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티즈앱 사각사각. 언제 들어도 아이들의 연필 소리는 참 좋다고 생각했다. 루한은 다 마신 머그잔에 커피믹스를 하나 더 털어놓고는 정수기로 물을 받으며 교실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수업시간에는 듣지 못했던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 진도의 수학 교과서를 이리저리 뒤적이는 소리, 문제집은 저 멀리로 던져두고 뒤로 돌아 대화를 나누는 여학생의 말소리, 빨간 색연필으로 죽죽 줄을 그어대다 실망하는 소리까지 모두.
"선배, 컵 봐요."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제 머그잔을 보니, 뜨거운 물이 가득 차다 못해 넘치기 직전이었다. 루한이 깜짝 놀라고는 머그잔을 당겼다.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커피 다 버렸네."
"손 데일 뻔 한 사람이 커피 버린 게 중요해요? 사 줄까요?"
두 번째로 든 생각은,
"니가 왜 여기 있어."
"...교생실습 몰라요 교생실습? 나름 잘생긴 교생이라고 인기도 많은데. 교생 오는 거 몰랐어요?"
알기야 알았지. 니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루한이 커피를 정수기 옆 쓰레기통에 쏟아부으며 말을 삼켰다.
"그러니까. 너 야자 감독하던건 어쩌고."
같이 사범대를 다니던 친한 선후배 사이이던 두 사람은 루한이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었다. 능글능글하고 막무가내인 성격인 세훈과 장난기있고 유한 성격의 루한은 알게모르게 죽이 잘 맞아서 가끔 섞여서 술도 마시고, 담당교수 하소연도 하며 그렇게 둘이서 캠퍼스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근 수 년 간은 연락이 없었는데.
루한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깨버리듯이 세훈이 불쑥 말을 던졌다.
"근데 선배 인기 많나보네. 내가 루한선생님이랑 친하다고 하니까 애들이 다 놀라요. 여기서도 예쁘다는 소리 죽어라고 듣고 사나봐."
아 예 예...내가 뭐 그렇지... 건성으로 말을 넘기고 보내려던 루한이 끝에 이어지는 세훈의 말을 듣고는 눈이 커졌다.
"나가요. 커피 사줄게."
야,너..너... 어이없음에 말을 잇지 못하는 루한의 팔을 잡아끌며 세훈이 걸음을 옮겼다.
"커피 사준다니까요? 옛날엔 단 커피만 물처럼 마셔댔던 것 같은데. 취향 그대로지?"
루한은 새삼 세훈이 대학 시절 자신의 취향을 기억한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야! 이거 학교탈출이라니까? 야! 애들은! 오세훈!"
"난 어차피 교생이라서 아쉬운 거 없음. 그리고 우리 기숙사생활 때 새벽탈출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면서 새삼스럽게 왜 이래요?"
이러다가 선배 잘리겠다. 걸리면 안되니까 뛰어요!
***
"오세훈 하여간 막무가내인 건 여전해. 응?"
루한이 눈을 흘기며 쏘아붙이다가 이내 표정을 풀고는 세훈을 바라봤다.
"연락도 없던 애를 여기서 보네. 교생 왔다는 거면 계속 사범대?"
"응. 뭐 그렇지. 선배는 여기서 뭐해?"
"내가 하는 게 한자나 중국어밖에 더 있겠어?"
하긴 그렇지. 세훈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루한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야. 너 그거 욕이지. 아마도? 오세훈 죽을래? 사회에서 벗어나 그 나이 또래의 20대 청년들로 돌아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스럽게 주먹도 갖다대어 보고. 루한은 마치 다시 사범대생으로 돌아가 세훈과 마주한 듯 했다.
"커피 나왔나 보다. 가져올게요."
세훈이 일어나 커피 두 잔이 담긴 트레이를 들고 가져왔다. 카페모카 한 잔과, 아메리카노. 얘도 취향은 진짜 안변해. 루한이 생각했다.
"형 아직도 단 건 다 좋아할 줄 알았어. 단 거 좀 그만 먹어."
"너도 쓴 커피만 좋아하면서 무슨 상관이래. 너나 나나."
루한이 톡 쏘아붙여 주고는 커피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앗뜨뜨!"
혀를 내밀고 헥헥대며 오세훈 물 가져와 라고 외치려 세훈을 본 순간, 이미 세훈은 엎드려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오세훈! 물! 아 뜨거워"
"아으 귀여워"
세훈이 소리내어 웃으며 루한에게 말했다.
"아뜨거 근데 뭐라고?"
귀엽다고. 세훈이 말을 맺음과 동시에 양 손으로 루한의 볼을 잡아 살살 흔들었다.
"선배 커피가 뜨거웠어요? 그랬어?"
아으. 오스흔. 으그 느아. 뭐라고요? 으그 느라그.
형체를 알 수 없는 말들이 한 남자의 웃음소리와 함께 어지럽게 커피 위로 흩어졌다.
| 역시 구상 후 퇴고없이 오픈! |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신알신 해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하게 받고 있습니다! 다음 조각에서 정리해 써 드릴게요:) 오늘도 너무나 예쁜 세훈이와 루한이ㅠㅠ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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