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쓰다
세훈x준면
w.BM
야간 자율학습 까지 모두 마친 세훈과 준면이 나란히 하교를 했다. 교문을 막 나서려던 찰나 바로 뒤에서 준면을 부르는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훈과 준면이 나란히 뒤를 돌아보니, 은경이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준면의 앞으로 왔다. 숨이 가쁜지 상체를 살짝 숙이고 호흡을 고르던 은경이 조금 뒤에 고개를 들더니 주말에 시간 되냐며 준면에게 물었다. 은경의 물음에 준면은 옆에 서있는 세훈을 보았다. 세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니, 준면이 은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응, 시간 돼.”
“잘됐다, 영화 보러 가자고. 이번에 개봉한 거, 공짜 티켓 생겼거든.”
“응, 그래. 집에 조심히 가.”
“준면이 너도.”
말을 마친 은경이 준면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먼저 교문을 나섰다. 신이 난 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교문을 나서는 은경의 뒷모습을 보던 준면이 세훈을 보며 가자고 했다. 세훈은 말없이 앞서 가는 준면의 뒤를 따랐다. 준면과 은경이 사귀기 시작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고, 세훈과 세훈의 전 여자 친구가 헤어진 지 꼬박 이틀째가 되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골목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 사이엔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그럼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어서 준면은 무의식적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세훈이 먼저 걸음을 멈춰 섰다. 그것을 모른 채 앞서 걷던 준면은 제 옆에서 들리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준면보다 조금 뒤에 세훈이 멀뚱히 서있었다. 가로등을 사이에 두고 준면과 세훈이 조금 거리를 둔 채로 있었다.
“거기서 뭐해. 집에 안 갈 거야?”
“준면아.”
“응?”
세훈이 한 발 자국 움직여 가로등 밑으로 들어왔다. 세훈의 하얀 얼굴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조금은 어둡고 비장한 세훈의 표정에 괜히 준면마저도 긴장이 되었다.
“너를 좋아해.”
“…뭐?”
“언제부터인지는 나도 잘 몰라, 그냥 어느 순간 정신차려보니 널 좋아하고 있었어.”
“…….”
갑작스러운 세훈의 고백에 준면은 머리가 혼잡해졌다. 분명 어제만 해도 세훈은 제게 은경과 사귀어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혼란스러움으로 일그러진 준면의 표정을 보던 세훈이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예상한 반응인 것 마냥, 세훈은 외워둔 말을 하는 것처럼 술술 잘도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사귀어 달라는 거 아니야. 계속 은경이랑 만나봐.”
“…….”
“그리고 나도 계속 널 좋아할 거야.”
“…….”
“달라지는 건 없어, 난 하던 대로 할 거야. 너도 하던 대로 하면 돼. 은경이랑 사귀다가 은경이가 좋아지면 오늘 내가 말한 거 잊어버려도 좋아. 그럼 나도 너 좋아하는 걸 그만 둘게.”
“그 말은, 너 지금…”
“나와 친구로 남고 싶다면 은경이를 좋아할 수 있도록 노력 해. 그렇지만 애써 은경이를 좋아하는 척 하지 말아줘. 그건 나에게도, 은경이에게도 큰 상처가 될 거야. 어쩌면 너도 상처 받겠지.”
“그게 뭐야… 그냥 너랑 친구하면 안 돼?”
준면이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준면의 간절한 물음에 세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응, 안 돼. 난 너랑 친구 못 해, 준면아.”
“…드, 듣기 싫어!”
준면은 가로등 아래에 세훈을 홀로 둔 채로 뒤를 돌아 집으로 뛰어갔다. 세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도망치듯 멀어지는 준면의 뒷모습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어제 밤 세훈의 고백이 생생히 기억에 남아 준면은 이불 안에서 발을 차며 신경질을 부렸다. 준면아, 얼른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해! 방 밖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잔소리에 준면은 자리에 일어나면서도 구겨진 얼굴을 펼 수가 없었다. 학교 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 정확히는 학교에서 세훈의 얼굴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10년 넘게 우정을 쌓아 왔던 친구에게 고백을 받은 것은 생각보다 많이 불편했다.
축 처진 모양으로 등교를 하는 준면을 보며 종현이 부러 밝게 인사를 건넸지만, 준면은 그저 힘없이 받아 줄 뿐이었다. 종현은 그세 은경과 싸움이라도 한 거냐며 물었지만 준면은 묵묵부답이었다. 어라, 세훈이는? 뒤늦게 항상 세훈과 같이 등교하던 준면이 혼자 온 것을 알아차린 종현이 세훈이는 어디 두고 혼자 왔냐며 준면에게 물었다. 종현의 입에서 들린 세훈의 이름에 준면의 표정이 곧장 울상으로 뒤바뀌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도 몰라.”
“둘이 싸웠어?”
“아니야, 아니니까 좀 네 자리로 가!”
준면은 애꿎은 종현에게 짜증을 내었다. 종현은 갑자기 짜증을 내는 준면으로 인해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니 준면을 보다가 제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준면 역시 세훈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침이면 항상 준면의 집 앞에서 준면이 나오길 기다리던 세훈이 오늘은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홀로 쓸쓸히 등교를 하며 준면은 괜히 서러웠다.
어, 세훈아 안녕. 칠판 앞에 서있던 여학생 두 명의 입에서 세훈의 이름이 나왔다. 이에 준면이 고개를 들고서 교실 앞을 보니, 세훈이 여학생들에게 웃어주며 아침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밤새 잠을 설친 자신과는 달리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준면이 뚱한 표정으로 세훈을 보았다. 그때 세훈이 준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고, 세훈은 전처럼 웃어 보이곤 다시 시선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보이려 노력했지만 준면의 눈에는 세훈이 묘하게 어색해 한다는 것이 보였다. 준면은 괜히 또 짜증이 일었다.
주말이 되자 영화관 앞에서 준면과 은경이 만났다. 매번 교복 입은 것만 보다가 사복 차림의 은경을 마주하니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준면은 은경에게 먼저 앞장 서 들어가라고 하고선 그 뒤를 따랐다.
영화는 지루할 틈이 전혀 없는 액션물이었다. 여학생 치고는 의외의 선택에 놀라우면서도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은경과 준면 모두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영화가 끝이 나고, 준면은 미리 알아봐두었던 파스타 집으로 은경을 데리고 갔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파스텔 톤의 벽지, 그리고 가게에 작게 깔리는 서정적인 음악이 딱 여자들이 좋아할 법한 요소들로 가득했다. 준면의 예상대로 은경은 가게의 분위기에 반한 듯 내부를 둘러보며 해사하게 웃었다.
간단하게 세트메뉴를 시키고서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 최근에 본 책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 다 공통된 작가의 책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음악 장르도 비슷했다. 주로 은경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편이었지만 그런대로 준면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주문했던 음식이 나오고, 조금 허기가 졌던 두 사람은 식사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준면은 은경이 입이 짧은 건 아닐까하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은경은 잘 먹고 있었다. 식사를 하던 은경은 준면의 시선을 느끼고선 티슈를 뽑아 입가를 닦아내고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자가 이렇게 잘 먹는 모습 별로인가?”
“어? 아니야, 좋아 보이는데 왜. 많이 먹어.”
“말만 그러는 거 아니지?”
“응? 정말이야, 오히려 내숭 있는 애들 별로더라.”
“그래? 다행이다. 사실 나 어렸을 때부터 선머슴 같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거든.”
“진짜? 되게 의외다. 엄청 조신할 것 같았는데.”
“그래서 확 깬 것 같아?”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아.”
준면의 말에 은경이 안심한 듯 웃었다. 그리고 잠시 멈춰졌던 식사는 다시 이어졌다.
식사가 끝이 나고, 후식으로 나오는 디저트를 먹으며 준면과 은경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의 주제는 어느덧 일상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다. 은경은 준면에게 주말에 주로 뭐하고 지내냐며 물었다. 은경의 물음에 준면은 자신이 그동안 주말에 뭘 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주로 세훈이랑…”
말을 하려던 준면이 갑자기 입을 다물자 은경이 준면을 보았다. 준면은 그간 잊고 있었던 세훈의 고백이 다시금 떠올라, 짐짓 심각해졌다. 생각해보면 지난주 주말까지만 해도 준면은 세훈과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것은 세훈에게 여자 친구가 있을 때에도 변함없었다. 오히려 여자 친구와 있는 시간보다 준면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 그래서 세훈은 연애 경험은 많을지언정 두 달 이상을 넘긴 사람은 적은 편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은경과 만나기 전에, 은경이 주말에 시간 되냐는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 세훈에게 먼저 동의를 구했던 제 자신이 떠올랐다.
“준면아, 왜 그래?”
“어?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세훈이랑 보냈어.”
이렇게, 영화보고 밥 먹고 얘기 하고 게임도 하고. 가끔은 타 지역으로 놀러 가보고, 사진도 찍으러 다니고. 준면은 미처 하지 못한 말은 입 안으로 집어 삼켰다.
“그렇구나. 너 세훈이랑 되게 친해 보이더라.”
“…그래?”
“응. 사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인데, 나… 일학년 때 너한테 고백하려다가 세훈이 때문에 못 했었잖아.”
“…….”
“어찌나 무섭던지, 그래서 그 이후로 세훈이랑은 조금 어색해.”
“그랬구나…….”
민석이 했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준면은 그동안 몰랐던 세훈의 마음을 새롭게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쩌면 세훈은 훨씬 더 오래,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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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씨눈...ㅋㅋㅋㅋ 딱히 준씨눈을 의도하고 쓴 것은 아닌데, 준씨눈이었군요..! 그냥 오랜 친구사이인 두 사람이 여러 과정을 거쳐 행쇼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ㅋㅋㅋㅋ 아 그리고 여기 나오는 종현은 샤이니 종현 맞구요, 민석이는 슈밍의 본명입니다. 그리고 샤이니 멤버 한 명이 더 나올 예정이에요! 어, 제가 생각한건 준씨눈 보다는 그냥 세훈이가 티를 안 낸거죠, 내가 널 좋아해!!!! 이런게 아니고 그냥... 마냥 챙겨주고.. 챙겨주고...ㅁ7ㅁ8
암호닉은 이번화까지 받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제가 썼던 글에서 암호닉 하셨던 분들은 그대로 써주셔도 되고, 바꾸셔도 되요!
아! 초록글 일페이지까지 가다니... 정말... 손이 벌벌 떨렸습니다ㅠㅠ여러분 감사해요... 세준 사랑해...! 평일에 글 올린 영향이 커서 이 글이 초록글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봅니다.. 허허... 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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