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에 멘토스!
06
그 일이 있고 난 후로부터 김여주가 강다니엘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횟수는 늘었으며 동시에 괴롭힘을 받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물론 김여주가 강다니엘을 피하는 이유는 이전과는 명백히 다른 이유로, 묘한 어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둘이 아예 만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 날 이후로 바뀐 건 그 둘만이 아니라 다니엘까지 포함해서였으니까.
다니엘은 그 이후로부터 여주를 부러 찾는 일이 잦아졌고 학교에 도착하면 여주의 앞 자리에 앉아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여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원래 자리로 보내곤 했지만 이상한 기류를 느낀 건 여주만이 아니었다. 그 반에 있는 애들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정도로. 심지어는 의웅이 여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넌지시 질문까지 했다면 그건 말 다 한 거다.
"의웅아 있잖아 …"
"고민 들어줄까? 다니엘 얘기지?"
"이럴 땐 그냥 닥치고 응. 이라고 하면 돼 의웅아."
"응."
곧 널리널리 알려질 사실이지만 박지훈에게 직접 입으로 전하는 것과 소문으로 알게되는 건 다른 일이었다. 3학년에 들어 특히 최근에는 지훈에게 부탁하고 도움을 받은 것도 많은 데다가 안 그런 척하면서 여주에게 걱정이 많은 박지훈한테 걱정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에도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라는 모양이 의웅에게 고민 상담을 하자! 라는 거였는데. 그건 아마 김여주 인생에서 두 번째 실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친절하고 조금 눈치가 없다지만 이의웅도 이의웅인 게 궁금한 게 있으면 끝장을 봐야하는 그 놈의 성질머리가 문제였다. 그리고 거기에 불을 붙여준 게 김여주였고.
"그래서, 그때 다니엘이 눈물까지 닦아줬다 이거네."
"그리고 나서 요즘에 이 모양이야. 미쳤지."
"응 미쳤네 미쳤어"
"새로운 괴롭힘 방법인가, 이번에는 직접 괴롭혀주겠다 이딴?"
참 말같지도 않은 소리란 걸 의웅도 아는지, 김여주의 말에 계속해서 입꼬리를 씰룩거리던 의웅이 마지막 말에는 아예 고개를 숙이곤 큭큭대는 거였다. 아니. 나는 심각한데. 이의웅은 이 상황이 웃긴지 쪼개기나 하고. 한참을 큭큭대는 의웅에게 빈정이 상해버린 여주는 의웅의 뒷통수를 한 대 치고는 결국 소리를 내질렀다. 넌 뭐가 웃기냐?
"몰라서 물어 여주야? 너 진짜 눈치없다."
"너한테 들으니까 되게 자존심 상한다 …"
"어쨌든, 그거 관심있는 거 아니야?"
뭐?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한 거야? 그게 사실이 됐든 아니든 일단 다니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서 관심을 둔다는 것 자체가 여주에겐 끔찍한 일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껏 괴롭혀놓고 이제와서? 시발 이건 말도 안 돼! 큰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여주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의웅을 내려다봤다. 아 망했다 이제 어떻게 다니엘 얼굴을 보지.
생각을 해보면 다니엘의 행동은 정확히 의웅이 말한 것과 같은 거긴 했다.(연애를 해 본 적은 없지만 감이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것도 이렇게 뻔뻔하게 낯짝을 들이밀면서? 단순한 호기심? 뭐가 됐든 김여주에겐 부담이었고 끔찍한 일이었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가 없었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을 해야지 왜 괴롭히고 난리람? 그것도 이런 21세기에 말이야. 그렇게 고민 상담이 지나고 서너 번의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김여주는 도통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명색에 A반 에이스인데, 다니엘도 보고있는 상황인데 가장 성적이 좋았던 영어 시간에 지적 당할 건 또 뭔지. 풀리는 일이 없었다. 날이 아니었다.
" … 주야! 김여주!"
"어어, 어 왜."
"왜긴 뭐가 왜야, 저녁 먹으러 안 가?"
"나 오늘 속 별로라,… 오늘 안 먹을래."
그래 그럼. 밖에 서있던 박지훈도, 멍때리고 있던 여주를 부르던 의웅도 마다하고 석식을 먹지 않기를 자청한 김여주는 곯아대는 배를 부여잡고 책상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강다니엘의 기세로 봐서는 급식소에서까지 분명 따라와서 체하게 만들 게 뻔할 뻔자였으므로. 아예 그럴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사전 차단이었다. 매점도 가기엔 묘한 게 걔가 매점에서 라면이라도 먹고있으면 어떡하냔 말이었다. 그래서 결국, 일일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된 참이었는데 그것도 역시 무산. 이게 다 엎드린 새에 조용히 옆자리를 꿰찬 다니엘 탓이었다. 선잠에 든 탓에 뒤척이다 눈을 뜨니 떡하니 여주를 내려다보고있는 게 아닌가, 아니 뭐야 이제야 배식이 시작했을 텐데.
"깬 거 알아. 자는 척 하지 마라."
"…할 말 있어?"
"없으면 며칠 동안 이렇게 쫓아다녔겠냐."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다니엘은 절대로 나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관심? 그래 호기심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좋아한다면 이야기를 하는데 이렇게 한 번도 안 웃어줄 리가 있겠냐고!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무슨 일이냐는 식으로 은근히 눈치를 주면 그제야 한숨을 크게 쉬는 다니엘이다. 아니 지가 뭔데 한숨을 쉬고 지랄이야.
"빨리 말,"
"미안해. 난 걔네가 너한테 그러는 줄 몰랐어. 아 … 씨"
아. 그러니까 지금 다니엘이 내게 사과란 걸 한 거다. 얼굴은 좀 빨개졌고 말 하는 동안에도 수십 번이나 얼굴을 쓸어내리는 걸 보면 진심인 거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몇 달 동안 괴롭혔는데 그걸 몰랐단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생각을 곰곰히 해보면 말은 되는 게 다니엘은 3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단상에 몇 번은 섰던 내 얼굴은 이번으로 처음 봤고 애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박지훈도 그렇게 잘 아는 눈치는 아니었기때문이다. 말은, 되는데 근데 이게 이렇게 쉽게 끝날 일인가.
"그래서, 이걸로 퉁치자는 거야?"
"그건 아닌데, 뭐 내가 뭐 해줄까? 그래야 하냐?"
"일단."
"그래 일단,"
"첫째로 반에 들어오면 조용할 것, 둘째는 니 친구들 수준 존나 떨어지니까 걔네 좀 어떻게 해 볼 것."
하하. 다니엘은 여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꽤나 기가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지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게, 얼마 전까지 앞에서 눈물이나 질질 흘리던 걔가 맞나 싶기도하며 지금은 똑부러지게 제 앞에서 요구 사항을 줄줄이 말하는 게 신기했겠지. 셋쩨부터 넷째까지 쌓인 게 얼마나 많았으면 다섯 번째까지 쉬지않고 말하는 여주의 입을 여섯 번째가 나오기 직전에서야 손으로 막은 다니엘이 알겠어. 라고 대답한다.
"대충 어떤 건지 알겠다고."
"으, 손 좀! 답답해"
"근데 몇 개는 반박할 거 있는데, 두 번째에 그거 내 친구 아니야."
"그럼 내 친구냐?"
"그냥 같이 있는 거였지 친구라고 두기엔, 걔네 수준이 니 말대로 존나 떨어지잖아."
한 마디로 다니엘에게서 나온 말은 걔넨 저급해, 라는 거였다. 똑같은 놈인줄로만 알았더니 생각보다 사리분별은 하고 살았는지 경멸스러움이 뚝뚝 떨어져나오는 눈길을 보니 친구라는 맥락에 둔 게 보통 싫은 건 아니었나보다. 그도 그럴게 다니엘은 수업 시간에 부러 저급한 농담을 치지도 않았고 담배를 하는 모습을 보인 건 커녕, 그저 단순한 애들의 치기의 대상일 뿐이었던 거다. 정리하자면 다니엘은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고 잘생겼는데 노는 것까지 잘하는 애인 거지. 조금 덧붙이자면 성격이 별로인.
"그럼 걔네랑 왜 놀아. 니 수준도 거기서 거기 아니냐 그럼?"
"아 또 빡치게 만들지 김여주."
인상을 한껏 찌푸린 다니엘의 표정에 자연스레 입을 다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김여주는 본능적으로 다니엘을 꼽주는 데에 능숙한 아가리를 가졌고 어떻게 하면 잘 빡치는지 레이더까지 달고있는 수준이었으니까. 뭐 그건 다니엘도 피차일반이었다지만. 겁을 먹고는 눈을 내리깐 여주의 모습이 퍽이나 우스웠던지 뒷통수를 한 번 손으로 꾹 누른 다니엘에게선 곧 웃음이 터졌다. 아니 근데, 이게 또 쪼개네?
다니엘이 웃음에 기분이 나쁘기라도 한 건지 뒷통수에 올려진 손을 치워내며 노려보는 여주의 눈은 매서웠다. 쪼개냐? 빈정상한 투가 가득한채로 툴툴댄 김여주는 이제 다니엘의 눈에 싸가지 없는 같은 반 애도, 자존심 부리는 전교권 애도 아니었다. 이쯤이면 친해지는 과정이 좀 파란만장했던 친구 정도로. 괜찮겠지.
"아 이제 애들 온다."
"야 쪼개냐고 말 씹냐?"
"야 그리고 내일 밥 먹을 때 나 깨워서 데리고 가"
"왜? 내가 왜?"
"같이 먹을 거니까."
통보하냐 너 지금? 끔찍하단 얼굴로 눈썹이 꿈틀거리는 여주의 얼굴은 모든 감정이 다 담겨져있었다. 나랑야 잘 풀린 일이라지만, 이의웅은? 거기다가 박지훈은? 한꺼번에 몰아친 폭풍우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개구지게 웃는 저 상판에 침을 뱉을 수도 없고 거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여주는 상대에 따라 친절한 편이었고 그 친절은 다니엘에게도 이젠 해당되는 사항이 되었으므로. 한 마디로 좀 좆된 거다.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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