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오직 당신만의.
W. JPD
15
"형, 준비는 잘 돼가요?"
"어, 꽤. 근데 무슨 일이냐, 이 밤에 왜."
"형 괜찮나 확인하러 왔죠."
"좀 자라, 피곤할 텐데."
"저 혼자 온 건 아니고..."
"그럼 누구."
"하하, 이 형님이 왔다! 밤샘 작업할 땐 역시 야식이지!"
믹스테이프도 그랬지만 다음 앨범 작업도 무시할 수 없는 내 일이었다. 그랬기에 더 시간을 쪼개 잠도 줄여가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럴 때면 가끔 남준이나 석진이 형이 찾아와서 같이 있어주곤 했는데 둘이 같이 온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단순히 작업 구경하러 온 게 아니라는 의미겠지, 분명, 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그리고 빗나가지 않았다.
"이번 활동할 때 수록곡 중에 Save ME로 활동 했었잖아요."
"어, 그게 왜."
"혹시 그때 제가 한 말 기억나요?"
뭐였더라, 무슨 약속을 했던 것 같긴 한데. 딱히 집중해서 들었던 말은 아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꺼낸 남준을 빤히 보면 역시 그렇다는 듯 머리를 헝클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아, 내가 저런 미친 약속을 했었나. 앞으로 생각 좀 하고 살아야겠네.
"그 곡으로 하는 대신 이제 그만두기로 했었잖아요."
"... 내가?"
"네, 알겠다고 고개도 끄덕거리셨는데."
"맞아, 나도 옆에 있었어."
"... 그 애 생각해서 만든 곡이라는 거 알아요, 가사만 봐도 너무 티 나잖아요. 게다가 꼭 그 곡으로 활동하자고 형이 강하게 나오기도 했고."
"근데."
"네?"
"왜 이렇게 날 막으려 들어, 내가 걔한테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닌데."
"곧 그럴 예정이잖아, 윤기야."
제 말에 남준이가 입을 다물자 옆에 있던 석진이 형이 입을 열었다. 역시 둘이 같이 있을 땐 제가 이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난 더 날카롭게 굴었다. 이 둘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모든 건 나로부터 시작됐고 내가 다 저지른 일인데. 어쩌면 이 둘이 이미 희생한 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제가 저지른 일들의 뒤처리를 하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사과를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냥 책임감 없이 떠넘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제 본래 성격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피해 주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그게 내가 됐든 남이 됐든. 그런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병신아.
"그래, 일단 작업해라, 마무리 잘하고."
"형, 믹테 준비할 동안에 내가 앨범 최대한 맡아볼게요, 그거 먼저 끝내요."
제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는 걸 왜 이 둘이 눈치를 봐야 하는지, 왜 이렇게 착해빠져선 사람을 쓰레기 만드는지. 아니, 이미 난 그랬지만, 역시 아직도 핑계나 대는 새끼구나.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들이 나를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구나.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그래서 결국 하고 있는 음악을, 스스로 더럽히고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걸까.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도대체.
"와, 대박..."
"반응 진짜 좋아요, 형."
"축하한다!"
이젠 날씨가 후덥지근해져 조금만 움직여도 불쾌감이 급상승해 최대한 침대에 늘어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방으로 들어와 쫑알거리는 멤버들이었다. 뮤비가 공개되고 난 뒤 반응을 살폈던 건지, 자기들이 더 난리였다. 저는 귀찮아서 살필 생각도 못했는데 에너지가 얼마나 넘치는 건지. 쟤네는 덥지도 않나... 아, 그래도 기분은 좋네.
다행이다.
"제목이 좀, 더러운데."
"형이 피땀 흘려 노력한 걸 표현하고 싶다면서요, 그 여자애의 노력을."
"아니, 그래도, 피 땀 눈물은 뭐냐. 지금 일부러 이러냐, 표정은 존나 뚱해선."
"별로예요? 형이 말한 걸 가장 잘 녹아내렸다고 생각했는데."
"... 맘 같아선 벌써 한 대 쳤다, 새꺄."
수능이 대략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우리는 또 다른 정규앨범을 냈고, 2016년의 마지막 활동을 시작했다. 듣자 하니 넌 괜찮지 못한 것 같았다, 수능이라는 압박감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한 달이나 남았는데 그렇게 지내도 괜찮은 건지 걱정이 많이 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오는 소식들을 살피며 네 상태를 꾸준히 확인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걱정돼서 미칠 것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아, 이제 곧 콘서트네요, 저 지금 떨려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고척은 진짜..."
"쫄지마라, 별거 아냐."
"형, 손 떨리는데요?"
멤버들이 있기에 멤버들이 웃었다, 우리가 있기에 우리들은 웃었다. 서로 의지했다, 오래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이런 사람들을 등지면서까지 너를 붙잡아야 하나 고민했다. 물론 머리는 절대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마음은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그 길을 걸어갔다.
"어디 가요, 이 밤에?"
"잠깐 산책."
콘서트를 앞두고, 그러니까 이제와는 다르게 정말 대규모의 콘서트를 앞두고, 마음이 갈피를 못 잡아 너에게로 향했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나지만 이건 정말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발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가야 할 길이 이 길이라는 듯, 마치 내 목적지가 너라는 듯, 그렇게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네 학교가 보였다, 그리고 곧이어 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숙사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때 처음 감사했다. 학교를 나서는 네가 보여 네가 가는 길을 뒤에서 따라걸었다. 네가 걷는 길을 걷는다는 게 행복했다, 좋았다, 내가 꿈꾸는 게 이거였구나 싶었다. 걷다 보니 이젠 너와 나 둘만이 걷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곤 너를 붙잡았다.
"누구세요, 이거 놓으세요."
사실 나도 내 행동이 당황스러웠던 건 사실이라 급하게 잡았던 손을 놨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무장을 하고 나왔는데 생각해보니 네 입장에선 범죄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마스크를 내렸다. 마스크를 내리면 알아볼 거라 생각했는데,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놀라지도 않고 가만히 저를 뚫어져라 보는 너에 무안해진 나였다. 일단 오랜 시간을 여기서 보낼 순 없어 준비해두었던 메모지를 손에 쥐여 주곤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됐다, 아니 나에게는 새로운 시작.
-
그 남자를 안 본 지 며칠, 내가 못 버틸 것 같았다. 연락은 한 통 없고, 내가 연락을 기다리는 건지 안 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운 감정은 여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고, 내가 대체 어떤 일에 휩쓸렸던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일들이 더 있었을 수도 있었다, 아 그런데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바뀌었어요? 요즘 좀 잠잠하던데."
"부탁이 있어서요."
"응, 해요."
"... 관련된 자료, 전부 다 버려주세요."
"응?"
"폐기시켜달라는 소리예요, 이 세상에 기록도 안 남게."
"그거 기자한테 굉장히 큰 결정인 거 알아요?"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저번에 싸가지 없게 굴었던 것도 죄송하고요, 앞으로 눈에 안 띌게요."
내가 생각해도 태도가 너무 싹 달라진 것 같아 고개도 못 들고 말을 마치면, 곧이어 들리는 웃음소리에 숙였던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는데 왜 이렇게 귀엽냐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뭐지, 그래서 해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나 지금 되게 진지하게 구는데 왜 웃는 거야, 도대체.
"혼란스러우니까 그랬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 그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는? 정말 연애라도 해?"
"... 아뇨. 그냥 이젠 다 끝났어요, 제가 난리 치고 나왔어요."
"근데 왜 폐기해달라 그래, 가지고 있어야지."
"... 이젠 저랑 관련 없는 일이에요, 용서, 살짝 그런 거."
"아직 마음 있구나?"
"... 아니에요, 그런 거."
"일단 동생 같은 우리 고딩 부탁은 들어주도록 할게, 그리고 연락은 계속하는 걸로 하자."
"네? 왜요?"
"그냥. 앞으로 할 말이 더 생길 수도 있잖아?"
마치 미래를 예상이라도 한다는 듯이 말하네. 근데 전보다 기분이 나쁘거나 뒤가 구리거나 하지는 않다, 꽤나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아, 그냥 내가 경계심을 풀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렇고 내가 정말 미련이 남아서 이러는 걸까, 그러게, 내가 왜 이런 번거로운 짓을 직접 하고 있는 거지.
보고 싶은 건 맞아, 그건 부정하지 않을게요. 근데 나 다시는 안 만날 거예요.
암호닉
땅위 / 윤기윤기 / 굥기 / 봄 / 굥기윤기 / 왼쪽 /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 슉아 / 쿠크바사삭 / 김까닥 / 레드 / 찡긋 / 호비호비뀨 / 윤맞봄 / 둘셋 / 1472 / 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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