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끝나고 퇴근을하던 경수는 길을 완전히 막고 서있는 소녀들 때문에 몇분째 제자리에서 다리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유인 즉슨, 경수가 새로 발령난 회사 옆 스튜디오가 매주 한번씩 이시간 즈음에 음악방송을 하는 곳이었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퇴근길을 보려고 모여든 소녀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저,저기...죄송한데 길 좀..."
소심함을 이기고 자신의 앞에 교복을 입고 서있던 한 여학생의 어깨를 톡톡치며 말을 붙여보지만 돌아오는건 짙게 화장을 한 날카로운 눈매의 째림과 작은 욕지꺼리뿐이었다.
엄마가 김치찌개 해놓는다고 일찍 오라고 했는데...
집에서 자신을 기다릴 김치찌개와 점점 밀려오는 추위에 경수의 얼굴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고 소녀들 사이에서 발만동동 구르던 경수는 이내 갑자기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안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떠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뒤에서 밀려오는 압박감에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몇대의 커다란 벤이 도로를 지나가고 경수의 앞에 있던 소녀들이 그 벤을 따라가면서 어떨결에 경수는 보도의 제일 앞으로 오게 되었고 어느새 정신을 차린 경수는 이제 집에 갈수있겠다 싶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내딛였다.
"앞으로 오지 마세요."
그러나 한걸을 채 내딛기도 전에 자신의 앞을 가리며 무서운 목소리를 내는 검은 물체에 놀라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고, 그 앞에는 검은색 정장을 빼입은 커다란 청년이 서있었다.
"저..집에 가야되는데..."
언뜻 조폭을 연상시키는 청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내보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고 경수의 표정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그러기를 몇분. 주차장 안쪽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에 경수의 뒤에있던 소녀들이 경수를 앞으로 밀어댔고 그에 경수는 의도치않게 무서운 청년의 가슴팍에 얼굴을 눌린채 발버둥을 쳐야했다.
"앞으로 오지 말라고!"
꽤 유명한 가수였는지 무서운 청년들의 말에도 소녀들은 밀기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은 경수의 발이 보도를 내려와 차도에 닿았다. 그것도 모른채 여전히 검은 정장과 격한 스킨쉽을하던 경수는 가슴팍이 떨어지자 숨을 돌리기도 잠시, 저의 어깨를 잡고 무지막지한 힘으로 뒤로 밀어대는 악력에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아! 아파요!"
"그러게 내가 내려오지 말랬잖아!"
"뒤에서 미는걸 어떡해요! 나는 집에 가야된다구요!"
목소리가 꽤나 컸는지 몇몇 시선들이 경수에게 몰렸고 그걸 신경쓸 겨를이 없는 경수는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을채 자신의 어깨를 잡은 청년의 손을 떼어내기 바빴다.
울지마! 울면 안 돼! 남자가 쪽팔리게.. 너보다 어린애들도 많잖아!
몇번을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눈물을 삼키던 그 때.
"뭐야. 무슨일인데."
주차장 안쪽에서 똑같이 정장을 빼입었지만 자신의 앞에있는 청년보다 마르고 핸섬한. 모델이라고 해도 어울릴 정도의 약간 까무잡잡한 남자가이 살짝 인상을 쓰며 경수의 쪽으로 다가왔다.
"아니 그러니까 자꾸 집에 가야된다면서 앞으로 오길래..."
"집에 가야된다고하면 보내줘야지."
여전히 자신의 어깨를 잡고있는 청년의 말을 딱잘라 대답한 뒤 자신의 앞으로 와 허리를 살짝 숙이고 눈높이를 맞추며 괜찮냐고 물어보는 한 남자 때문에 경수는 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집에 가야되는데.. 뒤에서는 밀고..이 사람은 앞에서 밀고.."
울먹이며 말을 이어가던 경수는 조만간 몸이 뜨는 느낌에 말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뭐,뭐하는거에요!"
자신을 번쩍 들어안아 무리안에서 빼내 앞으로 걸어가는 남자의 행동에 당황해서 손을 휘어저봐도 아무반응이 없자 이내 경수는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나 요새 살쪄서 무거울텐데...
주차장 안 뒷길에 경수를 내려놓은 남자는 아까 무서운 청년이 잡고있던 경수의 어깨를 쓸어주며 말했다.
"괜찮아?"
"네..."
"이쪽으로 나가면 아무도 없으니까 쭉 걸어가."
"아... 가,감사합니다."
자신을 무거운 기색없이 가벼운 아이처럼 들쳐맨 남자로 인해 밀려드는 창피함에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허리를 푹 숙여 인사를 한 뒤 재빨리 뒤를 돌아 남자가 알려준 길로 걸어갔다.
되게 잘생겼네...
한참을 생각하며 걷고있는데 경수는 이내 자신의 앞에 보이는 소녀시대의 모습에 발길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경수가 있는곳은 주차장의 샛길. 한참 퇴근을 하는 연예인들이 그곳엔 가득했고 항상 티비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보고있다는 생각에 경수는 집에 갈 생각도 까먹고 입을 벌린채 멍하니 서서 연예인 구경하기에 바빴다.
"내가 이럴줄 알았지. 집에 안가?"
그러기를 몇분.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경수는 죄를 짓다 걸린것처럼 화들짝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뒤를 보자 방금 그 남자가 자신을 내려본채 서있었고 무언가 화난듯한 표정에 경수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아,아니 그러니까 길 가는데 막 소녀시대가.. 아니 막 연예인들이 있는데...어... 구경한거 아니고 가는중이었어요!진짜로..."
횡설수설하는 경수를 보다 피식 웃은 남자는 경수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걸치며 말했다.
"연예인 보는게 죄도 아니고. 더 봐."
"아,아니에요! 저 진짜로 집 가는중이었어요!"
살짝 상기된 얼굴로 앞에 시선을 고정한채 걸어가는 경수의 모습에 작게 웃던 남자는 이내 경수를 따라가며 말을 걸었다.
"이름."
"네,네?"
"이름이 뭐냐고."
"아... 도경수요!"
"나는 김종인."
"아 네..."
"나 멋있지?"
"네?"
종인의 말에 당황한채 눈을 크게 뜨고 종인을 올려다보는 경수의 표정에 종인은 또 한번 웃으며 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경수의 앞에 내밀었다. 종인의 행동에 멀뚱멀뚱 자신의 앞에있는 휴대폰만 바라보던 경수는 이내 번호를 찍으라는 종인의 말에 울상을 지으며 종인을 올려다봤다.
"호,혹시 방금 소녀시대 본 것 때문에 신고하려고 그래요?"
엉뚱한 경수의 질문에 종인은 빵터져서 끅끅거리다가 경수의 머리를 헝클인뒤 경수의 손에 휴대폰을 쥐어주며 말했다.
"생각한것보다 더 귀엽네. 너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번호 좀 달라구요, 도경수씨."
그제서야 얼굴이 빨게지며 허둥지둥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는 경수였다.
도경수 이 바보 멍청이!
살짝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되돌려줄 때 멀리서 종인을 부르는 목소리에 종인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경수를 보면서 자신을 부른쪽으로 뛰어가며 밀했다.
"애기야, 있다가 집에 잘 들어갔는지 연락할꺼니까 씹지마! 알겠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인의 모습이 안보일때까지 종인의 뒷모습을 보던 경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걸어가며 생각했다.
괜찮은 사람같에... 근데 왜 나한테 반말이지?
작가의 말 |
어휴 너무 오랜만이라 기억해주시는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네요 ㅠㅠ 이번 아육대를 보고 갑자기 약 3년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올려요 ㅋㅋㅋ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그때 저를 구해주셨던 핸섬하신 강친오라버니는 잘 계실런지....ㅠㅠ 아마 찬백 버전으로도 올릴것같아요~ 시간이 된다면....ㅎㅎ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