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12
“미친...”
전정국이 내 품으로 쓰려지듯 안겼다. 진짜 쓰러졌나. 꼬라지를 보아 쓰러져도 할 말이 없긴 하겠다. 자기가 깡패 새끼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이런 꼴로 찾아오는 게. 눈물이 났다. 짜증나게.
“야. 정신차려 봐.”
내 말에 전정국은 약한 신음을 냈다. 여기에 내가 없었으면 어쩌려고 이 몸으로 여길 와서는. 한숨을 뱉으며 쇼파 위에 놈을 눕혔다. 필요 없는 가구들을 정리하는 중에 하나 남은 가구였다. 버리려고 하니까 또 돈이 들더라. 그래서 내버려뒀는데. 이렇게 쓰일 줄 내가 알았겠나.
오늘 전정국은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었다. 나한테 선물한 운동화랑 같은 디자인이었다. 운동화를 벗겨냈다. 때 아닌 자극에 그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안타까움에 상처가 들러붙은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누군지 몰라도 제대로 팼네. 전정국이 눈꺼풀을 살짝 올렸다. 눈을 반도 못 떴는데도 그것마저 힘겨워 보였다. 듣기만 해도 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까까지 죽을 것 같았는데.”
“......”
“이주아 얼굴보니 살 것같다.”
“농담이 나와?”
“농담 아닌데.”
전정국 몸의 상처를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었다. 대체 뭘 하고 싸돌아다니면 이 꼬라지로 나타나냐고. 답답했다. 계속 한숨만 흘러나왔다. 전정국이 실눈을 뜬 채 날 바라보았다. 내가 인상을 쓰자 슬슬 웃음을 짓는다. 웃음이 나오냐고.
“괜히 왔다.”
전정국의 잇새에서 나온 말이었다. 혼자 아픈 표정은 다 짓고 있다. 얼굴이 달아오른 모양새가 열도 좀 있는 것같다. 전정국이 제 손을 들어올려 내 눈물을 받아냈다. 좁혀진 미간도 펴준다. 빌어먹을 눈물은 그치질 않는다. 내 몸에서 나오는 거 하나 조절이 안 된다. 전정국만 보면.
“그냥 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서.”
“......”
“속상해할 줄은 몰랐네.”
전정국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놀란 마음에 맥박을 짚었다. 뛰고 있다. 짧은 숨을 뱉었다.
“자?”
내 말에 고개를 조금 끄덕여준다. 방에서 이불 하나를 가져와 덮어주었다. 찬물에 수건도 적셔 이마에 올려뒀다. 마음같아서는 병원에 데려가고 싶은데. 깡패 놈들이 병원에 가는 순간 감옥행이라는 걸 나는 쓸데없이 잘 알았다. 전정국이 내 손을 잡는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주제에 손에 힘을 준다. 나도 그 손을 꽉 잡았다.
속이 상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몸의 가운데가 저릿했다.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고 집을 나왔다. 동네에 하나 있는 허름한 약국은 문을 닫았다. 이 새벽에 문을 열었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찾아왔다. 가게 앞에서 먼지가 폴폴 날렸다.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일까 의문스러운 구석탱이에 있는 편의점이었다. 아주 좁은. 변변한 연고 하나 쯤은 있겠지. 연고 몇 개랑 반창고, 소염제를 샀다. 유통기한이 막바지에 이른 것들이었다. 별 수 없이 계산을 했다. 가려다 말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에서 파는 죽이 몸이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하나를 집었다. 많은 종류 중 무난한 야채죽. 싫어하지는 않겠지.
현관에 신발이 없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내 운동화도 벗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가 전정국을 찾았다. 쇼파에도 없고 아무 데도 없다. 혹시 몰라 화장실 문을 열었다. 내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화장실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전정국!”
내 외침에 대한 답은 공허함 뿐이었다. 방금 왔던 사람이 전정국이 맞긴 한지 혼자 헛 것을 본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편의점 로고가 박힌 검은 봉지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이 고요한 집에 퍼졌다. 아직 멀리 가지는 못 했으리라.
아무 근거도 없이 정말로 아주 가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전정국이라면 왠지 그러지 않을까. 날 두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새벽 바람이 꽤 쌀쌀했다. 어디서 날 지켜보고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과대망상증이라 해도 할 말이 없었지만. 빌라의 공동 현관 앞 나무 뒤에 봉지를 내려놓았다. 여기 아직 있다면 알아서 가져가라는 의미였다. 자기 멋대로 찾아와서는 멋대로 나간 것도 전정국이면서 신경 쓰이게 만드는 거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다.
“썩을 놈.”
보도블럭 조각 하나를 찼다. 조각이 튀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끝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는 순간 서로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나도 모르게 바닥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바닥에 전정국이란 글씨를 손가락으로 그렸다.
전정국.
뒷골목 12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 가는 새를 느낄 틈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잔업을 도맡아 하고. 상사에게 된통 깨지는 날도 있고. 나는 지독히도 현실을 살았다. 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눈물로 매일을 지새우고 그러지 않나. 나한텐 그 딴 여유는 없었다. 잊혀지더라 그 깡패 새끼.
경찰서에 붙은 은행에서 나눠주는 촌스러운 디자인의 달력에 가끔 시선이 닿을 때면 저 혼자 잘도 굴러가는 게 얄밉다는 생각도 더러 들었다. 계절감이라곤 하나 느껴지지 않는 내 패션에 아무도 두껍게 입으라는 대거리를 하지 않으면 봄이 온다는 징조였다.
깡패 새끼들은 여전히 하루가 멀다하고 일을 터뜨렸다. 자잘자잘한 사건들이라 귀찮기만 했다. 실적을 쌓는데 도움도 안 되고 보고서는 주구장창 써내려가야 한다. 쓸데 없는 행위의 반복이 이어졌다. 그게 내 현실이었다.
어쩌면 그 놈을 만난 그 시기가 꿈일지도 모르겠다. 꿈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영수증을 펼쳤다. 연고와 반창고, 죽을 결제한 그 영수증. 마냥 꿈은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종이 쪼가리였다. 그 날 뒀던 편의점 봉지는 출근할 때 보니 사라졌더라. 길고양이가 물어갔는 지 주인이 찾아갔는 지. 내가 알게 뭐야. 썩을.
웃긴 건 봉지가 사라진 자리 위에 놓여있는 손수건을 내가 가져왔다는 것이다. 한 때 경찰서 창문틀에 세잎 클로버가 놓여 있었다. 손수건 안에 들어있던 그것을 내가 말리느라. 잘 말려서 코팅까지 했다. 그러고 어디뒀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운동화 세탁을 맡겼다. 꼬질꼬질해진 운동화가 새하얘져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봄이 다가오는 날씨였으나 내게 있어서 봄은 귀찮을 뿐이다. 꽃가루가 폴폴 날리고 이유 없이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아주 더운 것도 아니고 온전히 추운 것도 아닌 어중간한 계절. 극단에 치닫는 현실을 가진 나와는 거리가 멀다. 벌써 교통과 여경들은 꽃을 하나씩 책상에 올려두었다. 그들이 봄을 맞이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봄을 맞이하는 방식은.
“시발.”
후불 교통 카드 결제일에 카드 잔액이 없었나 보다. 연체료가 붙었다. 날아온 명세서에 욕이 터져나왔다. 집주인이 이번 달 월세를 좀 일찍 받았으면 한다 해서 줘버렸더니 일어난 사단이다. 결국 이사는 하지 못 했다. 경제적 여유도 없었고 부친도 다시 왔다. 나간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등장이었다. 그 썩을 술 버릇은 여전했다.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 출근한 지민이 인사를 했다. 눈으로 지민의 인사를 받았다. 다른 동료들 역시 대충 답을 하고는 제 일에 집중했다.
“야 주아야.”
황경감이 날 불렀다. 불길하게.
“너 오늘 법원 갈거 아니냐. 벌금 내러.”
어제 부친이 또 난동을 피워 벌금이 떼였다. 황경감이 내쪽으로 누런 봉투 하나를 내민다. 경찰서 마크가 박힌.
“가는 김에 검찰청도 가서 김검사한테 이것 좀 전해주고 와.”
“김검사요?”
김검사면 그 키 큰 놈을 말하는 게 아닌가. 많이 배운 티가 팍팍 나는.
“어.어. 거기 뭐냐. 김남준 검사. 그래.”
꼰대같아서 상종하고 싶지 않은 부류 중 하나였다. 지적이고 바른 말만 하는 타입이었다. 볼 때마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내 눈에는 사람을 깔보는 것 같았다. 내 말에 지민이 타박을 주긴했다. 왜 이렇게 삐뚤어졌냐며. 내가 삐뚤어진 게 맞다. 김검사가 우리 서에 오는 날이면 여경들이 아침부터 분칠을 하곤 했으니. 그들의 눈에 김남준 검사는 멋있는 남자였다. 내 눈에는 그저.
“먼 길 오셨는데 차라도 한 잔하고 가세요.”
도덕 교과서 쯤되는 인간이었다. 도덕적인 인간의 정석 정도. 법 없이도 살 인간이 있다는 걸 한 번도 믿지 않았으나 김검사는 부합하는 것 같기도 했다. 김검사가 쓰고 있던 얇은 뿔테 안경을 벗었다. 젠틀함이 묻어나는 손짓으로 내게 차를 건넸다.
“이형사님.”
나는 이 남자가 부담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이렇게 예의를 차리고 대해주는 이는 처음이라서. 정갈하게 다듬어진 김검사의 손톱이 컵을 잡았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나 혼자 의식하고 있다. 김검사와 눈이 마주쳤다. 젠틀한 미소를 보인다. 고개를 숙였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적당한 온도다. 아주 뜨겁지는 않지만 미적지근하지도 않은 온도.
“김기환 사건말입니다.”
김검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검사 씩이나 되는 양반이 김기환 사건에 관심을 둘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 고개를 살짝 들어 그를 보았다. 부드러운 미소로 날 대한다. 내 인생에서 마주한 적 없는 예의 바른 캐릭터였다.
“그 사건을 처음 맡은 팀이 강동 경찰서 강력 1팀이라고요.”
“네.”
“결국 자살로 종결된 걸로 압니다.”
“네.”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물음이 턱 밑까지 올라왔다.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있다. 전해줄 것만 전하고 바로 나올 걸 그랬다. 수가 읽히지 않는 놈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검사가 창문의 블라인드를 쳤다. 사무실을 비추던 해가 사라졌다. 블라인드와 창문 사이의 조그만 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김검사가 창문 쪽에 가 있는 동안 그의 책상을 살폈다. 사건 일지들이 가득 차 있다. 높게 쌓인 서류들은 중심이 잘 잡혀 있었다.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칼같은 사람. 내가 앉아 있는 사무실 소파 역시 디귿자 모양으로 배치된 형태였다. 질서가 흐트러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가 다시 소파에 앉기 전에 그의 빈 찻잔을 비틀어 놓았다.
예상대로. 다 마셔 잔을 들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검사는 비틀어진 잔을 똑바로 만들었다. 계산을 마쳤다. 가까이 해서 좋을 게 없는 놈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너무 오래 있었네요.”
“질문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
“아뇨.”
“최승민을 검거하는데 이형사님의 역할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최승민. 인천에서 셋을 죽이고 우리 관할로 도망친 그 흉악범. 그 사건의 담당 검사는 따로 있다. 김검사 말에서 구린 내가 풍겼다. 뭐 하는 놈이야 이 새끼.
“질문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꽤나 거구인 최승민을 혼자 잡으셨는데.”
“가 볼게요. 늦었어요.”
“아, 그런 가요. 저 때문에 늦으셨다니 죄송하네요. 태워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말을 하며 이미 김검사는 겉옷을 챙겨입었다. 거절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차를 타면 다시 돌이킬 수 없을 지도 몰랐다. 난 김검사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
“괜찮습니다. 지금 출발하면 안 늦어요. 늦을 때까지 여기 있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여유 가득한 얼굴이 살짝 굳는다. 바뀐 표정을 모른 척하며 인사를 하고는 빠져나왔다. 딱히 뭘 하지도 않았는데 기가 빨리는 놈이다. 김기환. 저 남자가 김기환 사건에 관심을 가진다. 최승민을 잡은 내게도 관심을 가진다. 이대로 있다가는 약점이 잡힌다. 무슨 경로로 알았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최승민을 잡을 때 전정국이 도운 것을 알고 있다. 날 떠 보는 거다. 기분이 바닥을 쳤다.
뒷골목 12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이유로 심부름을 떠맡았다. 떡볶이와 순대가 먹고 싶다며 내 전화통을 울렸다. 사가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른 저녁의 시장은 질색이었으나 지금 당장 경찰서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 검사가 왜 김기환 사건에 관심을 두는 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들어찼기에 떨쳐낼 뭔가가 필요했다. 그냥 무시할 수 있게. 지금처럼 물 흘러가 듯 살 수 있도록.
시장 안에 분식집이 많은 줄 처음 알았다. 경찰서 사람들의 단골집이 있었는데 도통 떠오르질 않았다. 뭐였더라. 분식집 간판을 하나 씩 읽었다. 저녁을 먹으려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이다. 여러 사람들과 몸을 스치고 부딪혔다. 좁은 시장 골목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눈에 보이는 분식집 간판을 읽다가 결국 제일 가까이 있는 곳에서 사기로 마음을 먹은 참이었다. 누군가 내 옆을 또 지나갔다. 아주 살짝 팔이 스쳤다. 방금 전 사람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상체만 뒤로 돌린 채 눈을 깜빡였다. 몇 차례의 깜빡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검은 캡모자를 쓴 눈에 띠게 좋은 체격을 가진 남자. 살아있음을 알리는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호흡을 들이 마셨다. 남자가 스친 자리의 잔향이 코에 스몄다. 아주 사라져버린 인영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눈을 깜빡일 틈도 없이 빈 공간을 마구 담았다. 점차 뜨거워지는 몸을 녹이려 애썼다. 그곳를 뺀 주변 사물들이 모두 흐리게 보였다. 봄바람이 살랑였다. 언제 맺혔을 지 모를 동그란 물방울을 문질렀다. 너무나 절실히도 보고 싶으면 헛것이 보이나 보다.
“아, 아! 은희야아!”
나를 현실로 인도하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몰린 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 가운데로 부친이 보였다. 경찰이 오기 전에 내가 목격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벌금이 물리기 전에 데려가면 그만이니까.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꽤 많은 사람들 지나치고 나자 부친에게 갈 수 있었다. 부친이 울부짖었다.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가.”
“뭐야, 우리 형사님 아니야아.”
“일어나.”
부친의 겨드랑이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벌건 얼굴을 한 부친의 얼굴에서 술냄새가 진동했다. 인상을 썼다. 흐느적 거리는 몸을 일으키고 부축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문제는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었다. 주사가 절정에 치닫을 때면 부친은 항상 그 이름을 불렀다. 배은희. 죽은 엄마의 이름.
“은희야아.”
“죽었잖아.”
“아니야. 이런 불효 자식이.”
부친이 내게 손을 들어올렸다. 한숨을 토하며 내게 손이 닿기 전에 그 손을 잡았다. 늙어 힘이 빠진 부친은 내가 준 힘으로 제지가 가능했다. 부친의 나이를 이렇게 실감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부친에게 들린 소주병을 빼앗았다. 시장을 나가려는데 앞으로 앞치마를 두른 남자 하나가 달려왔다.
“이런 미친 노인네가!”
부친이 내가 모르는 사고를 쳤나보다. 남자의 손에 계산서가 들려있다. 무슨 일인지 대충 알겠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는 계산을 안 하고 내뺀 모양이다. 남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주려할 때였다. 불량한 복장의 남자 하나가 또 등장했다. 그러고는 앞치마를 두른 남자에게 오라며 손짓한다. 여기도 깡패들이 수금을 하러 다니는 장소라는 걸 느꼈다. 잘못 걸렸네. 시발. 주변을 살짝 살피고는 부친을 데리고 시장통을 나갔다. 튀었다는 말이다. 경찰이 조폭을 상대로.
택시 기사에게 현금을 두둑이 주고는 부친을 보냈다. 외출을 못 하도록 집 문에 뭔 짓이라도 해야하나 싶었다. 몸에서 땀이 났다.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자리에서 시장 안을 슬쩍 보았다. 따라오는 조무래기들이 없는 걸로 보아 대충 급한 불은 껐다. 아직 음식을 사지 못 했다. 결국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썩을.
방금 전 장소에 발을 디뎠다. 앞치마를 입은 그 남자를 찾았다. 그래도 부친이 먹은 음식값은 계산해야할 것 같아서. 그 남자가 조폭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조폭에게 삥을 뜯기는 안타까운 서민1일 뿐. 주변 사람에게 물었다. 아까 술 먹고 난동 피우던 사람 찾으러 나온 가게 주인을 아냐고. 무정 식당 주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정 식당. 헐거워진 간판을 찾았다. 손님은 달랑 둘이었다. 그 남자와 아내로 보이는 여자의 이야기가 들렸다.
“아니, 그럼 그냥 넘어가랬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그 짝에서 넘어가라는데 어쩔 수 없지.”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하는 거 아니여.”
그들의 앞에 카드를 내밀었다. 아까 도망간 사람의 딸이라는 말과 함께. 그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내게로 닿았다.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눈을 아래로 내린 채 계산을 마쳤다. 나가기 전 그들에게 물었다. 그 조폭 새끼 인상착의가 어떻게 되냐고. 머뭇 거리는 그들에게 경찰 신분증을 보였다. 그들의 입술이 열렸다.
키는 백육십 초반에 밀리터리 캡을 쓰고 다니는 어려 보이는 남자. 오른쪽 손등에 뭐라 쓰여진지 모를 필기체로 된 영어 문신이 있다고 했다. 시장의 구석진 곳을 다 뒤졌다. 조폭 새끼들에게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다. 내 짐작이 맞다면.
이런 짐작은 왜 하는 건데.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면서도 멈추지는 않았다. 이제야 드는 자각이지만 그 놈을 보낸 이후로 항상 이래왔다.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다.
끝내 바삐 움직이던 걸음을 멈췄다. 그래서 뭐 하려고. 걔를 찾아서 그 놈에게 그냥 넘어가라고 시킨 사람이 전정국임을 알아내면. 아니, 전정국이 아니라면.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이름을 꽤나 날리던 조폭 전정국의 이름이 들리지 않은 건 꽤 오래된 일이다. 경찰서 사람들이 그랬다. 뒤졌거나 불구가 되었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그 깡패 이름이 전정국이라는 것만 빼고.
급격히 냉정을 되찾았다. 하루에서 열두번은 이 지랄이었다. 마음이 이성과 감성에 저울질 당하며 이끌려다녔다. 부질 없는 짓임을 알고 그만두려는 내 앞으로 백육십 초반의 나보다 작은 키를 가진 밀리터리 캡 아래로 어려보이는 인상을 가진 남자가 나타났다. 얼마 있지 않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의 뒤로 지나가는 검은색 세단이 눈에 들어왔다. 차창 안으로 보이는 낯익은 한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얼마 전 무심히 들춰본 자료 속에 있던 이름이다. 정채희. 가온그룹 무남독녀. 경찰서의 자료에는 적혀있지 않은 그녀의 정보 중에 하나는. 전정국을 좋아한다는 것.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방탄소년단/전정국] 뒷골목 12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8/02/22/22/e10a423ed87fa789da6b6eb9b02f835b.gif)
![[방탄소년단/전정국] 뒷골목 12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8/03/10/20/790b22beefbc01923485be479e869b80.jpg)
![[방탄소년단/전정국] 뒷골목 12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8/03/10/20/7af0b173eadcb7df832a29eb73235bc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