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thrlller
세피아의 지하철
번외
이렇게 난 아름다운 마음으로 사랑했지만
이렇게 난 거짓없이 심장으로 사랑했지만
조금씩 난 모든 게 다 내 뜻과는 반대로만 가
조금씩 난 모든 게 다 내 뜻과는 반대로만 가
(넬/연어가 되지 못한 채)
그 곳에 남겨진 이야기 |
지하철을 빠져나온 직후 우리는 역 앞에 무장을 한 채로 총대를 겨누고 있는 경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에 걸음을 멈췄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위협을 느낀 그들은 방향을 틀어 길을 돌아가거나 멍하니 우리들을 쳐다보며 바쁘게 핸드폰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인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비겁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방관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소방차가 역을 향해 달려왔다. 곧 그칠 줄로만 알았던 소나기는 점점 더 거칠게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형용할 수 없는 물줄기를 맞으며 우리는 그저 가만히 숨을 쉬고만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재환이 조심스럽게 팔을 올렸다.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물을 막아주기 위함이었다.
어느 한 경찰이 무어라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로 추정되는 수 많은 대가리들이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김원식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철컥, 하며 장전되는 총탄의 움직임을 끝으로 그 곳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찬란하게 울어주는 하늘마저도 그들의 슬픔을 따뜻하게 안아진 못했다.
구급차가 달려왔다. 몇몇의 하얀 무리들이 김원식을 들것에 눕히고 데려갔다. 남자는 다급하게 물었다.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겸연쩍게도 입꼬리를 올렸다. 어차피. 살려주지도 않을 거면서. 나는 남자의 필사적인 물음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분명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김원식을 태운 응급차가 우리들의 곁을 떠났다.
경찰차에서 내린 중년의 남자가 느리게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불길의 진압은 무리인 것일까. 한참 전에 역 안으로 들어간 소방대원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도 따뜻했으니. 아마 무리일 것이다.
중년의 남자가 우리들의 앞으로 우산 하나를 내밀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걸 받지 않았다. 남자가 건네고 있는 푸르른 색의 우산대에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우산살이 검푸르게 번져갔다. 우산엔 녹이 슬어있었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낡고 헤져 녹이 슬어있던 그의 세상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천천히 손을 뻗어 우산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또 천천히 우산을 펼쳤고 천천히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맞닿는 빗방울이 차가웠다. 그러나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았다. 그가 눈물 흘렸을 추위만큼 나도 얼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교복의 와이셔츠 사이로 얼얼한 추위가 태어나기 시작했다.
걸음을 멈춘 곳은 자전거의 앞이었다. 녹이 슬어 뻣뻣한 자전거의 몸체에 수려한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잘 굴러가지 않는 눈동자를 움직여 자전거를 훑어봤다. 특별할 것 하나 없어보이는 자전거임에도 눈물이 나왔다. 그 슬픔에 이유는 없었다. 그의 미소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우산대를 쥔 손에 약하게 경련이 일었다.
자전거 위에 우산을 씌웠다. 거세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부드럽게 튕겨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자전거에 그림자가 졌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안에서 그림자가 졌다.
시간은 무디게 흘렀다. 삼 월이 찾아왔고 나와 수진이는 수험생이 되었다. 열 아홉의 봄은 그렇게 파릇파릇하지 않았다. 학교 근처로 월세를 하나 얻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더 이상 아버지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더불어 이재환까지도. 그가 그럴 수 없었던 것처럼 나는 그들을 잊어가기 시작했다.
지난 해의 마지막 가쉽이었던 지하철 역 구내의 화재는 어느 연쇄살인마의 소행 정도로 돌아갔다. 김원식은 마지막 공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응급실로 실려갔던 그는 약간의 회복을 거친 다음 자신의 모든 범행에 대한 자백을 순순히 마쳤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일말의 진실도 나는 말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그 시절은 빠르게 잊혀졌다.
…… 모든 것을 잊어가기로 했다. 나의 아름다웠던 소년을 위해. 그의 순수했었던 마음을 위해.
먹구름이 걷힌 하늘 사이로 때 이른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무심코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걱정하지 마.
너의 곁엔 언제나 내가 있을게.
어쩌면 이랬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
"오이." "이빨." "빨대." "대문." "문지기." "기차." "차표." "표범." "범… 범인." "인구." "구렁이." "이산화나트륨." "……방금 뭐라고 했냐?" "이산화나트륨." "…뭔 나트륨?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지?" "됐으니까 빨리 이마나 까." "그러는 게 어딨어? 단어에 영어 들어가면 안 되는 거거든?" "영어 들어가도 돼." "누가 그래?" "내가."
어쩔 수 없이 미적거리며 앞머리를 올리자 이홍빈이 기어코 딱밤을 놓았다. 얼얼함에 이맛살을 찌푸리다가 이내 꾹 어금니를 물었다. 거기서 이산화나트륨이 나올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재미로 시작한 게임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을 보아하니 심사가 제대로 뒤틀리긴 한 것 같았다. 딱밤이 지나간 이마는 아직도 따가웠다. 발갛게 달아오르는 이마를 살며시 문지르다가 조심스럽게 이홍빈의 눈치를 살폈다. 웃고는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뻣뻣한 그 얼굴에 조금씩 미안함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러 더 큰 소리를 쳤다.
"여자친구 때리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다?" "그러는 넌. 남자친구 꼭지 빠지게 하려고 아주 안달이 났더라."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걷던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이홍빈도 느리게 걷던 보폭을 줄이고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허공으로 시선이 잇닿았다. 먼저 눈을 돌린 건 이홍빈이었다. 이홍빈은 나를 두고 조용히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뒷모습은 벌써 저만치로 멀어졌다. 아씨. 작게 중얼거리다가 이홍빈을 따라잡기 위해 성큼성큼 다리를 움직였다. 그와 함께한 이 년의 하굣길동안 이렇게 마음이 뒤숭숭한 적은 처음이었다. 저 멀리 사거리의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야. 너 아직도 화났냐?" "응." "……." "많이 났어."
느껴지는 분위기는 평소와 같았지만 목소리가 달랐다.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채로 이홍빈을 올려다봤다. 뚫어져라 턱선을 올려다보는 시선에도 이홍빈은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눈길도 돌려주지 않는 태도에 짐짓 태연스레 헛기침을 했다. 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선배와 후배들이 어울려 놀기에 한창이었고 하필이면 눈치 없기로 소문이 자자한 선배에게 얻어 걸려 이름도 모르는 남자 후배와 막대 먹기 게임을 했다. 그리고 그걸 이홍빈이 봤다.
"…야. 내가 하고 싶어서 했냐. 거기서 빠지면 완전 분위기 초치는 건데 어떻게 안 한다고 해." "그래도 하지 말았어야지. 바로 옆에 내가 있었는데."
흡사 엄마를 빼앗긴 꼬마의 투정과도 같은 목소리로 이홍빈이 투덜댔다. 그리고 끝이 없는 중얼거림은 시작되었다. 걘 얼굴이 못생겼다느니. 각도가 어땠다느니. 표정이 어땠다느니. 내가 안 말렸으면 입술이 닿으려고 했었다느니. 정말 쉬지도 않고 나불거리는 주둥이가 신기할 정도로 이홍빈은 급하게 제 불만에 대해 떠들어댔다. 한껏 억울해보이는 얼굴표정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짜증나. 왜 자꾸 내 꺼 탐내려고 해." "너 지금 질투하냐?" "……." "어린 애도 아니고." "몰라. 말걸지 마.
불퉁하게 삐져나온 입술이 어설펐던 추측에 확실한 뒷받침을 해주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고 이윽고 걸음은 시내 어느 한복판의 소아과 앞에 멈췄다.
"야, 성음아. 나 지금 어때? 잘생겼어? 응?" "언제는 말걸지 말라며?" "……나 지금 빈 손으로 가도 되는 거 맞냐? 뭐라도 사들고 와야 되는 거 아냐?" "맨날 맨날 보면서 뭘 새삼스럽게 난리야." "후…… 떨리니까 그렇지. 어떻게 여긴 맨날 맨날 와도 떨리냐. 아버지가 나한텐 뭐라고 안 하셔?" "글쎄. 별 말씀 없으시던데."
삼 층인 소아과로 계단을 이용해 걸어갔다. 소아과는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이었다. 대학병원에 교수직으로 있던 아버지는 지난 해 교수직을 내려오시고 동네에 작은 소아과를 차리셨다.
딸랑, 거리며 문이 열렸다. 소아과 카운터에 있던 간호사 언니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나 역시 언니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로비에서 녹차를 타오겠다는 이홍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소파에 앉으려는 찰나, 익숙한 얼굴이 시야로 들어오는 바람에 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 오빠. 왜 여깄어요? 마감은 어쩌구요. 심심하면 안에 들어가 있지." "운이가 안 놀아줘. 나보고 저리 가래." "그 오빠가 뭐 그렇죠. 바빠서 그럴 거예요. 너무 마음 쓰지 마요." "오늘 학교에서 축제 했다며?" "네." "옛날 생각난다. 축제하면 나 맨날 무대에서 춤추고 그랬었는데……" "차학연."
회상에 젖은 목소리를 멈춰 세운 건 가느다란 미성이었다. 하얀 가운에 청진기를 걸치고 있는 사람은 소아과 개업 때부터 병원 일을 함께한 사람이었다. 정택운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차학연의 이름을 불렀다. 난 그저 그 사이에서 멍하니 정택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일 방해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했어…." "근데 왜 또 여기 와서 이러고 있어. 자꾸 그러면 나 화낸다고 했지?" "지금도 화내고 있잖아요."
뜬금없는 말대답에 나를 쳐다보던 정택운의 시선이 심각하게 날카로워졌다. 그에 잠시 숨을 삼키던 내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중얼거렸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넌 허구한 날 맨날 여기 와서 뭐하는 거야?" "뭐가요. 왜 갑자기 불똥이 나한테 튀어요?" "그만 노닥거리고 집이나 가." "아, 내가 우리 아빠 보러 오겠다는데 오빠가 뭔 상관이예요?" "맞아!"
이번엔 차학연에게로 그 딱딱한 시선이 닿았다. 잠시 흠칫거리며 눈알을 굴리던 차학연이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들며 딴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정택운은 귀여워 죽겠다는 것처럼 쳐다봤다. 곧 눈이 마주치자 얌전히 있으라며 되도 않는 으름장을 놓기는 했지만. 참. 언제 봐도 답답한 사람들이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지으며 소파에 앉았다. 저녁 시간의 소아과는 항상 바빴다. 아버지에게 여유가 생기실 때까지 잡지나 보며 기다리려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음을 확인한 나는 표정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네가 뭔데 내 동생 다리를 훔쳐 봐? 죽고 싶냐?" "오빠, 그만해." "아, 안 봤다니까요? 종이컵 떨어뜨려서 주은 건데 뭔 다리를 훔쳐 봐요?" "자꾸 시치미 뗄래?"
맙소사. 녹차 타온다면서 싱글벙글 뛰어갈 땐 언제고 저기서 저러고 있다니. 눈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에 잠시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죄송합니다. 얘가 철이 좀 없어서……" "……."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했는지 언성을 높이려던 남자가 느리게 나를 쳐다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내 사과에 한 풀이 꺾인듯, 이윽고 남자가 여동생을 데리고 병원을 빠져나갔다. 김원식 환자 분! 처방전이요! …… 간호사 언니의 애처로운 외침은 이내 공중으로 분해되고 말았다.
"……." "…죽을래?"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 내 목소리에 이홍빈이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네가 좋아하는 녹차 타왔어. 마셔. 자. 나 온도도 되게 잘 맞춰왔다?" "지금 녹차 온도가 문제야?" "……." "딸내미 남자친구가 주제도 없이 행패부리고 있는 거 보면 아빠가 참 좋아하시겠다." "…야. 제발. 말씀드리지 마. 응?"
너 하는 거 봐서. 제법 새침하게 대꾸하자 이홍빈이 안절부절 못하며 내 손에 종이컵을 쥐어줬다. 홀짝거리며 녹차를 마시고 있는데 딸랑거리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결로 고개를 돌렸고, 거기서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시선이 맞물렸다. 서둘러 이홍빈의 눈을 가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어." "……."
오늘 하루 요주의 인물이었던 후배가 손을 흔들며 병원 로비로 들어서고 있었다. 안녕, 누나. 입 모양으로 인사를 건네고 있는 그 꼴을 보며 또 심사가 뒤틀렸는지 이홍빈이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폭탄이라도 터질 기세인 이홍빈을 데리고 소파에 앉았다. 시시껄렁한 얘기들로 주위를 끌자 금세 웃어버리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카운터로 다가가 접수를 마친 후배가 어느 틈엔가 우리의 앞으로 걸어왔다. 긴장에 젖은 침을 삼켜 넘기자 목울대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여기서 또 뵙네요." "…아아, 응. 네. 안녕하세요."
어리버리한 내 모습에 후배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누나 되게 귀엽다." "…응……? 네?" "내 이름 알아요? 나 원래 이름 알려주고 이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누나니까 알려주는 거예요." "……." "한상혁이에요." "이름도 별 좆같은 게." "……." "아까부터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말고 가라?"
이홍빈이 옆에서 낮게 으르렁댔다. 그러나 한상혁은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말했다.
"제가 그 쪽 선배님 신경 거슬리게 한 적은 없는데요?" "뭐?" "골키퍼 있다고 골대에 공 안 들어가나요. 뭐."
어이가 없다는 것을 듬뿍 담아 터뜨린 웃음에 한상혁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 모습에 진땀이 빠지는 건 오로지 나 뿐이었다. 이윽고 진료실 안에서 한상혁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잠시 나를 바라보며 웃어주던 한상혁이 나중에 또 보자며 자리를 떴다. 이홍빈이 매섭게 눈을 치뜬 상태로 그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 너 때문이야." "…뭐, 뭐! 뭐만 하면 내 탓으로 돌려. 이게." "아, 짜증나!"
딱 봐도 분노가 넘쳐 흐르는 손짓으로 머리칼을 헤집던 이홍빈이 누군가의 등장에 딸국질을 하며 교복 셔츠를 가다듬었다. 그에 시선을 앞으로 돌리니. 아버지가 있었다.
"아빠!" "그래, 학교에선 잘 놀았고?" "네." "…아, 아아…… 안녕하세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꾸벅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아버지가 인자하게 웃으시며 그 등허리를 쓰다듬으셨다. 잠시 서서 얘기를 나누다가, 이내 예약 진료가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우리는 주섬주섬 책가방을 챙기며 소아과를 나왔다. 그리고 이홍빈은 금세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생각하니까 또 짜증나. 그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 놈." "뭘 그렇게 신경을 써." "너같으면 신경이 안 쓰이겠냐?"
소아과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십 분 쯤 걷자 익숙한 거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야. 그리고 아깐 정신이 없어서 내가 말을 못했는데. 넌 나한테는 치마같은 거 입지 말라면서 다른 여자 치마 입은 다리는 잘도 쳐다본다?" "그건 말 그대로 다른 여자니까 그러는 거지." "……." "넌 여자친구잖아."
네 다리가 얼마나 예쁜데. 누가 쳐다보면 어떻게 해. 꽤나 능글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이홍빈의 정강이를 아프지 않게 걷어찼다.
"아, 아파!" "변명하지 마." "아무튼. 걔랑 학교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마!" "아. 알았어. 아직도 화났냐?"
마지막까지 으름장을 놓는 태도에 기어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내 인적 없는 골목길로 들어선 나와 이홍빈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일종의 버릇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집 앞에 도착했고, 이홍빈이 걸음을 멈췄다.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려는데 갑자기 이홍빈이 눈빛을 바꿨다. 천천히 사이가 좁혀졌고 느리게 시선이 마주쳤다.
입술이 닿았다.
"…이걸로 화 풀렸다." "……." "나 간다. 집에 가서 잘 쉬고 내일 아침에 보자. 데리러 올게."
방긋 웃어버리며 손을 흔드는 그 모습에 할 말이 막혀 버렸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고 주위의 공기가 뜨겁게 핫핫해졌다. 점이 되어 사라지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작게 미소를 지었다.
"…성음아. 오빠가 저런 양아치랑 어울리지 말라고 했지." "악! 깜짝아!"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옆 집 창문에서 이를 닦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올 해로 수험생의 길에 접어든. 불쌍한 영혼을 가진 오빠였다.
"재환이 오빠! 남의 연애사에 관심 끄고 수능 공부나 해요!!" "성음아. 쟤 버리고 오빠한테 시집 오라니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줄게." "됐거든요?"
삐딱하게 대꾸를 마치고 대문을 열었다. 며칠 전부터 기르기 시작한 화초들이 눈에 보여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다 기르면 제일 먼저 남자친구에게 자랑을 하며 보여줄 생각이었다. 기린초였다. 꽃말처럼 우리에게도 언제나 사랑이 가득하기를.
익숙한 번호가 떠오르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급하게 신발을 벗었다. |
이제 진짜로 끝이 났네요... 정말 시덥지도 않은 얘기 가지고 질질 끄는듯... ㅋㅋ...
브금은 넬의 loosing control 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잔잔해서 가지고 와봤는데, 읽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수줍)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기린초의 꽃말은 소녀의 사랑입니다
사실 얘기가 너무 삭막하게 마무리된 것 같아서 두 번째 번외는 밝은 느낌으로 써보자! 해서 써보게 된 이야기에요.
만일 이들에게 아무런 불행도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을 기본 베이스로 잡아 썼습니다.
말 그대로 '만일'입니다. 지금의 현실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니 그냥 가볍게 읽어주시면 될듯... 네... 그렇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두번째 번외 단톡방에서 빚쟁이랑 홍빈이 느낌나는 건 나뿐..?ㅋㅋ..?(눈물을 흘린다?
예상 외로 너무 많이 읽어주시고 글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진짜 고마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그리고 텍스트 파일은 현재 수정 중에 있습니다.
댓글로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모레까지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텍스트 파일엔 약간의 내용 수정과 더불어 오타 수정이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파일을 받고 싶으신 분은 댓글에 이메일 주소만 남겨주시면 되세요!
기간은 내일 오후 다섯시까지로 잡을게요.
파일에 들어간 필명은 단톡방에서 30439로 바꿨습니다. 제 학번이에요....(부끄)ㅋㅋㅋ 혹시나 착오 없으시길 바래요!
필명만 정확히 기재해주신다면 언제 어디서든 배포가능한 그런 파일입니다.
끝까지 달려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이니까 다 답글 달아드려야겠당 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