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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룻은 봄의 악기다. 맑고 부드러운 음색과 감각적인 표현은 여물지 않은 꽃송이와 닮아있다. 백경고등학교의 5층 맨 끝쪽 관악부실은 때아닌 봄기운에 휩싸였다. 30여개의 진지한 시선이 오롯이 가장 앞 쪽에서 봄을 노래하는 작은 소년에게로 쏟아졌고, 무릎을 굽혀가며 열심히 플룻을 연주하던 소년은 정점을 지나 차분히 마무리를 지었다. 

 

 줄곧 감겨있던 눈이 떠지고 진지하던 얼굴에 머쓱한 미소가 피어나자 봄에 취해있던 관악부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주먹을 입에 넣고 연신 도요미를 울부짖는 찬열도 있었고, 소문과 반대로 월등한 실력에 놀란 종대와 세훈도 있었으며,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로 턱을 괴고 있는 백현도 있었다. 

 

 

"갑자기 부탁해서 당황했을텐데, 이정도 실력이면 광주에서 올라올만하다 경수야." 

"아니에요, 감사힙니다." 

"역시 선생님 안목 뛰어나세요." 

 

 

 관악부 기장인 2학년 준면의 말에 경수는 손사래를 쳤다. 동그란 무테 안경을 올린 지휘자 제학은 그런 경수를 내려다보며 나즈막히 웃었다. 제학은 세미나로 인내 내려간 광주에서 작은 동네 음악학원을 차렸다는 옛 친구를 만났는데,그 후줄근한 학원에서 경수를 처음 만났다. 바이엘의 어설픈 선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복도를 거닐다 제학은 가장 구석진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문 틈새로 새어나오는 플룻 선율은 며칠간 내린 비로 피어오른 곰팡이 내음을 라일락 향기로 바꾸어 내는 마법을 부렸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그때의 경수가 연주하던 곡이자, 제학이 원석을 발견하도록 해준 천리안이었다. 

 

 

"좋은 음악인의 연주에 답례는 음악인 답게 해야지." 

 

 

 음악인이래, 홍홍. 경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부여잡으며 멀뚱히 눈을 굴렸다. 준면이 오른쪽 앞 자리에 앉아 호른을 잡자 저마다 가지고있던 악기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일순간 두서없이 흩어지는 소리들에 귓가가 멍했지만 더욱 놀란것은 웃음기 없이 진지한 부원들의 표정이었다. 경수는 덩달아 진지해져 플룻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단상에 오른 제학의 지휘봉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튜블러벨과 클라리넷이 곡의 시작을 알렸다. 비브라폰 앞에 선 세훈이 금속 막대로 그 위를 두드리며 뒤를 따른다. 약간의 악기들의 선율이 모이자 금새 나른한 오후의 햇볕이 경수를 휘감았다. 하지만 놓을 수 없는 긴장감에 경수의 두 눈이 30명의 관악부원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종인의 튜바가 느리고 묵직한 음들을 베이스로 깔아넣자 기품이 더해진다. 그 때, 중앙 왼쪽에 앉아있던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현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색소폰이었다. 튜바의 선율에 고개를 천천히 까딱이며 경수의 의아한 두 눈을 피하지 않던 백현은 이내 마우스피스에 입을 가져다댔다.  

 

 

"우와…" 

 

 

 경수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베이스 선율에 맞추어 시작된 백현의 색소폰 독주는 주인의 성품과는 반대로 매우 섬세했다. 백현의 기다란 손가락과 숨 한줌에 흘러나오는 정갈한 음들이 기나긴 노력의 결실이라는 것은, 스치듯 보았던 백현의 굳은살 박힌 투박한 손이 말해주었다. 백현이 숨을 길게 내쉬며 색소폰의 소리가 점차 커지자 부원들은 하나 둘 악기를 다잡으며 클라이막스를 준비한다. 백현의 입이 떨어지고 내리감았던 눈을 뜨자, 경수는 그를 향해 엄지를 흔들어보였다. 점차 화음이 커지는 금빛 악기들 사이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마주보고 웃었다. 

 

 

 

 

SYMPHONY BAND 

1  

 

W.다올 

 

 

 

 

 아기인 줄로만 알았던 막내아들의 이른 독립에 경수의 어머니는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들을 서울로 보내셨다. 냉장고 정리를 겨우 마친 경수는 기진맥진하여 거실 바닥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차자남-차가운 도시의 자취남-을 언제나 꿈꿔온터라 설레온 것도 첫날 뿐, 한끼를 해결하려 요리를 하는 것은 꽤나 번거로웠고 혼자있는 집은 너무도 적적하여 어제는 침대맡에 놓인 곰인형에게 안부를 묻기도 했다. 



 

 경수는 느리게 두 눈을 꿈뻑이며 호박빛의 거실전등을 올려다 보았다. 첫 날부터 10시까지 이어진 연습에 몸은 피로했지만 어쩐지 마음만은 가벼웠다. 입가에 호선을 그린채 눈을 내리 감자 스며드는 불빛과 함께 낮에 들었던 백현의 색소폰 소리가 떠올랐다. 웅장한 연주에 덩달아 긴장하던 자신에게 편안함을 안겨준 부드럽고도 강한 선율들에서 경수는 자신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했다. 짧았지만 백현의 연주는 그가 경수의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매김 하기에는 충분했다. 



 경수는 번쩍 눈을 뜨며 발치에서 굴러다니던 휴대폰을 발가락을 집어들어 손으로 받아들었다. 고맙게도 윗집에서 흘러 들어오는 와이파이로 인터넷에 접속한 경수는 검색창에 '백경고 관악부'를 집어넣었다. 

 

 C.A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백경고의 관악부는 이미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부서였다. 관악부의 담당교사이자 지휘를 맡은 제학역시 한국에 몇 없는 마에스트로였고, 각 악기마다 친분있는 유명한 교수진을 초청하여 강습을 받게했다. 이미 고교 관악부 중에서는 유명한 백경고의 심포니 밴드에 관한 정보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불과 한달 전 학교 행사의 축하공연 직캠을 몇번이나 돌려 본 경수는 블로그에서 백현에 관한 글을 발견했다. 

 

 

[색소폰계의 샛별, 백경고 1학년 변백현] 

 

 

 거창한 제목에 경수는 눈을 반짝이며 한글자씩 신중히 읽어내려 갔다. 백현은 이미 아주 어렸을 적 부터 색소폰을 잡아왔고, 여러차례 크고 작은 대회에서 큰 상을 거머쥐며 신동으로 불려온 바 있었다. 지방신문에 실린 백현의 기사사진을 저장한 경수는 잔뜩 굳은 얼굴에 웃음을 흘렸다. 이 기사양반아 대문장만한 기사사진에도 안 웃어주는 변백현이 아까 날 보고 웃었다고!! 유후! 

 알 수 없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바닥을 굴러다니던 주인의 손에 쥐어진 휴드폰이 연신 '카톡'을 외쳐대자 경수는 휴대폰을 들어 액정화면을 확인했다. 발신인은 다름아닌 변백ㅎㅕ…뭐? 변백현?? 휴대폰이 떨어지며 인중으로 떨어지는 대참사가 일어났지만 경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까지 꿇고 앉아 메신저를 확인했다. 어렵사리 번호를 내밀은 보람이 있구나!

 

 

변백현: . 

 

 

 뭐,뭐지 '.'은? 당황한 경수가 덩달아 '.'을 찍어보낸것은 이어서 날아오는 준면의 말풍선을 보기 직전이었다. 

 

 

도경수: . 

김준면: 경수야 우리 관악부에 들어온 걸 환영해^^ 우리 앞으로 잘 해 보자! 

 

 

 경수는 머리를 헤집으며 쪽팔림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기 시작했다. 백현의 말에만 집중해서 단체 채팅방인 것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초대 후 무슨 말이라도 해야 본격적으로 채팅에 참여가 되는지라 백현은 성격을 100% 반영하여 '.'을 보낸 것이고, 경수는 할말은 없지만 선톡을 하고싶은 친구의 수줍은 찌르기라고 생각하여 대응을 한…으아악!!! 아래서는 비글라인이 'ㅋ'로 채팅창을 도배하고 있었다. 경수는 허공에 브라질리언킥을 시전하며 울부짖어야 했다. 

 

 

 

* 

 

 

 

 4월 아침의 선선한 공기는 적당히 기분좋게 등굣길을 수놓았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목련을 보며 경수는 스스로 본인의 운세를 점쳤다. 오늘 도경수씨의 운세는, 목련만큼이나 깨끗하고 밝겠습니다! 히히.  

 

 걸어서 5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경수는 어느새 교정에 다다랐다. 저마다 친구와 함께 등교하는 모습에 혼자의 몸으로서 조금 위축이 되었지만 부러 공작새마냥 가슴을 쭈욱 펴고 걸었다. 전 학교에서는 느낄 수 없던 설레임이 너른 가슴위에 고르게 퍼진다. 혼자이면 어떠하리, 나에게는 하루만에 30명의 가족이 생겼다. 콧노래를 부르며 씩씩하게 운동장에 들어선 경수의 뒤로 경쾌한 걸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도갱!" 

 

 

 큰 키를 이용하여 경수의 목에 헤드락을 걸며 나타난 찬열과, 경수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종대. 아직까지 눈꺼풀에 내려앉은 잠이 가시지 않아 걸으며 조는 종인과 세훈. 어제 경수의 점 사건을 들먹이며 놀리는 찬열에 경수가 발끈하자 나머지 녀석들도 한마디씩 거들며 경수의 약을 올렸다. 경수는 쪽팔림과 빡침의 경계에서 씩씩댔지만 천진하게 웃는 얼굴들을 보며 한 켠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그들은 경수를 적응시켜주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그들의 일원이었던 것 마냥 자연스러운 태도로 일관했다. 착한 사람들, 감사한 사람들. 

 

 

"변백, 조금 있으면 종쳐 빨리 와라!" 

"어." 

 

 

 찬열이 고개를 돌려 뒤에서 느리게 걸어오는 백현을 향해 소리쳤다. 아침잠이 많은 편인지 하품을 하는 모습에 덩달아 뒤로 시선을 돌린 경수가 풉하고 웃자, 백현이 예의 그 건조한 눈으로 경수를 흘겼다. 그,그렇게 나오면 너무 무섭잖아. 경수는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베시시 웃어보였다. 그러자 줄곧 무표정을 고수하던 백현도 바람빠지는 웃음을 지어보인다. 목련을 닮은 4월의 아침이었다. 

 

 

 

 

 

 

 

 

 

 

 

 

 

 

 

 

 

 

_

심포니 밴드는

친구의 관악부 공연을 보고 거기서 실마리를 얻어 쓰게된 글입니당ㅎㅎ

열심히 조사를 한다고 하긴 했는데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게 여기저기서 드러나네요ㅎㅎㅠㅠ 잘쓰고있는지 모르겠구..ㅠ.ㅠ

비루한 글에 댓글달아주시는 분들...정말 사랑합니다ㅠㅠㅠㅠㅠㅠ저에게는 추블리보다 그대들이 더욱 사랑스럽네요..

뮤즈와 심밴은 동시연재이구, 앞으로 함께해 보아요 ^,^ 

 

(P.S 뮤즈나 심밴에서나 경수는 검색왕이네요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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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이번에도 제가 일등이네요! 우와 색소폰 변백현이라니!ㅎㅎ그나저나 경수 왜르케 귀엽나요ㅠㅠ 쩜 사건ㅋㅋㅋㅋㅋㅋㅋㅋ그거가지구 또 놀리는 비글라인ㅋㅋㅋㅋ 아 진짜 너무 귀여워요ㅎㅎㅎ검색왕 도경수!@_@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뮤즈도 이것도 재밌게 보고있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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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ㅠㅠㅠ고등학생이야기 정말좋아요...정말루정말루.....뭔가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네요ㅎㅎ다음편 기다릴께용~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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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너무 풋풋한 분위기가 추운 겨울도 따뜻한 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네요ㅠㅠ보는 내내 광대가 내려오질 않아 참 힘들었습니다..ㅎ악기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각자에게 각 악기들이 너무나 잘어울려 몰입이 잘되네요ㅠㅠ앞으로의 내용이 더욱 기대되네요! 심포니밴드도 뮤즈도 모두 다음편 기대할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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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헐ㅠ완전ㅠㅠ악기나오는이런내용완전좋아ㅠㅠ기대기대!!역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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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오ㅓㅠㅠㅠㅠㅠㅠ너무좋어ㅛ........설레고 풋풋하거ㅠㅠㅠㅠㅠㅠㅠㅠ아ㅠㅠㅠㅠㅠ경수는 어디서나 씹덕 터지네여ㅠㅠㅜ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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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재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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