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니네 두달 전부터 사귄거 아니지?” “…사실 1년 넘었어.” “그럼 그렇지. 스킨쉽이 장난 아니더만.” 이야기를 골똘히 듣던 종대가 예리하게 묻자, 종인이 사실을 털어 놓았다. 흥,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는 종대에 경수가 얼굴을 붉혔다. 난 박찬열이랑 변백현때문에 이씽형 만났는데. 흥미로운 종대의 말에 세훈이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만났는데요?” “맞아, 쟤네 둘도 궁금해.”
우리 둘이야 뭐… 얼굴까지 들이밀며 묻는 세훈과 준면에 종대가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우린 저것보다 더―달달하게 만났는데. 그치, 형? 웃으며 묻는 종대에 이씽은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자, 들어 봐. 박수를 짝짝 큰 소리가 나게 두어번 친 종대가 모두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집중되자 만족스로운 표정을 짓곤 입을 열었다.
“아, 찾았다! 여기야!!” “힘들어죽겠네. 미리 알고 있어야지!” “원래 다 알고 있었어! 모르는척 한거야, 거리 구경 좀 할라고.”
투닥투닥, 투덜투덜, 오늘도 하루종일 싸우는 찬열과 백현에 종대가 말할 기운도 없이 축 늘어졌다. 평소 같으면 같이 합류해서 왁자지껄 난리가 났을 테지만, 백현이 맛있다고 그렇게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카페를 찾기 위해 2시간이라는 시간을 헛보내는 바람에 체력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리쬐는 햇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싸우는 둘에 종대가 혀를 내둘렀다, 얼른 들어가자, 쫌!
“어서오세요.”
카페의 크기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카페는 갈색과 연분홍색을 이용해 따뜻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여섯 테이블 정도가 놓여져있는 카페의 가장 구석 자리에 앉은 셋은 카페 이곳저곳을 구경하기 바빴다. 푹신한 소파에 귀여운 인형들까지 놓여있어서 그런지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찬열과 백현이 함께 앉고, 혼자 앉아 옆에 가방을 내려둔 종대가 테이블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메뉴판을 펼쳤다.
“헐, 다 맛있겠다.” “여기 엄청 맛있어!” “니가 맛있다고 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없어.” “아니, 여기는 진짜 대박이라니까?” “조용히 하고 메뉴나 골라, 이것들아.”
메뉴판 안에는 온갖 커피, 음료수, 케익 등 이쁘게 장식 된 음식들이 보기 좋게 나열 되있었다. 찬열과 백현이 빠른 속도로 음식을 고르고, 혼자 남은 종대가 아예 빠질 기세로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고, 저것도 맛있어 보이고… 음, 빨리 고르라는 찬열의 재촉에도 그저 메뉴판 이곳저곳을 살피기바빴다.
십분여의 시간이 흐르자,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커플의 계산을 끝낸 직원이 성큼성큼 셋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주문 하시겠습니까?” “바닐라 프라페 하나랑 카페라떼, 치즈케익 하나요.” “종대야, 넌 뭐 먹을래?”
모르겠어, 기다려봐…. 찬열의 물음에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던 종대가 또 다시 인상을 살짝 찌푸리곤 고민모드에 빠졌다. 한참을 그러다 결국 못 골랐는지 입을 몇 번 삐쭉이고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채로 직원에게 물었다. 가장 맛있는 케익 하나만 추천 해주세요.
“티라미스는 어떠세요?”
그 말에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직원의 얼굴을 바라본 종대가 순식간에 굳었다. 헐, 잘생겼다. 에, 에? 저도 모르게 나온 바보같은 말에 종대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본 유니폼에 달린 명찰엔 ‘레이’라는 이름이 가지런히 적혀있었다.
“제가 제일 잘 만드는거거든요.”
그런 종대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레이라는 직원은 보조개가 패이도록 예쁘게 웃을 뿐이었다.
“저 왔어요!” “오늘은 좀 늦게 왔네요?”
밝은 종대의 목소리가 자그마한 카페를 울리자 이씽이 방긋 웃었다. 오늘 안오는줄 알고 걱정했잖아요. 그런 자신의 말에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종대의 모습이 귀여웠다.
백현, 찬열과 처음 온 이후 종대는 케익이 맛있다는 핑계로 카페를 자주 찾아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부쩍 친해져 서로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사실 이씽은 아는 형이 운영하는 이 카페에서 한 달 동안만 함께 일을 해주기로 한거였지만, 매일 찾아와 케익을 먹는 종대가 귀여워 구경하다보니 벌써 세 달 이란 시간이 지나있었다. 이제 정식적으로 일자리를 구해야 하고, 정리해야 할 것도 이것저것많아 정말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종대가 눈에 밟혔다. 카운터에 앉아 종대를 구경하던 이씽이 종대에게로 터벅터벅 다가갔다. “카페 몇 시에 끝나는줄 알아요?” “네, 9시잖아요!” “그럼 그 때 잠깐 들릴 수 있어요?”
네? 예상치 못한 이씽의 말에 종대가 되물었다. 안 되는건 아닌데…. 살짝 고민을 하는 종대에 이씽이 환하게 웃었다. 제가 선물 줄게요. 선물요? 자신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게 귀여운건지 이씽이 종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럼 기다릴게요. 그 말에 또 한 번 종대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선물이 뭐에요?” “저말고 선물부터 찾는거에요?”
9시, 카페를 찾아오자마자 묻는 종대에 이씽이 짖궃게 웃어보였다. 에이, 아니에요…. 말끝을 흐리는 종대에게 아프지않게 꿀밤을 때린 이씽이 매일 종대가 앉는 테이블에 종대를 앉히고는 잠시만 기다리라 말한 후 주방으로 향했다. 뭐 하는거지…. 혼자 있는게 지루해진 종대가 의자에 기대 핸드폰을 확인 하고는 아무에게도 연락이 와있지않자 머쓱해져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색색의 빛반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바깥을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을 때, 이씽이 무언가를 한가득 가져와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우와, 이게 다 뭐에요?” “주려고 다 만들었죠.”
테이블에는 종대가 좋아하는 와플, 파르페, 케익 따위가 한가득 놓여있었다. 진짜 이뻐요! 흥분한 목소리로 감탄사를 내뱉던 종대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이씽을 바라보았다.
“이거 머, 먹어도 되는 거에요?” “그럼요. 전부 주려고 만든 거니까 맛있게 먹어요. 대신 남기지 말기.”
그 말에 잘먹겠습니다! 하고 밝게 인사한 종대가 고민하더니 항상 먹는 티라미스케익에 포크를 가져다댔다. 이씽의 솜씨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항상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에 종대가 감탄을 했다. 그 모습에 흐뭇한 표정을 지은 이씽이 턱을 괴고 종대를 구경했다.
“왜 안 먹어요?” “먹는것만 봐도 배불러요.”
그,그래도…. 자신의 먹는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씽에 왠지 부끄러워졌다. 계속 신경이 이씽에게로 가 헛손질을 하던 종대의 입에 와플에 가득 찍은 생크림이 묻었다. 헐, 쪽팔려…. 포크를 내려놓고 휴지를 찾기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종대에 이씽이 살풋 웃고는 옆 테이블에서 휴지를 가져와 직접 종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애기같아.”
몇 초 동안 그 말을 이해못하던 종대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아, 아니에요! 저 원래 안 묻히고 먹어요! 아, 그니까… 너무 맛있어서 그런거에요! 어, 이게 아닌데…. 얼굴이 붉어진 채로 횡설수설 하는 종대에 이씽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귀엽기는.
“제 이름은 알아요?” “네, 레이 아니에요?” “아, 그건 카페에서 편하게 하려고 쓰이는 이름 이에요. 본명은 장이씽.” “아, 그렇구나… 이름이 되게 특이하시네요.” “제가 중국인이거든요.” “헐, 몰랐어요….”
살짝 어눌하긴 했지만… 한국말 되게 잘하시네요, 신기한듯 자신을 바라보는 종대에 이씽이 미소지었다.
“나이는 어떻게 되요?” “22살이요.” “어, 저보다 한 살 많네요! 저는 김종대구요, 나이는 21살이에요.”
아…. 종대. 자신의 이름을 여러번 곱씹는 이씽에 종대가 귀엽다며 웃었다. 우리 편하게 말 놔요! 부쩍 둘의 관계가 가까워진것 같았다.
둘이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한참을 웃으며 말하다보니 부쩍 시간이 흘러있었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는 종대에 이씽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 이번주가 마지막이야. 그 말에 웃고 있던 종대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원래는 한 달만 하기로 했던거거든.” “…….” “이제 나도 자리를 구해봐야하고, 음… 할 일이 많네.”
이씽의 말에 종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왠지 눈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눈물을 참는 종대의 머리를 이씽이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울지마.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종대가 고개를 들어 이씽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친해졌는데 바로 헤어지네….” “그러게…….”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거야.” “당연하지.” “내 예감은 틀린적이 없어. 그러니까 만날거야.”
둘다 어딘가 굉장히 허전했다. 무언가를 갈구하는것 같기도 했고, 한구석이 아릿하게 저리는것 같기도 했다. 눈이 토끼마냥 빨개진채로 말하는 종대의 코끝을 살짝 꼬집은 이씽이 밝게 미소지었다.
반드시 다시 만나자, 알았지? 헐, 대박. 그러면 여기서 다시 만난거에요? 놀란 눈으로 묻는 세훈에 종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가 3년 전이니까 2년전. 그러니까 1년 후에 이데알레에서 다시 만났지. 종대의 말에 경수가 우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둘이 사귀는 줄 알았어.” “아, 나도.”
에? 종인과 세훈의 말에 종대가 빠르게 부정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데. 준면의 놀림에 종대의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 아, 다들 왜이래!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씽이 눈을 이쁘게 휘며 웃었다. 부끄러워 하는거야? 아, 아니라니까!
“그럼 세훈이랑 내가 제일 최근에 만났네.” “그러게요. 1년 밖에 안 되서 따끈따끈하죠.” “그래, 그러니까 우리 그만 하자.” “헐, 형.”
어! 만난 얘기 해줘! 이거 재밌다. 경수의 말에 세훈의 아련한 눈빛을 가볍게 무시한 준면이 그럴까? 하며 흥미를 보였다. 저 둘은 왠지 처음부터 장난 아니였을거 같아. 종인의 의미심장한 말에 준면이 눈웃음을 지었다. 예리한 놈.
1년 전, 이데알레 면접날. 면접관은 뻔하게도 크리스와 준면. 분명 자기가 둘이면 충분하다고 큰 소리를 치던 크리스였지만, 괜찮은 사람이 들어오질 앉자 짜증을 내는 중이였다. 내가 이래가지고 살겠나. 크리스를 힐끗 보던 준면이 한숨을 쉬며 지금까지 나온 사람들의 서류를 한 번 더 쭈욱 살폈다. 아니, 이렇게 많은데 왜 괜찮은 사람이 없니…. 밖에서 고생할 직원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지는 않았다.
“다음분이요.”
문 밖에서 민석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 키가 큰 남자 한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 잘생겼는데? 크리스와 준면의 눈이 간만에 빛났다.
“안녕하세요, 오세훈입니다.” “네, 의자에 앉아주세요.”
세훈이 크리스의 말에 바로 앞에 놓여져있는 하얀 의자에 소리나지 않게 앉았다. 준면이 세훈이 쓴 서류를 꼼꼼히 살핀 후, 예의상 미소 지으며 세훈을 바라보았다.
“잘생기셨네요.” “뭘 당연한 사실을.”
? 예상치 못한 답에 준면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여전히 무표정인 차가운남자 세훈에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나이는요? 21살이요. 크리스는 오랫동안 계속된 면접에 지쳐 굉장히 사소한 것들만 물어보았다. 그런 크리스를 째릿, 살짝 흘긴 준면이 서류를 한 번더 살피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서빙 하신다구요?” “네. 밀고 들어갈게 얼굴밖에 없어서요.”
?? 세상에 저게 무슨 망언이라니? 준면이 조심스럽게 세훈의 이름이 적힌 종이 옆에 엑스표시를 진하게 그렸다. 잘생긴 대신 또라이구나. 저런, 안타깝기도 하지…. 자신도 모르게 세훈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는데 뜬금 없이 크리스가 감탄하며 외쳤다.
“저 자신감 맘에 들었어. 우리 쟤 하자, 응? 나 힘들어.”
…저런 개자식. 저걸 사장이라고. 옆에서 평소 답지 않게 투덜거리는 크리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한 준면이 여전히, 그러나 아까보다는 부자연 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띄고 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환한 미소는 필수고, 언제나 예의있고 싹싹하게 구셔야해요.” “네.”
하여간 말은 겁나 잘해요. 준면은 자신의 입꼬리에 경련이 나는 것을 느끼고는 억지로 웃어보였다. 참자, 준면아. 그래도 저 또라이가 실전에선 엄청난 개념과 말빨을 자랑할지 어떻게 아니.
“그러면 저를 손님으로 생각하시고 한 번 주문 받아보세요.”
네, 짧게 대답한 세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준면에게로 다가왔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미소를 띄며 묻는 말에 준면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생각보다 괜찮네.
“음, 뭐가 맛있을지 잘 모르겠는데 추천 좀 해주세요.” “저는 어떠세요? 저는 그 쪽 마음에 드는데.”
…괜찮긴 개뿔. 아무렇지도 않게 생글생글 웃으며 하는 세훈의 말에 준면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 넌 영원히 아웃이야. 이번엔 빨간색 볼펜으로 엑스표시를 여러번 겹쳐그렸다. 그리곤 여전히 눈웃음을 지으며 웃고 있는 세훈에 준면 역시 따라서 눈웃음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이데알레에서는 또라이를 받지않….” “아주 좋아요, 그런 자신감.” ”감사합니다.” “아니, 저기 안받….” “사장 권한으로 오세훈씨를 채용 하겠습니다.”
…하, 개놈아……. 그 날 처음으로 준면은 크리스에게 평생 할 욕을 몰아서 했고,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개’자가 들어간 욕을 시전했다. 어느새 둘이 짝짝꿍 잘 어울려 노는 모습에 준면이 이마를 짚었다.
정말 영원히 머릿속에 남을 강렬한 첫만남 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