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면형! 매니저님! 사장님! 크리스형!” 대체 몇 번을 부르는 거야. 사장실 밖에서 들리는 백현의 목소리에 열어주지 않으려 잠자코 앉아 있던 준면이 이내 지친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이야? 묻는 준면에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한 손을 들어 올려 손인사를 하던 찬열과 백현이 얼른 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왜 왔어?”
찬열과 백현은 안중에도 없는 듯 턱을 괴고 마우스를 만지작 거리던 크리스가 여전히 시선을 노트북에 둔 채 관심이 없는 표정으로 툭 말을 내뱉었다. 그런 크리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비글 두명은 밝은 목소리로 합창하듯 말했다. 인기투표 하려구! 둘이 목소리 높낮이 차이가 꽤 있는 탓에 흡사 알토와 소프라노를 보는듯 했다.
응? 왠? 그제서야 관심이 가는지 사장실 문을 닫고 들어오던 준면이 찬열과 백현이 나란히 앉은 맞은편 소파에 기대듯 앉아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백현이 오늘만 해도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를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아니, 박찬열이….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은 아이러니 하게도 전부 찬열의 디스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형들이 마지막이야.”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는데?”
지금 2:2! 찬열의 말에 잠시 뭔가를 생각 하던 준면이 의아하다는듯 물었다. 왜 2:2 밖에 안 돼? 그 말에 사연이 많다며 착잡한 표정을 지은 백현이 하나하나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 귀여운 타오는 날 찍었구, 박찬열은 주방빽으로 경수표를 하나 얻었어. 아니, 그건 빽이 아니라니까? 우리 경수는 정말 날 좋아하는거야! 갑자기 또 싸움으로 번질듯한 분위기에 크리스가 둘을 말렸다. 어느새 크리스도 관심을 가지고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씽씽형은 김종대 뽑았어. 아니, 걔가 어디가 좋다고?” “그러니까! 보기에도 없는 사람을. 둘이 애인이래도 믿겠어, 그냥.”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죽이 척척 맞는 일명 찬백을 바라보던 준면이 포기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다음은? 다음? 다음은… 아! 김종인! 걔는 둘 다 아니래, 나쁜놈. 그리고 오세훈은 이해할 수 가 없다면서 자기가 마스코트여야 한대. 요즘은 막내들이 더 무섭다니까? 가만히 앉아 찬열과 백현의 궁시렁거리는 말을 듣던 크리스가 크게 웃었다. 맞는 말이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석이형은 나, 루한형은 찬열이 뽑았어.” “종대는?” “이거 걔가 낸 의견이라 자기는 중립을 지킨다던데?”
하여간, 김종대가 제일 문제라니까…. 조용히 한숨을 내 쉰 준면이 자신을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둘의 눈을 피했다. 형, 형은 누가 더 매력있는 것 같아? 왠지 둘의 모습이 밥을 기다리는 강아지들 같다고 준면은 생각했다.
“음, 우리 백현이가 매력이 좀 넘치긴 하지.” “그치? 아, 역시 형이 뭘 좀 안다니까!” “…근데 그 매력으로도 찬열이의 얼굴과 키는 따라갈 수 없어.” “…어?” “특히 키…….” “…….” “미안하다, 백현아.”
헐 준면이형!! 내가 사랑하는거 알지?? 준면을 끌어안으며 난리를 치는 찬열의 모습을 보는 백현의 눈이 멍했다. 백현아, 근데 진짜 귀여운거랑 매력은 니가 짱이야. 뒤늦은 준면의 위로가 들릴리 없는 백현은 우는 포즈를 취하며 준면에게 소리쳤다. 형도 나만큼 키 작거든?! 그 말에 준면의 표정이 탁하게 변했다. 저런 개자식.
“크리스형은?” “나야 뭐, 선택할 여지가 없네. 찬열이.” “헐, 왜!!!!!” “이제 그만 포기해, 변백.”
이제 이런거 가지고 그만 싸우고 일이나 해. 끝내기 위해 일부러 찬열을 선택한 크리스는 정말 현명했다. 물론 이럴때만. 믿을 수 없는 건지 흔히 사용하는 멘붕상태가 된 백현은 자신의 머리를 부여 잡았다. 말도 안 돼! 흡사 뭉크의 절규같은 심오한 모습에 찬열이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백현아, 넌 나한테 안 돼.
“다 필요 없어!! 민석이형이랑 타오한테 갈거야!!!” “백현아, 변백현!!”
헝헝, 백현이 우는 소리를 내며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사장실을 뛰쳐나가고, 그 뒤를 찬열이 남자 주인공이라도 되는냥 재빠르게 쫓아갔다. 아니, 이게 뭐야. 준면과 크리스가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똑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둘의 생각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듯 했다.
그렇게 찬열과 백현의 마스코트 투표는 타오와 민석을 제외한 모두에게 삐진 변백현과 이겼는데도 찝찝한 박찬열으로 허무하게 일단락되었다. 일주일 중 가장 바쁜 주말, 그 중에서도 토요일. 점심시간이 한창인 이데알레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째서인지 평소의 주말보다도 많은 인원에 매니저인 준면까지 합세해 서빙을 돕고 있었다.
“민석아, 바빠?” “아! 루한, 놀랐잖아!”
저녁타임에 찾는 손님이 많아 낮에는 한가한 민석이 정신 없는 홀을 슬쩍 보고는 서빙이나 도와야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와인을 정리하던 참이였다. 갑작스레 와인창고로 얼굴을 들쑥 내미는 루한에 깜짝 놀란 민석이 떨어뜨릴뻔한 와인을 고쳐 잡고 루한을 바라보았다.
“민석 미안, 괜찮아?” “응? 응. 루한 서빙 안 해?
와인을 제자리에 올려 두고 괜찮다는듯 고개를 끄덕인 민석이 루한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밖이 저렇게 바쁜데 이러고 있으면 혼나, 루한. 괜찮아, 민석 보고싶어서 왔어.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루한에 따라 웃은 민석이 루한을 이끌고 창고를 빠져나갔다. 얼른 가자, 혼나기 전에. 내가 서빙 도와줄게.
“경수야, 봉골레 하나랑 까르보나라 하나!” “응, 홀에 아직도 사람 많아?” “아까보다 많이 줄었어. 점심시간 거의 다 끝나가니까 조금만 더 힘 내!”
받은 주문을 전달해주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 온 준면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경수가 안타까운지 인상을 찌푸렸다. 안 쪽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타오와 찬열 역시 많이 지쳐 보였다. 다들 고생이 많네. 주방을 빤히 바라보다가 시간을 흘깃 본 준면이 다시 홀로 향했다. 2시, 많이 줄어든 손님에 그제서야 준면이 카운터 쪽으로 가 기지개를 폈다. 오랜만에 접시를 옮겼더니 어깨가 뻐근했다.
“형, 세훈이 계속 저기에만 있는데?” “어?”
지은 죄가 많아 간만에 준면에게 안마를 해주겠다며 이쁜짓을 하던 종대가 검지 손가락을 펴 창가쪽을 가리켰다. 어디? 한 참을 두리번 거리던 준면이 세훈을 발견하곤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전부터 계속 저기에만 있었어. 종대의 말에 준면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들만 있는 거 보니까 또 번호 따이는 건가? 잘생긴 외모탓에 세훈의 번호를 따려던 여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매 번 곤란해 하던 세훈의 얼굴을 떠올린 준면이 창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 세훈이, 형이 구해주러 간다!
“정말 맘에 들어서 그런데 안 될까요?” “아, 죄송해요… 제가 남자친구가 있어서….”
근데 웬 걸, 이건 세훈이 번호를 따이는 상황이 아니라 번호를 따고 있는 상황이였다. 오세훈 저 놈이 미자탈출 한지 얼마나 됬다고…. 잠시 발걸음을 멈춘 준면이 요상한 표정을 지었다. 딱 세훈이 타입이네. 얼굴도 하얗고 오목조목 예쁘게 생긴 여자에 고개를 끄덕인 준면이 곤란해 하는 여자도 그렇지만 일을 안 하고 작업이나 거는 세훈이 괘씸해서 그 테이블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이데알레의 매니저 김준면 입니다.” “아,네.” “우선 민폐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이 아이는 지적능력이 약간 떨어지는 아이라 따로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바쁜 틈에 이렇게 잠시 빠져 나왔나보네요.” “아니, 형. 잠깐….”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이상 행동을 자주 보이곤 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식사 되세요.” “네…….” “자, 우리 세훈이 가야지?”
정말 모자란 애를 다루듯 상냥하게 웃으며 자기를 이끄는 준면에 세훈은 머리가 멍했다. 지금 뭔 말을 한거지… 준면은 그렇게 이데알레의 잘생긴 서빙 하나를 또라이로 만들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