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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러더라.

처음 만난 두 사람을 엮는 단어는 인연이고

기약 없던 그 인연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면

그건 운명이라고.




운명이라니, 정말 멋진 말이지 않아?










베리문
; 01.

너는 내 운명일까?










 곧 여름 방학이 끝난다. 방학식이 끝나고 곧장 집에 달려와 빨간 색연필로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밤낮없이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도, 푹푹 찌던 더위도 이제 안녕이라는 소리다. 그건 좋긴 한데. 달력 가운데 자리 잡은 동그라미를 보자 마음이 착잡하긴 했는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마루에 엎드렸다.






"생명과학 준비물이…, 화분 하나,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의 씨앗 하나. 종류 상관없음."

"문학 감명 깊게 읽은 책 감상문 써오기, 30줄 이상…"






 뭔가 좀, 이런 방학숙제 말고는 방학을 알차게 보냈다 할 만한 게 없는 건가. 종이 한 장에 빼곡히 적힌 숙제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종이를 다시 접어 두고는 몸을 돌려 누웠다. 전정국, 언제 와? 작은 자판을 꾹꾹 눌러 정국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정국은 나와 같은 동네에 살다가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서울에서 다시 전학을 왔다. 이모와 이모부는 일 때문에 정국이를 우리 집에 맡긴다고 했다. 엄마는 해외 출장에, 아빠는 서울에서 일을 하시는 바람에 나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굳이 멀쩡한 집을 두고 할머니 집에 가려니 또 좀 그렇고. 그것도 그럴게, 정국이 잘 부탁한다면서 용돈하라고 만 원을 꼭 쥐어주시는데 거절을 어떻게 하냔 말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정국이 꼭 좀 부탁할게. 정국이가 학교를 굳이 여기로 오겠다지 뭐니."

"괜찮아요! 제가 학교 잘 데리고 갈게요."






제 부모님 뒤에 꼭 숨어있더니 내 대답에 고개를 빼꼼 내미는 정국이었다.






"누나, 잘 부탁드려요."

"응, 말 편하게 해도 되는데."






 얼굴도 확실히 부티가 났고, 높낮이가 있던 말투까지 차분했다. 정국은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어색한 느낌이 들어 정국이 들고 있던 캐리어를 마당 안으로 끌었다. 나 같으면 서울에서 고등학교 다닐 텐데 굳이 여기까지.


 여하튼 우리 마을에서 정국이 얼마나 유명한가 하면, 정국이 전학 온 첫날부터 다른 동네 아이들까지 정국의 얼굴을 보겠다며 학교 앞에 줄을 서있었다. 같이 하교를 하는데도 졸졸 따라오는 아이들을 떼어놓는데 애를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정국의 여자친구 덕분에 그 일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조그만 휴대전화를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정국에게 돌아온 답장이 없었다. 아홉시 구분. 제 여자친구를 데려다주고 오겠다며 급하게 나간 정국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남자애라지만, 누나로서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다. 단축키 2번을 꾹 눌러 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열리는 대문에 휴대전화를 닫게 되었지만.


 근데 전정국이 조금 이상하다. 원래라면 나 왔다, 뭐 하냐 등 무슨 소리라도 내야 할 정국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없다. 슬리퍼에 발을 대충 끼워 넣고 정국에게 다가갔다.






"… 야, 너 울어? 전정국."

"헤어지자 더라, 수진이가."

"이번엔 또 왜."






 전정국이 눈물을 보일 때는 정말, 단 한가지 경우다. 지금 정국의 여자친구인 수진이와 헤어지고 돌아오면 꼭 눈물을 쏟았다. 정국이 처음 헤어지고 왔을 때 여자친구가 뭐 대수냐며, 수진이랑 결혼이라도 할 거냐며 괜찮다고 토닥여준 날은 밤새 정국을 달래야 했다. 그날 이후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적응이 되긴 한 건지, 정국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곤 했다.






"오늘 학원에서 선생님이 초코우유 줬거든. 근데 수진이가 초코우유 싫어하는 거 깜빡하고 먹을래, 물어봤는데 수진이가 화났나봐. 그래서 방금 수진이 만나러 갔는데 안 만나준대. 잘 거래."

"… 뭐?"






 고작 저런 것 때문에 싸운단 말이야?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내가 뭐라던 말던 다시 눈가가 벌게지는 정국에 방에서 휴지를 들고 나와 몇 장을 뽑아주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나를 향해 돌아가던 선풍기도 정국 쪽으로 돌려주었다. 후덥지근한 이 날씨에는 이만한 배려가 없으니까 말이다.






[방탄소년단/김태형] 베리문 ; 01 | 인스티즈


"… 진짜 확 그냥 헤어질까 봐."






 그렇게 제 여자친구 없이 못 살 듯 굴던 정국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다. 더군다나 정국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미쳤어, 수진이 없으면 못 사는 애가 뭘 헤어진대. 언제 울었냐는 듯 장난스럽게 말하는 정국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정국의 등짝을 한 대 후려쳤다. 아프다며 입을 비죽이더니 이번에는 내게 질문을 한다.






"옛날에 누나도 그 형이랑 맨날 붙어 다니더니. 그 형은 아직 이래?"

"응. 이름도 모르는데 뭐…"






 근데 하필 그 주제가 걔냐고. 벌써 그 아이를 보지 못한 것도 10년이 흘렀다. 그래, 서울까지 가서 굳이 다시 내려올 필요가 없잖아? 애써 합리화를 하려 했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대야에 가득 담겨있던 딸기를 하나 집어 들었다. 고작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지만, 그 아이의 얼굴을 제외하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천식 치료는 잘 되었는지, 친구들은 잘 사귀었는지.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은데 너는 아무 소식이 없다. 딸기를 요리조리 살피고는 입에 쏙 넣었다. 상큼하면서 달콤한 향이 입안에 퍼진다. 정국은 내 눈치를 보는 듯싶더니 곧 시선을 옮긴다.




… 다시 온다면서, 거짓말.










베리문
Berry Moon










"누나, 우리 지각인 것 같은데."

"… 아, 좀. 오늘 방학이잖아."






 아침부터 나를 흔들어깨우는 정국에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럼에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정국에 나도 쓸데없는 오기가 생겨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방학인데도 꼭 이래야 되냐. 잠에 취해 웅얼거린 말을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정국이 길게 숨을 뱉었다.






"무슨…, 달력에 표시도 이상하게 해놓고는."

"뭐?"






 이불 안에 묻힌 멍청한 대답에 정국이 결국 힘을 썼다. 내가 있는 이불을 통째로 끌어버리는 바람에 나도 같이 끌려 나오고 말았다. 힘도 더럽게 세서 말이야. 아침부터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얼핏 보니 정국은 잠옷이 아닌 것 같아 고개를 들었더니, 역시 교복을 입은 상태다.






"아까 일어난 거였으면 나 좀 깨우지 그랬어."

"계속 깨웠는데 안 일어나는데 어떡해. 이것도 겨우 깨운 거야."






 나를 깨우느라 자기도 지각이라며 대문을 나가버리는 정국에 얼이 빠졌다. 그도 잠시,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준비를 한다. 교복까지 입고 나니 아홉시. 어떻게 해도 오늘은 지각이다. 한숨을 푹 쉬고는 대문을 나섰다. 대문을 잠그는 것도 잊지 않고.


 내가 걷는 길 옆으로는 모두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차도 잘 안 다녀서 길 한가운데서 걸어도 되는데 오늘 같은 날 느긋하게 걸어봐야지. 논밭을 조금 지나면 딸기가 자라는 하우스가 있는데, 어릴 적부터 딸기를 좋아했던 탓에 할아버지가 딸기를 가득 심으셨다. 딸기만 며칠 전에 할아버지 일손을 도와주러 정국이랑 같이 하우스에 간 적이 있는데, 찐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느낌이었달까.


 하우스에 들어가 아침으로 때울 딸기 몇 개를 땄다. 더운 공기가 훅 끼쳐와 금방이라도 땀이 줄줄 흐를 것 같아 잽싸게 하우스를 빠져나왔다. 옆에 있던 호스를 틀어 딸기를 씻었다. 하마터면 호스를 들지 않고 트는 바람에 교복이 엉망이 될 뻔했다. 한 손에 볼록하게 찬 딸기를 입에 넣고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등교 시간이 훌쩍 지난 학교 주변은 한적했다. 학교 정문을 들어가려던 참에 정국에게서 메시지 몇 통이 도착했다.






-곧 윤기쌤 시간

-언제 와

-과학 준비물 챙겼지?






 과학 준비물이라면, 어제 읽었던 종이에 분명 쓰여 있었는데. 낭독까지 했는데, 그게 당장 오늘일 줄은 몰랐을 일이다. 조금 전까지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었어. 답장도 잊은 채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학교 맞은 편에 작게 자리한 문구점으로 냅다 뛰었다.








"어어, 마! 다친다."






 한적한 거리를 메우는 클락션 소리에 놀라기도 전이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탓에 문구점 앞에 도착하려는 순간, 큰 손이 나의 팔을 잡아 붙들었다. 시원한 비누 향이 훅 끼쳐왔다. 얼떨결에 그 아이의 뒤에 숨은 것 같은 자세가 되어버리자, 너무 놀란 나머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남자와의 접촉은 아빠, 정국이가 다였던 터라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곧 나와 그 아이 옆으로 트럭 한 대가 다가와 속도를 낮춘다. 운전석의 창문이 열리자마자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아이는 연신 사과를 해댄다. 거 학생, 아무리 촌이라지만 길 좀 잘 보고 다녀. 살짝 짜증이 섞인 듯한 말을 끝으로 트럭은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그 아이는 트럭이 멀어진 후에도 내 팔을 놓지 않았다. 교복을 보아하니 옆 동네의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 같다. 우리 마을에 고등학교는 여기랑 옆 동네에 두 개 밖에 없으니 확실하다. 조용해지니 어색함이 몰려오는 것 같아 목을 가다듬는 척 소리를 냈다. 내 예상에 맞게 역시 그 아이의 시선이 나에게로 옮겨진다. 저, 이것 좀…, 그 아이에게 잡히지 않은 팔을 들어 그 아이에게 붙들린 내 팔을 가리켰다. 아, 미안타. 그제서야 머리를 긁적이며 팔을 놓아주는 아이다.




 잠깐의 정적. 그 정적을 깨기 위한 것인지 이번엔 그 아이가 헛기침을 한다. 화제를 바꾸려는 듯 툴툴거리더니, 곧 내 얼굴 앞에 제 얼굴을 들이민다.








[방탄소년단/김태형] 베리문 ; 01 | 인스티즈


"조심 좀 하고 댕기라. 사고 현장 목격하는 줄 알고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근데, 우리 어디서 본 적 없나."






 잘생겼다. 확실히 이목구비가 뚜렷해 누가 봐도 잘생겼단 소리가 절로 나올 얼굴이었다. 그 아이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졌고, 유독 말의 높낮이가 강했다. 키도 나에 비해 훨씬 컸다. 우리 동네에 산 지 18년째, 처음 보는 아이인 듯하면서도 낯익은 얼굴이다. 내 앞에 있는 아이가 뭐라 하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얼굴에 열이 오를 데 까지 올라 땀이 삐질 났다. 얼굴이 터질 것 같아 급한 대로 그 아이의 얼굴을 두손으로 밀었다. 의외로 그 남자아이는 순순히 얼굴을 멀리해주었다. 푸하, 고개를 숙여 숨을 뱉었다. 그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더니, 손목에 걸쳐진 시계를 확인하고는 입에 물린 사탕을 뺀다.






"내 가봐야 된다. 오늘 늦게 일어나서 준비물 사러 온 기라서."






 간다.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그 아이는 사탕을 흔들며 뛰어가버렸다.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잠시 어릴 적의 웃음이 예뻤던 소년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바로 고개를 저어버렸다. …에이, 말도 안 돼. 그 아이의 온기가 남아있는 팔을 만지작거린다.




 이상하게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 아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냥 스쳐가는 인연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던, 그런 만남.










베리문
Berry Moon










"사왔어?"

"어…"

"더위 먹었냐, 힘이 없는데."






 정국의 물음에 또다시 고개를 젓고는 책상에 올려놓았던 가방 위에 엎드렸다. 자꾸 마음에 걸린다.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인사도 못 하고. 이름도 모르고…,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기분에 가방에 고개를 파묻었다. 나는 2학년, 정국은 1학년이지만 학교 인원수가 부족해 학년 구분 없이 두 반으로 나누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 말은 즉 졸업할 때까지 전정국이랑 짝이라는 소리다. 또래 여자아이들에겐 몰라도 나에게는 잘해줬기에 별생각은 없었다. 장난을 좀 치는 것 빼고는. 


야, 쌤 왔어. 손가락으로 나를 콕콕 찌르는 정국에 힘없이 일어났는데 선생님은커녕 반 아이들도 몇 없었다. 다시 책상에 엎드리려는데 정국이 말을 걸어온다.






"오늘 읍내 가자."

"내가 가잘 땐 싫다더니, 오늘은 웬일로?"

"그냥. 떡볶이 먹고 싶어서."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오늘 일어났다. 읍내에 나가자고 하면 귀찮다며 질색을 하던 정국이 먼저 읍내에 나가자고 얘기를 꺼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거절을 하면 또 그것대로 삐질 것 같은 정국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수진이는 어쩌고. 괜찮아?"






 수진의 이름이 언급되자 정국은 입을 꾹 닫았다. 그냥 어깨만 으쓱일 뿐, 더 이상의 말은 오가지 않았다. 어색함을 무르려 어떻게든 말을 꺼내보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와중, 수업 종이 침과 동시에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자연스레 넘길 수 있었다.






"개학 첫날부터 수업하기는 조금 그렇지? 준비물은 다 챙겨왔을 거라 믿고. 화분에다가 흙 넣고, 씨앗 심는 것까지 할 거야."

"윤기 쌤, 흙은요?"

"흙은 그냥 화단에 흙 조금 퍼와. 운동장 흙 퍼 오는 놈은 맞는다."






 그 말을 끝으로, 아이들이 하나씩 내려가 흙을 퍼 온다. 정국이 내 흙까지 퍼 와준 덕에 나는 굳이 내려가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당연히 딸기 씨앗을 샀고, 정국이는 나팔꽃 씨앗을 산 듯했다. 문구점 가니까 나팔꽃 씨앗이 제일 앞에 있던데. 고민도 없이 정말 아무거나 산 것 같았다. 정국이 화분에 큼지막하게 제 이름을 적더니, 네임펜을 내밀었다. 펜을 받아 화분 가운데에 이름을 적었다. 딸기, 김탄소. 언젠가 어릴 적의 작은 소년이 나를 찾아온다면, 그때는 꼭 이름 알아내서 적어줄 거라고 다짐하면서.






"쌤, 첫사랑 얘기해주세요."

"첫사랑? 쌤도 너네처럼 꽃 심고, 관찰 일지 쓰고 했던 시절이 있었어. 그때 한창 유행했는데, 화분을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주면서 고백하고 그랬지. 쌤도 그랬어."

"우웩, 쌤. 그렇게 안 봤는데 영…"

"뭐, 인마. 지금까지 연애하고 있으면 됐지."






 자기가 질문을 하고는 토하는 시늉을 하는 정국에 호석이 아프지 않게 머리를 쥐어박았다. 윤기는 학교 내에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매사에 귀찮은 사람인 것 같으면서도 잘생긴 외모에, 학생들의 고민도 잘 들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저런 사람이랑 연애하는 여자가 진짜 성공한 거지. 첫사랑, 연애. 나에게는 너무도 먼 단어들임이 틀림없다.






"쌤, 첫사랑은 기분이 어때요?"

"나도 모르게 보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고 상대방을 봤을 때 아무 이유 없이 두근거리지. 그게 첫사랑이야. 첫사랑 만의 느낌이 있어."






 나의 질문에 정국이 토끼 눈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나도 이런 질문을 한 나 자신이 놀라웠다. 윤기는 자기가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는지 입동굴까지 드러내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두근거리면, 이라… 어릴 적에 그 소년이 고백을 했을 때도 그랬고, 아까 문구점에서 만난 아이를 봤을 때도 그랬다.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던진 질문인데, 답을 들으니 더 헷갈렸다. 답답한 마음에 화분의 흙을 푹푹 퍼냈다. 씨앗을 넣고 흙을 다시 덮어 물을 주고 나서야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집에서 키워올 사람은 알아서 키워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윤기가 반을 나갔다.










베리문
Berry Moon










 종례가 끝났는데도 아까 윤기의 답변을 제외하고는 머리에 남는 것이 없었다. 상대방을 봤을 때 두근거리면 그게 첫사랑이지.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정국을 볼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면, 그 남자아이를 봤을 때는 확실히 기분이 이상했다. 가방을 품에 안은 채 칠판만 응시하고 있자 정국이 내 눈앞에서 손뼉을 친다.






"놀랐잖아."

"떡볶이 먹으러 가자."






 청소가 끝났는지 용구함을 정리하고는 가방을 메는 정국이다. 나도 품에 안고 있던 가방을 메었다. 아까 햇볕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가지런히 두었던 딸기 화분을 집어 들어 정국의 뒤를 따라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아까 그 남자아이를 마주쳤던 문구점 앞은 분명 아무도 없었지만, 언뜻 그 아이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읍내는 학교에서 조금 먼 거리에 있어 꼭 버스를 타야 했는데, 문구점 옆 버스 정류장에 마침 마을버스가 도착해 바로 탈 수 있었다.






"근데 정국아, 나 아까 준비물 사느라 돈 다 썼는데."

"됐어, 내가 먹고 싶다 한 건데. 사줄게."






 정국의 말에 기분이 좋아져 작게 주먹을 쥐어 흔들었는데, 그걸 또 정국이 봤나 보다. 버스 안이라 창문을 보며 웃음을 참는 듯했다. 그렇게 끊긴 대화 뒤로는 윤기가 했던 말을 몇십 번이고 곱씹었다.


진짜 오랜만에 와본다. 누가 자꾸 귀찮다고 안 간다는 바람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주위를 둘렀다. 확실히 차도 꽤 오갔고, 상가들이 들어차있었다. 정국이 들으라는 듯 크게 얘기하자 정국이 헛기침을 하며 떡볶이 집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자리에 앉자 떡볶이 2인분이 버너 위에 올려졌다. 떡볶이 냄새에 다시 배가 고파져 포크를 입에 갖다댔다. 저녁이야, 이거. 정국은 떡볶이를 국자로 몇 번 뒤적이더니 작은 그릇에 조금 덜어주었다. 정국의 그릇에도 떡볶이가 담기고, 오물거리는 것을 보고서야 나도 떡 하나를 입에 넣었다. 금방 그릇에 담긴 떡들이 없어지자 다시 국자를 들었다. 아무래도 문구점에서 봤던 아이에 대해 정국에게 얘기해봐야 할 것 같아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야, 나 오늘 걔 닮은 애 봤다?"

"누구? 아, 그때 그 형?"

"어. 근데 잘생겼고, 키도 컸어. 한…, 너만 했을걸?"

"그냥 닮은 사람이겠지. 올 거였으면 누나집 찾아왔을걸."






 아무래도 그렇겠지…. 예상외로 시큰둥한 정국의 대답에 시무룩해져 포크를 놓았다. 더 안 먹냐는 정국의 물음에도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국이 남은 떡볶이를 마저 먹는 동안 화분의 흙만 콕콕 찔러대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정국은 떡볶이를 남겼다.


솔직히 말하면 정국의 말이 맞았다. 내가 사는 집은 어릴적부터 바뀐 적이 없었고, 어릴 적의 그 아이는 그 집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꼭 다시 보러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당연히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내심 아까 그 아이가 어릴적의 그 아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에 느꼈던 감정과, 오늘 아침에 그 아이를 보고 느낀 감정이 꽤 비슷해서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이다.






"내가 방금 알아봤는데, 저기 노래방 옆에 오락실 생겼대. 한 번만 가주라."

"뭐 애도 아니고"






 순전히 내 바람이었던 것은 맞지만, 정국이 딱 잘라 얘기하는 바람에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계산을 하고 지갑에 거스름돈을 넣으며 나오는 정국의 팔을 무작정 잡아당겼다. 귀찮다는 정국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오락실 쪽으로 정국을 끌었다. 정국은 내가 기분이 별로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조용히 오락실까지 끌려왔다.






"이 판만."

"아, 가자고!"






 애랄 땐 언제고 한 시간 째 게임기 앞에 앉아 엉덩이를 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한 판을 하면 무조건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정국은 열판 중에 아홉 판을 졌다. 분명 열심히는 하는데 왜 다 지냐…. 정국이의 약점을 드디어 찾은 것 같았다. 진짜 이번 판 만이야. 못이기는 척 플라스틱 의자를 끌고 와 정국의 옆에 앉았다.


 옆에서 응원을 하면 뭐 하냐. 정국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화면에는 정국이 조작하던 캐릭터가 쓰러져있었다. 아, 왼쪽으로 가면 이기는 건데! 입을 삐죽이며 가방을 둘러메는 정국에 나도 화분을 챙겨 들었다. 오락실을 막 나가려는 순간,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들어왔다. 교복을 보아하니 바로 옆 동네의 고등학교 학생들인 것 같다. 그러고보니 아까 걔도 저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 무리에 아까 본 아이도 있을까 하는 마음에 살짝 기대를 했다.




 어, 지민이 형? 정국의 목소리에 제 친구들와 얘기하며 들어오던 지민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냐는 둥, 서울 사람이 다 됐다는 둥 쉴 틈 없이 말을 하더니, 정국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반갑게 맞이하는 지민이었다. 지민은 꽤 살가운 성격인 듯하다. 귀여운 눈웃음 덕에 더 그래보였다.






[방탄소년단/김태형] 베리문 ; 01 | 인스티즈


"옆은 여자친구야?"

"어우, 절대 아니요."






 지민의 물음에 손사래까지 쳐가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뭘 그렇게까지 질색을 하냐.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용히 중얼거리는 정국이다. 지민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웃더니 편하게 말해도 된다며 말을 덧붙였다. 정국이 지민에게 나를 소개해준 덕에 잠시 어색함을 달랠 수 있었다. 또래 나이의 친구가 하나 생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져 화분을 만지작거릴 때 즈음, 지민이 정국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닥이는 바람에 들을 수 없었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정국이 지민을 끌고 어디론가 급하게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멍청하게 서있어야 했다.


 곧 오락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는, 아침과 똑같이 사탕을 물고 있는 그 아이가 있었다. 아침에 만났던 그 아이가 조금 놀랐는지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방탄소년단/김태형] 베리문 ; 01 | 인스티즈


"……."






심장이 두근거린다.

자꾸 어릴 적의 소년과 네가 겹쳐보인다.

오늘 처음본 네가, 좋아질 것 같아서 두렵다.






두번째 만남.

이거 운명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거, 맞지?








+

네... 프롤로그에서의 어릴 적 태형이와 이번화의 문구점 태형이는 같은 인물이 맞습니다 ㅠㅅㅠ.

탄소는 얘가 어릴 적의 걘가 긴가민가한 상황이고, 태형이는 왜 아는 체 안해? 이런 반응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갈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ฅ•ω•ฅ)

(개인적으로 제 글은 브금과 함께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๑•‿•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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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09.23 12:19
[피어있길바라] 죽기 살기로 희망적이기3
09.19 13:16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가볍게, 깃털처럼 가볍게
09.08 12:13 l 작가재민
너의 여름 _ Episode 1 [BL 웹드라마]5
08.27 20:07 l Tender
[피어있길바라] 마음이 편할 때까지, 평안해질 때까지
07.27 16: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 같은 마음에게78
07.24 12:2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뜨거운 여름에는 시원한 수박을 먹자2
07.21 15:4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은 찰나의 순간에 보이는 것들이야1
07.14 22: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을2
06.30 14:1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새끼손가락 한 번 걸어주고 마음 편히 푹 쉬다와3
06.27 17:28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일상의 대화 = ♥️
06.25 09:27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우리 해 질 녘에 산책 나가자2
06.19 20:5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오늘만은 네 마음을 따라가도 괜찮아1
06.15 15:2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상에 너에게 맞는 틈이 있을 거야2
06.13 11:5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바나나 푸딩 한 접시에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6
06.11 14:3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잎클로버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자2
06.10 14:2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네가 이 계절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해1
06.09 13:15 l 작가재민
[어차피퇴사]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지 말 걸1
06.03 15:25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회사에 오래 버티는 사람의 특징1
05.31 16:3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퇴사할 걸 알면서도 다닐 수 있는 회사2
05.30 16:21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어차피 퇴사할 건데, 입사했습니다
05.29 17:54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혼자 다 해보겠다는 착각2
05.28 12:1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충분해요
05.27 11:0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출근하면서 울고 싶었어 2
05.25 23:32 l 한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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