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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시선이 다들 심상치 않았다.
명수는 여전히 태연했다. 그러나 성열은 그러지 못했다.
성열은 애써 의아하다는 여러 개의 시선을 피한 채 이전의 새하얗게 질린 혈색 그대로 대마를 물고 있었다. 명수가 저에게 했던 것에 괴로움과 의구심을 숨기기가 힘들었다. 명수가 고백한 뒤 둘의 사이에는 진전이 없었다. 구해준 뒤 곧바로 사귀자고 했고, 동거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충동적인 고백 후 서로가 서로에게 살갑게 군 적이 단 한번도 없어서이기도 했다. 둘은 철저히 서로를 방관하며 지냈다. 성열은 불특정 다수의 아무나하고 약물에 빠진 채 관계를 맺었으며, 명수는 이따금 다른 여자들을 집에 끌어오기도 했다. 그 누구도 서로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음도 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명수만이 그랬다. 성열은 스스로 방관하면서도 스스로의 행동과 명수의 행동에 상처받는 동시에 그런 저 자신에게 끝없는 자가혐오를 했다.
곧이어 PCP를 정확히 두 갑째 태우던 명수가 말없이 은신처를 나섰다. 아마도 여자를 집에 불러 오겠지. 환각과 흥분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PCP의 효과에 인한 것이리라.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지만, 저 자신이 먼저 명수에게 등을 돌린 것인데도 마음이 이다지도 아픈 이유가 무얼까. 아아, 끝없는 모순이다. 성열은 제 가슴이 쥐어 뜯기는 듯한 아픔에 몸서리치며 이어서 은신처를 뛰쳐나갔다. 전례가 없던 둘의 일이었지만 하는 행동들을 보아서 무슨 일인지 대강 추측한 호원과 성종이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성종은 왠지 모르게 아까의 성열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괜찮은 척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닌.
성열은 뛰었다. 은신처를 벗어나고 나서도 계속 뛰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명수와 자신이 동거하는 아파트 골목 외지에 들어서서야 뜀박질이 멈추어졌다. 뒤늦게 가쁜 숨을 내쉬는 성열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제서야 성열은 초라하게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줄줄 흐르는 눈물과 더불어, 미칠듯이 아프게 파득이는 심부와 대마에 취해 몽롱한 정신. 성열은 팔로 눈물이 흐르는 제 볼품없는 얼굴을 감쌌다. 그 누가 나의 죄를 씻을 수 있을까. 아까 명수가 내게 했던 것으로 내가 지난날을 추억했다 말한다면 다들 나를 미친 줄 알겠지.
명수야,
분명히 나는 너를 사랑할 자격이 없을 텐데, 어째서 내가 널 사랑하는 걸까.
성열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금단 현상이 아닌 자가혐오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죄악의 시작은 이년 전, 열여섯의 봄으로 되돌아간다. 교내 미친놈 김명수와 학교 걸레 이성열의 시절으로, 명수가 성열의 옆자리에 앉았던 순간이 진정한 죄악의 시초점이었다.
눈물이 멈추었다.
그러나 성열의 추락하는 심장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터였다.
성열은 창녀의 자식이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아버지는 유부남이었으며, 모친은 입에도 담기 싫은 사창가에 종사하는 창기였다. 결국엔, 불륜의 산물이었다. 저의 존재가 그랬다. 어머니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붙잡고 말하곤 했다. 너를 낳은 이유는 네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양육비로 한 푼 거하게 뜯어내려고 했던 거라고. 그러나 모친의 예상대로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돈은 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갓난아이인 저를 때리고는 했다. 그 와중 만난 '회장님'은 모친에게 구사일생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동생인 성종이 태어났고, 성열은 여전히 모친으로부터 대당했다.
여덟 살 무렵, 성열은 학교를 다녀오다 사납게 싸우는 아낙들을 보았다.
모친과 왠 알 수 없는 아주머니였다. 모친의 뺨을 후려치는 모습을 보자 성열은 더럭 겁이 나 두 사람을 말렸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은 차디찬 냉소와 모친 대신 짓밟히는 저의 모습이었다. 미친년 새끼라고 아주 모양도 판박이어선,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어진 말에, 성열의 가슴에 칼날 하나가 깊이 박혔다.
- 미친년, 어디서 감히 우리 남편을 꼬여?
- 네년이 낳은 새끼니까 저새끼도 똑같이 더럽겠지
아, 나는 더럽구나.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일 이후로 친구들을 비롯한 학교에게서 받는 냉소의 시선, 따돌림 등으로 성열은 점점 저 자신이 더럽다는 추론을 확신하게 되었다. 항상 자신은 누군가들에게 짓밟혔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종과는 경우가 달랐다. 성종은 그래도 명분상으로는 첩의 자식이었지만 양자로서 인정받은 데다가
집안 내에서는 "막내 도련님"이라며 나름대로 인정받는 추세였다. 그러나 성열은 달랐다. 애초에 회장의 자식이 아니었던 데다가 아무것도 아닌데 복에 겨운 인간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회장은 열한 살 무렵, 성열을 집에 들였다. 대외적으로는 성종이 혼자 외로울 것이라 말하며 형인 성열을 통해 성종을 안심시킨다는 명분이었으나,
회장은 끔찍한 목표를 마음에 품은 채 성열을 집에 들였다.
날마다 성종과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 성열은 회장이 행하는 입에 담기도 힘든 성폭행을 견뎌야 했다. 회장은 성열의 모든 부분을 유린하며 끔찍하게 더럽혔다. 갖가지 도구를 사용하며 성열을 지독하게 괴롭히기까지 했다. 성열은 그 미친 짓거리를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계속 받아낸 결과로 반쯤 미치게 되었으나, 깨끗해질 수는 없겠지만 더욱 더럽혀지지 않을 방안을 강구하려 덜덜 떨면서도 갖가지 방법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결국 회장을 비롯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 모델 오디션지를 들고 도망치려던 순간,
- 그걸 들고 어딜 갈 셈이지?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들리며 성열은 그대로 까무라치고 말았다.
회장은 끝까지 지독했다. 겉보기에는 제 자식도 아닌 이에게 끝없는 호의를 베푸는 선인으로 보였으나 그 안은 강제 스폰서라는 무기를 빌미로 잠자리를 요구하는 치밀함이 있었다. 체념한 성열은 점차 더욱 망가져갔다. 학교 내에서 저를 걸레라 일컫는 이들 중 아무에게나 다리를 벌렸고, 난잡한 생활을 했다.
봄은 축복의 계절이 아니었다.
오직 컬렉션이 시작되는 계절, 성열이 모델 일을 시작해야 하는 계절, 그리고 회장과 잠자리를 가져야 하는 계절일 뿐이다. 성열은 최근 들어 피해망상에 지친 나머지 진정제를 복용하고 있었으나 효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오늘도 저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두려움을 가진 채 잠자리에 들어야겠지, 성열이 힘없이 책상에 엎드렸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여전히 없다.
성열은 주위에서 들리는 야유에 눈을 떴다.
옆에는 처음 보는 남자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새로 배정받은 짝인 것 같았다. 그는 성열처럼 엎드려 무언가를 노트에 계속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글이었다. 아이들은 아마 똑같이 엎드려 있는 둘에 대해 야유를 보낸 것 같았다. 성열은 그제서야 지금이 수업 시간이며, 선생이 저와 명수에게 경고를 준 사실을 알았다. 성열은 몸을 일으켜 앉았고, 어차피 수업에 대해 집중하지 않은 것을 알지만 어쨌건 교과서를 폈다.
한창 지루한 수업 패턴이 반복되고 있을 때, 옆에서 아직까지 무언가를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하는 이상한 짓을 반복하고 있었던 짝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몸을 일으켰다. 예상외로 뛰어난 미남이었다. 곧바로 런웨이에 서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얼굴은 자신이 몸담은 에이전시에서도 보기 힘든 외모였다. 잠시나마 그를 응시하고 있던 성열은 그가 자신을 쳐다보자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계속 저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그에게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문득, 그가 저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 … 뭐? "
" 프랑스의 극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마약 재판에서 했던 말인데, 결정적으로 그녀는 50대의 중년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개소리를 한 셈이지. "
그런데 너도 지금 존나 그렇게 보여, 물론 넌 그녀와는 다르게 해를 끼치고 있지만.
뜬금없이 알 수 없는 말을 한 그는 제 이름을 소개했다. 김명수야, 넌? 성열은 황당한 얼굴 그대로 멍하게 그를 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내 그가 명찰에 쓰여 있는 이성열이 맞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둘은 그 후에도 이야기를 나눴지만, 끝까지 친하게 지내자는 말은 서로 하지 않았다.
명수에 이어 호원을 소개받았다. 아니, 정확히 명수가 소개해준 것은 아니었다. 호원은 어느 날 갑자기 제게 침투해 들어온 명수와는 달리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명수는 급진적이면서도 몹시 자연스러웠던 반면, 호원은 그냥 어느 날 보니까 옆에 있었다. 라는 식이었다. 호원은 정리와 설명에 능했다. 말하자면 몹시도 침착한 감이 있었다. 침착했던 것은 명수도 같았지만 다분히도 급진적이었던 명수와는 달리 호원은 이성적이었다. 그 대신, 성열은 호원과 크게 가까워지지는 못했다. 실은, 명수와도 가까워졌다기보다는 기형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기묘했던 첫 만남 이후로 명수는 때때로 아무 말 없이 성열의 무릎에 누워 잠을 청하곤 했고, 성열은 그런 명수를 아무 말 못한 채 그대로 두곤 했다.
어느 날, 명수는 그 전날에 만나자고 하여 성열이 장소에 나오자 호원과 함께 이상한 물품을 가지고 왔다.
명수의 교복 소맷자락부터 상의까지 잔뜩 피가 묻혀진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성열은 물품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무작정 명수는 그것을 들이밀었다. 언뜻 담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종이에 말린 이상한 물품이었다. 성열은 그것에 몹시도 의아했지만, 곧이어 명수가 말한 한 마디에 곧바로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 마리화나¹, 피울래? "
마약이었다.
하게 된다면 보통의 십대의 선을 넘어서는 셈이었다. 열여섯, 결국 여태까지 쭉 기형적인 삶을 살아왔던 성열은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적어도 나는 몹시 괴로웠으니까, 삶의 안식처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게 마약이었다.
성열은 명수가 건네준 그것에 불을 붙여 한 모금을 쭉 빨았다.
어느 새 호원은 사라져 있었다. 둘만 남은 채 서로를 보고 있을 때, 명수가 물었다.
" 맛이 어때? "
기분이 묘해졌다. 답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성열은 약에 취해 몹시 몽롱해졌지만, 정신은 또렷한 대마의 증상처럼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 기분이 이상해. "
" 알아. "
단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 명수에게 단 한 마디로 답했을 뿐이었다.
알아, 답한 명수가 저도 불을 붙여 한 모금을 빨았다. 미묘한 환각 증상을 느끼던 명수가 눈앞의 성열을 쳐다보았다. 성열의 정신은 몽롱해져 있었다. 제대로 불을 붙이지 못해 심지 부분이 다 꺼져가고 있었다. 명수는 제 몫의 대마를 물고 있는 그대로 성열의 심지와 맞부딪혔다. 다시 대마가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대로 명수는 성열에게 키스했다. 잠깐이지만 입술이 부딪혔던 짧은 입맞춤 이후, 명수가 물었다. 어때?
" 모,르겠어 "
" 그래. "
그 말을 끝으로 명수는 성열에게 기대 쓰러졌다. 멍한 채 그것을 받아낸 성열은 곧 비명을 질렀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진상을 알게 되었다. 명수는 성열에게 오기 전 옆 학교의 누군가에게 어깻죽지를 칼로 심하게 찔렸으며, 그랬던 탓에 이미 바이코딘²을 상당수 복용한 상태였다. -호원이 사라졌던 이유는 다름아닌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어쨌건, 그 이후로 성열은 명수를 피해다녔다.
그 일 이후로 명수를 보면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해졌던 탓이었다. 학교에 등교하는 날보다 모델 일을 핑계로 등교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고, 기묘했던 만남을 뒤로한 채 성열은 다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러나 달라진 점이라면, 모델계에서 깔리고 깔린 약물들을 복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성열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잔인하게 자신을 유린하는 회장의 손길이 소름끼칠 정도로 더러웠다. 그 누가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철저하게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를 낳은 모친은 스스로 나를 더럽다 칭하게 만들었고, 회장은 나를 뼛속 깊이 더럽혔다. 이제 성열은 마치 자신이 더러운 구정물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여겼다. 괴롭고 서글펐다. 약을 하면 지금의 고통을 조금은 잊을 수 있겠지, 성열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눈을 꾹 감아냈다. 누군가 나를 구해준다면, 그가, 부디 나를 …
- 회장님…? 형…?
구원해,줘요.
귓가에 들려온 성열의 몸뚱아리와 정신이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결코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¹ 대마초의 다른 이름
² 마약 겸 준통증-격통증 진통제, 진통에 강력한 효과가 있으나 과다복용하면 사망함(마리화나,LSD보다 더욱 강한 약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