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
(부제 : 옆집 꼬마)
안예은 - 홍연(Inst.)
세상에 처음 날 때
인연인 사람들은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온다 했죠
내 이름 김여주.
나이는 찬란하고 아름다운이라 쓰고 암담이라 읽는 고3, 열아홉 되시겠다.
수능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별로 돌아다니는 사람도 두런두런 오고가는 이야기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던 이 동네가 부쩍 소란스러워진 이유는 우리 옆집으로 이사 온 지 두 달이 된 연예인 때문이다.
TV를 보는 편도 아니고 SNS, 미디어와는 담을 쌓은 지 꽤 된 내가 그 연예인의 정체를 알게된 건 불과 일주일전이었다.
"출근 하냐?"
"......등교겠죠."
"아, 등교. 근데 너 공부는 잘하냐?"
"보통만큼은 해요. 그러는 그쪽은 무슨 꼭두새벽부터 선글라스를......"
"나 연예인이잖아."
"아, 예..... 그럼 저는 이만."
"공부 열심히 해."
귀찮다.
벌써 2주째 일정하지도 않은 내 등교시간은 대체 어떻게 아는 건지 매일 배웅을 나오고 있다.
그래, 뭐 다 좋다 이거야.
다 좋은데 제발 잠옷입고 선글라스는 안 썼으면 좋겠다.
**
"김여주!!!!!!"
"아오, 깜짝이야. 왜."
"그 소문이 사실이더냐."
"뭐."
"너네 옆집에 하성운 산다는 거!!!!"
"누가 그래?"
"최초 유포자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학교가 발칵 뒤집힌 건 안다."
"별게 다 소문이 나네. 유명한 사람이긴 하구나."
"진짜야?"
"응."
"헐..... 나 오늘 너네 집에서 좀 자야겠어. 오늘은 왠지 그래야만 할 거 같아."
"마음대로."
"진짜 사랑한다, 친구야."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할게."
내 팔을 끌어안고 얼굴이 비벼대는 친구를 필사적으로 밀어내면서 투닥이고 있는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경멸하는 무리들이 등장했다.
자기들 나름대로 이름도 만들면서 열심히 삽질하는 애들인데 삶이 오죽 힘들면 저럴까 싶어서 안쓰럽게 여겨주고 있다.
"야."
"야?"
"너같이 띨띨한 년한테도 선배라고 해줘야 돼?"
"띨띨... 나 전교1등인데 내가 띨띨하면 넌 뭐야?"
"아, 됐고."
맨날 불리하면 됐단다, 짜증나게.
"그 소문 니가 냈지?"
"부탁인데 말을 좀 똑바로 해줄래?"
"우리 성운오빠가 너네 옆집에 산다는 소문이라도 나야 애들이 너한테 관심 가져주니까 니가 직접 퍼트린 거 아니냐고!!"
"넌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보이냐?"
"니가 할 일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알게 뭐야. 그딴 말 같지도 않은 소문내면서 관종짓 하지 말고 조용히 입 닥치고 공부나 해, 범생아."
"덕분에 필요이상으로 관심 받고 좋네. 그리고 이건 옆집 사는 그분께 잘 전해드릴게. 그쪽 팬이 막말을 쏟아내시는 바람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공부하는데 지장이 생겼다고."
"뭐?"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는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뺏으려고 손을 뻗으려는 찰나 울린 종소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날 째려보며 제 친구들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역시 진정한 싸움닭은 김여주 너지."
"뭐라는 거야."
"그 와중에 녹음을 할 생각을 했다는 게 대단하다."
"무슨 녹음이야. 그냥 장난 좀 친거지."
"헐? 무서운 년."
"이제 알았냐."
"......내가 더 잘할게."
"어. 넌 좀 잘할 필요가 있어."
"오늘은 야자 안하는 날이지?"
"응. 보충만 하고 가자."
"오키도키."
**
"야.... 나 너무 떨려...."
"이 시간에는 그 사람 없는데. 내일 아침에나 볼 수 있을걸?"
"....그 얘기를 왜 지금 해?"
"재밌잖아."
"씨... 괜히 긴장했네!!! 아, 진짜..."
"일찍 오네?"
응? 뭐야? 왜 이 시간에 저 사람이 여기 있어?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내가 오고 가는 시간을 어떻게 저렇게 딱 맞춰서 앞에 있는 거야?
"헐.... 성운오빠다...."
"못 보던 친구네. 안녕?"
"오빠 진짜 팬이에요!!!! 헐, 존잘...."
"사인 해줄까? 사진도 찍어줄게."
"진짜요???"
"그럼. 꼬마 친군데 해줘야지."
"꼬마? 얘요....?"
"응. 옆집 꼬마."
처음으로 보는 얼굴이다. 한 번도 저렇게 슬픈 얼굴인 적은 없었는데...
그냥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ㄱ,
"도련님!!!!"
"어? 옆집 꼬마네?"
"아이, 참. 저 꼬마 아니래두요!!!"
"키도 작고 손도 이리 작은데 어찌 꼬마가 아니야."
"제가 이만큼 더 크면 그 때는 제 이름으로 불러주실 거예요?"
"그래. 이만큼 더 크고 나면 이름으로 부를게."
"약속하신 거예요? 그런데 이 시간에 어딜 가셔요?"
"친구에게 잠시 가봐야 할 일이 있어서. 넌 이 늦은 시간에 왜 밖에 있는 거야?"
"저는 사모님 심부름이요. 그럼 조심히 다녀오셔요."
"응. 너도 조심히 들어가."
뭐지....?
지금 이거 무슨 기억이야?
왜 저 사람이랑 내가....
"나 꼬마랑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네!! 하세요!!! 야, 나 먼저 들어가 있는다!!!"
"야!!!!!!"
"지금도 이름이 김여주, 맞나?"
"제 이름 알려드린 적 없는데 어떻게 아세요...?"
"내가 너에 대해서 모르는 게 어디 있겠어."
".......네?"
"내가 왜 여기로 이사 왔을 거 같아?"
"그게 무슨....."
잔뜩 겁먹은 내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팍 숙이고는 한참이나 가만히 있는데 어깨가 들썩 거린다....?
"아, 진짴ㅋㅋㅋㅋ 귀엽기는."
"아니, 이게 무슨...."
"어, 조심!!!"
"아야..."
"괜찮니?"
"네!! 잡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옆집 도련님?"
"도련님은 또 뭐야- 내 이름 하성운이야."
"저희 사모님께서 도련님으로 부르라고 하셔서...."
"굳이 너희 사모님 말씀을 다 들을 필요는 없어."
"네....?"
"오라버니라 불러도 상관없다는 말이야. 넌 이름이 뭐야?"
"여주요. 김여주."
"여주... 예쁜 이름이네. 얼굴만큼."
또 지나갔다.
도대체가 무슨 기억인지 가늠조차 안 될 만큼 오래전으로 보이는 시간 속에 이 사람과 내가 함께 서 있다.
"나 혼자서만 기억하는 게 억울해서."
"빨리 기억해달라고 떼쓰는 중이야."
"여전히 예쁘구나, 그때처럼."
"절 찾는다는 사람이 도련님이셨어요?"
"응. 아마 오랫동안 보지 못할 거 같아서.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네? 어디 가세요....?
"응. 아주 멀리."
"설마..... 안돼요, 도련님. 그거 너무 위험해요."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테지만... 그래도 그 누군가가 내가 되면 좋겠어. 형아가 마중나올테니까 다 괜찮아."
"안돼요...."
"그리고 혹시라도 누가 찾아와서 나에 대해 물으면 넌 날 절대 모르는 거야."
"도련님....."
"그래도 네 얼굴은 보고 가서 다행이다. 아프지 말고, 울지 말고."
".............."
"방금 울지 말라고 했는데 벌써 울면 어떡해."
".......꼭 사세요..... 죽지 말고....."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인 줄 알았더니.... 그래, 죽지 않을게. 꼭 살아볼게."
"............."
"혹시 살게 되면.... 그래서 아주 나중에 널 보러 오면 꼭 알아봐줘."
"............."
"인연인 사람들은 서로 붉은 실이 이어져서 태어난대. 어디에 있든 찾을 수 있게. 그러니 내가 널 꼭 찾아낼게."
"꼭..... 찾아주셔야 해요...."
"찾았다....."
"..............."
"진짜 찾으러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 끌어안은 이 사람.
얼마큼의 시간을 돌고 돌아왔을지, 혼자만 기억하고 있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나 다 기억났어요...."
"내가 누군데?"
"도련님...."
"아직도?"
"......오라버니."
당신이 어디 있든
내가 찾을 수 있게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왔다 했죠
**
"그 얘기 들었어? 왜 저기 하씨네 둘째 성운이."
"무슨 얘기?"
"지 형 따라서 독립운동 한다고 나간 뒤로 소식이 뚝 끊겼었잖아."
"그랬지."
"얼마 전에 소식이 닿았는데 글쎄 독립운동 하다가 일본 놈들 총에 맞아서 갔대."
"하이고... 지 형 그렇게 간 지 얼마나 됐다고..."
"쯧- 젊은 사람이 안됐지..."
"지 어매가 그렇게 울면서 말렸는데도 기어코 나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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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인사드리는 '라망뜨' 입니다
안예은님의 홍연을 듣고 구상하게 된 작품이고
시리즈로 진행할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앞으로 좋은 글로 찾아뵐테니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