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점점 날이 풀리는 기분에 슬그머니 집에서 빠져나왔다. 꾀죄죄한 모습에서 말끔한 모습이 되어 나오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하얀 스키니진에 연갈색 니트를 입고 한발자국 나와 햇빛 아래에 서니 따끈한게, 느낌이 정말 좋았다. 오랜만에 나온만큼 뭘 해야겠다 싶어 무작정 김명수를 부르고 버스를 타러 나갔다. 가만히 정류장에 홀로 앉아 멍하게 있었다. 은근슬쩍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멀리서 다가오는 버스를 탔다. 동네가 동네인 만큼 두 가지의 버스만 다니는 이 곳에서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버스 기사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따뜻하고 나른한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있으니 한참을 자고 나왔음에도 무척이나 졸렸다. 하품을 쩍, 하고 창문에 기대 눈을 감았다. 앞좌석에서 연 창문덕에 바람이 흘러 들어왔지만 그마저도 기분좋게 시원한 바람이어서 가만히 있었다. 드르륵, 거리며 머리가 창에 부딪치는게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냥 참고 잠에 빠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이성열, 일어나"깜짝놀라 눈을 뜨니 김명수가 내 자리 옆에 서 있었다. 아직 김명수가 탈 정류장은 멀었는데… 의아한 내 얼굴을 본 김명수가 웃으면서 내 볼을 쓰다듬었다. 너 이러고 있을까봐 한참 전에 걸어서 다른 정류장 갔지. 킥킥 웃는 김명수를 보다가 따라 웃었다. 나른하기 그지없었다. 가만히 서로를 보다가 내릴 정류장이 되어 버스에서 내렸다. 어디 갈래? 기분 좋은 웃음을 입가에 걸치고 김명수는 내게 물었다. 딱히 계획을 세우고 나온 것이 아니라 일단 허기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롯데리아. 햄버거가 먹고싶다는 김명수를 따라 들어와 새우버거 세트 두 개를 시켰다. 이거 가지고 모자랄 거 같아. 깔끔히 김명수의 말을 무시하고 진동벨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웅웅, 하고 테이블 위에서 울리는 진동벨을 잡아 냉큼 햄버거를 받으러 갔다. 예쁜 여직원의 웃음을 보다가 트레이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저 여자 이쁘다."작게 중얼거리는 김명수의 목소리가 거슬렸지만 애써 무시하고 햄버거 포장지를 뜯었다. 내가 한입을 먹을 사이 두입을 먹은 김명수는 콜라를 쪽쪽 빨며 나를 보고 있었다. 왜, 라는 뜻을 가득 담아 김명수를 보고 있으니 녀석이 씩 웃어보였다. 따라서 웃어주고 마저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우리 둘 다 먹는 동안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햄버거 포장지를 내려놓고 나서야 서로를 쳐다볼 여유가 생겼다. 케찹은 여기에, 라는 문구를 따라 네모난 칸에 케찹을 가득 짜놓고 감자튀김을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콜라를 먹던 김명수에게서 쪼로록, 하는 소리가 들렸다. 피식 웃고 내 콜라를 건네주었다. 싱글 웃은 김명수에개 따라 웃어주고 감자튀김을 조금 빼앗아 왔다. 살짝 울상이었던 김명수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날씨가 날씨라 그런지 마음이 붕붕 뜨는 기분이었다. 감자튀김까지 모두 먹어치우고 치즈스틱 두개를 사서 먹으며 나왔다. 통통한 배를 톡톡 치다가 옷이 사고 싶다는 김명수를 따라 옷가게로 항했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하며 따끈하게 내리는 햇살은 마치 오늘이 봄인것처럼 느끼게 했다. 앙상한 가지뿐인 나무들의 가지마다 귀여운 벚꽃들이 달려있어야 할 듯 했다. 결국 벚꽃 생각으로 길을 걸어가던 나는 옷가게를 혼자 지나쳐 다시 길을 되돌아가야했다. 김명수의 비웃음을 사긴 했지만, 날이 날인 만큼 쿨하게 넘어가기로 했다."이거 봐, 이거 괜찮지 않아?"꼭 김명수의 취향과 맞는 까만 니트를 들고 와 물어보는 녀석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나도 내 앞에 있는 옷들을 뒤적였다. 너는 이거 입으면 잘 어울릴 거 같아. 김명수가 연한 분홍색의 니트를 들고 와 내밀었다. 가만히 니트를 보다가 이건 아닌 거 같아서 고갤 저었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김명수가 대뜸 그 니트를 계산하고 오더니 내게 척 내밀었다. 입고 나와, 선물이야. 가만히 니트를 보다가 탈의실로 가 얌전히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잘 어울린다. 생글 웃는 김명수의 얼굴이 어찌나 이쁘던지. 니트가 좀 두꺼워져서 그런지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결국 김명수는 제 취향대로 까만니트를 샀다. 무슨 심보인지 탈의실로 가 니트로 갈아입고 나온 김명수는 한 개의 쇼핑백 안에 제 옷과 내 옷을 넣어 든채로 나를 데리고 가게에서 빠져나왔다. 야, 이성열. 가게를 나와 벚꽃이 피면 이쁠 거 같은 거리를 걸어가던 도중 김명수는 나를 불렀다."나중에 여기 벚꽃 피면 나랑 보러오자."김명수의 말에 멍하게 있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과 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벤치에 앉았다. 꼭 어디에서는 솜사탕을 팔고 아기들이 뛰어다닐 것 같은 분위기였다. 솜사탕.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김명수가 잠깐민 기다리라며 일어나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난 순간 김명수가 미친 줄 알았다. 5분정도가 지나고 돌아온 김명수의 손에는 분홍색 솜사탕 하나와 하늘색 솜사탕 하나가 들려 있었다. 분홍색 솜사탕을 내게 내민 김명수가 맛있게 먹으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애 취급을 받는 기분이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기분이 좋았다. 분홍색의 솜사탕을 조금씩 뜯어먹으면서 김명수를 힐끔거렸다. 열심히 파란색 솜사탕을 먹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오늘따라 좀 웃겼다. 결국 앉아서 솜사탕을 다 먹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얼른 벚꽃이 피어야 하는데."김명수의 중얼거림이 작게 들려왔다. 괜히 호기심이 일어 김명수를 보았지만 녀석은 그저 생글생글 웃을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어- 여자 꼬셔서 오려고 그러는 거지? 장난치듯이 말하고 나니 김명수가 살짝 어색하게 웃고 있는게 보였다. 내가 뭘 잘못한건가 싶어 순간 겁이 났다. 내 머리를 쓰다듬은 김명수가 손가락으로 뺨을 가볍게 쓸고 지나갔다. 순간 얼굴이 달아올라 창피했다. 킥킥거리며 웃은 김명수가 가볍게 뺨에다가 입을 맞추었다. 너무 놀라서, 혹은 너무 좋아서 김명수를 쳐다봤다. 뭘 봐, 부끄러. 내 눈 위로 손을 얹어 시야를 가린 김명수가 나를 꼭 끌어안았다. 좋아해, 성열아. 귓가에 속삭이는 그 목소리가 얼마나 좋던지. 봄은 아니였지만 봄만큼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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