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d_ piper
w. 달 월
-전 편들을 꼭꼭 보고 오셔야 해서 8편 링크 첨부 해 놓을게요!!
- 도짜님들을 댓글은 자까에게 매우매우 힘이 된답니다!! 비타민 같은 존재랄까.. 무슨 말이든 헐 댓글이다ㅠㅠㅠ 이러고 몇 분동안 심장을 부여잡고 행복해하는 자까랍니다 희희 정말 아무말이나 상관없어요♡
-오늘도 제 글을 찾아주시고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브금이 다하는 제글 인 거 아시죠? 꼭꼭 들어주시기>< listen in browser 누르시면 됩니당
22.
결국엔 누나에게 가보지도 못하고, 내 방구석 안이다. 괜찮을까. 죄책감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내 감정을 모른 척했던 날들에 대한 대가 인가 보다. 멍하게 천장을 보고 있던 눈을 한 팔로 가리고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하게 얽혀버린 감정들이 가슴속에 콱 막혀있는 느낌이다. 이 느낌을 해소하려면 세린이가 저지른 사건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 마침 진동을 울려대는 핸드폰을 들었다.
'22기 김세린: 오빠,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
어쩌긴 어째, 잘못 인정하고 사과해야지. 그전에 세린이도 세린인데, 돈을 받고 그런 짓을 승낙한 세린이 동기가 더 괘씸했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짧은 카톡을 보냈다.
'일단, 그 남자애 번호 줘봐. 넌 어떤 식으로 사과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고. '
얼마 가지 않아 답장이 왔고, 세린이가 보내온 낯선 번호에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난잡했던 마음을 차분하게 다잡았다.
"... 여보세요. "
"이영진 씨죠,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
"네, 맞는데. 누구신데요? "
"이여주 씨 지인인데요. 할 말 많거든요. "
"... "
"지금 피하셔도 아차피 곧 만나게 될 거 예요. 학교든, 경찰서든. "
"... 알겠습니다. "
아까 세린이와 헤어졌던 공원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의자에 걸쳐놓았던 코트를 다시 입었다. 급하게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바람이 내 뺨을 에워쌌다. 바닥에는 온통 비로 인해 물 웅덩이들이 가득했고, 가로등 불빛들이 반사되어 그 속에서 어두운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가, 비까지 오니 어둠이 자욱하게 깔려있었다. 공원 입구에 도착해서 벤치에 걸터앉아 있으니 저 멀리에 온통 검은색으로 둘러싼 한 남자가 걸어온다. 저 사람이구나. 안 그래도 누나네 집 앞 깜깜한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저런 차림새라면 어둠 속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을 것 같았다. 애써 침착하게 가라앉혀 놓았던 감정이 울컥 차올랐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다는 말을 직접 체험하는 중이었다. 초점 없는 눈을 한 남자가 내 앞에 와서 우뚝 섰다.
"이영진 씨 맞으시죠? 여주 누나도 아실 테고. "
"네. 맞는데. 전 진짜 시킨 대로 밖에 한 거 밖에 없어요. "
"... "
"그리고 말리기도 했어요. 어쩔 수 없이... "
변명이랍시고 나불대는 남자의 입모양에 입술을 꽉 물었다. 그래서 더 나쁜 거야. 잘못된 걸 알면서도 그랬다는 게. 사실 이 화가 내 앞에 서있는 남자로 부터 비롯 된 감정인지,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감정인지 알 수없었다. 그간 알면서도 행해왔던 내 행동들을 다른 형태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나 또한 내 감정이 시키는 대로, 뒤늦게 해결책을 찾으려 했으니까. 그래서 결국은 이번 일은 내가 초래한 일이었다.
"누나한테 가서 사과해요. "
"... 제가요? 전 사실 누군지도 잘 모르는데. "
"사과하라고. "
이해할 수없다는 듯이 세린이 핑계를 대며 어영부영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치가 떨린다.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그런 짓은 왜 해. 그렇다면 누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당해야 하는데. 최대한 침착하려 입술을 더 꽉 물었다. 반성의 기미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남자의 모습에 주먹을 세게 쥐어졌다. 조금씩 떨어지던 빗줄기가 굵어져 내 이마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세린이가 같이 가달라 하면 같이 갈 수는 있는데, 제가 먼저 사과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요. 결국엔 아무것도 못해서 돈도 돌려줬고. "
"..."
"정말 저는 돈 때문에 한 거 밖에 없ㅇ... "
그렇게 돈이 궁하셨으면 저한테 말씀을 하시지.
무슨 말인지 이해 안 된다는 듯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어 보는 남자의 얼굴에 냉소를 띠곤 대답 대신 주먹을 휘둘렀다. 둔탁한 마찰음이 조용한 공원의 정적을 깼다.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당황한 남자는 그대로 주저앉아 신음했다. 잠시 동안 내 손등에 닿았던 남자의 피부 결조차도 역겨웠다. 입술이 터졌는지 입 주변을 제 손으로 감싸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합의금 달라 하면 줄 테니까. 연락해요. "
사과도 꼭 하고.
말을 덧붙이고는 남자에게서 뒤돌아섰다. 이 정도면 알아 들었겠지. 살짝 얼얼한 느낌에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 보니 남자의 입술에서 터져 묻었는지 옅게 끈적한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더러워. 쓱쓱 손으로 닦아내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한없이 까맣기만 하다. 후두둑 빗방울이 얼굴 위로 떨어져 천천히 뺨을 타고 흘렀다. 소나기. 이제 조금은 알겠다. 준비를 미쳐 못했는데 쏟아져서 흠뻑 젖게 만든다는 그 뜻을. 규칙 없이 흩어지는 물방울들을 온전히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아마 한동안 독한 감기에 시달릴 것만 같다.
목구멍에 누군가 사포질을 하는 것 마냥 따가운 느낌에 눈을 떴다. 아, 아.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서 나온다. 코 안쪽도 퉁퉁 부어 숨을 내쉬기가 힘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감기에 걸렸네. 몸을 반쯤 일으키니 마치 이 세상 전체를 등에 업었다가 내려놓은 것처럼 뻐근한 느낌과 함께 머리가 핑, 돌았다.
'... 근데 나는 아니야. 그 빗물에 홀딱 젖고 나면 감기에 걸리고, 열이 나서 힘들어. 그런데도 난 매번 그 소나기를 우산도 없이 맞아. '
누나의 말이 계속 맴돈다. 어쩌다 보니, 누나의 말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네. 대책 없이 우산도 없이 뛰어나가선 쫄딱 비를 맞고 감기에 걸린 꼴이라니. 작게 웃음이 터졌다. 나쁘지만은 않은 듯했다. 누나가 느꼈던 감정을 차근차근히 따라가고 있는 듯해서. 밖을 보니 언제 비가 왔냐는 둣이 따사로운 햇살이 창을 타고 들어와 내 방을 밝히고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는 세찬 소나기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차디찬 빗물들이 고여 내 속에 그대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잠시 동안 몸을 일으켰을 뿐인데 숨이 찼다. 지독한 감기에 걸린 듯하다. 지금 상태로는 병원도 못갈듯 해서 다시 자리에 누웠다. 기침을 몇 번 내뱉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두번째 브금입니다!!
따뜻한 손길이 내 머리칼을 어루만진다. 작게 토닥이는 느낌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느긋한 손가락이 내게 따뜻함을 전한다.
"정국아. "
누나의 목소리다.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을 뜰 힘조차 없어 그저 머리카락을 쓸어대는 손길을 느낄 뿐이었다. 누나가 왜 여기에 있지. 의문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내 곁에 누나가 있다는 게 마냥 좋았다.
"... 안녕. "
따뜻하면서도 슬픔이 어려있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안녕, 내 의지가 아니었는데 대답을 했다. 만났을 때 하는 반가운 '안녕.' 은 아니었다.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슬픈 '안녕.' 이었다. 짜르르한 아픔이 내게 전해졌으니. 사르륵 내 머리칼을 넘겨주던 손길이 사라지고 차가운 공기가 다시 나를 감쌌다. 외딴섬에 홀로 떠있는 듯한 공허함이 나를 가득 채웠다.
눈을 뜨니, 여전히 내 방이었다. 꿈이구나. 무슨 꿈이 이래. 욕조에 얼음을 가득 채워 놓고 그 속에 앉아 있는 것 마냥 몸이 떨렸다. 추워. 눈을 크게 떴다 감으니 고여있던 눈물이 조용히 굴러떨어진다. 꿈속에서 울었나 보다. 허허벌판에 나 혼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홀로 있는 조용한 방이 낯설고 싫었다. 핸드폰을 찾으려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돌리기만 했을 뿐인데 팽글팽글 세상이 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이리저리 흩어진 옷가지들 사이에 내동댕이 쳐진 핸드폰이 보였다. 간신히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화면을 켰다. 화면에 뜬 하나의 카톡을 보고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정꾸. "
"형, 나 너무 아파. "
"야, 너 목소리가 왜 그래. "
''비 맞았더니 감기 걸렸나봐. 못 움직이겠어. "
"죽이라도 사갖고 갈게, 기다려. "
전화를 끊고 그제야 찾아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지민이 형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다 터놓고 터울 없이 지내는 형. 아마 오늘 풀 강의 일 텐데, 다 제쳐놓고 오겠다고 하는 걸 보면 나를 여간 아끼는 게 아니었다. 인생 헛살진 않았네, 전정국. 모든 알림 창이 꺼진 화면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카톡 어플에 직접 들어가 봤지만, 누나에게 온 연락은 없었다. 괜히 섭섭했다. 여전히 내가 보낸 메시지 옆에 떠있는 1 자를 확인하고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띠, 띠띠띠- 삐-삐
급하게 도어록을 치다가 잘못 치기를 몇번 반복하고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민이 형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터졌다.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던지듯이 죽을 내려놓고 내 옆으로 달려오는 형이다.
부리나케 뛰어 왔다. 나 뿐이지?
"와, 형 진짜 감동이다. "
"열 너무 많이 나는데, 비는 또 왜 맞았어. "
"그냥. 그러고 싶었나 봐. "
"사춘기도 아니고, 멀쩡한 우산 두고 비를 맞아. "
사춘기.
그러게 말이다. 사춘기도 아니고 뻔히 감기에 걸릴 줄 알면서. 어쩌면 뒤늦을 사춘기 일지도 모르지. 부엌으로가 수건에 물을 축여오는 지민 형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곤 내게 묻는다.
"너 뭔 일 있지. "
표정과는 상반된 단호한 목소리가 나를 파고든다.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고, 숨겨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아는 터라 작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냐고 보채지 않고 그저 찬찬히 내 이마를 닦아주는 형 쪽으로 돌아누웠다. 열감이 홧홧하게 올랐다.
"형, 소나기가 무서운 거더라. "
"그러니까 네가 감기에 걸렸지. "
"응, 그냥 지나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태풍 같은 거보다 무서운 거 같아. "
뭔가 가득 뜻이 담긴 내 말에 이마를 닦아주던 형의 손이 멈췄다. 그러고는 이내 진지한 눈을 하고는 말없이 경청하려는 자세를 잡는다.
"그래서, 그 소나기가 어디서 온 건데. "
"역시, 바로 알아듣네. 무섭다, 무서워. "
정확하게 내 말을 파악한 형의 목소리에 갈라진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큼큼 잔기침을 내뱉고는 대답했다.
"왜, 그 누나 있잖아. 나랑 친하게 지내는. "
"아, 이여주. 너 그럴 줄 알았다, 인마. "
"어? 나 그럴 줄 알았다니. "
"너 걔 이름만 나와도 눈빛이 바뀌는데, 어떻게 몰라. "
내가 그랬던가. 결국엔 내 감정을 나만 몰랐던 거네. 나도 모르게 씁쓸한 표정을 지었나 보다. 내 표정을 슬쩍 본 형이 다시 물수건을 집어 들고는 내 이마에 턱, 올려놓는다. 차가워. 축축한 물수건의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너 뭔가 잘못했구나. 아니면 이제서야 너 감정을 알았다던가. "
"... 둘다야. "
"잘한다, 내가 저번에 물어봤을때는 잘 모르겠다더니. "
"그러게. 얼마전에 알았어. "
"너 그러다가 누가 홀랑 채 가면 어쩔라고? "
알아, 그래서 불안해 죽겠어.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지민이 형의 표정이 좋지 않다. 넌 전혀 확신을 안 주는데, 걔가 언제까지고 너만 기다릴까?라며 내 가슴속에 비수를 꽂는다. 다 맞는 말이었다. 이대로 누나가 나를 떠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난 한 번도 다가간 적이 없었으니. 목구멍이 간지러운 느낌에 기침을 몇 번 작게 하니, 서랍장 쪽으로 걸어가서는 약봉투를 뒤적이는 형이다. 저 형은 나보다 우리 집에 뭐가 있는지 더 잘 알아. 저기에 약이 있는 줄도 몰랐네. 차가운 물 한 컵을 떠서는 내 옆에 내려놓는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약을 한 번에 삼켰다. 그러곤 다시 누워 눈을 감았다.
"형은 연애 많이 해봤어? "
"나이가 몇 갠데, 적진 않지. "
"... 나 진짜 하나도 모르는데 어떡하지. "
"그렇게 안 생겨서는. 의외의 모태솔로 전정국. "
"고백은 어떻게 해야 하는데? "
"네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
좀 제대로 알려줘, 하고 감았던 눈을 뜨니 정말로 그게 다라며 덤덤히 말하는 형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긴, 뭐 별게 있을 리가 없지. 그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꺼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든데. 공허한 한숨을 내뱉으니 땅 꺼지겠다며 내 입을 툭툭 치는 형이다. 천천히 오르는 약기운에 눈이 무거워진다. 아까 그 꿈을 또 꾸긴 싫은데.
"형, 나 졸려. "
"약기운 오를 때 됐지. "
"좀 잘래. 어디 가지 마. "
" 어디 안가. 일어나면 죽 먹자. "
우리 정국이 많이 힘든가 보네. 내가 도와줄 때가 온 건가. 일단 푹 자라.
어느새 곯아떨어진 정국이를 작게 토닥여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지민이다.
-세번째 브금입니다.
23.
지민이 형의 간호 덕분인지 다행히도 다음날에는 학교를 나올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여전히 기침은 나지만. 교양 수업 때문에 경영관으로 발걸음을 했다. 몰려오는 피로감에 하품을 하며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3층에 도착하여 코너를 도니 저 맞은편에 그토록 찾던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인다. 분명히 반가운 게 확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잠시 주춤했다. 잠깐 이었지만, 뒤쪽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감정을 마주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더 이상은 피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발걸음 천천히 다시 떼었다. 누나가 내게로 가까워져오고,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느껴졌다.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무언가 새롭다. 찬찬히 훑어보니 길었던 머리를 목 부근까지 잘랐다. 누나의 찰랑거리던 머리칼이 이쁘다 생각했던 터라,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짧은 머리는 그 머리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더 잘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예뻤다. 이 사실은 누나가 어떤 모습이건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누나. "
내 목소리에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나와 눈을 맞추는 누나의 눈이 참 맑다. 투명한 구슬을 보는 듯하다. 새까만 눈동자에 잠겨드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 잘랐네요. "
"어? 어. 좀 걸리적 거리기ㄷ... "
"예뻐요. "
내가 알아 챌 줄 몰랐는 지 살짝 놀란 표정을 하던 누나의 말을 끊고는 내 감상을 전했다. 깃털이 내 가슴속을 간질이는 듯한 느낌이 낯설다. 이런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당황한 듯한 얼굴을 하고는 수업 때문에 가보겠다며 발걸음을 빨리하는 누나의 모습을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는데, 익숙한 얼굴이 하나 더 보인다. 태형이 형이네. 누나를 발견하고는 머리를 톡톡 쓰다듬으며 입을 여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입모양이 선명히 보였다. '이쁘다. ' 이렇게 말하고는 히이, 하고 아이처럼 누나에게 웃어 보인다. 딱, 누나에게만 보여주는 웃음. 그걸 안 다는 듯 장난을 치며 활짝 웃어보이는 누나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한테는 안 웃어줬으면서. 옹졸해져만 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뒤돌아섰다. 더 봐봤자 좋을게 없을 듯했다.
컨디션이 딱히 좋지만은 않아,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에 들어왔다. 침대에 풀썩 누워 잠잠하기만 한 핸드폰을 들었다. 낮에 보았던 누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표정이 안 좋아 보이진 않던데. 괜찮은 거겠지, 사과는 아직 못 받은 거 같고. 세린이에게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니 그랬다. 괜히 태형이 형과 누나의 모습까지 떠올라버려서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좌우로 빨리 흔들었다. 됐다, 됐어. 떨쳐내려고 해도 다시 온통 누나로 가득 칠해졌다. 보고 싶다. 멍하니 보고 있던 초록창에 글자를 꾹꾹 눌러썼다.
'고백하는 법. '
뭐 하는 짓이냐. 내 행동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지경이었지만, 잔뜩 늘어서 있는 검색 결과를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어이없고 유치찬란한 답변들에 한숨이 터져 나왔다.
'네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
지민이 형의 말이 떠올랐다. 역시 그냥 담담하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 만이 답인가. 몸을 일으켜 거울 앞으로 가서 앉았다.
"누나, 좋아해요. "
"진심으로 좋아해요. "
아, 진짜 아니다.
오글거리기만 한 내 모습에 소리가 절로 나오고 온몸이 베베 꼬였다. 오그라든 손가락을 펴느라 꽤 시간이 걸렸다. 아, 진짜 어쩌냐. 더 늦으면 안 될 거 같긴 한데. 그렇게 한참을 거울 앞의 내 모습과 씨름을 했다.
-마지막 브금이에요! 꼭꼭 들어주셔야 해요!!
24.
복잡한 마음을 정리 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해서, 오래간만에 대청소를 시작했다. 일부러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고, 땀까지 뻘뻘 흘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닦았다. 그러다가 음악이 멎고, 진동을 울려대는 핸드폰을 들었다.
"여주. 범인 찾았어. "
"어? 대박. 경찰서에서 연락왔어? "
"어... 그건 아닌데, 일단 잡았대. "
"그래?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 "
"그 사람은 모를 수도 있는데, 시킨 사람이 있더라. 김세린. "
설마설마 했는데. 아니길 바랐던 이름이 또박또박 들려왔다. 씁쓸한 마음에 아무 말 않고 있으니, 내일 그 남자 내가 먼저 만나고 올게, 하고 나를 안심시키는 태형에 고맙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정말 김태형 아니었으면 어쩔뻔했나. 신고도 해주고, 이렇게 결국은 찾아 내기까지.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결국 찾긴 찾았네. 사과를 받건 뭘 하려면 세린이 얼굴을 다시 봐야 하는데 그건 그 나름대로 또 곤혹이다. 이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내겐 트라우마 일 듯하다. 복잡한 생각들로 무거워진 머리를 뒤로 젖혔다. 짧아진 머리칼이 내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여전히 낯설다.
내 감정을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가장 처음 한 일이었다. 여자들에게 길었던 머리를 자르는 일은 쉽지 않은 선택일 거다. 나 또한 그랬고. 그래도 이 마음을 정리하는 일보다는 훨씬 쉬운 일일 거라 생각하고 망설임 없이 잘라버렸다. 한결 가벼워진 머리가 후련하기도, 아쉽기도 했다. 목덜미가 간지러워 손을 가져다 대니 까칠한 머리칼이 내 손에 닿는다.
"머리 잘랐네요, 예뻐요. '
나를 단숨에 알아보고는 서슴찮게 예쁘다고 말해주던 전정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 정리하려고 자른 머리였는데 한순간에 다시 돌아갈 뻔했다. 그의 한마디에 요동치는 내 모든 감각들이 미웠다. 더 좋아해서 좋을 게 없었다. 진짜 정리해야지. 빨래대에 걸려있던 옷가지들을 한 아름 걷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차곡차곡 하나씩 접었다. 이유 모를 눈물이 차올랐다. 울긴 왜 울어, 바보같이. 슥슥, 가볍게 손으로 쓸고는 계속해서 빨래들을 접었다.
지잉-
가볍게 느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전정국: 잠깐 집 앞으로 나올 수 있어요? 할 말 있는데. '
무슨 할 말, 하고 답장을 보내려 바로 카톡창으로 들어가려다가 어제 카톡에 답장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만두었다. 어쩌지. 나가야 하나. 딱 한 번만 더 보고 올까.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진짜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마음으로 가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급하게 겉옷을 입었다.
온통 깜깜한 우리 집 앞에 있는, 그마저도 희미하게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 전정국이 기대어 서있다. 꽤나 차려입은 모습이다. 저렇게 이마를 깐 것도 처음 보는데. 훤히 드러난 새하얀 이마와 가지런한 눈썹이 선명하게 보인다. 새로운 정국이의 모습이 또 다른 설렘으로 다가왔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이제 안돼. 꾹꾹 눌러서 내 마음 한구석에 담았다. 천천히 다가가니,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급하게 뒤로 숨긴다.
"왔어요?"
평소와는 다르게 장난기 하나 없는 표정에 잠시 주춤했다. 나와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데 무슨 일이지.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이니 꼬물거리며 뒤에 숨겨 놓았던 무언가를 내게 건넨다.
장미다.
너무 놀라서 멀뚱하게 받을 생각도 못하고 장미와 정국이를 번갈아 보았다. 오늘 내 생일인가? 무슨 날도 아닌데, 이게 뭘까 하는 생각과 나를 휩쓰는 설렘에 심호흡을 작게 했다. 그런 내 손을 잡고는 그 위에 장미를 쥐여준다.
"혹시 장미 꽃말이 뭔지 알아요? "
"... "
"나를 사랑해주세요. "
"... "
"나 누나 좋아해요. 그러니까, 나 계속 사랑해주면 안 돼요? "
진심 가득한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마저 느껴진다. 그 떨림이 진심을 더 진심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나를 보고 있는 저 눈빛 하며, 말투에 진실함이 뚝뚝 떨어진다. 미친 듯이 두근대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려 손가락 마디마디를 꾹꾹 눌렀다. 조금만, 조금만 일찍 와주지. 마음이 쓸린듯이 자꾸만 쓰라렸다. 내 손에 쥐어진 장미는 그런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너무나 빨갛고 해사하게 피어있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정국아. "
"... 응. "
"나, 이제 너 안 좋아해. "
"... "
"아니, 안 좋아하려고 노력 중이야. 그래서 이 고백, 못 받아. "
잔뜩 상처받은 듯 고개를 아래로 떨구는 정국이를 두고 돌아섰다.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겠지. 하지만 이젠 나를 위해 정리해야 할 때였다. 설령, 이렇게 서로의 마음이 마주 보고 있더라도 우린 너무 엇갈려왔단 걸 알았다. 안녕, 작게 읊조리고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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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달 월 입니다!!
히히 빨리 온다고 빨리 왔는데,좀 늦었지요??
사실 오늘 글을 올리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어제 전정구기가 일본 여행 그거 영상을 어?! 쪼물쪼물 완전 고퀄로 올렸잖아요?? 그거보고 거기에 나오는 bgm이 너무 좋은거에요 고백 장면에 쓰고 싶었는데 살짝 안어울려서 그 전 장면에 썼어요. 희희 노래 너무 좋아요ㅠㅠㅠㅠ전정국 최고다 최고 ㅠㅠㅠ
정국이 앓느라고 업로드가 좀 늦어진 점 죄송합니다ㅠㅠ
여러분!!!!!!!!
드디어 전정구기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고백을 해버렸어요!!워~후~~(쌈바댄스를 추며)
근데 또 엇갈려 버렸네요ㅠㅠ 원래 사랑은 타이밍이라잖아요? 사이다 전개를 원하셨던 도짜님들이 엄청 엄청 많으셨는데 완벽한 사이다는 못드린거 같아서 죄송합니다ㅠㅠ 일단 그 나쁜놈을 정국이가 살짝 두드려 건드는 걸로 약간은 기분이 풀리셨는지요?.?
제가 이번 편에도 쓰면서 느낀 거지만 전 참.. 꿈이랑 장미를 좋아해요.
결국엔 정국이가 꿨던 꿈이 현실에서도 이어졌고 (안녕, 하고 인사하는 부분)
장미도 엄청 자주 등장하죠.(자각몽에서 어린왕자 얘기 인용하면서 정국이를 빗댄 부분)
계속 썼던 소재 돌려막기 하는 느낌이라 조금은 찝찝했지만 제가 전하고 싶은 분위기를 내는데에는 이만한게 없더라구요.
아, 그리고 장미 꽃말 저거 아니랍니다!! 제가 정국이 탄생화? 라고 해야하나 9월 1일을 뜻하는? 그런 꽃을 찾다가 1일을 뜻하는 꽃이 호랑이 꽃인데 독자님들이 잘 모를것 같기도 하구,
호랑이꽃이... 약간....음.... 환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더라구요. 그래서 장미로 대체 했습니다!
호랑이 꽃 꽃말이 '저를 사랑해주세요.' 더라구요.
정국이랑 너무 잘 어울려서 이거다, 싶어서 소재로 사용했답니다 ><
정말 사랑합니다 모든 독자님들!! ♥
자각몽 외전 준비해야하는데 게으른 저는 아직도 제자리 걸음 중이라고 합니다.. 곧 자각몽두 들고올게요.
팍팍한 일상에서 제 글로 잠시 쉬어 가셨으면 좋겠어요. 모두모두 감기 조심하시구 다시 봐요.
-맞춤법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 혹시 보고 싶으신 장면이 있다면 마구마구 던져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