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 “응, 우리 세훈이 왜?” “사람을 미친놈으로 만들면 어떡해요!” “너 원래 미친놈 이였잖아.”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큰 세훈을 달랑달랑 끌고 가는 준면에 세훈이 틱틱대며 말을 걸었다. 아, 내 타입 이였는데…. 아쉬움이 가득 맺힌 목소리에 준면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누가 일 안하고 작업 걸랬나? 이제 얼른 다시 서빙해. 주방 가까이에 가서야 손을 놔 준 준면이 미련 없이 손을 휘저었다. 잘 가.
“형, 지금 질투 해요?”
그런 준면을 빤히 쳐다 보던 세훈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장난에 여자 여럿 울릴 법한 미소를 지으며 준면의 손목을 붙잡았다. 응? 갑작스런 말에 준면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음…. 진지하게 고민하는 준면의 모습에 오히려 세훈이 더 당황했다. 뭐야, 진짠가?
“세훈아.” “네.” “닥치고 가서 일 해, 개자식아.”
제발 쓸데없는 소리 그만 좀 하고, 응? 눈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준면에 세훈이 손목을 잡은 손을 스르륵 풀었다. 그럴리가 없지. 사실 잠시동안 준면이 머릿속으로 고민하던 내용은 어떤 좋은말로 이 미친놈을 보낼까, 였다. 그래도 선택한 단어가 그나마 약한 것은 막내를 위한 준면의 작은 배려 였다.
“알았어, 열심히 할테니까 좀 있다가 뽀뽀 해줘요.” “이런 미친….”
결국엔 험한 말을 내뱉는 준면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세훈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윙크를 날리곤 홀 으로 사라졌다. 금방 시야에서 벗어난 세훈에 준면이 코를 한 번 찡긋했다. 미쳤다 미쳤다 하니까 정말 미친건가.
“네, 이데알레 소믈리에 김민석 입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기억해 주다니, 고마워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유니폼을 단정히 정리하고 테이블로 찾아간 민석은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중년 부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서로의 안부를 간단히 전한 후, 민석이 찾는 와인의 종류를 정중하게 물었다.
“저희가 사또브리앙을 시켰는데 오랜만이라 추천 좀 부탁 드릴게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사또브리앙이라… 와인 창고로 들어가 잠시동안 고민을 하던 민석이 창고 안을 이리저리 살펴 보다가 곧 원하는 와인을 찾은건지 손뼉을 짝 소리나게 쳤다. 생각보다 높은 위치에 까치발을 들어 조금 힘겹게 와인을 꺼내곤 서빙카에 실었다.
“이 와인은 ‘깔베, 보졸레 빌라쥬’라는 보졸레 지방의 드라이한 테이블 와인 입니다. 이 지역 대표 품종인 가메로 만들어 졌구요, 선명한 퍼플 컬러가 이색적이며, 보졸레 지역의 특징인 부드럽고 프루티한 향기와 풍미가 잘 균형 잡힌 레드와인 이에요. 분명 사또브리앙과 어우러지게 무리 없이 드실 수 있을 겁니다.”
민석은 부부의 와인잔에 와인을 슬쩍 따라 권유 하고는 부부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하자 그제서야 예의 있게 살짝 미소 지은 후 서빙카를 끌고 뒤를 돌았다. ‘민석, 멋있어.’자신을 계속 지켜본듯 손을 입에다 모아 입모양을 뻐끔 거리는 루한에 민석이 따라서 손을 입에 모았다.‘나도 알아.’제대로 전해진건지 얼굴을 붕괴시키며 웃는 루한에 민석이 검지손가락을 펴 사장실을 가리킨 뒤 자신의 입에 가져다댔다. 쉿!
저녁을 먹은 후, 심심하다며 이데알레를 이리저리 방황하던 민석이 라떼아트를 하고 있는 종인을 발견 하곤 쪼르르 다가갔다. 우와, 우와! 탄성까지 내뱉으며 좋아하는 민석에 종인이 슬쩍 웃었다. 그렇게 신기해? 맨날 보면서. 응! 맨날 봐도 신기해. 바쁘게 움직이는 종인의 손을 지켜보는 민석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우와, 고양이네? 짱 귀여워!” “형 닮았어.”
응? 진짜? 카푸치노 위에 귀엽게 그려진 고양이가 맘에 드는지 눈을 떼지 못하는 민석에 종인이 피식 웃고는 머그잔을 민석의 손에 쥐어주었다. 형 줄게. 그 말에 신난 민석이 머그잔을 한참 들여다봤다.
“종인아, 잘 하고 있어? 어, 민석이 형도 있었네?” “경수형, 왔어?”
경수가 들어오자 급격히 밝아지는 종인의 얼굴에 민석이 혀를 차곤 경수에게 인사를 한 뒤 홀으로 나왔다. 세륜 커플, 내가 특별히 피해준다. 사실 종인과 경수는 몇개월 전부터 쭉 사귀고 있는 이데알레 공식 커플이다. 커밍아웃을 했을 때도 이데알레 사람들은 딱히 거부감이 없는 터라 모두들 종인과 경수를 축하해줬다. 민석 또한 마찬가지여서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지만, 요즘은 토할 정도로 다정한 분위기에 화가 나기도 했다. 커플들이란…….
“어, 크리스! 웬 일 이야?”
카운터에 모여 있는 비글들에게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중 사장실에서 나오는 크리스를 발견한 민석이 반갑게 인사했다. 사장실 안에만 쳐박혀 있더니…. 자신을 발견하곤 다가온 크리스에 민석이 고개를 조금 들어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사실 좀이 아니라 많이. 타오 보려고. 왠지 모르게 들뜬 목소리에 민석이 입을 삐쭉였다. 타오 빠돌이 어디 갈까봐.
“이건 뭐야?” “아, 이거 종인이가 만들어줬어. 귀엽지?” “응, 귀엽다. 너 닮았어.”
머그잔과 민석을 번갈아 보던 크리스가 그런 민석이 귀여운건지 볼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야, 아프!! 마구 뭉개지는 발음에 크리스가 더욱더 볼을 늘어뜨리며 웃었다. 한참을 민석의 볼에 집중 하고 있는데, 마침 저녁을 먹고 행복한 얼굴로 주방을 나오던 루한이 둘의 모습을 발견하곤 표정을 굳혔다.
“헐, 지금 뭐하는거야!!” “루한!” “야, 손 떼!!”
다가오자마자 크리스의 손을 떼어내곤 자신을 끌어 안는 루한에 민석이 얼른 커피를 고쳐 잡은 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그래 루한. 어디 봐 봐, 볼 빨개졌잖아! 민석의 턱을 잡고 이리저리 살피는 루한에 크리스가 흥미를 잃었는지 주방으로 사라졌다. 난 우리 타오나 봐야지.
꼼꼼히 얼굴을 확인한 후, 그제서야 크리스가 사라졌다는걸 알아차린 루한이 저 망할자식…. 하고 중얼거렸다. 아직까지 어리둥절해 있는 민석의 어깨를 잡은 루한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리스랑 놀지마.” “잉?” “쟤 멋진척 엄청 심해!” “어?” “그리고 성격도 엄청 이상해!” “저기 루한….” “내가 좋아, 쟤가 좋아?”
뭐지, 이 또라이는. 뜬금 없는 루한의 말에 이상한 표정을 지은 민석이 자신을 뚫어 버릴것만 같은 눈빛에 어색하게 웃었다. 당연히 루, 루한이 더 좋지! 하하. 그제서야 만족스러운건지 해맑게 웃은 루한이 민석을 끌어 안았다. 나도 민석이 제일 좋아. 어!! 루한, 커피!!! 다급한 외침에 머그잔을 자기 손으로 옮겨 담은 루한이 더 세게 민석을 안으며 속으로 크리스를 까기 시작했다. 사장 이란게…….
한 편, 준면에게 까이고 루한에게 까이는 양파 같은 남자, 양파남 크리스는 그런 사실을 알기는 하는지 주방에서 타오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