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 언제 감기에 걸렸냐는 듯 싹 나아있었다. 어젯밤에는 평소와 다른 꿈을 꾸었다. 꿈에서도 너는 나를 간호하고 있었고, 나는 너를 향해 투정을 부렸다. 너를 좋아하는 건, 다 너 때문이라고. 꿈 속에서라도 말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왠지 모르게, 속이 후련했다.
옆 집 동생
오늘은 하루 종일 일이 풀리지 않았다. 평소에 쓰던 귀걸이가 사라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버스를 바로 앞에서 놓치고, 버스를 겨우 탔지만 평소에는 전혀 안 밀리는 구간에서 차가 밀리는 바람에 처음으로 지각까지 했다. 그 뿐이랴, 회사에서도 잔실수를 잔뜩 하기까지. 일진이 안 좋아도 이렇게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오죽했으면 대리님께서 여주씨, 오늘 조심해요. 라고 걱정까지 해주실 정도였으니. 꿀꿀하구만. 하루 종일 회사에서 뛰어다니느라 발도 아프고. 녹초가 되서 쓰러질 때쯤 되서야 회사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아, 발 아파. 느릿느릿하게, 정류장으로 발을 옮겼다.
내가 아프고 난 이후, 다니엘은 보이지 않았다. 보고 싶었지만, 이맘때 즈음이면 늘 종강 후 부산에 있는 부모님께 내려가곤 했으니, 그러려니 했다. 예전에 옆집에 다니엘 부모님이 계실 때에는 맛있는 반찬도 많이 얻어먹었는데, 갑자기 부산에 발령이 나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혼자 두고 내려가신 이후로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정류장에 다다랐고 바로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은 후 창문을 열었다. 해가 지자 제법 선선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오늘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렇게 시원한 바람 하나에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맞다. 다니엘을 생각할 때처럼. 오늘은 집에 가서 샤워하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맥주 한 캔 마셔야겠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강다니엘+
뭐지, 뭐지?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목소리를 큼큼, 가다듬고 최대한 평온하게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 누나. 퇴근했어요?
" 응. 지금 집 가는 길. 너는 뭐해? "
- 으음, 부산에 내려왔죠.
" 그렇구나. 아줌마랑 아저씨, 잘 계시지? "
그럼요. 역시나, 부산에 내려갔었구나. 그래도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낮은 목소리와 작게 웃는 웃음소리까지. 귓가에서 맴도는데, 아주 꿀이다, 꿀. 나도 중증이네.
" 아ㅡ, 뵙고 싶다. 그래, 그러면 너는 언제 올라와? 더 있다 오려고? "
- 음, 글쎄요. 정해진 건 없는데.
" 이왕 간 김에 길게 있다 와. 오랜만에 뵙는 거잖아. "
- 아ㅡ 그러면 나 다시 내려가요?
" 어? "
- 다시 내려갈까요? 뭐, 나만 누나 잠깐 보고 가도 상관은 없지만.
다니엘의 한 마디에 바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뒤를 돌아보자, 내가 걸어왔던 그 길에 다니엘이 서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눈으로 멀뚱멀뚱 바라보니 웃으며 다가온다. 귓가에서, 눈앞에서. 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 누나. 안 바쁘면, 우리 데이트 안 할래요? "
*
데이트라고 말만 했지, 사실 산책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점심을 늦게 먹은 다니엘과, 영 입맛이 없는 나 때문에, 결국 저녁은 패스. 근처 공원으로 가서 천천히 걷기만 했다. 물론, 아무 말 없이. 그 정적을 깨고 다니엘이 말을 걸어왔다.
" 누나, 맥주 한 잔 어때요? "
" 오ㅡ 콜. 완전 콜. "
" 그러면, 여기 잠시만 앉아 있어요. 금방 사가지고 올게요. "
벤치에 나를 앉히더니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까지 열심히 뛰어간다.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곧 주변 풍경들에 눈을 돌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오늘은 하늘도 맑은지 별들도 잔뜩 보였다. 와, 예쁘다. 목이 빠져라 하늘만 보고 있는데, 큰 손이 내 뒷머리를 받쳐 준다. 누나, 목 빠지겠어요. 어느새 다녀온 다니엘이 검은 봉투를 들고 씨익, 웃으며 내 옆에 앉아 맥주 캔 하나를 따서 건네준다.
" 땡큐. "
" 누나, 짠 해요. 짠ㅡ"
" 짠ㅡ "
이렇게 좋은 날씨에, 시원한 맥주와, 그리고 너와 함께 있으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오늘 하루 종일 일진이 안 좋았던 것도, 너랑 이렇게 함께 있으라고 그랬는가보다. 기분은 좋지만, 역시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들고 있는 맥주만 홀짝홀짝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서도 네가 볼 내 모습이 신경 쓰여 머리를 정리하고, 옷 매무새를 만지작거렸다. 한참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을까, 나즈막히 들려오는 목소리. 누나ㅡ. 고개를 돌려 다니엘을 바라보자,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갑작스런 모습에 의아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깊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기에. 다니엘 또한 긴장을 했는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말을 이어갔다.
" ... 사실은, 언제 얘기할까 진짜 많이 망설였거든요. "
" ... ... "
" 나중에 해야지, 나중에 해야지 하면서 계속 망설였는데. 이제, 안 그러려고요. "
" 응? "
" 누나가 내 때문에 울었다는 거 자체가, 나한테 화가 많이 나서. "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내뱉는 다니엘. 내가 너 앞에서 언제 울었겠니, 물론 꿈에서는 그랬... 헐, 설마. 손에 힘이 풀려서 들고 있던 캔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러니까, 그 날 꿈인 줄 알고 했던 말들이 전부 진짜라는 거야...? 다니엘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니, 정말인 것 같았다. 헐, 어떡해.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다니엘만 멍하니 바라봤다.
" ... ... "
" 속상하게, 왜 내 때문에 울어요. "
" 아, 저... "
" 미안해요. 내가 더 빨리 용기 냈으면 안 울었을텐데. "
" ... 어? "
머릿속에서 온갖 이상한 생각들이 돌아다닌다. 그러니까, 지금 저 얘기는 설마, 설마.
" 좋아해요. "
놀람의 연속에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다니엘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곧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 내가 누나보다 더 먼저 좋아했고, 내가 더, 많이 좋아해요. 누나를. "
" ... ... "
" 그러니까, 우리 이제. "
" ... ... "
" 누나 동생 하지마요. 연인, 합시다. "
나를 흔들림 없이 바라보는 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너가 나를 담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도 다니엘의 모습을 빠짐없이 담고 싶었다. 나는 네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다니엘은 작게 숨을 토해내고는 나를 빈틈없이 껴안아주었다. 내 머리를 끊임없이 쓰다듬어주는 다니엘의 손길과 맞닿은 몸이 조금 떨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너도, 정말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손을 뻗어 다니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정말로, 모든 것이 완벽한 여름밤이다. 선선한 밤바람, 조용한 공원, 시원한 캔 맥주, 그리고, 같은 마음인 너와 나.
잠깐만요0x0 |
안녕하세요, 댕뭉이입니다! 저번 편도 너무 감사하게도 초록글에 올랐어요. 캡쳐는 거의 반사적으로... 감사합니다♥ 댓글에서 많은 독자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꿈이 아니었어요. 오늘, 드디어 다니엘과 여주의 관계가 바뀌었네요. 앞으로는, 모두가 바라시는 달달한 모습 잔뜩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옆 집 동생을 얼마나 쓸지는 모르겠지만, 달달한 모습 많이 보여드릴게요♥ 댓글 정말 하나하나 다 읽고 있어요...ㅜㅜ 진짜 독자님들 제 사랑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암호닉♡ |
슝러비, 졔졍, 깡구, 샐라인, 디눈디눈, 빵빰, 뿜뿜이, 남융, 기화, 아름정원, 괴물, ☆뉸뉴냔냐냔☆, 아마수빈, 꼬꼬망, 응, 녜르 매번 확인해서 추가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빠지셨다거나 그러셨으면 말씀해주세요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