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는 이른 아침부터 번잡했다. 며칠 전부터 현수막이 걸렸다. 마약청정국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나 뭐라나. 연례 행사처럼 다는 현수막이었다. 내용만 찔끔 바꿔서. 이번 시즌은 마약 관련이었다. 마약 사범, 밀수 사범을 모두 척결하시겠다는 국가의 명이 떨어지신 거다.
김기환은 그렇게 자살로 덮으시더니 이제 와서 뭐라도 해보겠다는 과장의 말이 웃겼다. 김기환 사건은 이미 다른 팀으로 넘어갔다. 전날 김검사가 했던 질문이 거슬렸으나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책상에 나뒹구는 명세서나 구겼다. 월급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세기위해 달력을 볼 때였다.
“이경위!”
아 씨. 귀찮게 됐다. 머리를 긁적이며 신발을 질질 끌었다. 빨리 오라는 황경감의 재촉이 이어졌다. 내가 당연히 올 줄 알았다면서 왜 안 오냐며 한 소리를 덧붙였다. 국가가 내리신 명을 받드는 자에 나도 속하는 모양이다. 썩을.
“저 쪽에 넘어간 거 아니었어요?”
“이제 다시 우리 사건이야.”
“지들 맘대로셔.”
혼잣말을 하며 썩은 표정을 굳이 숨기지는 않았다. 내 얼굴을 한 번 본 황경감이 헛기침을 해댔다. 내가 마지막에 한 말은 못 들은 척.
“김기환 자살 이후 중역파가 분열된 건 알지?”
알게 뭐야. 그 딴 거 모른다. 내 앞에 놓인 자료 더미를 잘게 잘게 찢었다. 출근하자마자 시작하는 회의는 딱 질색이다. 아침에 하면 능률도 오르질 않는다.
“누나 뭔 일이에요.”
옆자리의 박지민이 귀엣말을 건넸다. 출근하자마자 끌려온 박지민은 영문을 모른 채 눈을 깜빡였다. 가로로 긴 눈매가 어리숙함을 뽐냈다. 박지민 밑으로 이제 후배가 몇 명인데 아직도 어린 티가 난다.
“그 마약 사범, 밀수 사범 조진다고 했잖아.”
“아, 그거.”
“우리 팀이 한대.”
“......”
“썩을.”
“저도 동의요.”
박지민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욕도 할 줄 모르는 조그만 머리통이 움직이는 게 퍽 귀여워 피식 웃음이 샜다. 그러고 보니 얘 술 취했을 때도 좀 귀엽더라. 그 날 방석에 날 옮겨줄 정신은 어떻게 챙겼대.
“예전에 장례식에서 있잖아.”
“아, 술 진탕 먹은 날요? 저 그 다음날 경찰서 출근하고 바로 토했잖아요.”
“그래도 나 옮겨주고 갔더라. 덕분에 푹신한 데서 잤어.”
“아, 그거 나 아닌데.”
“어?”
누구일 것같아요? 박지민이 짖궂게 웃었다. 난데 없는 장난에 박지민의 발을 꾸욱 밟았다. 인상을 살풋 쓴다. 선하게 생긴 얼굴에 구김은 어울리지 않는다. 박지민의 미간을 펴주었다. 박지민이 배시시 웃었다. 그래, 얘는 이런 게 어울린다.
“그럼, 이경위랑 박경사가 맡는 걸로 하고.”
갑자기 불린 나와 박지민에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둘이서 대화를 하느라 회의 내용을 듣지 못한 탓이었다. 지민도 못 들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뭘 담당하는데? 안 좋은 예감에 눈동자를 굴렸다.
예감은 적중했다. 나와 박지민이 맡은 건 홍록파에 위장 잠입을 하는 역할이었다. 실제 형사들이 위장 잠입같은 걸 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니, 굳이 깡패 잡는데 그런 헛짓거리까지 해야합니까?”
“까라면 까.”
“저 원래 까라면 까요. 근데 이건 상황이 다르잖아요.”
황경감이 귀찮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이게 말이 되냐고. 무슨 영화 찍어?
“이경위. 이번엔 말 들어.”
황경감이 대뜸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살면서 주눅이라곤 한 번 든 적이 없는 나다. 이러면 될 줄 알고. 낌새를 보아 윗 분들이 개입한 것 같았다. 보통 이런 일들을 담당하게 되면 나도 모르는 여러가지 이해 관계들이 얽혀있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윗 분들의 놀이에 끼어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때 이경위 찾아왔던 여자 기억나지? 정채희.”
얼굴이 살풋 굳어졌다. 어제 본 여자. 나 혼자 궁상을 떨었음이 맞다는 것을 절실히도 알려준 인물이다. 그게 끝이다. 그 여자 얘기도 나랑은 상관이 없는 얘기 아닌가. 나는 그저 귀찮은 게 질색이다. 차라리 최승민같은 놈이나 잡으며 갈비뼈에 금이 가는 게 나았다. 깡패 새끼들을 잡는답시고 같이 노닥 거리라니. 이건 한참을 멀리 나갔다. 빌어 먹을.
“정회장 딸이야. 무남독녀.”
“관심 없어요.”
“홍록파가 왜 지금까지 잘 버틴 줄 알아? 범법 행위를 적나라게 지르고 다녀도 다 덮어주기 일쑤고.”
“서장한테 뇌물이라도 먹였나 보죠.”
“정회장이 뒤를 봐줘서 그래.”
황경감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한숨이 나왔다.
“전 그 딴 거엔 하나도 관심 없어요. 그냥.”
시발, 이럴 거면 내가 형사과에 왜 왔겠어. 그냥 다른 과에나 갈 걸 그랬다. 막상 경찰서에서 일해 보니 다른 과들도 정시 퇴근 하는 사람은 드물던데. 계산을 잘 못 했다.
“그리고 이제 무슨 일인지. 정회장 눈 밖에 난 모양이다. 홍록파가.”
“됐고. 전 못 해요. 진짜로.”
“...전정국 때문에..?”
“아 진짜. 걔는 모른다니까요?”
전정국은 무슨 얼어 죽을 전정국이냐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게다가 어차피 잠입한다면 따가리로 들어갈 텐데. 거기서 홍록파 보스가 싸고 도시는 전정국을 만날 수 있을 리도 없고. 그냥 난 내 몸을 사리고 싶을 뿐이다.
“정회장이 홍록파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어.”
“......”
“까라면 깐다며. 까야지 뭐.”
진짜 돌아버리겠네.
“저어기, 보내 준 자료에 핸드폰 번호 저장하고.”
황경감이 턱짓으로 밑의 종이를 가리켰다. 홍록파 놈들의 신상이 빼곡히 적힌 종이였다. 반사적으로 그 이름들을 눈으로 훑었다. 내가 찾는 이름은 없다. 저절로 질문이 튀어나왔다.
“전정국은요? 없네.”
밖으로 내뱉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얘가 없는 게 뭐 어떻다고. 황경감이 대충 종이를 보며 답했다.
“아, 그 놈. 요즘 떠도는 얘기도 없더구만.”
“......”
“죽은 거지 뭐. 깡패 놈들 인생이 그렇지.”
아무렇지 않게 들리는 말에 숨이 턱 막혔다. 경찰서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이긴 했으나 이렇게 듣자니 또 속이 울렁였다. 종이를 아무리 봐도 전정국이란 이름은 없다. 이름 좀 날리는 깡패놈들이 잠잠하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죽었거나 불구가 됐거나.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을 오늘 한 번 더 곱씹었다.
“어쨌든 앞으로 너희 상사는 저 놈들이다.”
수고. 황경감이 박지민과 나를 보며 말했다. 젠장.
회식 한 번 거창하게 열렸다. 시민 안전을 위하여!라는 지랄맞은 소리와 함께 잔들이 부딪혔다. 이 회식 비용도 정회장이 내는 거란다. 다들 많이 먹으라는 경찰 서장의 독려가 이어졌다. 그냥, 배가 터져 죽자는 심정으로 고기를 우겨 넣었다. 맛 한 번 더럽게 없다. 선배들이 나와 박지민에게 고생 좀 하라며 술 잔을 건넸다. 소주잔에 따른 소주다. 내 취향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선배, 나는 소맥.”
맥주잔에 맥주를 반보다 조금 많이 따르고는 선배가 주는 소주잔을 안에 넣었다. 소주잔이 들어가자 맥주의 높이가 솟아 오른다. 밖으로 흘러 넘치지는 않을 만큼 위로 올라왔다. 완성된 소맥을 한 번에 마셨다. 내 행동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왜요.”
아니라며 선배가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준 건 지들이면서 어색해 하는 것까지. 가지 가지 한다. 담배를 피러 가겠다며 자리를 나왔다. 숨을 들이쉬자 바깥 공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안의 후덥지근한 공기만 맡다가 차가운 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한결 나았다. 담배를 한 번 빨았다. 연기가 안을 덮었다. 날씨 한 번 지랄맞게 좋다. 밤하늘이 맑았다.
다시 들어간 자리는 분위기가 더 지랄맞아지고 있었다. 새로 들어 온 신참의 옆에 과장이 앉아 있었다. 저 새끼의 더러운 짓을 저 때 내가 당했었다. 신참이 안절부절 못 하는 표정이 뻔히 보였다. 그 애를 모른 척하는 다른 선배들도. 과장의 수법은 뻔했다. 우리 형사과에 아주 오랜만에 여자 형사가 들어왔다며 치켜세워준다. 친히 술도 몇 잔 따라준다. 그러면서 옆에 붙어서는 끈덕진 손길을 내민다. 더럽게.
내가 저 짓을 당하던 날 과장은 개쪽을 당했다. 허벅지를 문지르는 손을 촬영하고 증거가 될만한 영상을 확보할 때까지 아무 말 하지 않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쪽을 줬다. 심지어 그 때는 과장도 아닌 경감이었다.
“경감님? 손 버릇이 좆같으시네요.”
내가 과장의 손을 잡으며 회식 자리에서 한 말이었다.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신참이 당돌하게 말하자 모두의 눈이 커지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더러운 새끼들.
“영상 찍느라 모른 척했는데. 끝까지 하시더라고요.”
과장의 표정이 단박에 일그러지는 게 웃겼다. 그러고는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윽박을 질렀다. 상사한테 뭐하는 짓이냐며.
“인생은 실전인 거 모르세요? 법정에서 보시던가.”
결국 그 자리에서 공개 사과를 받아냈다. 덕분에 경찰로서의 앞 길은 꽉꽉 막힌 셈이었다. 경위로 시작해서 아직까지 경위인 지도 벌써 육년 째다. 썩을.
그 더러운 수법을 똑같이 당하고 있는 신참에게 다가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던데. 과장님은 경감일 때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요.”
과장의 더러운 손을 잡아 신참의 허벅지에서 떼어냈다. 여차하면 엉덩이로 갈 기세더라. 미친 새끼가.
“이 좆같은 손이요.”
신참에게 이만 가보라는 눈짓을 했다. 울음을 참으며 신참이 제 가방을 챙겼다.
“봤지? 형사과 좆같으니까 인생 망치기 전에 다른 데로 가. 너 여기서 못 벼텨.”
신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도망갔다. 과장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취기까지 올라 있는 얼굴이 아주 볼만했다. 아쉬운 점은 주변의 형사들이 다들 취해 내가 있는 쪽엔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저런 건 그 때처럼 다들 보는 앞에서 개쪽을 줘야 하는데. 뭐 그런다고 제 버릇 남 못 주는 건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이러는 걸 보면.
“이경위, 저번에 좀 봐줬다고 내가 만만한가?”
발음이 완전히 꼬인 게 듣기가 거북했다. 술을 연거푸 들이킨 과장의 손이 내 다리 위로 올라왔다. 진짜, 이 아재가 미쳤나.
“야.”
“좋으면서 튕기고 있네.”
말이 안 통하는 놈은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 말이 딱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회식은 항상 피곤하기만 했다. 차라리 남아서 잔업이나 한다고 할 걸. 공짜밥 먹으러 가자고 꼬신 박지민은 어디 있나. 보이질 않았다. 먼저 간 모양이다.
밖을 나와 정류장으로 향할 때였다.
“이주아! 주아야!”
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더니 내 팔을 낚아채갔다. 과장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건물 틈 사이 좁고 어두운 공간에 몸이 묶였다. 얼굴 앞으로 내밀어진 입술을 고개를 돌려 피했다. 늙은 몸에서 무슨 힘이 나오는지. 술까지 마셔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과장이 내 몸에 더 밀착하며 얼굴을 들이 밀었다. 역겨움이 올라왔다. 내 몸에 제 몸을 문질러대는데 기가 찼다. 시발, 핸드폰 어디뒀더라. 뒷주머니였나. 다행히 뒷주머니에 뭐가 잡혔다.
“몸 대준다고 소문도 난 년이 어디서 비싼 척이야.”
“과장님, 천천히 해요. 네?”
내 말에 과장이 더러운 웃음을 지어댔다. 진짜 역겨워서. 표정 관리를 하느라 얼굴에 힘을 마구 줬다. 과장이 눈치채지 못 하게 눈웃음을 살살 비추며 핸드폰을 만졌다. 대충 이 위치에 전화 번호부가 있지 않았나. 부를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경찰을 부르자니 한 통 속에 아주 늦게 올 게 뻔했다. 결국 박지민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과장의 숨이 목 언저리에 닿았다. 하, 진짜 더럽게. 전화가 걸려지긴 했는 지 신호음이 갔다.
“지민아, 여기. 우리 회식한 식당 사잇길. 빨리 좀.”
취한 과장은 내가 뭐라는 지엔 관심이 없었다. 빌어 먹을 손이 내 겉옷을 벗기려 했다. 하도 좁은 틈이라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박지민이 취해서 못 들었으면? 연락할 데도 없다. 박지민은 마지막 줄이었고 그 줄이 끊겼다면. 내 손으로 줄을 만들어야지 뭐.
“과장님, 저 쪽으로 잠시만. 저기서 해요, 네?”
“과장은 무슨 과장이야 딱딱하게. 오빠라고 해.”
오빠는 시발 무슨. 진작 녹음부터 했어야 했는데. 어쨌든 과장이 옆으로 살짝 물러났다. 틈이 생기자 바로 과장의 다리 사이를 걷어찼다. 과장이 짐승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다. 존나 힘드네 진짜. 과장을 발로 툭툭 쳤다. 반응이 없다. 술 기운이 더해져 아주 쓰러진 모양이다. 그대로 둔 채 밖으로 나가려 몸을 뒤로 돌렸다.
어.
“아,”
“......”
“한 발 늦었다.”
전정국이 한 쪽 입매를 시원스레 씨익 올렸다. 몸이 천천히 굳었다.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확인했다. 전화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전화가 연결된 번호는. 지겨울만큼 많이 본 열한 자리 숫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