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도령에게 시집가기
글 잎련
서방님이 나를 피하는 것 같다.
"안 주무셔요?"
"생각할 게 있다. 먼저 자리에 들거라."
매일 함께 누워 잠들었는데, 갑자기 먼저 자라며 방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 서있다. 날도 추운데 혹여 고뿔이라도 걸릴까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한번 더 서방님을 불러보지만 단호한 태도는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젯밤은 그렇게 넘어갔는데, 문제는 아침에도 그런다는 것이다.
"서방님 진지 안드세요?"
"가게에 가서 먹을게. 미안."
요즘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싶어 일부러 더 일찍 일어나 몸에 좋은 것들로 한 상 차렸더니, 내가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서방님이 옷을 갖춰입고 방을 나선다. 내가 놀란 눈으로 묻자 서방님은 미안하다며 집을 나선다. 조용해진 방에 놓여진 상에서는 따뜻한 김이 나고 있었다.
"..고생 좀 했는데."
나름 서방님 좋은 거 먹이겠다고 시어머니께 배워둔 요리까지 하느라 손도 조금 데였는데. 혼인하고 나서는 한번도 아침밥을 밖에서 먹은 적이 없는 서방님이고, 나름 열심히 준비한 요리를 서방님이 보고도 먹지 않아서 더 서운했다. 나라도 먹을까 싶어 조금 오물대다가 아무리 봐도 입맛이 없어 결국 상을 정리했다.
그날 밤, 서방님이 집으로 돌아오셨고 난 아직도 서운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 조금 퉁명스럽게 서방님을 대했다. 두루마기와 갓도 벗지 않고 방에 가만히 앉아있던 서방님이 조금씩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럴만도 한게, 내가 물건 정리를 하며 서랍을 꽤 큰 소리로 집어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라졌다고 티를 팍팍 냈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라구요."
여전히 서방님은 쳐다보지 않은 채 머리에 꽂았던 비녀를 탁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대답하자 이내 서방님도 조용해졌다. 이렇게 냉랭한 적은 처음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피려고 하는데, 그런 나를 보던 서방님이 갑자기 연아. 하며 내 손을 덥썩 잡는다.
"다쳤어?"
아침준비를 하며 데였던 손이었다. 소매자락으로 가린다고 가렸는데, 서방님의 눈에 확 띄었나보다. 내 손을 조심히 잡으며 다쳤냐고 물어오는 모습은 꽤나 나를 걱정하는 듯 했다. 왠지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서방님이 나에게 관심이 사라진 건 아니구나.
"..약간 데였습니다."
"어..그래.."
"..."
"어서 약 발라."
어처구니가 없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직접 약을 가져와 살살 발라주기까지 하던 사람이, 약을 바르라는 말만 하고선 또다시 밖으로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황당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나에 대한 마음이 사라진 건가? 이렇게 금방?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불을 다 펴고 누웠는데도 들어올 생각을 안하는 서방님에 서운함과 토라진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하고서 혼자 잠에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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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태로 나흘이나 지났다. 그동안 서방님과 나의 대화는 진지 드세요. 다녀오셨어요. 주무세요. 하는 형식적인 나의 말에 따라오는 서방님의 짧은 대답 뿐이었다. 그야말로 살얼음판이 따로 없었다. 딱 벗만도 못한 정도였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오래 끌 생각이 없었는데, 서운한 티를 내도 그대로인 서방님에 단단히 마음 먹었다.
"가게 가세요?"
"어.."
"다녀오세요."
탁 소리나게 문을 닫았다. 서방님은 아직도 며칠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대체 뭐가 문제지. 자주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꼭 해주던 애정표현도 사라졌고, 함께 잠에 들지도 않았으며 고민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야.."
날 좋은 햇빛에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에 핀 들꽃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서방님이 나를 피하기 시작한 것은 일주일 전부터다. 일주일 전에는 서방님과 처음으로 가게를 다녀왔고, 다녀와서 시부모님과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은 이게 끝인데.
"..설마."
그때 내 머릿속을 띵하게 만드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날 갑자기 '합방은 할 생각이 없느냐?'하고 물어오신 아버지. 설마 합방 이야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단정짓기엔서방님은 그 말에 잠시 당황하다가 없지 않습니다 장인어른. 하고 잘 대답 했었는데.
이대로는 답답해서 못살겠다. 의심가는 부분도 생겼으니 서방님과 대면해서 물어보는 수 밖에. 만약 정말 나와의 합방이 꺼려져서 그런 것이라면, 혹여 그런 것이라면 많이 슬플 것 같다. 서방님이 직접 말한 것도 아닌데 정말이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괜히 눈이 시려왔다.
"서방님!"
해가 점점 사라질 즈음, 서방님이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마루에 나와있던 나를 보고 흠칫 놀란 서방님이 다시 집 밖으로 나가려다 내가 외치는 소리에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내 옆에 와서 앉는다. 불러놓고 아무 말이 없는 내 모습에 오히려 서방님이 움찔움찔 가만히 있지 못한다.
"서방님 요즘 왜 저 왜 피하세요?"
"..."
"서방님과 부인은 함께 있어야 하는 것 아니어요? 그런데 요즘엔 잠에 들 때도 옆에 없고, 대화도 안하고, 나들이 가자는 소리도 안 하시고."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는데,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니 지난 일주일간의 서운함을 오히려 건들여버려 조금씩 서방님을 보는 시선이 투명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더이상 서방님을 보고 따질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숙여 서방님이 사준 어여쁜 비단신만 바라보았다.
"그날은 진짜. 서방님 고민 있어서, 힘들어하는 것 같길래 손, 다쳐가면서까지 밥 차렸는데, 먹지도 않고, 저를 쳐다보지도, 않으시고,"
"...이름아."
한번 올라온 서운함과 서러움, 속상함은 말을 할수록 더더욱 북받쳐 올라 울음을 참으려 말이 뚝뚝 끊겼다. 그러던 와중에 너무도 다정하게 들려온 내 이름에 결국 울음이 터져버렸다. 나한테 며칠동안 차갑게 대해놓고 이제와서 왜. 한번 터트린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고, 소매로 대충 눈물을 닦아낸 내가 약간은 따지는 투로 물었다.
"혹여 저와 합방이 꺼려지셔서 그런겁니까??"
"..뭐?"
"그 날 이후부터 계속 이러잖아요."
"이름아, 그게 아니라,"
"저랑 혼인하고 싶으셨다면서요. 부탁드렸다면서요! 저는 진짜 서방님이 갑자기 왜그러시는지 모르겠어요."
여태 쌓아놨던 말을들 우르르 쏟아내듯 말해버렸다. 이 와중에도 눈물은 멈추질 않고, 서방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본다. 시선을 내려 손을 꼼지락거렸다.
"서방님이 저를 여인으로 보는 게 맞긴 한가 싶습니다."
"..."
"아니죠. 제가 서방님께 여인이었으면 합방은 벌써 했,"
소리칠 기운도 다 빠져서 작은 목소리로 투덜대듯 말을 이어가는데, 내 얼굴을 감싸고서 눈물을 닦아주는 서방님에 뚝 끊겼다. 조심스럽게 내 볼을 쓰다듬는 손길이 예전처럼 다정해서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로 가만히 나를 내려보던 서방님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이내 입술로 뜨거운 온도가 전해졌고, 조금은 낯선 느낌에 몸을 움찔거리자 서방님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잡아온다. 누가 내 마음 속에서 북을 치고 있는 것 같다. 쿵쿵 하는 소리가 북소리라고 해도 믿을만큼 크게 들렸다.
잠시 뒤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드는 내 모습에 서방님이 부인, 하고 낮게 잠긴 목소리로 부른다.
"입만 맞추어도 이리 놀라는데,"
"..."
"나보고 어찌하라는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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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좋은 글을 보여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생이 저를 자꾸 덮쳐 연재기간이 늘어나네요ㅠㅠ
그래도 항상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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