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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청년 사이


6.


 실망? 아냐, 아니었다. 그럼 배신감? 아니. 그런 건 더더욱 아니었고. 


 "후우-."


 백현이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실수로 치약 거품이 목으로 조금 넘어갔는지 켁켁대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시간은 백현의 복잡한 사정따위 봐 주지 않고 흘렀고 벌써 일요일이었다. 학원 아르바이트를 가는 날이기도 했다. 입 안을 화하게 헹구어 내고 백현은 다시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저의 얼굴이 보였다. 그렇게 멍하니 서 있다 보면 어느 새 눈앞에 찬열의 얼굴이 비치는……. 아니다, 여전히 제 얼굴이 맞았다.


 "후우--."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온 백현이 뭉그적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 무슨 옷을 골라 들었는가하는 생각도 없이 느릿느릿 움직이던 백현의 눈에 문득 책 한 권이 띄었다. 

  그대와의 거리.

 어느 교양 수업의 과제를 위해 빌려 왔던 로맨스 소설책이었다. 잠시 그 책의 표지를 빤히 바라보던 백현은 이내 아, 하며 입을 벌렸다. 저거였다. 거리. 그토록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가 뭔지 이제야 감이 왔다. 거리감이 느껴졌던 거다. 개 한 마리가 주인 쫓아다니듯 저만 보면 헤벌레해서 졸졸 따라붙던 찬열이, 실은 남들 입에 오르내릴 행동을 하고 싸돌아다닌 아이였다는 사실에 불쑥 찬열과의 거리감을 느낀 것이었다. 


 "……."


 학급 반장에 전교 회장에, 선생님이란 선생님의 사랑은 모조리 독차지하고 성적표마다 반듯한 일 자만 내리 찍다가 법학과까지 진학한, 말 그대로 우등생의 길을 정석대로 밟아 온 백현에게는 그런 찬열의 실체가 낯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껏 건들거리는 친구들 몇 명 만났다고 저를 대하는 찬열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리란 것쯤은 알았다. 그건 무엇보다도 일주일 내내 끊이지 않았던 찬열의 연락이 증명했다. 하지만…….


 "……후우……."


 역시 찬열이 낯선 건 어쩔 수 없었다. 단지 조금 시끄러울 뿐인 남자 고등학생과, 정학따위를 운운하며 학교를 다니는 남자 고등학생은 많이 달랐다. 적어도 백현이 느끼기엔 그랬다. 찬열을 처음 만났던 여름날보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백현은 얇은 겉옷을 하나 더 걸치며 집을 나섰다. 

 학원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찬열은 쉴 새 없이 어디냐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건 하다못해 애인 사이라고 해도 일일이 답하기 귀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백현이 도착했다는 짧은 한 마디만 써 내려갈 때였다.


 "백현이 형!"


 엘리베이터 앞에서 백현을 기다리던 찬열이 손을 머리 위로 붕붕 흔들며 백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백현은 다시 휴대전화를 조용히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어어……."
 "왜 이렇게 늦었어요? 지각할 뻔했어요, 형. 그나저나 요즘 왜 자꾸 내 문자 보고 씹어요? 바빠요?"
 "아니, 그냥……."
 "뭐, 괜찮아요. 형, 빨리 올라가요."


 찬열이 백현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고 웃었다. 피할 방법 없이 찬열과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백현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찬열이 계속 뭐라고 말을 거는 소리는 들렸지만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겨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백현이 먼저 급하게 발을 움직였다. 얼른 교무실로라도 피하고 싶…….


 "형-."


 그러나 찬열이 그런 백현의 손목을 탁 낚아채 잡았다. 백현의 몸이 작게 한 번 움찔거렸다. 


 "……."
 "내가 방금 물어 봤잖아요."
 "……뭐를?"
 "혹시 내가 뭐 잘못했냐고요."
 "……."


 백현이 머뭇머뭇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런 거."
 "그런데 왜 이렇게 삐딱해요, 나한테."
 "아니라니까……."
 "저번에 만난 걔네 때문이죠?"
 "……."


 찬열은 백현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걔네가 그날 형한테 좀 예의 없게 굴긴 했잖아요. 미안해요, 형.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
 "그러니까……."
 "그런 거 아니라는데 왜 자꾸 그래-."


 백현이 조금 힘을 주어 찬열의 손에서 손목을 비틀어 빼냈다. 찬열이 이럴수록 제가 아는 찬열과 모르는 찬열 사이의 그 '거리'만 더 벌어질 뿐이었다. 어쩌면 이제는 양쪽 모두 제가 아는 찬열일지도 모르지만. 


 "백현이 형, 제가……."
 "박찬열!"


 찬열을 부른 건 백현이 아니라 학원의 강사였다. 찬열이 힐끔 고개를 돌렸다.


 "지각하려고 여기서 이러고 있지?"
 "아, 그게 아니라-."
 "조교 형 그만 괴롭히라니까 말도 지지리도 안 들어요, 박찬열이."
 "그게 아니라니까요-."
 "시끄럽고, 얼른 들어가라."
 "……."


 찬열이 강사와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백현은 먼저 학원 안으로 몸을 움직였다. 찬열의 눈이 다급하게 백현의 등을 쫓았다. 


 "아, 형! 백현이 형!"


 무언가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기분이었다.

 애초에 찬열이 마음에도 없는 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한 것도, 또 개학 후에도 학원을 계속 다니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 배경은 모두 백현이었다. 공부니 성적이니하는 것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찬열의 머릿속엔 오늘도 변백현 내일도 변백현, 오로지 변백현뿐이었으니. 그래서 지금도 찬열은 저 앞 화이트보드에 둥둥 떠 다니는 글자들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평소엔 교실에 함께 들어와 옆에서 이것저것 수업 보조도 하더니 오늘은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이는 백현이었다. 그래서 하얀 보드를 보고 있으면 백현의 하얀 볼이나 손이 떠오르고 그 위의 검은 글자를 보고 있노라면 백현의 검은 머리카락이나 눈동자가 떠오르는 게…….

 아, 중증은 중증이네.


 "하아……."


 아무튼 그런 백현이 저를 피한다는 건 찬열에게 적잖이도 타격을 입힐 만했다. 더군다나 백현이 저를 피하는 이유가 제 잘못도 아니고 고작 친구 몇 명의 탓이라면 더더욱. 찬열은 억울했다. 변명할 기회조차 없는 게 답답했고, 변명을 하게 되더라도 딱히 그 상황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속도 상했다. 아무리 썩 크지 않은 머리라지만 그 정도는 찬열도 알 수 있었다. 

 백현은 결코 길거리에서 마주친 저의 친구들이 싫어서 저를 피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친구들을 둔 박찬열이 싫은 거겠지. 찬열의 어깨가 축 처졌다.


 "하아아……."


 아니, 그럼 그렇다고 속 시원히 말이라도 해 주든가. 입 꾹 다물고 연락이란 연락은 툭툭 무시하고. 이거야 원, 진짜 스물세 살 먹은 어른이 맞긴 맞나 싶었다. 물론 백현이 속 시원히 말을 한다고 한들 예, 예, 하고 떨어져 나갈 찬열도 아니긴 했다. 


 "하아……."
 "한숨 좀 그만 쉬어라, 인마."


 저를 건드리며 타박하는 친구의 말에 찬열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수업이 끝났는지 가방을 챙기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무슨 일 있냐?"
 "……야, 도경수."
 "어. 왜."


 찬열은 커다란 눈을 한 번 도르륵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이건 내 친구 얘긴데."
 "너 친구도 있냐?"
 "콱 그냥."


 찬열이 습관처럼 손을 들어올리자 경수는 움찔하며 몸을 피했다. 그러나 찬열은 곧 스스로의 행동에 혀를 차고 손을 가만히 내렸다. 백현이 이 자리에 없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들어 봐, 좀."
 "알았어, 말해."
 "내 친구가, 어-.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든?"
 "네 친구가?"
 "어."


 경수가 킬킬대고 작게 웃었다. 그러나 찬열의 말에 더 훼방을 놓지는 않았다.


 "근데 그 사람이 친구에 대해서 오해를 한 거야. 좀……. 좀 안 좋은 오해."
 "무슨 오해?"
 "그게……. 저……. 우연히 내 친구들을 만났는, 아니, 그 친구의 친구들을 만났는데. 걔네가 좀 까진 애들이었던 거야. 알아 들었어?"
 "아아-. 대충 알겠네."


 경수의 고개가 느릿느릿 위아래로 움직였다. 찬열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해야 될까? 그 뒤로 연락도 안 받아 주고, 얼굴 봐도 피하려고만 한다는데."
 "둘이 무슨 사이였는데?"


 경수가 눈을 깜박거리며 찬열에게 물었다.


 "어어?"
 "둘이 무슨 사이였냐고. 애인? 썸?"
 "……무슨 차이라도 있냐?"
 "있지."
 "어떤 차인데."


 경수의 얼굴에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찬열이 그런 경수를 조금 재촉했다.


 "애인이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지. 잘못 안 했어도 잘못했다고 비는 게 맞아. 썸이면, 어떻게든 오해를 풀도록 대화를 해 봐야 되고."
 "……."
 "그래서? 무슨 사이였는데?"
 "그게……. 아직은 그런 정도는 아닌데……. 그냥 나 혼자……."
 "너 혼자?"
 "아니! 아니, 내 친구 혼자!"


 경수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이런 구닥다리 패턴으로 고민 상담을 받으시나-. 남은 필기구를 대충 가방에 쓸어 넣고 경수는 먼저 의자에서 일어나며 찬열의 어깨를 응원하듯 두드렸다.


 "힘 내라, 박찬열."
 "어어……. 야, 야! 나 아니라니까!"
 "백현이 형은 착하니까 금방 마음 풀릴 거야."
 "야! 네가 그런 건 어떻게 알아! 아니, 그거 내 얘기 진짜 아니라니까-!"


 경수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먼저 교실을 빠져나갔다. 잠시 교실에 혼자 남아 있던 찬열도 곧 알딸딸한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어쨌거나, 생각해 보자면 찬열과 백현의 사이는 애인이라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아니, 그건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대화를 하란 소리네."


 먼저 오해를 푸는 게 방법이었다. 결정은 쉬웠고 행동은 빨랐다. 찬열이 어깨에 가방을 들쳐 매고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고개를 빼꼼 들이민 교무실엔 백현의 살랑거리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형!"


 찬열의 부름에 종대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안 갔냐?" 
 "형, 백현이 형은요?"
 "진작 갔지."
 "갔어요?"


 종대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컨디션 별로 안 좋아 보이더라. 요즘 계속 좀 가라앉아 있었어, 백현이."
 "……."


 찬열의 시무룩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점점 주변 상황이 모든 건 제 탓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집에 안 가냐?"
 "갈 거예요. 안녕히 계세요."
 "저, 저. 인사하는 꼴 좀 봐라-."


 종대가 뭐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찬열은 더 듣는 척도 않고 발을 뗐다. 그래도 백현의 걸음이라면 아직 멀리 가지 않았을지 몰랐다. 서두르면, 어쩌면 집 앞에서 잠깐은 백현이 제 말을 들어줄 수도 있었다. 찬열의 다리가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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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짱이에요 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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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에구구구구찬열아ㅠㅠㅠㅠ왜그랬어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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