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규는 익숙하게 전공 책을 안아들었다. 일곱 날을 못 보았지만 몸에 녹아있던 습관처럼 우현의 뒤를 따르던 성규가 고개를 들었다. 항상 깔끔한 모습의 우현이였지만 오늘은 뒷 머리가 뻗친 게 아침에 급하게 준비를 한 모양이였다. 뻗친 머리를 정리해주려 손을 올리던 성규가 달려오는 발소리에 다급히 손을 내린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려온 연지가 다짜고짜 성규의 어깨를 밀쳤고 성규는 예상한 듯 미안, 하며 눈을 발 끝으로 돌렸다. 어제 갑자기 나가버리면 어떡하냐고, 분위기가 어땠는 지 아냐고 숨도 안 쉬고 따져오는 연지에게 성규는 그저 아무 말이 없었다. 성규는 잘못이 있었다.
"미안, 다음 번에는 다신 그럴 일 없도록 할게."
표정 없이 서 있던 우현이 성규의 말에 자세를 고치더니 픽 웃어버린다. 다음번에? 오랜만에 듣는 우현의 큰 목소리에 성규가 우현을 보자 우현이 됬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 앞으로 걸어나간다. 마찬가지로 당황했던 모양인지 얼어버린 연지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버리고 성규는 우현을 불렀다. 듣고도 모른 척 하는 건지, 정말 못 들은 건지 멈추지 않는 우현을 보고 체념한 성규가 빠른 걸음으로 우현의 뒤로 붙었다. 교정은 북적북적댔다. 신입생 환영회라는 명목으로 학생회가 활발히 돌아다녔고, 동아리 가두모집 기간과 겹쳐 부스를 설치한 동아리들이 지나가던 신입생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설명만 듣고 가, 성규의 팔을 잡아 당기는 동아리 회장의 행동에 성규는 거절도 못하고 끌려가고 있었다.
"에이, 피아노 못 쳐도 들어올 수 있지. 그리고 뭐 피아노만 치려고 동아리 드나? 선배들, 동기들이랑 친목 다지려고 드는거지."
피아노 동아리라고 소개한 회장이 성규에게 펜을 쥐어주며 입회 신청서를 내민다. 펜을 든 성규가 쭈볏대자 괜찮다며 재촉하는 회장의 눈치에 성규가 이름을 쓴다. 전자공학과 김성규. 펜을 쥔 손이 고와서 피아노 잘 치겠네 하는 회장의 칭찬에 살짝 웃음이 나는 성규의 어깨에 우현의 손이 얹혀진다. 회장은 새로운 신입생의 등장에 입이 귀에 걸린다.
"법학과 남우현도 적어."
우현의 말에 성규가 다시 글을 적는다. 전공 책만 펴 놓고 공부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동아리 활동을 한다니. 성규는 새로이 알게 된 우현의 모습이 어리둥절했다. 입회 신청서를 받아 든 회장이 인심 쓴다는 듯 동아리 방으로 성규와 우현을 데려갔고 가운데 놓여져 있던 피아노가 성규와 우현을 반긴다. 얼떨결에 피아노 앞에 앉혀진 성규가 회장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내는데 바쁘게 전화를 받은 회장이 손 인사와 함께 동방을 나가버린다. 조용한 공기에 성규가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자 청량한 소리가 동방에 울려 펴지고 성규의 눈이 휜다. 어느새 성규의 옆에 앉은 우현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쳐."
몇 분간 연주하던 우현이 성규에게 말했다. 우현이 연주한 곡은 젓가락 행진곡의 한 쪽 부분. 성규가 손가락을 올려 연주를 하자 우현이 성규의 속도에 맞춰 연주를 시작한다. 성규가 삐끗 하고 실수를 해도 우현이 한 박자 늦춰 다시 매끄럽게 이어가는 연주. 화려한 기교가 들어 간 연주가 아니였지만 연주가 끝나고 남는 여운에 성규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자 우현이 옆에 놓여 있던 피아노 악보를 보고 다른 연주를 시작한다. 우현과 꼭 어울리는 웅장하면서도 무거운 곡이라 성규는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얼굴을 가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곡과 너무 어울리는 우현의 분위기에 성규는 얼굴이 달아오를 것 같았다. 우현에게 다시 반한 것 같았다.
"나 네가 너무 좋은데 어떡해……."
우현의 연주에 홀려 자신도 모르게 우현을 붙잡고 하소연을 해 버린 성규가 제 풀에 놀라 우현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성규에 말에 연주를 끊은 우현이 빨간 건반 덮개를 들고 성규의 눈을 가린다. 바들바들 떨리는 성규의 손을 본 우현이 건반 덮개를 더 세게 그러쥔다.
"나 안 보이잖아."
"안 보여……."
"나도 지금 네가 옆에서 뒤에서 떨어지지 않아도 아직 안 보이거든. 그랬었는데 지금 조금씩 네가 눈에 보이려고 하니까 그냥 그래도 있어. 좋으면 좋은 채로 싫어지면 싫어진 채로. 내가 널 볼 수 있을 때까지."
사라진 건반 덮개와 함께 갑자기 쏟아지는 빛을 손으로 가린 성규의 앞에 웃지 않지만 웃고 있는 우현이 있었다. 환상처럼,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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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짧네요ㅠㅠㅠㅠㅠㅠㅠ 왜 이런지 저도 모릅니당.
우현이 이제 희망 고문을 끝내고 성규를 받아들이려고 저러나요?
아 어쨌든 둘이 피아노 치는 모습 상상하니까 너무너무 조으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혹시 능력자 분들 계시면 희망 고문 표지 만들어주실분 없으신가요......................
제가 컴맹이라 그런걸 못하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답글을 늦게 달아드렸는데도 손팅해준 그대 조으다조으다조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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