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은 오늘 기분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찬열과 이미 여러번의 데이트를 가졌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대놓고 자신에게 집중을 못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또 제가 이렇게 집중받으려 노력한 것도 처음이였다. 아니 나랑 이렇게 마주보고 있으면서 다른 생각을해? 백현의 속에서 한동안 잠자고 있던 투정이 불쑥 밖으로 밀려나왔다.
생각해보니 오늘 만남의 처음부터 그랬다. 제가 약속시간에 이십분 가량을 늦었음에도 찬열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그냥 방글 웃으며 일찍왔네?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일찍왔다니, 내가 이십분을 늦었는데, 그때는 찬열씨가 약속시간을 잘못 알았나 생각했지만, 지금 저를 앞에두고 취하는 꼬라지를 보니 그것마저 오늘따라 찬열이 제게 관심이 덜함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찬열씨, 이 아이스크림 맛있지 않아?"
백현은 마음속에 참을 인자를 그리며 핸드폰에만 시선을 두고 있는 찬열을 노려보았다. 아냐 회사에 바쁜일이 있을 수도 있고, 가족중에 누가 아플수도 있잖아. 백현은 찬열을 만나면서 저도 모르는 새에 제가 내면적으로 아주 이해심이 많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찬열의 기본적인 무심함에 대항하려면 이정도 이해심은 가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이스크림에 입에도 대지 않는 찬열을 보자니 속에서 열이 펄펄 나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오늘따라 왜이러는거야. 백현이 다시 속으로 짜증을 삭혀내었다. 백현이 이렇게까지 참는 것에는 이해심과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백현의 시점으로 오늘을 제가 찬열에게 성을 부려선 안되는 날이었다
백현의 계획은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명동이나 이태원거리를 거닐며 데이트를 한 다음, 괜찮은 바에 찬열을 앉혀놓고 자신의 스킬과 더불어 온갖 달콤한 말들을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틈에 제 애인을 확 꾀어낼 생각이었고. 백현이 환상에서 바텐더와 대화하면서 깨달은 것은, 자신과 찬열 사이에 잠자리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자신도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도 놀라웠다.
하지만 찬열도 놀랍지 않은가. 그는 금요일마다 아랫도리를 휘두르는 헤픈 남자였다. 백현 자신이 그의 배에 올라타든 그가 제 배에 올라타든 포지션의 문제를 떠나서 저를 보고 성욕이 일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것은 또 그것대로 비참했다. 찬열씨라는 사랑이 없을 땐 로맨스를 꿈꾸었지만, 제가 생각하는 로맨스는 당연하게 관계가 전제되어 있는 로맨스였다. 이런 플라토닉같은 느낌의 연애가 아니라.
저도 남자라 당연히 그것를 원했다. 환상에서 시간을 때우려 했던 그날 밤. 뛰쳐나간 이후로 백현은 곰곰히 많은 생각을 했다. 그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계획. 그리고 오늘 그것을 실행할 용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백현의 찬열씨는 상태가 좋지 않아도 너무 안좋았다.
백현이 속을 애태우며 찬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당연하게 찬열은 한눈을 팔았다. 자신의 친구 생각 때문이었다. 요즘따라 더욱 눈에 밟힌 듯 했다. 지난밤, 민석을 혼자 두고 돌아가려다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찬열은 곧 민석이 시체처럼 쇼파에 몸을 축 늘어뜨린채 자는 것을 볼수 있었다. 안쓰러움이 피어올랐다 . 찬열은 민석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주었다. 자신의 애인 백현과는 다르게 이리저리 손이 많이 가는 친구였다.
백현을 앞에두고 다른 생각에 잠긴 찬열은 또다시 폰을 붙잡았다. 민석에게 아침에 문자를 보냈는데, 보지 않았는지, 오후가 다되가는 이시점에도 연락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고..헛짓이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친구치고 너무 관여한다는 느낌이있었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백현과도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에...루한과 백현의 사이를 아직 자신이 잘 모르니까. 언제 한번 진지하게 물어봐야지, 찬열은 고개를 들어 창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어? 찬열은 눈을 한번 비볐다.
우연처럼 민석이 찻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도 휘청휘청한게,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안그래도 비쩍 마른 몸이 더욱 더 뼈만 남아있었다. 민석의 몸상태를 육안으로 체크해 본 찬열이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판단하건데, 제 친구는 제 속의 슬픔을 속으로 끓였다. 그리고 곧 그것은 몸으로 전이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곳은 민석이 나타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인도어 파인 민석은 카페와 집, 그렇게만 자신의 몸을 움직였다. 그래서 애초부터 민석과의 약속은 암묵적으로 민석의 카페였다. 찬열은 민석의 동선을 따라 눈동자를 돌렸다. 그리고 한참을 좇았다. 마침내 민석이 제 시야 밖으로 나가자 찬열의 눈에 들어오는건 백현이었다.
아! 찬열은 갑자기 머릿속으로 번쩍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곳은 백현의 집 근처다. 그렇다면 루한의 집 근처도 된다는 말인데... 설마, 찬열은 관자놀이를 세게 눌렀다. 다시 떠오르는 어젯밤의 기억에 찬열은 초조했다.
실은 찬열이 민석을 보살펴주었던 그날밤, 찬열이 민석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고 나온뒤, 그러니까...카페 근처 전신주 밑에 찬열은 루한을 보았다.
-
"박찬열!!!"
참다못한 백현이 소리를 빽 내질렀다. 그래. 무슨일이 있어서 한눈파는 거면 상관없는데, 자신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건 백번천번 이해한다 이거야. 하지만 내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감히 다른 남자한테 눈을 돌려? 백현은 기가 찰 지경이었다.
찬열이 폰에 눈을 떼는 순간부터 찬열의 관심을 받기위해, 찬열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 온전히 찬열의 중심이 되고 싶은거, 그건 연인들이면 누구나 갖고있는 독점욕이었다. 하지만 찬열은 폰에서 눈을 돌리는가 싶더니, 창밖에 있는 어떤 남자를 계속 쳐다보고있지 않은가! 그것도 아주 익숙한 얼굴.
찬열이 왜그러냐는듯 백현을 올려다 보았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문의 눈길에 백현이 뒷목을 잡을 뻔했다. 저 남자, 저도 기억한다. 그러니까, 항상 찬열이 가는 카페집 주인.
"찬열씨, 오늘 왜그래?"
"뭐가요."
"뭐가? 하.. 참, 오늘따라 왜이렇게 한눈을 팔아?"
"무슨..."
"오늘 나랑 만나고 나랑 눈 마주치면서 대화한적 있어?"
"음..지금..?"
"이거 말고 멍청아!!!! 그리고, 찬열씨 너, 왜이렇게 아까 저남자 쳐다봐?"
"....."
"나 저남자 알아!! 찬열씨 계속 저남자 쳐다봤잖아!! 너 진짜 계속 나 놔두고 한눈팔래?? "
"...아"
"뭐가 아야!!! 죽을래? 나로는 부족해? 어?"
찬열은 평소대로 픽 웃으려다 곧 으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 전 까지만 해도 민석의 걱정때문에 약간 심란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터져나오는 백현의 질투로 인해 찬열은 웃었다. 아 정말 백현씨 그거 질투라고 한거야?
도대체가 어떻게 하면 민석과 저의 사이를 의심할 수 있는지, 조금 각별한 친구 사이이긴 했지만, 방금 민석에게 보낸 눈빛은 나름 걱정이었지, 애정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찬열은 잠시 웃다가 곧 웃음을 멈췄다.
"그런데 백현씨, 여기 백현씨 동네 아니야..?"
"말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저 남자 누구야? 빨리 불어! 어디까지 갔구 뭐했으며..."
"...뭐 백현씨가 말한다면 말리지 않을게요. 어차피 난 여기에 연고도 없고..."
"내가 저남자 여리여리하다고 진작부터 생각했어. 찬열씨 전에 나한테 고양이상 남자 좋아한댔지? 딱 고양이네, 완전. 내가 아이라인을 더 올리든가 해야지 아주!!"
"와 지금 백현씨 내 취향 맞춰준 거에요?...근데 진짜 백현씨 괜찮겠어?"
"아..뭐!!!! 뭔데!!!! 난 지금 당신과 저 남자 사이가 중요하단 말이야!!!"
"...딱 찝어서 말해줘요?"
"어."
"백현씨 목소리 너무 커요. 여기서 계속 말하다가 백현씨 이사가게 생겼어."
찬열이 빙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현씨 때문에 웃네. 전혀 웃을 상황이 아님에도 웃게 해준 백현이 고마웠다. 그런데 예전에도, 지금에도, 항상 생각하는건데, 백현씨 지금까지 게이로서 평탄하게 살아온게 너무 대단하네. 이미 아까부터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찬열이 계산을 하고 백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달랑 딸려오는 손목이 너무 귀여웠다. 흡 하고 숨을 들이킨채 얼굴이 달아오른 백현은 찬열의 마지막 말을 기점으로 아무말이 없었다. 속으로 자신을 지켜본 사람들의 수를 세고 있을 뿐이었다. 아 졸라 많아. 앞으로 이 아이스크림 가게 절대 안와. 절대.
-
혹시나 싶은게 역시나였다. 오늘 데이트는 백현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도 채 다 해치우지 못했고, -물론 자신의 불찰이었지만, 길거리를 거닐긴 커녕 쪽팔려서 얼굴도 들고다니지 못했다. 앞뒤 상황을 살피고 소리를 내지르라고 변백현. 백현은 자책했다.
그래도 저녁이라도 한끼하며 찬열에게 너와 나 사이의 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내보려 했지만, 타이밍도 놓치고, 심지어 음식을 다 입에 우겨넣고 맥주한잔이라도 하려는 차 찬열은 약속이 있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이트 좋아하시네, 이게 데이트야? 오늘 데이트는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아까부터 거슬렸지만 찬열의 상태때문이었다. 자신을 보며 예뻐라하는게 보이는데, 그것도 반쯤, 약간 넋나간것도 반쯤. 도대체 오늘따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지 몰랐다. 핸드폰도 손에서 놓지 않고. 아주 오늘따라 예의는 밥말아 잡쉈어. 뭐 그것도 자신의 대단한 이해심으로 이해해 줄수 있다고 치는데, 아까부터 걸리적 거렸던 그것. 백현은 매우 카페주인이 신경쓰였다. 아까 물어봐도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도 않고말이야.
매번 집까지 바래다준 찬열이 없는 거리는 쓸쓸했다.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약속이라고 한번만 양해를 구하는데, 진짜 무슨일이라도 났구나 싶어 제 애인을 얼른 보냈다. 이깟 거리쯤 혼자서 갈수 있다. 애초부터 기집애 데이트 코스마냥 바래다 준 것에 습관을 들인 자기 자신도 뜯어고쳐야 했다.
앞으로 내가 리드할거야. 백현은 흥 하고 턱을 들어올리면서 자신의 집문을 열어제꼈다.
"야, 루한!!!"
어? 불이 꺼져 있다. 항상 집안에만 붙어있던 루한이 보이지 않았다.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저도 약속이 있나보지. 왕딴줄 알았는데 친구도 있고. 짱깨 주제에 한국을 겁도 없이 잘 돌아다닌다. 한국어를 잘해서 그러는지 룸메이트로서 불편함도 없고. 백현은 잠깐 루한에 대한 생각을 하며 겉옷을 벗어들었다.
침대에 잠깐 누워 노곤함을 좀 털어내고, 샤워 해야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의 망신으로 제 집앞에서 데이트 약속은 취소되고 오늘따라 차를 가져오지 않은 찬열 덕택에 지하철을 타느라 삭신이 쑤셨다. 남자친구가 차가 있으면 이래서 좋군. 앞으로 우리 찬열씨 계속 차 가지고 다니라 해야지.
백현은 침대에 누워 제가 지금까지 썼던 동화를 설렁설렁 검토하기 시작했다. 은근히 직업정신을 가지고 있는 백현은 샤워도 잊은채 몰두했다. 그리고 그 일에 파묻혀 있길 한참 후 덜컹 소리가 들리며 현관문이 열렸다. 루한이 왔나보다. 우리 중국 짱깨. 백현이 반색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왔냐!!! 내 짱깨!!!"
백현은 반짝반짝 웃으며 자신의 희귀템인 활짝 웃기로 루한을 반겼다. 찬열이 오늘따라 자신을 조금 외롭게 두어 말할상대가 필요했다. 자신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 루한이 안성맞춤이었다. 루한!!! 왔냐구!!! 백현이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응"
얘는 또 반응이 왜저래? 백현은 미간을 보기좋게 찌푸렸다. 오늘따라 찬열이든 루한이든, 제곁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상했다. 저만 붕 뜬 느낌이라 뭔가 제자신이 눈치없는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알게뭐야. 내일도 아닌데. 백현은 생각했다. 그러나 왠만하면 침울하고는 거리가 먼 루한이 저렇게 힘없이 들어오다니 넌 또 왜그러냐며 한번 물어볼 예정이었다. 아 그런데, 맞다. 루한 오늘 아프다 그랬는데... 약은 먹었나? 백현은 곧 룸메로서 아주 기본적인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백현은 손을 들어 루한을 톡톡 건들었다. 야 괜찮냐? 오늘 아프다며. 어디 나갔었어?..야... 몸은 괜찮냐?
"...백현.."
목소리를 내리깔고 진지하게 말하는 루한이 오늘따라 조금 낯설었다. 얘...얜 또 왜이래 적응안되게.. 백현이 조금 진지하게 걱정스러워 눈을 내리깐 루한을 자세히 올려다 보았다.
"..말해보슈. 내가 다들어줌."
"....이말을 너한테 해야될지 많이 망설였는데.."
"..응응 나 완전 귀밝아. 어서말해. 뜸들이지 말구"
"제 삼자가 이런말 하는게 우스울 수 있어. 그런데 진지하게 들어줘."
"응응 나완전 잘 들어줄수 있어. 자 입을열어 말해보아요."
"너. 니 애인이랑 관계 다시생각해보면 안돼?"
"...어?"
"다시 생각해라. 다시 생각하는게 좋겠다."
...뭐..?
오늘...글은... 너무 갑작스럽게 연달아 사건이 터지는 것 같아요..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애써보았어요 ㅠㅠ
암호닉 분들은 다음편에 다 같이 정리해서 올릴게요 !! 항상 암호닉은 받고 있어요!! 비회원님들 회원님들, 암호닉 분들 항상 감사하답니다!!
개강을 하기전에 글을 끝내고 싶어요 엉엉 ㅠㅠ
모두 좋은 16일 되세요!! 16일인데 16편 썼어요!!! 저를 이런 사소한 거에 의미두는게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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