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녀리씨 잘가"
백현은 찬열의 손을 잡고 방방 뛰었다. 백현의 평소 이미지는 저렇게 귀엽지는 않다. 하지만 술 한잔 걸치더니 살짝 혀짧은 소리를 내는게 찬열의 눈에는 아주 앙큼했다.
백현의 손을 살살 떼어내고 머리를 매만져준 찬열은 백현이 문 앞까지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조금 거나하게 마신것 같은데 약간 휘청이는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아주 정신을 놓지는 않았는지, 제집 비밀번호를 잘도 누르고 들어간다.
백현이 문을 들어선것까지 보고 찬열은 뒤를 돌았다. 아마 지하철을 타야할 것 같다. 정신이 나갈정도로 음주를 한 것은 아니였지만, 혹시나 하는게 사람을 잡는다고.
술을 마셔서 그런지 기분이 붕 뜬 감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안전이 제일이기도 하고. 아 그런데 내일 아침에 다시 차를 찾으러 가야되는게 귀찮긴 하겠구나.
하지만 주말이니까, 그정도 귀찮음은 용서해주자. 찬열은 속으로 아주 현실적인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냐 월요일날 아침에 그냥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갈까? 하지만 그건 정말 지옥철일....
'왜 이제와? 너무 늦은거 아니야?'
찬열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발을 뗄 동안에 현관문 앞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제가 잘못들은 것이 아니라면 백현의 집 앞에서 들리는 소리임이 자명했다.
찬열은 눈썹을 한번 까닥했다. 분명 백현의 룸메이트가 루한이라고 했으니, 저 목소리의 주인공은 루한일 터였다.
'니 애인이랑 있었어? 찬열?'
자연스럽게 제 애인을 챙기는 목소리에 찬열은 약간 빈정이 상했으나 명확하게 루한이 자신을 백현의 애인으로 짚어줌에는 틀림없어 그냥 고개를 숙였다.
백현이 저에 관한 이야기를 했나보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루한이라는 작자는 맘에 들지 않았다. 이리저리 한건너씩 건너뛰어 저와 얽혀있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몇년 전인지 모르지만 저 사람 이야기는 민석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아니, 실은 제가 민석에게 실토해내게 한것이나 다름없지만.
꼭 언젠가는 백현에게 루한과 조금 떨어져 지내라고 얘기할 것이라 다짐했다. 백현이 루한에 대해 좋은 룸메이트라고 평가내린 것과는 다르게 찬열은 잠깐이었지만 그에게 묘한 위화감이 든다고 판단했다.
제 질투를 내세워서라도 백현과 루한을 떨어트리는 편이 좋았다. 그 순간
"어? 찬열씨죠? 안녕하세요. 루한입니다."
불쑥 내밀어지는 손에 찬열은 당황했다. 곧잘 생각을 해내느라 멈춰있는 자신의 몸 탓이었다. 아직까지 자신은 백현의 집 앞에 멈춰서 있다는 것도 인지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열심히 씹어대고 있는 상대가 갑자기 제 눈 앞에 나타나니 찬열은 놀랐지만 조금 느릿하게 뒤로 한발 물렀다.
"아. 놀라셨죠. 백현이 룸메에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이어서..."
루한은 쓰레기 봉지를 흔들어보이며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렸다. 루한의 눈에도 찬열이 조금 당황했다는 기색이 보였다. 어차피 매번 볼 상대는 아니므로 루한은 고개를 숙이더니 찬열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찬열은 그런 루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렇게 가까이 마주한 것은 처음인데, 알수없는 소용돌이가 찬열의 속에 가득찼다. 루한.. 루한이라.
루한은 확실히 자신을 모르는 것 같았다. 자신이 민석의 친구인 것을.
-
루한은 찬열이 깔끔하게 무시한 제 오른손을 한번 털었다. 백현의 애인이라는 사람은 참 정이 없어보였다. 제가 저렇게 살갑게 말을 붙였는데도 한발짝 물러나 자신을 쳐다보는것 뿐이라니. 아니. 예의가 없는 사람인가보다.
쓰레기들을 분리해서 버리고 루한은 바람이 차가운지 온몸을 떨며 제 집으로 허둥지둥 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 앞으로 가자마자 아직까지 보이는 찬열의 뒷통수에 루한은 갑자기 우뚝 멈춰서서 생각에 잠겼다.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루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곧 머리를 털었다. 저렇게 튀는 사람을 제가 기억 못할리가 없지. 아마.
***
[찬열씨 일은 잘 하고 있음?]
[지금 뭐함? 내생각함?]
[지금 내 문자 씹는거야? 미친거야?]
[회사 끝나면 나와 로비에서 나 기다림 ㅎㅎ]
"찬열씨 ! 여기임"
백현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큰 목소린데 목청을 높혀 부르니 찬열의 회사가 떠나갈것 같았다. 과장도 아니고. 진짜. 백현도 제 목소리가 너무 컸던지 입을 합 다물었다. 너무 컸나봐 어떡해.
모이는 시선에 백현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안그래도 이 로비에 캐쥬얼 차림새가 조금 어울리지 않다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이목마저 끌었다. 양복을 갖춰입은 재미없는 사내들 틈에 저라니.
멀리서 살짝 얼빠진 얼굴의 찬열이 보였다. 백현은 찬열의 직장에서 큰 소리를 낸 것 같아 조금 미안해졌다. 소리도 낮추고 좀 더 단정하게 입고왔었어야 했나보다.
하지만 그런 반성은 잠시, 어떻게 보면 엄청 철없어 보이는 성격인 백현은 저렇게 잘생기고 귀여운 얼굴을 한 제 애인을 보니 갑자기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백현은 개구진 미소를 지었다.
"박찬열씨!!! 박찬열씨 없어? 왜 안나와?? 내가 부끄러워??"
백현은 부러 더 소리를 크게 질러 이목이 찬열에게 집중되도록 만들었다. 이왕 한번 시선을 받은 김에 찬열을 한번 더 당황시킬 작정이었다. 예상대로 로비의 중간쯤 온 찬열은 백현을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당황했다는 뜻이었다.
백현은 뿌듯한 얼굴을 했다. 내남자 당황시키기 너무 재밌다. 아주. 백현은 함박 웃음을 지었다. 잠시 멈칫하던 찬열도 푸스스 웃음을 터트리며 백현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당황하고 어이도 없긴 했지만 저렇게 다섯살난 꼬마마냥 잇몸웃음을 터트리는 것을 보니 찬열은 장난이라도 성을 못낼 것 같았다. 그 느낌을 직감한 백현도 찬열을 향해 걸어갔다.
"누구야? 찬열씨 친구야?"
백현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백현의 시야에 찬열 말고 다른 사람이 잡히기 시작했다. 나이 꽤나 있어보이는 여자가 찬열의 어깨에 손을 올린 탓이었다. 예쁘장한 페이스에 늘씬한 몸매에...
백현은 천천히 위아래로 여자를 스캔했다. 뭐야 노땅이잖아 늙었어. 아무렇지않게 여자를 판단한 백현이 찬열을 올려다보는 찰나였다.
예의바르게 여자의 손을 떼어낸 찬열이 늙은 여자를 향해 방글방글 눈웃음을 쳤다. 찬열의 기준에선 제 상사라 밉보여봤자 좋을 것이 없어 습관적으로 나온 행동이였지만 백현은 아까 까지 재미있었던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는 것을 느꼈다.
뭐야 찬열씨 왜이렇게 웃음이 헤퍼? 내남잔데? 이따가 따끔하게 혼내줘야지. 백현은 확 쳐지는 기분에 찬열을 노려보았다. 왜이렇게 막 흘리고 다녀?!
"네 친구에요."
백현이 순식간에 앞으로 가 자연스럽게 치고 들어갔다.
"어머. 되게 어리게 보이는데. 찬열씨 친구라니"
댁은 늙었네요 이사람아.
백현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찬열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눈치껏 찬열의 발을 살짝 밟은 백현이 여상사를 향해 웃어보이며 찬열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제가 약속이 있어서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탁- 찬열의 다른 쪽 손목이 붙잡혔다. 여상사였다. 끈질긴년. 백현은 여상사를 노려보았다.
"잠깐, 찬열씨. 오늘 저녁같이 먹자하려 했는데, 언제 살꺼야? 응?"
"일행이 있어서요."
"흠. 그럼 내일 사. 이번에는 여지없어."
곤란한 표정을 한 찬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의 표시를 비췄다. 머리 좋은 여상사가 백현이 있는 틈을 타 몰아붙인 것에 넘어가주었다. 하긴 벌써 다섯번째 거절 같은데 정성이 갸륵해서라도 한번은 먹어야하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곧 여상사의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멀어지고 백현은 찬열의 발을 다시 한번 꾹 밟았다.
"이따 얘기해."
-
"찬열씨 그걸 허락해? 딱 봐도 너한테 관심있어 보이는데?"
"한번은 먹어야 했어. 직속상사야"
백현씨는 몰랐겠지만, 저분 나한테 다섯번 넘게 퇴짜맞았어. 찬열이 커피를 마시며 나른하게 대꾸했다.
"그럼 왜웃어."
"인상 쓸순 없잖아요"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찬열이 대꾸했다. 물론 달달 볶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백현은 생각보다 무심한 찬열에 점점 피가 달아올랐다.
"남 앞에서 웃지마"
"어떻게 그래요"
백현은 휘젓고 있던 커피스푼을 탁 내려놓으며 찬열을 보았다. 애초에 여상사 때문에 조금 성질 났던건 사라지고 점차 찬열의 말에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문자도 씹고."
"일하고 있었잖아요."
백현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오늘따라 찬열씨 왜이렇게 말대꾸가 많아. 나한테 이렇게 무심한 사람 찬열씨가 처음이야. 백현은 중얼거리며 고개를 팩 돌렸다. 그리고 방금 나온 머핀을 헤집었다.
약간 골이 난 것 같은 백현의 모습에 찬열은 방글 웃었다. 백현씬 생각하는 대로 표정에 드러난다니까.
"백현씨 삐졌어요?"
"안삐졌어"
"맞아요. 그럴리가요"
"야!!!"
참다 못한 백현이 카페에서 소리를 꽥 질렀다. 또 한번 백현의 목청으로 인해 찬열은 이목을 끌게 되었다. 저 멀리서 눈을 동그랗게 뜬 민석도 보였다. 찬열은 웃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 백현씨는..
백현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놀리지 말라고! 약오르게 하지 말라고!! 자꾸 이럴꺼야 찬열씨? 답지않게 왜이래! 백현은 왕왕 대며 테이블 위에 놓여진 찬열의 손을 꼬집었다.
아까 재수없는 찬열의 상사를 만난 이후로 찬열이 정말정말 잘생겼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백현이었다. 내남자가 이렇게 잘생기구, 막 키도크구, 그런것은 좋지만 많은 사람 눈에 들어가면 안되지. 내껀데.
이유모를 질투심과 앞에서 저를 살살 긁는 찬열 때문에 짜증이 뻗쳐오르는 백현은 제 머리를 헤집었다. 씨이 진짜. 사귀는데 이렇게 내가 막 안달나면 안되는데 왜 그러지?
눈앞에서 백현의 얼굴이 붉어지고 파릇해지고 손으로 머리까지 쥐어뜯는 것을 본 찬열은 백현의 손을 잡아 눌렀다. 놀리는 족족 반응이 오는 백현이 귀여웠다. 찬열은 탁 터지는 웃음을 지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안놀릴게. 찬열은 백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진짜 이렇게 귀여운것에 익숙해지면 안되는데. 찬열이 만진 머리를 다시 제 손으로 정리하는 백현이 보였다. 정말 강아지같다.
그리고 햇빛이 창가에 빨갛게 비추었다. 그리고 찬열은 턱을 괴고 백현을 나른하게 쳐다보았다. 백현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찬열을 바라보았다. 햇빛빨을 받아서 그런지 찬열씨 진짜 엄청 잘생겨 보이네.
백현도 찬열을 쳐다보며 베시시 웃었다. 갑자기 뭔가 엄청 달콤한 것을 먹은 기분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리저리 짜증이 왔다갔다 거렸는데, 막 기분이 롤러코스터처럼 휙휙 거렸는데.
백현은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뭔가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백현은 눈을 천천히 내렸다.
"아까 그 사람이랑 밥 먹지 말까요 백현씨?"
"..당연하지. 나랑만 먹어."
"그 사람 앞에서 웃지도 말까?"
"...당연하지. 내앞에서만 웃어야지!!"
찬열은 시선을 저와 맞추지 않으면서도 재깍재깍 대답하는 백현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럼 나 백현씨 놀리지도 말까요?"
"..당연하지!"
"좋아서 한 표현인데?"
그러자 백현이 찬열의 손 안에서 히힛 거리며 웃었다. 마카롱 다섯상자정도 먹은 기분이었다.
으응...아니... 그럼 놀려도 돼.
백현이 눈을 반쯤 찡긋거렸다. 그 위로 찬열이 입을 맞추었다.
오늘은 좀 길게 왔죠!!! 암호닉은 정리해서 다음편에 올릴게요 ㅠㅠ
일단 한번 끝까지 가보기로 했어요!! 저번처럼 매일매일은 못 오더라도 이틀에 한번, 삼일에 한번은 오도록 할게요 ㅠㅠ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도 봐주세요 ㅠㅠ 대신 지금까지 썼던 것은 메모장에 엄청난 수정을 거치고 있어요!!
많은 내용들이 추가로 들어갔답니다!! 아 그리고 메모장에 쓰고 붙여넣기 해서 그런지.. 뭔가 제가 생각했던대로 예쁘게 안맞아요.. 음..
방법이 없을까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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