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 호석] 남고 브로맨스
"아야…"
빈 교무실, 긴 바지 위로 앞치마를 입은, 갈빛이 도는 머리의 남성이 의자에 앉아 조심스럽게 스프레이형 파스를 복사뼈에 뿌렸다. 시원해. 파스를 다 뿌린 후 교무실 보건통에 넣어둔 후 교무실 문을 잠근 후 다시 가정실습실로 향했다. 아직 치우지 못한 것들이 남아있을텐데, 하지만 한 발 한 발, 크게 움직이기엔 꽤나 힘들었다.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떠난 후의 학교는 매우 조용하다. 분명 오전에는, 그리고 아까까지는 체육대회라는 명분하에 시끌벅적한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지만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 느껴지는 공허한 분위기는 가정 선생님인 호석에겐 아주 약간, 낯선 분위기였다.
"어, 아직 퇴근 안 했어요?"
「…체육 선생님?」
져지를 걸쳐입은 채 흐르는 땀을 대충 팔로 닦으며 계단을 올라오던 체육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어, 아직 안 가셨어요? 호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심한 표정으로 절뚝이는 호석을 부축해주며 본인에게 기대는 자세로 만든 후 그대로 업어서 가정실습실까지 올라갔고, 그 사이 두 사람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제외하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들어온 가정실습실은 꽤 난잡했다. 제대로 치우지 않은 요리 재료들, 물기가 남아있는 싱크대… 절뚝이는 발로 혼자서 모두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도와줄게요. 체육 선생인 석진이 일어나서 대충 주위에 있던 재료들을 봉지에 담은 후 쓰레기봉투에 버렸고 물기는 수건 하나로 대충 닦아냈다.
"대충 다 치운 것 같네요"
「그냥 가셔도 괜찮은데, 제가 할…」
"복사뼈까지 다쳤으면서 그 발로 뭘 하겠다고"
무심한 척,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아있던 호석의 손을 잡아선 그대로 가정실습실을 나와서 문을 잠근 후 본인의 차로 데려갔다. 한번도 다른 사람을 차에 태운 적은 없었다, 그리고 현재, 다른 목적은 없었다. 그저 발을 절뚝이며 귀엽게 인상을 쓰는 호석의 모습이 귀여워서, 그래서 아마도 데려다주고픈 마음이 생겼을거라.
처음 석진의 차를 타보는 호석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우와, 생각해보니까 체육쌤은 옆에 누구 태운 적 없잖아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석진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는 호석의 모습에 석진이 포커페이스를 살짝 잃었다가 다시 아닌 척 무표정한 모습으로 마음을 진정시켰고, 그대로 호석의 집 앞에 호석을 내려다줬다.
「오늘 고마워요, 쌤」
"집에 누구 있어요? 같이 사는 사람이라든가"
「설마 그런게 있을리가요, 나 혼자 살아요」
걱정이 가득했지만 무표정의 석진과 다르게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해맑게 웃고있는 호석의 모습에 석진이 고개만 두어번 까딱인 후 다시 차에 타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원룸에 들어가자마자 져지를 벗어던진 후 침대에 누워 마른 세수를 했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해맑게 웃던 호석의 모습이.
─
「너네 선생님 다쳤다고 체육대회 건성으로 하면 혼난다?」
누가 알았을까,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교사 계주를 연습하다가 발목이 다치면서 복사뼈까지 다칠줄. 결국 호석의 반은 부담임인 남준이 대신 뛰어야했고, 호석은 특유의 그 눈꼬리가 휘어진 웃음을 남준에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체육대회 예선을 진행하던 석진은 그 모습이 여간 좋지 않았다. 대체 왜 다른 사람 앞에서 웃어주는건지…
남준과 호석, 석진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갈 쯤 호석의 반 아이들이 찾아왔다. 양 손에 먹을걸 가득 들고있는 지민, 그 옆에서 지민의 과자를 뺏어먹는 태형, 그리고 그런 지민과 태형이 부끄러운 정국까지, 아이러니하게도 이 셋이 호석의 반 계주 선수들이었다.
「쌤 우리 진짜 계주 1등하면 머을거 사저여?」
─ 야 돼지야 그만 좀 먹어라, 어?
아 민망하니까 둘 다 저리 가서 연습이나 해…
정국의 말에 태형과 지민이 계주를 연습하는 곳으로 유유히 걸어갔고, 정국도 인사를 마친 후 둘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호석의 손에 들려있는, 지민의 과자를 먹고있는 모습에 석진은 무표정으로 일관했지만 속으로는 호석의 모습에 괜히 설레였다.
─
체육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석진은 호석에게 묘한 감정이 생겼다. 대체 왜, 왜지? 스스로에게 한창믈 물었지만 그 답은 마치 주위를 겉돌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체육대회의 마지막, 교사 계주를 끝으로 모든 경기가 끝이 났고 안타깝게도 호석의 반은 일등을 차지하지 못했다.
맛있는걸 못 먹게된 지민의 슬픈 표정을 뒤로한 채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오후, 석진과 단 둘이 남아서 뒷정리를 하는 호석의 모습에 석진이 또 한 번 설레였다. 씨발, 이게 좋아하는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확실한건 오늘 내내 정호석이 다른 남자에게 웃어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선생님은 아무한테나 실실 웃어줍니까?"
「네? 그게 무슨…」
"아까도 김 선생에 민 선생까지, 아주 실실 웃어주던데요?"
「그런게 아니라…」
아, 실수를 해버렸다. 이름 모를 묘한 감정에 그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화를 내버렸다. 우물쭈물하는 호석의 모습에 주위를 겉돌던, 석진이 스스로에게 물었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드디어 밝혀졌다. 아,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건가
"저, 정 선생님"
「ㄴ…」
호석의 입에서 대답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석진의 입술이 호석의 입술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리고 몇 초 후, 부드럽게 떨어지는 입술에 숨을 간신히 쉬는 호석의 모습. 아, 내가 정말로 좋아했구나
"다른 사람한테 웃지도 말고"
「…」
"옷도 이렇게 짧게 입지 말고"
「…」
"나한테만 예쁘게 보여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책임이나 져요」
그 날, 체육대회는 이기지 못했지만, 감정을 숨기기만했던, 풋내기 두 선생님에게는 조그마한 브로맨스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