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16
일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다. 김석진 기자는 내 기사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에 올라온 작은 폭로 글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강동 경찰서 형사 과장 외에도 다른 경찰서의 고위 간부들의 행태가 낱낱이 드러났으며 형사 과장은 피의자 신분이된 지 오래였다. 문제는 이 난리 속에서 내가 건넨 녹음 파일이나 증언은 한 마디도 나오질 않았다는 점이다.
김석진 기자는 내 연락을 일방적으로 받지 않았다. 메일은 보내는 즉시 없는 메일 주소라며 반송되었고 전화는 받을 생각을 하질 않았다. 문자에도 역시 답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슈가 된 것은 나를 대신한 내부고발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성민영.
“기자들한테 제보자가 누구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대요.”
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나를 대신한 이를 찾을 수 있었다. 성민영이 먼저 나를 찾아왔기 때문에. 할 얘기가 있다며 나를 부른 성민영은 다짜고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잠자코 기다리는 내 팔을 부여잡고 두려움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말했다. 자신이 내부고발자임을.
“서장님이 점심 시간 끝나고 오래요. 다 알고 있는 거겠죠?”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 성민영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성민영은 내가 뭐라도 할 줄 알고 날 찾아왔겠지만 난 그럴 생각도 능력도 없다. 그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네가 나한테 뭘 원하든 난 그걸 할 수 없어.”
말했지만 난 정의를 지키려는 게 아니기에.
결국 해민 일보에 직접 찾아갔다. 로비에서 김석진 기자를 만나러왔다고 하자 이미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제보자라 생각하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기다림이 아주 많이 길어졌다. 이러다가 결국 만나지도 못 하고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할 때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실루엣이 로비에 보였다. 큰 키에 깔끔한 정장. 김검사였다. 김 검사의 뒤로 김석진 기자가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김석진 기자님.”
두 사람의 눈이 내게로 쏠렸다. 김남준 검사를 쳐다 보았다. 여유로운 얼굴 안에서 당황한 모습을 읽어냈다. 김석진 기자가 내 기사를 쓰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두 분 다 저랑 얘기 좀 하시죠.”
김 검사가 내게 무엇을 원하는 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 때 하필 김 검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곤란한 모습으로 급한 일이 생겼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미안합니다. 다음에 뵙죠.”
김 검사가 떠난 자리에 김석진 기자와 내가 남았다. 어쩔 수 없이 원래 계획대로 김석진 기자에게 궁금증을 모두 해결하고 가야했다. 김 기자가 어깨를 으슥였다.
“내 기사 안 낸 이유가 김 검사 때문이죠.”
김기자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이미 아는 사실을 더 질문할 필요를 느끼지 못 했다. 다른 질문을 던졌다. 김석진 기자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김검사랑 무슨 사이야. 당신.”
내 말에 김기자가 뒤로 물러나며 날 내려다보았다.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잘못 골랐다. 김검사랑 관련있는 인물일 줄은 짐작하지 못 했다. 상황이 복잡해졌다. 김검사는 무슨 목적으로 내 기사를 막았으며 김기자는 김검사를 무슨 이유로 돕는 지. 만일 이들이 과장의 편이었다면 성민영의 기사를 내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성민영의 제보를 이미 기사로 냈다.
김기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머리를 굴렸다. 내 기사를 쓰지 않은 것이 과장의 일을 덮으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무슨 이유로. 이미 녹음 자료와 CCTV 파일까지 보냈음에도 나와 관련된 기사는 단 한 줄도 쓰이지 않았다. 자극적인 기사를 쓰려면 그저 폭로에 불과한 성민영보다는 증거까지 확실한 내가 훨씬 적합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들의 행동이 무엇을 위함인 지는 모르지만 이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알려지는 걸 꺼리는 구나.”
그들의 목적을 이루려면 매스컴에 내가 노출되지 말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저는 그저 한낱 기자일 뿐이니. 자세한 건 김검사님께 물으시는 게 어떨지.”
김기자가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목례를 했다. 저 사람에게서 답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전혀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단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부탁을 얹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뚜렷한 기사를 써주세요.”
“......”
“굳이 내가 가진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도 매장될 수 있게.”
김기자가 부드럽게 입매를 올리고는 날 바라보았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태도였으나 마음이 놓이게 만드는 미소였다.
“얼마든지”
뒷골목 16
대대적으로 경찰 조직 내부를 샅샅이 조사해 투명한 경찰을 만들겠다고 알린 것과 달리 서는 여전했다. 과장이 없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과장에게는 파면이라는 징계가 내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 켠이 시원하지 않았다. 요 며칠 동안 성민영 역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민영이 내부고발자라는 사실이 언론에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이미 경찰서 내에서 알 사람들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성민영이 도망치지 않았으면 했다.
똑.똑.똑.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자 무작정 문에 노크를 했다. 무작정 성민영의 집까지 찾아오긴 했으나 무슨 얘길해야할 지도 몰랐다. 어쩌면 쓸데 없는 오지랖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찾아왔다고는 하나 뭘 어쩌겠냐는 생각에 다시 발걸음을 돌리려했다. 굳게 닫혀 있다고 생각한 문이 아주 미세하게 열려있었다. 문 틈으로 빛이 조금 새어나왔다. 조심스레 문을 돌렸다. 집 안은 고요했다. 현관에는 신발 한 짝도 보이지 않았다. 실례한다는 말을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집이었다. 화장실 문을 열었으나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집을 둘러보며 묘한 느낌에 휩싸였다. 지나치게 깔끔했다. 대청소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한. 대청소라 말하기에도 어폐가 있었다.
“너무 깨끗하잖아.”
마치 마음먹고 정리라도 한 것처럼.
침실로 보이는 방 문을 열였다. 방 안에 놓여진 침대 위의 이불은 주름 하나 없이 깨끗했다. 침대 옆 화장대로 시선을 돌렸다. 재빠르게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두 개의 서랍 속 모두 말끔했다. 서랍에 남겨진 화장품은 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평소 성민영의 모습을 떠올렸다. 절대 이 정도의 화장품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지어 남은 화장품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심장 박동이 차츰 빨라졌다.
옷장을 열었다. 남아있는 옷가지도 얼마 없었다. 곧이어 냉장고를 살폈다. 냉장고 역시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모습이었다. 새로 산 냉장고 마냥 든 게 별로 없었다.
“시발.”
집이 지나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떠날 사람처럼. 집을 뒤지며 문이 열려있었음을 떠올렸다. 작정했네. 썩을.
침대의 이불을 들어내자 새하얀 봉투 하나가 보였다. 봉투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뻔했다. 집을 당장 뛰쳐나왔다.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문은 잠겨있었다. 그 길로 곧장 아래로 내려가 경비원에게 혹시 문이 열려있는 옥상이 있냐고 물었다. 없다는 대답을 해왔다. 그럼 어디야. 봉투를 찢어 유서를 확인할 때였다. 등 뒤로 경비원이 방금 생각났다며 말을 했다.
“저어기 104동 옥상은 지금 열려있을 걸요? 공사중이그든.”
알겠다는 말을 하고는 달렸다. 만약 저기에 없으면 어떡하나. 그건 그 때 생각하던가. 마음 속으로 온갖 생각을 펼치며 뛰어갔다.
꼭대기층에서 내린 후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빠르게 올랐다. 몸에 힘을 주고 달린 탓에 다리가 저렸다. 경비원의 말대로 옥상 문은 열려 있었다. 문을 열자 삐걱이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렸다. 옥상은 생각보다 넓었다. 공사중이라는 말처럼 부자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것들을 뛰어넘으며 성민영을 찾았다.
찾았던 실루엣이 보이는 순간 정말로 주저 앉을 뻔했다. 저 끝에 성민영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시발, 이 아파트는 옥상 관리를 뭐 이따구로 하는 거야.”
낯익은 음성이 들리자 성민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내 얼굴을 확인하자 눈이 커졌다.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 같은 모습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으나 일부러 태연한 척을 하며 담배를 꺼냈다. 바람이 불어 불을 붙이기도 힘들었다. 성민영의 유서를 바람막이로 사용하며 불을 붙였다.
날 뚫어져라 바라보는 성민영을 무시하며 숨을 뱉었다. 담배 연기가 바람을 타고 마구 퍼져나갔다.
“뭐예요.”
성민영이 내게 물었다. 고개를 까딱였다. 봉투에서 유서를 꺼내 읽으려던 참이었다.
“제발!”
유서 위로 위태로운 목소리가 겹쳐왔다. 성민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쟤는 알까. 그래도 아직 살아있어서 아주 고마워하는 내 마음을. 흔적이라도 남겨줘서 내가 알아채게 해줘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내 마음을.
아마 모를 거다. 내가 원망스럽겠지. 굳게 마음 먹었는데 저를 찾아낸 내가 죽도록 미울 것이다. 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 하는 나였으나 빌어먹게도 그렇다고 그들을 무시할 만큼 무정하지도 않았다. 절반 가량 타들어간 담배를 응시했다.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성민영을 애써 모른 체했다.
누가 내려오란다고 내려오는 장소가 아니다.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기다릴 뿐이었다. 그래도 내 앞에서 몸을 내던지지는 않으리라.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나름 동료지 않았나. 나만 그렇게 생각했다면 말고.
“좀 더 확실한 방법을 택했어야지.”
천천히 넋두리를 시작했다. 담배를 든 왼쪽 손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여기 아파트 10층 높이 밖에 안 되더라. 너 여기서 떨어지는 순간 내가 신고하면 너 못 죽어.”
여전히 바람은 세게 불어왔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살 수 있을까? 몸 어딘가 하나는 망가지겠지. 10층은 너무 애매한 높이잖아. 안 그래?”
10층이 애매한 높이인지 뭔지 나는 몰랐다. 그 딴 거 내가 알게 뭐야. 인간이 뛰어내려서 즉사하는 높이를 꿰고 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손목 긋는 것도 확실한 방법은 아니더라. 누가 일찍 발견해버리면 그만이야. 네가 집에서 손목을 그었어도 넌 살았어. 내가 발견했을 테니까.”
이건 확실하다. 경험담이거든.
“나도 버젓이 살아있는데 네가 죽을 이유는 뭐야. 심지어 너 추행한 과장도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으니 고개 떳떳이 들고 살아갈 텐데. 누구 좋으라고 죽을래 너.”
성민영의 어깨가 들썩였다. 담배를 하나 더 꺼내들었다. 담배불을 불인 뒤 라이터를 다시 켰다.
“경찰서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수치스러워? 네가 왜. 정작 수치스러워야할 사람은 과장인데. 죄 지은 사람이 죽어야지. 피해자가 왜 죽어.”
나는 딱히 좋은 말을 하는 데엔 소질이 없다.
“나같으면 짜증나서라도 살아. 분하고 억울해? 그럼 돌려줘. 고소를 하든 그냥 엿을 먹이든.”
햐얀 유서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종이는 거침 없이 타들어갔다.
“그래도 죽고 싶으면 날짜 다시 잡아. 내 눈 앞에서 남이 죽는 꼴 보는 거 역겨우니까.”
성민영이 날 빤히 바라보았다.
“안 내려와?”
머뭇 거리는 움직임에 결국 직접 그 손을 잡아 끌어내렸다. 내 겉옷을 벗어 성민영에게 둘러주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 공기가 훨씬 좋다는 실 없는 농담을 던지며.
“우리 경찰서에 있기 부담스러우면 다른 서로 발령 받아.”
“소문나면요.”
“소문 안 나는 곳으로 떠나. 그리고 소문나면 어때서. 네가 죄를 지었어 뭘 했어. 왜 혼자 주눅들고 지랄이야.”
“......”
“나 뭐 정의로운 짓 하려고 너 살린 거 아냐. 네가 나 대신 해줄 일이 있거든. 과장 고소 좀 해주라. 난 돈 없어서 못 하니까. 너라도 해서 걔 콩밥 좀 먹여. 너도 돈 없어?”
“그런 건 아니고...”
“그럼 하면 되겠다. 뭐 물어볼 거 있음 물어보고. 집 깨끗해서 좋더라. 우리집은 완전 더럽거든. 그래도 좀 어지르면서 살아. 살맛나게.”
어색함에 할 수 있는 말이란 말은 전부 내뱉었다. 다시 곱씹어보니 요상하기 그지 없었다. 성민영도 가만 보면 착하다. 그딴 말을 전부 듣고 있고.
“너 한 번만 더 그 딴 짓하면. 그 땐 내 손에 뒤져.”
말을 남기고 밖을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계단에 주저 앉아 버렸다. 누가 누굴 구한다고. 제기랄. 힘이 쫙 빠져버려 난간에 몸을 기댔다. 죽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았다. 이제는 내 삶의 이유가 된 흉터를 팔 소매를 걷어 밖으로 내 보였다. 그으려면 예쁘게라도 그을 걸. 떨리는 손으로 그은 탓에 새겨진 흉터는 울퉁불퉁했다. 아파트 밖을 나오자 어느 새 어두워져 있었다. 뒤를 돌아 성민영의 집에 환하게 불이 켜진 것을 확인했다. 살짝 미소를 지었다. 걸으며 무심코 전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어.
“나 좀 잘했는데.”
- 뭘.
“칭찬 좀 해주지.”
막무가내인 내 말에 전정국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냥 누가 잘했다는 말을 해줬으면 했다. 칭찬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었고 굳이 칭찬에 목이 메인 것도 아니었으나 오늘은 좀 듣고 싶었다. 해달라고 조를 사람이 전정국이라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 잘했어.
옆구리를 찔러 받은 칭찬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푸흡.하는 웃음 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핸드폰 너머로 전정국의 바람빠진 웃음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더 해줘.”
- 잘했어.
“응.”
- 그렇게 웃어.
“뭐야.”
- 웃어달라고.
“그래.”
올려다 본 밤하늘이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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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가 살짝 늘어지는 감이 있는데 노잼인 건 아닌 지 걱정이 드네요ㅠ
많이 부족한 글을 채워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