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 10
남순은 우울했다. 그 동안 눌러 담았던 우울함과 힘겨움이 12년 전 그 일이 만인에게 모두 들어난 그때 함께 터져버린 듯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루머가 터지고 논란 속에 서서 비난을 받는 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짓을 하고 살았던 주제에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흥수에 관해서라면, 조금 달랐다.
덕분에 촬영장 분위기도 굉장히 가라앉아 버렸다. 전처럼 그랬을 수도 있지, 이제는 안 그러잖아, 하고 넘어가기에는 소재가 너무 자극적이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 그리고 망가진 그 친구의 미래. 남순은 촬영 중간 중간 쉬는 시간 내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흥수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문자를 보낼까 말까. 그런 남순을 옆에서 바라보는 민기는 안타까웠다.
“오케이! 조금 쉬었다가 다시 갑시다.”
감독의 오케이 싸인에 웃고 있던 남순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남순은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꺼냈다. 하아, 하고 한숨을 쉰 남순은 결심한 듯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곧바로 끊어버렸다.
“남순씨. 애인 생겼어? 어제부터 쉬는 시간 마다 핸드폰만 붙잡고 있네?”
옆에 앉아있던 남자 배우 하나가 농담을 건넨다. 남순은 웃으며 대꾸했다.
“애인은 아니고 친구요.”
“친구랑 싸웠어? 통화버튼을 통 못 누르네.”
“싸운 건 아닌데 그냥 좀요.”
남순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기가 남순에게 다가갔다.
“흥수한테 하는 거야?”
고개를 물끄러미 들어 민기를 바라본 남순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하지 왜 그래. 흥수한테 먼저 안와서 그래?”
“그건 아니고 그냥,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민기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 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남순의 어깨를 두들겨주고는 돌아갔다. 남순은 결국 전화걸기를 포기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 만약 흥수가 먼저 연락을 해 주었으면. 하지만 남순은 흥수도 지금 꽤 당황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울하다 못해 암울하게 앉아있는 남순를 매니저가 다가와 툭툭 쳤다. 남순이 고개를 돌렸다.
“변호사 왔어. 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어. 가자”
남순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매니저를 따라 일어섰다.
자신의 대기실로 가는 동안 남순은 온갖 생각으로 마음이 심란했다. 어쩌지, 어쩌지. 속으로 그 말만 수백 번을 되풀이했다. 매니저는 대기실 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열었다. 남순을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변호사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는 잠시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복잡함을 지워낼 수 있었다.
*
툭, 투둑, 툭.
흥수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팬 끝으로 책을 툭툭 치며 핸드폰 액정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부터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없을 때는 끊임없이 이런 꼴이었던 지라 그래도 제자가 상황이 좋지 않아 힘겨워 하고 있어 거슬림을 참고 있던 세찬의 인내심에 바닥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세찬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마다 인재가 세찬의 입을 막아버렸다. 흥수는 자신 앞에서 그의 두 스승이 그런 요상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흥수의 관심은 오직 핸드폰에만 가 있었다.
그 행동이 정규 수업이 끝날 때 까지 이어지자 세찬을 말리기에 지친 인재가 조심스럽게 흥수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박선생?”
“어, 예? 왜요?”
말을 건넨 사람이 참 무안하게도 흥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꾸했다.
“괜찮아? 남순이 전화 기다려?”
“뭐 그냥요”
“먼저 안 해봐? 어제부터 계속 핸드폰만 보고 있던데”
흥수는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먼저 하면 고남순이 불편해 할까 봐요. 촬영 중일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사실,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괜찮은 거냐고 위로를 해야 할지 옛날 생각 나냐고 농담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때 생각난다고 화를 내야할지. 흥수는 핸드폰을 거꾸로 돌려버렸다.
“근데 좀 화는 나네요.”
“응?”
“똑같은 놈이라던데요. 첫 번째 올렸던 놈이랑 이번에 올린 놈이랑. 정말 이런 짓 할 자격이 없는 놈이거든요.”
“누군지 알아?”
“소속사에서 알아본 모양이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고남순이 주먹질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이놈 때문인데 고남순 일생에 힘든 일은 이놈이 다 만드네요.”
나쁜 새끼. 그리고 고남순과 제 사이를 그렇게 우습게 본 그 생각도 흥수에게 거슬렸다. 흥수는 어제 밤새도록 관련 기사와 글들을 찾아봤었다. 사실 남순과 그만의 사이의 일이 만 천하에 알려진 것도 기분 나빴다. 어디까지나 그 둘 사이의 사적인 일이었고 지난 일이었고 겨우 잊고 살았던 일이었다. 물론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고 해서 틀어질 그들도, 어색해질 그들도 아니었지만 흥수는 화가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가 났던 것은 남순이 돈을 주고 흥수의 입을 막았느니, 협박을 했느니 하는 추측 기사들이었다. 미워도, 나빠도, 원수 같고 원망스러워도 어쨌거나 남순은 흥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야, 너 그 기사 봤지? 완전 대박 아니야? 고남순 나 완전 착한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그러니까. 이렇게 훅 가는 거야?”
교무실에 들어온 학생 두 명의 대화가 흥수의 귓가에 꽂혔다. 싫다, 안 된다. 흥수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러나 흥수는 결국 남순에게 전화하지 못했다.
*
“어, 그러니까 네가 내 일을 전담하게 될 변호사라고?”
잠시 동안 멍하니 변호사의 얼굴만 바라보던 남순은 옆구리를 꾹꾹 찌르다 못한 매니저가 등짝을 한 대 때린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의자를 하나 찾아 앉았다. 여유를 되찾은 남순은 느긋하게 다리를 꼬며 말했다.
“그래. 법대라 그랬었지? 역시 너답다 송하경”
“칭찬이냐 욕이냐?”
대기실 안에서 기다리던 변호사, 다름 아닌 하경이 삐딱하게 되물었다. 매니저는 당황했다.
“아는 사이야?”
“응. 고등학교 동창”
“넌 왜 툭하면 다 고등학교 동창이야?”
“그게 아니라 제가 찾아온 거죠.”
하경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남순은 속으로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보수는 좋더라. 돈 많이 벌었나봐 고남순?”
“오냐. 돈 많이 주마”
하경의 등장에 남순은 꽤 오랜만에 맘 놓고 웃었다. 내가 이렇게나 하경을 좋아했었던가. 남순은 동시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하경은 그런 남순을 보고 슬쩍 웃고는 매니저는 바라보았다. 매니저는 남순의 옆에 앉아있었다.
“유포 자를 고소하신다고요?”
“예. 그냥 넘어갈 수준은 넘어가서요.”
“먼저 반박 기사 내는 건 어때요? 고소는 길어질 수도 있고 오히려 이미지가 더 나빠 질수도 있거든요.”
“반박 기사를 뭐라고 낼까요?”
매니저의 물음에 하경은 남순을 바라보았다. 일 얘기를 시작할 때부터 다시 표정이 굳어졌던 남순이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잘못된 것들은 다 바로 잡아야죠. 일단 그 다리 다친 친구를 돈으로 매수를 했다거나 협박을 했다는 건 무조건 거짓인건 알겠고 또 뭐가 거짓말이야?”
“잠깐만요. 하경씨 그 친구가 누군지 알아요?”
하경과 남순이 동시에 매니저를 돌아보았다.
“누군데요? 누구야 남순아?”
“아 그게 형”
하경이 한숨을 쉬었다.
“나 아는 사람이야?”
매니저는 다급하게 되물었다. 남순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흥수야, 그 친구”
매니저는 황당함에 잠시 말을 잃었다 말했다.
“그럼 계속 핸드폰 붙잡고 전화 할까 말까 하던 친구가 흥수씨야?”
이런 맙소사. 이런 반전이. 매니저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남순은 매니저의 시선을 피했다. 자, 이제 매니저가 그를 어떤 눈빛으로 쳐다볼까. 하경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남순에게 말했다.
“기사 터지고 박흥수랑 전화 한통 안했어? 뭘 고민을 해. 확 해버리지”
“그게 맘대로 되냐”
“분명 박흥수도 전화 할까 말까 끙끙대고 있을 텐데 그래도 죄 많은 네가 먼저 하지?”
“어이구 송하경. 언제부터 나랑 박흥수에 대해 이렇게 잘 아셨어?”
“너가 박흥수 때문에 학교 자퇴하네 마네 할 때부터?”
그래. 그때쯤부터 내가 널 정말 좋아했던 것 같아. 하경이 속으로 말을 삼켰다. 하경은 남순의 시선을 피하며 매니저에게 말했다.
“일단 반박 기사부터 내시죠.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하게”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순은 똑바로 말해라, 라고 으름장을 놓는 하경에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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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왔죠!!!
히히히ㅣㅎㅣㅎ히힣 겁나 뿌듯함 지금
근데
암호닉의 용도는 그냥 익명이라서 있는건가요?..?
진짜 진지하게 몰라서 묻는거에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ㅜㅠㅠㅠㅠㅠ
비올라님, 깡주님, 소금님, 비랑님, 이경님, 메가톤님, 흥순홀릭님, 보라돌이님, 넥타이님, 미미님, 맷님, 모카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