며 툴툴거렸지만 나도 윤기 선배와 셋이 하교를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터라 위로를 해주진 못 했다. 그리고 딱히 윤기 선배도 위로를 바라고 온것 같진 않았다. 그냥 맞장구를 쳐주길 바란 듯 했다. 그리고 반 친구들에게 지민이가 윤기 선배에게 나랑만 하교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지민이가 그렇게 말했다고?"
"응, 그렇다니깐?"
"에이 거짓말 치지마 김탄소. 걔가 왜 그렇게 말했겠냐"
진짠데.. 왜 안 믿냐, 진짜로 그랬다니깐? 앞으로 셋이 갈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탄소랑만 가고 싶다고 박지민이 그랬다니깐? 아무리 얘기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근데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박지민은 오직 나에게만 차가우니깐 그래서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처음엔 아이들이 그 얘기를 믿어주지 않아 슬프기도 했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도 안 믿어도 나만 좋으면 된거다. 그런거다. 그러니 괜찮다. 며칠 동안 지민이와 똑같이 하교했지만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똑같이 지민이는 이어폰을 끼고 나와 하교를 했고, 집에 도착하면 나보고 얼른 집으로 들어가라고 보챘고, 이것들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참 웃기게도 지민이가 내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난 그냥 옆에 지민이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아서 그냥 실실거렸다.
"저기 지민아, 나는 네가 나를 안 좋아해도 계속 좋아할 거야. 그러니 나를 미워하지만 말아줘"
우리 엄마가 돌린 게 이런 거라고 칭해졌다. 이런 게 뭐고 저런 건 뭘까. 그냥 곱게 먹어줘도 되는 건데 아니 꼭 먹지 않아도 된다. 그냥 저런 말을 내 앞에서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리고 왜 꼭 말을 저렇게 삐뚤게 해야 하는 걸까. 지금 같았으면 뭐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무시하고 말지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엄마를 졸라서 쏜 간식이 무시 당하는 거 같아 상처를 입었었다. 곧 나를 무시하는 것이었고 그리고 우리 엄마를 무시하는 것과 같았다. 그 여자애 말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고개를 떨구고 서 있었다. 화보다는 그냥 위축이 되었다. 한마디로 그 아이의 말에 나는 기가 죽었다. 그때 뚜벅뚜벅 걸어오는 흰 실내화를 신은 사내아이가 말했다.
"먹기 싫으면 나 주던가. 네 취향이 아니라고 툴툴거리지마.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깐"
"......"
그 사내아인 지민이었다. 그리곤 그 계집애의 무지개떡과 피크닉을 들고 자신의 가방에 넣곤 교실 밖으로 나가는 지민이었다. 쪽팔렸다. 가장 좋아하는 사내아이에게 치부를 보여준 것만 같은 그런 기분. 그날 방과 후 모든 아이가 집에 가고 빈교실에 혼자 남아 막 울었던 게 기억이 난다. 혼자 서럽게 울고 있을 때, 지민이는 아직 집에 가지 않았는지 교실에 들어와서 우는 날 보곤 괜찮다고 무지개떡 좋아한다고 맛있다고 괜히 내 앞에서 무지개떡을 맛있게 먹는 척했었다. 그 뒤로 무지개떡만 보면 이가 부득부득 갈린다. 그런데 엄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모르시고 매년 이맘때만 되면 방앗간에 가셔서 무지개떡을 주문하시고 온다. 그리고 그 주문한 떡이오면 꼭 나를 시켜 지민이네 집에 나눠주셨다. 지민이네 집에 가서 무지개떡을 건넬 때마다 떠오르는 그 계집애의 말과 혹여 내가 창피하고 상처받을까 날 위해주던 지민이가 떠올라 괴로웠다.
"얼른 뭐해, 빨리 가져다주고 와."
"어, 맨날 나만 시켜 진짜."
방금전 하교를 하고 집으로 와 지민이와 헤어진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또 지민이를 보러 가는 건 매우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무지개떡 때문인지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지민이네 집에 지민이가 아닌 어머님이 계셨으면 좋겠다. 제발. 그런데 항상 그랬듯이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면 그런 일은 꼭 생긴다. 그것처럼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지민이었다. 좀 전에 씻었는지 머리는 조금 젖어 있었고, 흰색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지민이었다.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매년 무지개떡을 가져다줬지만, 항상 아주머니가 받아가셨는데 오늘은 지민이었다. 집에 어머니가 안 계신듯했다.
"........"
"무지개떡... 엄마가 가져다주라고 해서."
일회용 접시에 담긴 무지개떡을 한참 보던 지민이는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아마 그때를 생각하는 것이겠지. 지민이가 더 깊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게 어서 전해주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받을 준비도 되지 않는 지민이의 손을 이끌어 위에 무지개떡을 건네줬고, 맛있게 먹으라는 말만 남기고 나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발걸음 뗐다. 머릿속에서는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해 하며 경고음이 울렸지만 내 발걸음은 다시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뒤에서 지민이가 나를 붙잡아 세웠기 때문이었다.
"몇개 먹고 갈래?"
"......"
"싫어? 싫으면 말고."
"아니! ㄴ...누가 싫대!"
얼떨결에 지민이의 집에 들어왔다. 엄마랑 지민이네 집에 자주 놀러 온 적이 있어서 낯설거나 신기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냥 내가 신기한 건 지민이가 내게 먼저 자신의 집에 들어오라고 한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지민이는 식탁에 무지개떡을 내려놓고 내게 포크를 건넸다. 그리곤 내게 유자차를 내어줄 것인지 뜨거운 물을 끓이는 지민이었다. 물이 끓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자차를 건넸다. 그냥 뜨거운 물에 유자청만 타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만 지민이가 해서 그럴까? 뭐든 전부 다 달콤해 보였다. 콩깍지인 거겠지. 지민이는 무지개떡 하나를 집어 입에 베어먹었다, 그리곤 내게 물었다.
"왜 안 먹어?"
"무지개떡 안 좋아해."
"왜? 그때 일 때문에 그래?"
"어, 뭐...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응."
진짜 기억하고 있었구나. 지민아 너는 정말 나의 모든 치부를 다 아는구나. 부끄럽다. 나도 너에게 정말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데 꼭 여자친구가 아니더라도 그냥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되고 싶은데. 매번 난 또 이렇게 부끄러워지는구나. 지민은 그날의 이야기에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보곤 내게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내게 말했던 것 처럼 그 모습으로 또 날 위로 해줬다.
"난 좋아해, 정말로. 무지개떡."
"........."
"그리고.. 무지개떡만 보면 네가 생각나."
"........."
"너 막 그때 콧물이랑 눈물 범벅 되가지ㄱ..."
순간 나도 모르게 지민이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손이 먼저 앞으로 나갔고, 그다음 뇌가 작동했다. 지민이는 나로 인해 더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내가 방금 지민이의 입을 틀어막은 걸 뇌가 뒤늦게 인식했다. 나는 인식한 뒤 너무 놀라 바로 손을 떼버렸다. 지금 지민이는 분명 나를 놀리는 게 맞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날 편하게 대해주는 것만 같았다. 꼭 초등학교로 돌아가는 기분이 드는 그런 느낌이다. 나는 지민이에게 양손을 모아 잊어주면 안 되겠니? 부탁했다. 그러자 지민은 그새 무지개떡을 먹고 또 다른 무지개떡을 들어 입에 넣더니
"아무튼, 난 좋다고. 무지개떡."
기억에도 냄새가 있다고 했다. 방금 그때의 기억 속에 냄새가 코 언저리에 은은하게 났다. 마치 우리의 사이도 순수했던 그날로 돌아간 거 같았다. 지민이의 미소에 어린 지민이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오늘로부터 그날의 기억은 더이상 나쁜 기억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좋은 기억으로 간직 될 거 같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준 건 지민이었다. 그동안 먹지 않았던 무지개떡을 지민이를 따라 하나 집었다. 그리고 베어 먹었다. 이젠 조금은 괜찮아졌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고 웃는 너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때도 지금도.
fin
- 바람마저 빛나는 듯한 날씨-
behind
-윤기와 여주의 대화 엿보기
"야 무슨 그런 자식이 다있냐? 내가 뭐 니네 둘 사이를 방해라도 했냐? 무슨 그렇게 싸가지 없게 말을 해"
"예, 방해하셨죠."
"언제는 너 싫다고 매몰차게 찰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남이 가져갈 거 같으니깐 위협이라도 느끼나"
"남이 가져가요? 누굴요? 나요?"
"몰라, 나 간다. 수업 종 쳤어. 너도 빨리 들어가."
"뭔데요 왜 말 안 해주고 가요. 종 아직 안 쳤잖아요. 어? 어디 가요. 왜 피하는데요? 누가 나 좋아한대요?"
"모른다고"
"아 뭐 아는 거 같은데? 아 말해줘요!!! 어디 가요"
*
독자: 뭐야 무지개떡이 뭔데 한편에 무지개떡이 이렇게 많이 등장해?"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ㅎㅎ 그런데 사실 이 무지개떡의 이야기는 제 실화입니다. 그 계집애를 생각하면 ㅂㄷㅂㄷ 물론 그 아이도 철없던 어린시절이라 그랬을 거라 생각하지만 만개하리 망개 저는 은근 쉽게 상처받는 스타일이라 그 당시에 매우 상처를 받았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우울한 얘기는 그만하고 좋은 얘기를 해볼까요? 초록글 너무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여기저기 독방에서 추천받고 왔다고 하시던데 독방에 추천글이 올라오는 게 신기해서 그날 잠을 못 잤어요 제가 여러분 많이 사랑합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