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국(知國)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인 왕자를 위해 만들어진 시성각(視星閣)에 왕과 높은 관리들, 그리고 열 여섯 어린 나이의 왕자가 모여 있었다. 왕자는 눈이 아프지도 않은지 눈을 전혀 깜빡이지 않고 하늘을 쳐다보았고 신하들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옆에 있던 왕이 왕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무엇이 보이느냐?"
왕자는 생각에 잠긴 듯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이윽고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왕자의 입이 열렸다.
"머지 않아 피바람이 불 것입니다"
왕자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담담한 어조에 당황한 왕과 신하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왕은 금세 당황한 표정을 숨기고는 껄껄 웃었다.
"왕자가 요즘 천에 자주 오가더니 잠시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구나. 지금 우리 지는 천하가 태평하고 백성들 역시 부족한 것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어찌 피바람이 분단 말이냐?"
"저 별이 보이십니까?"
왕자가 가리킨 곳에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별이 하나 있었다. 옆에 있는 크고 밝은 별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별 근처에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 붉은 빛은 금방이라도 그 기세를 넓혀 온 하늘을 뒤덮을 듯 했다.
"저 별의 기운을 가진 자가 그 붉은 빛으로 피바람을 불게 할 것입니다."
"허면. 저 별의 기운을 가진 자가 어떤 자냐?"
"그것은......."
왕자가 뜸을 들이며 대답을 망설였다. 신하들은 행여나 자신의 이름을 말 할까 노심초사하며 왕자의 답을 기다렸다. 꽤나 긴 시간을 망설인 후, 왕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 했다.
"영의정 박씨의 아들 박지민입니다."
곧 영의정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걸어 나오더니 왕자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닙니다 왕자님. 왕자님께서 잘못 보신 것이 틀림 없습니다. 저희 지민이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지민이가 얼마나 선하고...!!"
"무엄하도다! 왕자에게서 떨어지지 못할까?"
왕은 크게 호통쳤고 영의정은 벌벌 떨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 상황을 왕의 곁에서 지켜보던 호위무사 김씨는 멈칫했다. 남색이 허락된지 10년 가량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결사반대했던. 아들 태형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지민은. 호위무사는 몸을 한 번 잘게 떨었다.
하늘을 다시 올려다 본 왕자는 자신의 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의 별과는 달리 푸른 빛이 옅게 감돌고 있었다. 세자저하... 붉은 빛에 잠식되지 않도록 제가 지켜드리겠나이다. 왕자는 붉은 빛 가까이에서 밝게 빛나는 큰 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여봐라!!! 누가 어서 가서 영의정의 아들 박지민을 불러오거라!!!!!!!!"
왕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밀려오는 죄책감에 속으로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구나 지민아, 그리고 내 오랜 벗 태형아.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구나......
* * *
고려가 기울어가고 조선이 일어날 무렵, 북쪽 지방에서는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여러 작은 국가들이 생겨났다. 그 중 가장 으뜸가는 세력을 가진 나라가 지(知)나라, 지국(知國)이었고 둘째 가는 세력을 가진 나라가 천(天)나라, 천국(天國)이었다. 이 두 나라는 친선관계를 유지했고, 쉽게 패망한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조선의 태종 때 까지 나라를 이어갔다. 두 나라가 택한 친선유지방법은 왕의 자식들을 결혼시키는 것이었는데 천국의 성종, 지국의 의조 때 문제가 생겼다.
선종에게는 수 많은 첩실이 있었는데, 선종은 본디 성격이 무심해 하룻 밤을 지낸 여인에게는 다시 찾아가는 법이 없었다. 그는 오직 중전만을 진심으로 사랑하였는데 중전은 아들 하나를 낳고 세상을 떴다. 선종은 큰 슬픔에 잠겨 그 이후로는 여자를 멀리 하였고 아들 때문에 사랑하는 중전을 잃었다 생각 해 어린 아들을 안아주지도, 찾아가지도 않았고 문안인사도 차갑게 받았으며 따뜻한 눈길 한 번 보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성격을 물려받았는지 그 아들 역시 무심하기 짝이 없었지만 무술과 문예에 능했다. 또 어미의 착한 성품을 물려받아 세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 아이가 바로 천국의 세자 민윤기다.
의조는 본처와 한명의 첩실을 거느렸는데 본처는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였고, 의조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빼어난 미모와 학식을 겸비한 후궁은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은 어미를 닮아 아름다운 얼굴과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똘똘하기로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이 왕자에게는 어미에게 물려 받은 특별한 점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왕자는 어릴 적 부터 별을 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고 별 보는 일을 좋아했다. 가끔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제 어미와 내일 있을 일을 가지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 자신의 10번째 탄생절날 아침, 목을 조르고 있는 손에 눈을 뜬 왕자의 눈은 살기어린 어머니의 눈과 마주쳤다. 왕자는 두려운 마음에 소리를 마구 질렀고 지나가던 호위무사 김씨에 의해 살 수 있었다. 왕자의 어머니를 옛부터 탐탐치 않게 여겼던 중전은 그녀가 아들을 헤하려 했다며 사약을 내렸고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도 나라를 위한다면 왕자를 죽여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며 혀를 찼지만 왕자는 자신을 노려보던 어미의 눈빛을 잊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남들 앞에서 태연한 척 했다. 이것이 왕자의 의무(비록 대군이 아닌 군이었지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왕자는 호위무사 김씨의 아들이자 자신의 벗인 태형의 앞에서만 속내를 드러냈는데 그 대부분은 눈물로 시작되거나 끝맺음 되었다고 한다. 겉으론 강한 척 하지만 속은 너무나도 유약한 사람. 이 사람이 지의 왕자 전정국이다.
이렇게 두 나라 모두 자손을 보았으나 남자이고, 둘 째를 낳을 상황이 되지 않는 까닭에 왕실에서는 고심 끝에 남색을 허락하게 되었다. 그 후 정국왕자는 천에 자주 다니며 윤기세자와의 우정(혹은 사랑)을 쌓으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세자는 왕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였고 정국왕자가 세자빈이 된 후로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자빈의 비극은 여기서 부터 시작되었다.
* * *
"부르셨습니까 스승님?"
북한산 중턱에 있는 허름한 집 앞에 윤기가 흐르는 하얀 말 한필이 메어져 있었다. 석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앉으라고 눈짓했다. 남준은 익숙하다는 듯 석진의 앞에 앉았고 석진은 웃으며 차를 따랐다. 스승께서 급히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 수행중임에도 불구하고 석진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산 속 작은 집에 찾아왔건만 정작 석진은 느긋하기만 했다. 차를 권하는 손길에 성급하게 어인 일로 부르셨냐고 묻자 석진은 그저 웃으며 자신 몫의 차를 들이켰다.
"남준공.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이 있지 않소? 일단 차 부터 드시게나."
여전히 느긋하기만 한 석진이 답답해 뜨거운 차를 한 번에 마시고서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앞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래서 내가 남준공을 곁에 두려 하는 거네. 매번 생각 많고 느긋해 꽉 막힌 늙은이와도 같은 나와는 달리 속전속결하는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거든."
"이번 역시 서론이 꽤 길어지려 하는군요."
석진은 다시 한번 웃고서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더니 말을 매어놓은 곳으로 나섰다. 남준의 말을 본 석진이 감탄했다. 보기만 해도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명마로군.... 이 역시 여담이라 생각한 남준은 퉁명스레 망아지 때 부터 거두어 스스로 키워 왔다고 말 했다. 석진은 그 말을 들은 후 부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동안 하늘을 쳐다보았다. 남준역시 자연스레 하늘을 쳐다보았다. 석진이 보고있는 곳으로 눈을 옮긴 남준은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적성(赤星)이....!!!!!"
움직였지? 저 멀리. 남준은 두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별을 쳐다보았다. 붉은 빛을 내던 작은 별은 저 멀리로 사라져 있었다. 그 빛 또한 사그러 들어 적성을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남준의 얼굴을 슬쩍 본 석진이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저는 아직 별을 보는 것에 깨달음이 부족해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어째서......."
"붉은 빛의 별은 곧 불행과 죽음을 의미하지. 그런데에 반해 그 붉은 기운을 막을 수 있는 별이 하나 있지 않은가?"
아!!! 남준은 고개를 돌려 적성의 위쪽을 바라보았다.
"청성(靑星)......."
남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푸른 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별 역시 옅은 푸른 빛을 띨 뿐, 이 전의 적성처럼 맹렬한 빛을 띠지는 못했다. 사라질 듯 말 듯 한 푸른 빛 근처에는 빛나는 별들이 여럿 모여있었다.
"하지만 저 별 역시 기운이......."
"남준공. 어찌 별 하나를 보고 말씀하시는가? 오직 별 하나만 바라보고 그 옆의 크고 작은, 빛나는 별들은 볼 줄을 모른다니......."
탄식을 한 석진이 말을 이어갔다.
"자신 주위에서 빛나는 별들을 이용한게지. 아직은 푸른 빛이 많지 않아 힘이 없지만 주위에서 빛나는 많은 별들의 힘을 합쳐 임시방편으로라도 적성을 멀리 밀어 낼 수 있었네. 물론 말 한 것처럼 임시방편일 뿐이지만 말일세."
"적성이 다시 돌아와 더욱 더 붉어진 빛으로 세상을 위협하면, 그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그러니까 그 전까지 청성의 푸른 빛을 키워야 하는 거지."
남준은 정확히지 못한 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서는 제 앞에 있는 말을 쓰다듬었다.
"내 답이 충분하지 못한가 보군?"
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힘을 어떻게 키우느냐고 묻자 석진은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던 석진은 남준의 기분이 상했을 거라는 생각에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남준공의 이 질문을 기다렸네. 답을 찾으려면 아까 나눴던 이 명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볼까?"
제 말이라니....... 남준은 한참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손뼉을 치고서는 입을 열었다.
"정(情)이군요!!! 제 말이 저에게 사랑을 받고 훌륭한 말로 컸습니다. 그리고 정이란 본디 청(靑)에서 비롯된 말이 아닙니까?"
석진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준공을 알아본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남준은 석진의 칭찬에 귀까지 빨개졌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저 푸른 별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입니까?"
"글쎄....... 우리같은 자들이 수행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숲이지 나무가 아니라 나도 잘 모르겠네. 하지만 저 별들은 지나라의 위치에 있고 그 중 높은 하늘에 위치하고 있으니 분명 높은 자제임에 틀림 없어."
높은 자제이고 주변에 자신을 위해 힘 써줄 사람들은 많으나 정작 사랑을 받지 못해 빛을 내지 못하고 있다....? 남준은 왠지 딱하고 슬픈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준의 표정변화를 관찰하던 석진은 말 없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준이 성격에 맞지 않는 사색을 끝낼 즈음에 석진이 집에서 나왔다. 검소한 차림과 가벼운 짐. 그것은 분명 이 곳을 떠날 사람의 차림이었다. 당황한 남준은 어디에 가시느냐 물었지만 석진은 빙그레 웃으며 말에 타시지오, 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남준은 스승의 말대로 말에 올라탔고 석진은 사뿐히 그 뒤에 올라 탔다. 그리고 남준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외쳤다.
지나라로 가시지오 남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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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발견!!!
이건 나름 머리 굴리면서 써서 머리아픔....
원래 썼던거에서 한 번 커플링 바껐다가 또 한번 바꿔서 결국은 윤기정국ㅋㅋㅋㅋ
태형정국도 좋은데 뭔가 윤기가 호위무사를 하는것보다는...ㅋㅋㅋㅋ
세자에는 둘 다 어울리지만 호위무사에는 태태가 더 어울리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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