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전정국]
눈이 하얗게 덮인 날에는
"감정이 다시 생겼군요."
의사는 정국의 말에 그 다른말도 하지 않았다. 감정이 생겨서 축하한다는듯한 표정을 짓고선 종이를 뒤로 넘긴 의사는
정국에게 다른 말을 했고, 정국은 그 말을 듣다가 점점 들리지 않는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무슨 말인지 들리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말을 이해하냐는 의사의 말에 정국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제 40회_
제 변명을 들어줄래요?
대낮부터 방에 있는 암막커튼을 치고선 그와 침대에 누워있다.
그를 끌어안고 한참을 있다가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눈을 감고 있는 정국이에게 작게 물었다.
"자?"
"…아니."
그렇게 또 몇초 있다가 자? 하고 다시금 물으면 정국이는 눈을 살짝 뜨고선 나를 내려다본다.
"안자."
"항상 이렇게 잠도 안 오는데 눈 감고 있어?"
"…응."
"왜?"
"이것 말고는 할 게 없었으니까."
"……."
"앉아서 꿈뻑 꿈뻑 졸더니.. 왜 누우니까 안자?"
"그냥.. 너 안고 있으니까 더 눈 뜨고 있고싶어. 네 냄새 좋아."
"…변태네."
"변태 아니거든.. 나는 너랑 이렇게 같이 있다는 게 아직도 안믿기고.. 신기해.
나 사실은.. 김석진 때문에 티비에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다 싫었거든.
다 김석진처럼.. 못되고, 감정도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으니까."
"……."
"근데 너를 만나면서 그런 편견은 버려졌고. 너 덕에 티비도 볼 수 있게 됐어."
"……."
"우리 서로 덕분에 변한 게 꽤 많아지고 있어. 그치?"
내 말에 정국이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이렇게 또 갑작스레 표현을 해주는 정국이에 나는 얼굴이 또 빨개져버린다.
나는 확실히 알고있다. 나 덕분이라도 정국이가 우울증을 다 극복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정국이는 힘들고, 아프다. 몇년간 쌓아왔던 아픔이 한 번에 나아질 수는 없다.
정국이를 꼭 끌어안고서 두눈을 꼭 감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김석진과 헤어지고 난 뒤에 사랑하는 법을, 사랑받는 법을.. 다 잊어버렸다.
오롯이 사랑만 퍼부어 줄 수 있었던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불안해하며 사랑을 아끼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정국이에게 내 진심을 다 보여주기란 아직은 힘들었다.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서.. 표현을 하지 않는 게 아니야."
"응?"
"난 널 사랑하는데..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 아직은 불안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 좀 해줬음 해서.."
"지금도 충분해."
"……."
"네가 여기서 더 표현하면 나 죽어."
"…응?"
"설레서 죽어."
"와.. 그런 말도 할줄 알고.. 여태동안 나 보고 그런 말 안하려고 꾹꾹 눌러담느라 얼마나 고생했대!"
"꽤 고생했지."
아- 뭐야.. 하고 더 품에 들어가면 정국이는 덩달아 나를 꼭 안아주었다.
정국이의 이 조심스런 손길을 보면 알 수 있다. 정국이는 얼마나 따듯한 사람인지.
한참 눈을 감고 있었을까.. 한참을 쫑알거리던 여름이 조용하자 정국은 눈을 뜨고선 여름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품에서 잠이 든 여름이는 작은 숨소리를 내고 있었고, 정국은 그런 여름이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그러다 쓸데없이 나오려는 눈물에 정국은 천정을 본채로 한참을 있다가 눈을 꼭 감았다.
"꽤 일찍 끝났네? 오래 걸릴줄 알았는데."
소주잔을 가득 채우는 윤기는 석진에게 웃으며 말을 했고, 석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따라 조금 많이 조용해보이는.. 석진답지 않은 모습에 윤기는 짠- 하고 허공에 소주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첫잔은 짠 하고 마시자. 형 짠 하는 거 싫어하잖아."
"그래. 첫잔은 짠 하고 마시자."
짠- 하고 소주잔을 서로 부딪힌다. 가득 채워진 소주잔을 비운 둘은 인상을 쓸대로 쓰고선 서로를 마주보았다.
신기하게도 둘은 술잔을 비우고선 아무 대화도 오고 가지 않았고
먼저 이 정적을 깬 건 윤기였다. 석진의 소주잔을 또 가득 채워주고선 윤기는 입을 열었다.
"정국이한텐 맨날 연예인이 얼굴색이 중요하다고 잔소리나 하더니. 왜 이젠 형이 다 죽어가?"
"뭘 죽어가…."
"죽어가. 한시간도 못 잔 사람처럼 말이야."
"윤기야."
"어."
"나는 가면을 쓰고 있어."
"……."
"나 이 말 엄청 싫어하거든. 오글거리고.. 가면을 쓴다는 말이 참 별로잖아. 정도 안가고."
"무슨 가면."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하고 멋진놈 아니라고.. 나. 사실은 쎈척하는 멍청이야. 쓰레기 차에 같이 실려 가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쓰레기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듣냐.. 이 양반아. 쓰레기차는 또 뭐냐.. 진지한 상황에 웃기게 할래?"
"지금부터.. 네가 더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할 거야."
"……."
"답답해도 들어줘."
과거_
19살이 된 나에겐 지금까지 가족의 화목함 따위는 없었고, 따듯한 어머니의 손길도.. 따듯한 아버지의 미소도 볼 수 없었다.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던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잘했네. 이렇게만 쭉 유지해.'
시험을 잘 보는 것이었다. 항상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던 어머니는 나의 시험성적을 보고나서야 웃어주었다.
방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으면 연인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서로 웃으며 서로를 안아 주었다.
다들 저렇게 웃으며 보듬어주어도 결국엔 아무도 없는 곳에선 서로가 있는둥 마는둥 할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와 아버지 말고도 모두가 다 그럴 것이다. 난 결코 그렇게 믿고 말 것이다.
사랑 같은 건 모두 다 나의 부모님 같을 거라고 몇년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넓은 거실에 덩그라니 있는 식탁 위에는 술들이 가득했고, 늘 그렇듯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다
내가 2층에서 내려오면 혼잣말을 하듯 말을 했다.
'사랑은 물처럼 목 마를 때나 찾게 돼. 네 아버지 처럼.'
'…….'
'사랑을 하지 않아도.. 밖에선 사랑하는 사이. 이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해 너는?'
'…뭔 소린지.'
'…….'
'모르겠어요.'
'너는 아직 어려서 몰라.'
'…….'
'아들… 너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잘해주지마.'
'…….'
'결국엔 너도 똑같이 사랑을 챙기기는 커녕.. 돈만 챙기게 될 거니까.
엄마가.. 지옥에 가려고..'
뭔 소린지 몰랐다. 솔직하게 말해서 자세히 말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꽤 많이 취해있었고
저 말들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갈 사랑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을 지켜주려면 그 무언가 빛나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빛나는 것이 무엇인지 어머니는 몇년이 지나도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다 크면 알려주신다고 했지만.
그 대답을 들으려면 아마 또 몇년이 지나야 할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아직도 어린 꼬마 아이로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빛나는 그 무언가를 찾으려 애썼다.
'사랑을 하려면 준비물이 뭐가 있을까요.'
내 말에 룸미러로 나를 보는 기사님께선 흐음.. 하고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진실 된 마음?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 , 그리고 눈물이요. 눈물은 참 신기하죠.. 슬플 때도 나오고, 화날 때도 나오고, 기쁠 때도 나오잖아요?
이상하게 눈물은 사람을 진실되게 보이게끔 만들어요.'
흰머리가 꽤 난 기사님은 허허- 웃으며 나에게 더 말을 하려다 입을 꾹 닫고선 말을 아꼈다.
진실 된 마음.. 그럼 어머니와 아버지는 진실 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까?
길을 지나가는 연인들을 보며 저 사람들도 진실 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까 였다.
저 사람들도 결국엔 부모님처럼 남들에게 보여지는 곳에서나 사랑을 표현하지는 않을까.
'석진아 사랑해.'
느닷없이 사랑한다며 입을 맞춰오는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에 석진은 귀찮은듯 여자를 밀어냈다.
여자는 왜 이러냐며 석진을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고, 석진은 여자의 눈을 똑바로 보고선 말했다.
'다른 남자 찾아봐. 미안하다.. 나는 아직 누굴 만날 준비가 안 됐어.'
내 말에 여자는 어이가 없다는듯 콧방귀를 꼈다. 학교 골목에서 빠져나와 버스를 탔을까.
웬 여자가 자꾸만 나를 힐끔 보는 게 느껴졌다. 그 여자를 신경 쓰지않고 손잡이를 잡은채로 창밖만 보았다.
그냥 나에겐.. 사랑도, 그 무엇도 다 필요없다. 오롯이 엄마의 따듯한 미소만이 필요했다.
몇정거장을 지나 버스에서 내렸을까. 헤드폰을 끼려고 하자 곧 누군가 나의 옷자락을 잡았다.
무심하게 뒤 돌아보자 아까 버스에서 자꾸만 나를 바라보던 여자가 대뜸 말했다.
'아까부터 계속!.. 봤어요.'
'…….'
'첫눈에.. 반했어요.. 여자친구.. 있나요?'
'아니 없는데.'
'아..! 다행이다..'
'1학년?'
'네!'
'노여름.'
갑자기 이름을 부르니 눈물이 고이더니 곧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여자에 나는 솔직히 너무 놀랬다.
'왜.. 울,울어?'
'제 이름을 알고 있잖아요..'
'그야.. 네 명찰...'
'흐으엉..'
'…….'
사랑을 하려면 필요한 준비물.
'그만 울어. 왜 울어.. 어?'
'너무 좋아서요.. 좋아서 눈물이 나오는데 어떡해요..'
눈물. 나에게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며 좋아한다고 한 그녀는
'뚝해. 뚝.'
노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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