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14
“우와.”
전정국의 말을 들은 내가 뱉은 말이다. 입을 조금 벌리고서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봤다. 살이 좀 더 빠졌는지 턱선이 더 날렵해졌다. 눈을 마구 비볐다. 다시 눈을 떠도 그 자리에 전정국이 있었다.
“안 죽었네.”
내 말에 전정국이 어이 없다는 의미의 웃음 소리를 냈다.
“이새끼 한 대만 쳐도 될까요. 형사님?”
뻗어버린 과장 쪽으로 걸어가며 그가 물었다. 애초에 내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는 지 곧이어 과장의 신음 소리가 났다.
“하,”
어둠 아래에서 보이는 전정국은 꽤나 열 받은 표정이었다. 그게 또 썩 나쁘지 않았다.
“이 미친 새끼가. 누굴 건드려.”
뒤이어 욕지거리가 전정국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나도 모르게 과장이 만졌던 부분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다시 떠올리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밭은 숨을 토했다. 내게로 팔을 뻗은 전정국이 날 좁은 통로에서 빼냈다. 날 품에 안는다. 아주 꽉. 오랜만에 맡는 놈의 향기가 기분을 들뜨게 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더러운 일들을 다 지워내는 듯. 놈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포름한 기운이 가슴 언저리에 닿았다. 조금씩 눈을 감았다. 내 머리에서 등으로 손이 내려간다. 등에 토닥임이 이어졌다. 토닥 토닥. 잠시 후 전정국이 말했다.
“괜찮아.”
응.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괜찮다는 의미였다.
뒷골목 14
놈의 차는 여전했다. 조수석 문을 빤히 보는 나에게 전정국이 말했다. 내가 낸 흠집을 수리하지 말 걸 그랬다고. 저 정도면 중증 아닌가. 내 말에 전정국이 코웃음을 쳤다. 나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얘길 한다. 그래, 나도 중증이다. 그 날의 영수증을 신줏단지 모시고 있는데 뭐. 놈이 차 문을 열어준다. 타라며 턱짓을 한다. 내가 망설이자 내 머리 위에 한 쪽 손을 올리고는 다른 손으로 날 밀어 넣어 버린다. 이것도 저번이랑 비슷한 상황인데.
“오늘도 방향이 같지 않나. 우리.”
방향이 같다니. 부질없는 바람이다. 답지 않게 능청을 떠는 모습에 피식, 웃었다. 어디로 데려가려고.
밤 길을 쉴새 없이 달렸다. 어딜 가냐 물어도 대답을 않는다. 그러려니 하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까 술을 좀 마셔서 그런가 좀 더웠다. 그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녀석이 물어본다.
“더워?”
“어.”
차 뚜껑을 열어버리는 놈이었다. 성격 한 번 마음에 드네. 바람에 머리칼이 날렸다. 그 때 싹둑 잘라 버린 머리카락은 이제 어깨선 밑으로 내려올 만큼 길었다. 생각보다 빨리 안 자랐다.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머리카락 하나가 눈가를 때렸다.
“아 씨.”
“입버릇도 여전하네.”
옆에서 바라본 전정국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어쩌라고. 한 마디를 더 해줬다. 그냥 이대로 지구 저 끝까지 달릴 수는 없으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 죽었다던데.”
“누가.”
“이름 좀 날리는 깡패 놈들 소식 안 들리면 죽은 거지 뭐.”
“짭새들은 다 생각이 그렇게 일차원적이야?”
“어.”
“그래서 버젓이 살아 있어서 싫어?”
“......”
“싫어?”
“몰라.”
“좋으면서.”
좋다는 한 마디가 그렇게도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 전 과장의 행태가 떠올랐다. 눈을 꽉 감았다.
“우리, 손 잡을까.”
놈의 오른손이 내 손을 천천히 잡는다. 그 손에 정신을 다 모았다.
“자.”
“......”
“이왕이면 내 꿈꾸고.”
“지랄은.”
날 때부터 욕을 달고 살아 그런가 좋은 소리라곤 안 튀어나온다. 좀 좋은 소릴 해주고 싶은데. 좀처럼 되질 않는다. 그냥 말을 삼켰다.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내 손에 깍지를 끼는 그 손이 다 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말 안 해도 좀 알아줬으면.
“이주아.”
전정국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바다다. 바다로 데려왔네. 이렇게 가까이서 바다를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사실, 바다를 본 적이 없을 지도. 바람이 차게 불어왔다. 몸에 놈의 자켓이 덮여 있었다. 검은 셔츠 하나만 입은 전정국을 바라봤다.
“안 추워?”
“네가 안 추우면.”
오늘따라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는 말을 곧잘 하는 놈이었다. 전엔 투박한 말들만 골라 했던 것 같은데. 몸을 부르르 떨자 놈이 살풋 웃었다.
“뭐하고 지냈어.”
“일했어.”
“아버님은.”
“왔어.”
“어머님은.”
“......”
“잘 보내드렸어?”
“아마.”
“그래.”
짧은 대화가 끊겼다. 전정국은 뭐하고 지냈으려나. 혼자 상상에 잠겼다. 또 기둥 서방 노릇이나 하고 다녔을지 아니면 사람을 패고 다녔을지. 이런 놈이랑 같이 있는 나 자신에 의문이 들었다. 왜.
“내가 도망가자고 하면.”
“아니.”
“그럴 줄 알았어.”
전정국이 나를 바라봤다. 눈동자는 오늘도 반짝였다. 눈동자가 비추는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내 미소에 놈도 미소로 답했다. 정말로 나는 현실을 사는 사람이다. 도망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다. 도망가지 않아. 못 가. 나는. 전정국은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눈빛을 보낸다.
“그래도 말이야.”
날 보던 전정국이 고개를 틀어 하늘을 쳐다본다. 나도 같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인지 지나가는 비행기인지 모를 것이 빛을 냈다. 등을 의자에 기대고는 팔을 머리 뒤에 받쳤다. 하늘이 좀 더 잘 보였다.
“고민하는 척은 해주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데 척은 무슨.”
때마침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는 내 손을 전정국이 제지했다. 담배갑 밖으로 나온 담배 하나를 도로 넣어주며 내 눈을 마주쳐왔다. 그 행동이 나쁘지 않았다.
“이주아 형사님.”
“네.”
“혹시나 나를 잡아야 한다면.”
“......”
“웃으면서 데려가세요.”
울지말고.
얼굴이 굳어졌다. 눈가가 시렸다.
“이왕이면 내 옆에서 나 째려보는 형사님한테 잡혀가고 싶어서요.”
장난인 척 말갛게 웃으며 건네는 그 말에 눈에 힘을 줬다. 눈물이 흐르지 않게. 얘는 무슨 말을 이렇게나 지랄맞게 하는 거야. 못 들은 척 눈을 감았다. 이제 다시 눈을 뜨면 전정국은 없으리라. 봄밤의 꿈이다. 아스러지는.
뒷골목 14
사방에서 울려대는 전화 소리로 귀가 먹먹했다. 모두가 걸려오는 전화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경질적인 목소리들이 뒷전을 때렸다. 아침부터 시작된 이 전쟁에 다들 신경이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경찰서 밖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터라 밖으로 나가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이 경위! 여기 기사 막아. 빨리. 막아. 막아!”
선배가 내 컴퓨터를 만지더니 기사 화면 하나를 띄웠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자랑하는 기사였다. ‘강동 경찰서 내 고위 간부 성추행 파문. 진실은 무엇인가.’ 해민 일보 김석진 기자. 자세한 내막은 모른 채 일이 터지자 조회수를 높일 목적으로 기사를 쓴 게 틀림 없다. 기자 이름 옆의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 말라는 그런 내용으로.
“야, 이거. 상습범이네.”
황경감이 옆에서 혀를 찼다. 나와 같은 기사를 보고 있었다. 김석진 기자가 쓴 기사들을 쭉 훑었다. 사회부 기자였다. 주로 쓰는 내용은 대기업 관련. 제목은 하나같이 자극적이며 기사 내용은 그저 그랬다. 형사 과장의 윽박과 동시에 속보가 떴다. 성추행 파문을 일으킨 강동 경찰서 고위 간부, 형사과 과장으로 밝혀져.
덮여있던 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지금 시점에 경찰 간부의 성추행이라니 물어 뜯기기 가장 좋은 소재였다. 과장을 성추행으로 고소라도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해봤자 귀찮은 일만 늘어날 거란 생각에 관뒀다. 심지어 나는 패소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나는 못 하는 걸 대신 해준 누군가에게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에 적힌 상황으로 보아 그 신참은 아니었다.
회식 자리에서 호되게 당한 신참은 결국 다른 곳으로 갔다. 바쁜 와중에도 경찰서 사람들은 그 애 이야길 해댔다. 선배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또 내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미주 깡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며. 한심한 족속들이다.
“해민 일보에 전화 넣어라. 주아야.”
고개를 끄덕였다. 강동 경찰서 소속임을 밝히고 허위 사실을 쓴 기사를 내려달라 요청했다. 기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초반 대응에서 강동 경찰서가 아니라며 반박 기사를 냈으나 한 시간만에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니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이제 형사 과장이 그 대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도록 막는 게 다였다. 따지고 보면 나도 피해자였다.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를 위해 전화를 걸고 있다니.
“좆같네. 진짜.”
담배가 말렸다. 겉옷 주머니에 있는 담뱃갑을 빼내 들었다. 밖으로 나가는 즉시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바람에 경찰서 한 구석에 흡연 구역이 만들어졌다. 희뿌연 연기들이 가득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선배에게 불을 빌렸다. 평소보다 담배 냄새가 짙었다.
“오늘 경찰서 자알 굴러간다. 안 그러냐.”
선배가 밖의 기자들을 내다보며 깐족 거렸다. 저와는 상관 없는 일인 양 굴었다. 회식 자리에서 과장의 만행을 목격한 게 한두 번이 아닐 게 분명한 데도 그랬다. 태어나서 그런 일을 한 번도 당해보지 않았으며 당할 수 있다는 위험조차 느끼지 못할 테니. 그들이 가진 권력이었다. 저런 자들도 가지는 그 따위 권력이 나에겐 허락되지 않는 것은 모순이었다.
“요즘에 폭로가 유행이라잖아요.”
“폭로고 뭐고 우리는 무슨 고생이냐.”
그들의 저급한 대화에서는 가해자를 욕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그렇다고 피해자를 위하는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들은 영원히 알 지 못할 것이다. 알고 싶지도 않을 테지. 나 역시 그들과 다를 건 없었다. 스스로 무언갈 행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잠자코 있을 뿐이다. 회식 자리에서의 역겨운 일을 겪었으나 뭐 어째. 신참처럼 다른 곳으로 옮기지도 이름 모를 사람처럼 그 행위를 폭로하지도 않았다.
“아니, 보면 말이야. 꼭 지가 여지를 줘놓고 아니라고 발뺌한다니까?”
“요즘 세상에 어디 여자 무서워서 같이 대화나 하겠어. 고소당할까봐 무섭다.”
“농담으로 그러잖아요. 마누라말고는 아예 상종도 말아야한다고.”
마지막으로 담배 연기를 뱉어냈다. 그들을 노려보고 있던 터라 연기가 그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인상을 찡그리며 한 소리 씩을 해댔다. 뭐하는 짓이냐며. 그러는 너희는 뭐하는 짓이냐는 소리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말싸움을 할 기력도 없다.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러고는 재떨이를 그들을 향해 던져버렸다. 담뱃재들이 폴폴 날렸다.
“야 씨.”
“이 경위 미쳤어?”
미친 건 너희들이다.
“실수.”
한 마디를 던지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상대하기도 귀찮은 버러지들이다. 말하는 게 저런데 속으로 하는 생각은 저것보다 더하겠지. 저들은 공감 능력이 바닥을 기어다녔다. 사건을 수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니 증언을 흘려듣고 끝에 가서야 잘못된 것을 인지했다. 그 때 알아채면 뭐하나. 이미 끝나버렸는데. 그들이 싸지른 똥을 치우는 건 내 몫이었다. 여기서 가장 화가 나는 사실은.
저런 자들에게 따라붙는 타이틀이 무엇이냐하면. 고속 승진.
지랄맞은 벽이었다.
해민 일보에 전화를 걸었다. 김석진 기자를 연결해달라 요청했다. 신호음이 얼마 안 가 김석진 기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 여보세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전했다.
“지금 일어난 성추행 파문. 강동 경찰서 형사 과장 맞아요. 유명해요. 우리 경찰서 여자 경찰들은 한 번 씩 다 당했을 겁니다. 여자 신참이라도 오면 그 때부터 눈빛이 달라지거든요. 허벅지부터 시작해서 슬슬 위로 올라가죠. 회식 자리가 파하면 어디로 데려가겠죠. 그러고 다음 날엔 모르는 척. 물으면 그래요. 술김이었다고. 술이 면죄부도 아닌데. 그죠?”
김석진 기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얘도 이런 사건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을 테다. 그저 자극적인 기사 제목 하나 뽑아서 조회수나 올리는 게 목적이겠지. 전화를 확 끊어버리려 할 때였다.
- 기사. 써달라는 말씀이시죠.
정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답을 하지 않고 끊어 버렸다. 나름대로 후련했다. 다들 쏟아지는 전화를 상대하느라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지는 모르는 듯 했다. 누구 하나 좀 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긴 했다.
얼굴도 모르는 기자에게 단독을 제공해준 꼴이었다. 이왕이면 썼던 제목 중 가장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걸어주었으면 했다. 더 이상 내 일터에서 과장의 얼굴을 볼 수 없도록. 잠잠했던 전화가 다시 울렸다.
“강동 경찰서 형사과 강력 1팀 이주아형사입니다.”
상대는 말이 없었다.
“말씀하세요.”
- 인터넷에 글쓴 사람이에요.
말을 듣는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강동 경찰서 성추행 파문 말씀하시는 건가요. 장난 전화라면 받지 않습니다.”
- 아니, 정말이에요. 제가 썼어요. 유일한 여자 형사님이라 전화했어요.
이 사람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내게. 나는 이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경찰의 도움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우선 아무에게도 말씀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지금 경찰에 연락하는 건 오히려 안 좋을 수 있어요. 여기가 썩어 고인 물이라 덮으려는데 급급하거든요. 아시죠?”
- 네...
“대신, 다른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제가 불러주는 번호로 전화해서 당한 일 전부 폭로하세요. 그게 가장 빠를 겁니다.”
- 무슨 번호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해민 일보 김석진 기자 번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