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훈이는 커피를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공부를 하거나 수행평가를 하는 등, 무엇인가에 빠져 집중을 할 때면 밥 대신 커피를 마실 정도로 많이 미신다. 나는 커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옆에서 맡아지는 향기는 매우 좋아했지만 실제로 마셔본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훈이 마시는 커피를 옆에서 보던 나는 그 맛이 궁금해 처음으로 한 번 마셔보았다.
윽, 쓰다. 마시자마자 혀끝에서부터 찌르르, 올라오는 쓴 맛에 인상을 찌푸렸다. 세훈은 그런 나를 보며 푸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는 내가 내려놓은 커피 잔을 들어 또 한 모금 마신다. 나와는 다르게 한 치의 표정 변화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는 세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처음 마신 커피는, 굉장히 썼다.
커피가 쓰다
세훈x준면
w.BM
“오세훈, 김준면. 너네는 또 같은 반이냐?”
종현이 감탄을 섞어가며 조금은 과장된 몸짓으로 준면의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었다. 어쩌다보니 또 같은 반이 되었네. 준면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종현은 박수를 치며 대단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면의 시선이 교탁 앞에서 어떤 여학생 둘과 웃으며 이야기 하는 세훈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준면이 세훈을 보자, 세훈 역시 막 웃다가도 고개를 돌려 준면을 보았다. 두 사람이 눈이 마주치는 것을 옆에서 본 종현이 또 한 번 혀를 내둘렀다. 너희 사이는 진짜 아무도 못 말려. 종현의 말에 준면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준면의 시선이 종현에게로 돌려지자, 세훈이 여학생에게 눈인사를 건네고는 준면의 자리로 왔다.
“애인님 오셨네, 왔어.”
“아 또 무슨 소리야.”
그세 준면의 앞자리로 온 세훈을 보며 종현이 장난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준면은 종현의 어깨를 치며 또 그 소리냐며 타박했다. 하지만 세훈은 이미 많이 들어온 이야기였기에 아무렇지도 않은지 가볍게 무시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격하게 반응했을 종현의 이야기가,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별난 세훈과 준면의 사이였다.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를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까지 입학한 두 사람은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더니 2학년이 되어서도 운 좋게 같은 반이 되었다. 질리도록 붙어 다닌 두 사람은, 꼼꼼한 성격임에도 가끔씩 허점을 보이는 준면을 유별나게 챙기는 세훈으로 인해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전생에 부부라도 아니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오늘 엄마가 너 우리 집에서 밥 같이 먹으래.”
“어, 그래?”
“응. 너희 부모님 두 분 다 오늘 야근 때문에 늦게 들어오신대.”
“아아, 알았어. 오랜만에 아줌마가 해주시는 밥 먹어본다.”
준면에게 할 말을 전한 세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준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다시 아까 이야기를 나누던 여학생에게로 향했다. 준면의 시선이 한참이고 세훈의 뒷모습에서 떨어질 줄 모르기에 보다 못한 종현이 준면의 눈앞에서 엄지와 검지를 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그제야 준면이 깜짝 놀라며 종현을 보았고, 세훈이 비운 자리에 민석이 와 앉았다.
“그나저나 김준면, 너는 여자 친구 안 사귀냐?”
“여자친구? 갑자기 왜.”
“아니, 그렇잖아. 너랑 죽고 못 사는 오세훈도 여자 친구는 있는데, 넌 없고.”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야, 얘는 안 사귀는 게 아니라 못 사귀는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리래.”
종현의 물음에 민석이 끼어들었다. 준면 역시 자신이 여자 친구를 안 사귀는 것이 아니라 못 사귄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 같아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민석을 보았다. 민석은 준면 역시 모르는 것 같은 눈치에 외려 더 놀란 표정이었다. 너도 모르는 얘기였어? 와, 오세훈 이거 무서운 놈이네. 민석의 말에 종현이 뜸들이지 말고 얘기하라며 재촉했다. 이에 민석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더니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는 교탁에 있는 세훈의 눈치를 살피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준면이 너도 아는 건 줄 알았는데. 얘, 오세훈 때문에 애인 못 사귀는 거야.”
“오세훈이 왜?”
“생각 해 봐. 공부 잘 하지 얼굴 잘 생겼지 성격 좋지,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놈인데 고백 받았단 이야기 들어 봤냐? 너 고백 받아 본 적 있어?”
민석의 물음에 준면과 종현이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것 봐. 준면이 넌 모르겠지만 야, 너 좋다고 하는 여자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웃긴 건 오세훈이 그걸 귀신 같이 알아내서 김준면한테 고백하려는 애들 싹 다 잘라내잖아.”
“에이, 설마.”
“진짜라니깐! 내가 목격한 것도 있는데. 왜, 1학년 때 중국으로 유학 간, 이세은 걔도 얘한테 고백하려 했는데 오세훈이 딱 잘라서 안 된다고 그러는 거 직접 봤거든.”
“헐. 그거 무슨 심보야. 야, 김준면 너 배후세력이 대단하다?”
민석과 종현의 말에, 준면은 고개를 들어 교탁 앞에 있는 세훈을 보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세훈 역시 준면을 보고 있었는지 또, 눈이 마주쳤다. 준면과 눈이 마주친 세훈은 씩, 웃어 보이고는 자연스럽게 제 앞에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는 여학생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준면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점심시간이면 도서관에 와서 새로 들어온 신간 도서 목록을 확인하고 장서를 한 바퀴 이상 돌아보며 신중하게 책을 고르곤 했다. 늘 학교 안에서는 붙어 다니는 세훈과 준면이 떨어져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준면은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신간 도서 목록 앞에 서서 어떤 책이 새로 들어왔는지 유심히 살폈다. 그때 준면의 옆으로 한 여학생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준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저기, 안녕. 나 기억하려나?”
“어…….”
준면이 제 앞에 있는 여학생을 멀뚱히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항상 세훈이 아니면 종현이나 민석을 비롯한 남학생들과 주로 놀았기에 여학생들은 딱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없었다. 작년에 같은 반 이었던 것 같은데, 도무지 애를 써도 기억이 나지 않아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하려던 찰나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이름이 떠올랐다. 은경이, 맞지? 줄곧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금세 표정이 환해지는 준면을 보던 은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살풋, 웃어보였다. 은경의 웃음에 괜히 민망해진 준면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뒷머릴 긁적였다.
“그래도 기억해줘서 좋다.”
“아, 이번엔 같은 반 아니지?”
“응. 근데 항상 세훈이랑 같이 있더니 오늘은 혼자네?”
“어… 세훈이는 농구하러 운동장에.”
“아아, 너는 운동하는 거 싫어해?”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야.”
“그렇구나.”
준면과 은경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열어 놓은 창문을 타고 운동장 밖에서의 소란스러움이 전해 들려왔다. 조금 어색함이 느껴져 준면은 손에 쥔 책의 끝자락을 매만질 뿐이었다. 한참의 침묵 후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은경이었다.
“저기, 준면아. 여자 친구… 있어?”
“어? 아니, 없는데.”
“그럼… 나랑, 사귈래?”
“어?”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준면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할 말을 고르지 못 하고 조금 전 제가 들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처음으로 고백을 받는 순간이었다. 문득, 조금 전에 민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김준면한테 고백하려는 애들 싹 다 잘라내잖아. 준면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혼란으로 번졌다. 떨리는 것 보단, 당황스러움이 앞서서 준면은 제 앞에서 살짝 고개를 숙인 은경을 내려다보았다. 작고 왜소한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에 공부도 잘 하고, 예쁘장하게 생겼으면서도 귀엽기까지 해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 은경이 지금, 자신에게 고백을 했다.
딩 동 댕 동.
그 때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은경이 고개를 들어 준면을 보더니, 다음날 까지 말 해달라고 하고는 먼저 도서관을 나섰다. 은경이 자리를 비운 뒤에도, 준면은 한동안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보충수업 까지 모두 마치고 준면과 세훈이 나란히 교문을 나섰다. 늘 붙어있으면서도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준면은 점심시간에 받았던 고백이 떠올라서 우뚝 그 자리에 멈췄다. 갑자기 멈춰서는 준면으로 인해 세훈이 의아함을 느끼고 준면을 보았다. 무슨 일 있어? 세훈의 물음에 준면은 천천히 세훈을 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어물쩡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준면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알아차린 세훈이 앞서가는 준면의 어깨를 잡아 돌려 세웠다.
“너랑 나랑 몇 년 친구인데, 지금 날 속이려고 해?”
“아니, 그게…….”
“무슨 일인데.”
“어… 나, 고백 받았어.”
준면의 말에 세훈의 표정이 아주 잠깐 동안 굳어졌다. 그러다 곧 세훈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웃어버리는 세훈으로 인해 준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웃지 말라며 세훈의 어깨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꽤 손이 매운 준면으로 인해 세훈은 아프다고 피하면서도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웃는 것을 멈춘 세훈이 준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말했다.
“와, 김준면. 너도 드디어 고백 받았구나? 누군데?”
“어? 일학년 때 같은 반 이었던, 은경이.”
“아, 어쩐지. 그래서 넌 어쩔 건데?”
“그걸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하지? 내일까지 말 해달라는데.”
민석에게 들었던 것과는 달리, 세훈은 준면이 처음 고백 받은 것에 대해 놀라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준면은 역시 민석이 잘 못 본 것이라 넘겨짚었다. 세훈은 준면을 보더니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을 했다.
“고백 받아줘.”
“응?”
“여자 애가 용기 내어서 고백 했는데, 그거 차버리면 진짜 나쁘다? 너도 이제 여자 사귀어 봐야지.”
“으응, 알았어.”
세훈의 말에 준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연애였기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 번 쯤 경험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준면은 전혀 모를 것이다. 웃고 있는 세훈의 입가에 일어난 미약한 떨림을.
다음 날이 되니, 교실에는 두 가지 화제로 인해 소란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드디어 준면이 세훈의 보호 관찰 아래에서 벗어나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것이었다. 제일 유난을 떠는 것은 종현과 민석이었다. 언제 소문이 퍼졌는지, 종현과 민석이 준면의 자리로 와서는 호들갑을 떨었다. 교내에서 인기가 많았던 준면과 은경이 사귄다는 이야기에 숱한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질투와 부러움 섞인 축하 인사를 건네곤 했었다. 준면은 그 모든 것들이 조금 어색해서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것을 두고 종현과 민석은 그렇게 좋냐며 면박을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세훈이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반인 세훈의 전 여자 친구는 밤새 울었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예쁜 얼굴이 잔뜩 못 생겨져서 등교를 했다는데 그와 반대로 세훈은 너무나도 멀쩡해 꽤 욕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훈은 특유의 사교성으로 반 친구들 한 가운데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준면은 종현과 민석 사이에서 짓궂은 농담을 받으면서도 못내 걱정이 되어 세훈을 보았다.
다시 또, 세훈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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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카페물 이런 거 아니에요. 고딩 세준이들 입니다. 커피는 그냥... 하나의 매개체 정도... ..나름 제 딴에는 가벼운 글이 맞아요. 진짜에요, 지금 3편까지 쭉쭉 뽑아 놨는데 4편 안 써지는게 사실입니다 ...ㅋ...ㅋㅋ... 감정선 처리하는 거 어려워요 엉엉어어ㅓ어어엉유ㅠㅠㅠㅠㅠ
..ㅇㅖ... 아마 세훈이가 마음 고생 좀 할 것 같아요 흑흑. 세훈아 미안해...]
+아, 암호닉 이야기를 까먹었네요ㅜㅜ 이번 편과 2편에 암호닉신청 댓글 하신 분들까지만 받을 예정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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