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이모가 타요 사줘써!”
“…”
“엄마아?”
“누구? 난 너 같은 딸 없는데?”
“…”
백현이 수진의 손을 차갑게 뿌리치고 도어락을 눌렀다. 수진의 눈엔 그새 눈물이 맺혔다. 문을 아예 닫지는 않고 슬리퍼를 하나 걸쳐둔 백현이 장 봐온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충 정리를 다 한 뒤 지갑을 챙겨 경수의 집으로 향했다. 수진은 경수네 쇼파 위에 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수지나, 타요 버스 안 가지고 노꺼야? 수진은 그저 싫다고 엉엉 울고 있었다. 쇼파에서 폴짝 뛰어내린 태영이 방으로 들어가 설이를 안고 나왔다.
“설이랑 노꺼야?”
“…흐으, 서리?”
태영의 품에 하얀 고양이가 안겨 있었다. 작은 손으로 눈물을 쓱쓱 닦은 수진이 팔을 쭉 뻗었다. 태영이 설이를 수진에게 넘겨주었다. 하얀 털이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게 기분이 좋았는지 수진이 배실배실 웃었다. 백현이 거실에 있는 수진을 무시하고 경수가 있는 주방 쪽으로 들어왔다. 얼마 줬어? 백현의 물음에 경수가 됐다며 손을 저었다. 정리를 다 한 경수가 주방에서 나오다 수진이 설이를 껴안고 웃는 것을 보았다. 백현아.
“왜?”
“이리 와 봐.”
“…?”
“니네 딸 저렇게 좋아하는 데 하나 사 줘라. 너도 완전 유치했던 거 알지? 가만 보면 둘이 똑같아.”
“…”
으휴. 푸념 섞인 한숨을 내쉰 백현이 거실로 나갔다. 백현이 앞에 서자 수진이 슬쩍 백현의 눈치를 보았다. 엄, 마아-. 수진이 설이를 내려두곤 백현에게 다가갔다. 피식 웃은 백현이 수진을 안아 올렸다. 으이구, 공주님 얼굴이 이게 뭐야. 웬 거지가 한 명 앉아있나 했네. 거지 아냐!! 발끈한 수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겠어, 알겠어. 우리 수진이 공주님이지? 끄덕끄덕. 집에 가서 씻고 다시 오겠다며 인사를 한 두 사람이 집으로 향했다. 태영이 안고 있던 설이를 바닥에 내려두자 설이는 경수에게 가 벌렁 누웠다. 씩 웃으며 그런 설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태영은 그걸 빤히 보다가 경수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벌렁 누웠다. 엄마아-태영이도 쓰담쓰담! 깜찍한 모습에 경수가 태영을 안아 들고 쪽쪽쪽 뽀뽀를 해댔다.
“으이 간지러어!”
“우리 왕자님 누구 닮아서 이렇게 귀여워! 응?”
“으흐흐, 엄마!”
“엄마 닮아서 귀여워?!”
“엄마아, 간지러어!”
태영을 안고 쇼파까지 걸어와 풀썩 태영을 눕힌 경수가 태영의 배에 대고 푸르르 입방귀를 꼈다. 어? 우리 왕자님 방귀 꼈네?! 아니야아! 빨개진 얼굴로 아니라며 바락거리는 태영에게 한 번 더 쪽 뽀뽀를 해줬다. 아니야? 끄덕끄덕. 피식 웃은 경수가 태영을 바로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옷 갈아입자. 경수가 태영의 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열어 태영의 옷을 꺼냈다. 그 동안 태영은 입고 있던 유치원 원복을 하나하나 벗어던졌다. 태영아, 옷 똑바로. 벗어던진 옷을 침대에 올려둔 태영이 경수가 꺼내 준 옷을 하나씩 입었다. 경수가 태영의 옷을 개어 책상에 올려 두었다. 초인종 소리에 경수가 문을 열어주자 수진이 백현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내가 박찬열을 때려죽이든가 해야지…버릇을 잘못 들여놔도 한참 잘못 들여놨어.”
“갑자기 왜?”
“안아달라고, 안아달라고 진짜 생지랄이다. 지랄이야. 죽여버릴거야.”
애들 앞이다. 경수의 말에 입을 꾹 다문 백현이 현관에 수진을 내려뒀다. 케이크 들고 왔어. 애들 간식. 백현이 한 손에 들린 케이크 상자를 흔들어보였다. 상자를 받은 경수가 주방에 내려두곤 거실로 나왔다. 수진과 태영은 태영의 방에 들어가 조잘조잘 얘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경수와 백현은 쇼파에 나란히 앉아 얘기 중이었다. 주제는 거의 찬열 욕이었다.
“그래서 그 새끼가…”
“엄마아, 배고파아.”
수진이 태영의 방을 나오는 소리에 신명나게 찬열 욕을 하던 백현이 입을 다물었다. 경수가 벌떡 일어나 백현이 가져온 케이크 상자를 열어 접시에 덜어내 식탁 위에 놓았다. 태영이도 케이크 먹자! 쪼르르 나온 태영이 식탁 의자 위로 올라왔다. 경수가 포크를 쥐어주자 태영이 조금씩 잘라먹었다. 입가에 크림을 다 묻히고 먹는 수진을 보며 한숨을 쉰 백현이 포크를 뺏아들었다. 아아! 수지니꺼야! 포크를 뺏기자 수진이 바락 소리를 지르자 백현이 수진의 이마에 꿀밤을 한 대 때렸다.
“다 묻히잖아. 엄마가 줄게. 아-”
“아-”
“으이구우”
백현이 수진의 입가에 생크림을 걷어 쪽 빨아먹었다. 엄마, 태영이 주스! 경수가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플라스틱 컵에 주스를 따라 태영과 수진의 앞에 놓아줬다. 이모 고맙습니다 해야지. 백현의 말에 수진이 큰 눈을 접어 웃으며 고마워! 라고 외쳤다. 경수가 손을 뻗어 수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 케이크를 다 먹어치운 두 아이가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고, 경수가 접시와 컵을 싱크대에 넣어둔 뒤 다시 거실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경수와 백현이 자리에서 슬금슬금 일어났다. 아빠아-!! 태영이 방문을 빼꼼 열고 밖을 쳐다보다 종인이 들어온 걸 보곤 후다닥 달려 나왔다. 달려오는 태영을 보고 종인이 다리를 굽히고 앉아 손을 쭉 뻗었다. 종인의 품에 푹 안긴 태영의 몸이 종인의 다리가 펴지면서 쑥 들려올라갔다. 종인이 태영을 안고 거실로 오자 경수가 태영을 받아 들었다. 아빠 옷 갈아입고 올게. 종인이 방으로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백현이 쪼르르 나가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 집 놔두고 이 집에서 사시네요, 여보님. 옷을 갈아입고 온 것인지 편안한 차림의 찬열이 눈썹을 찡끗거렸다. 찬열의 목소리에 수진이 달려오자 찬열이 허리를 숙여 수진을 끌어안았다.
“아빠다아!”
“우리 공주님, 엄마 말 잘 듣고 있었어?”
“응!”
“…박수진. 진짜?”
수진이 백현의 눈치를 슬슬 보다 그냥 찬열의 가슴팍에 고개를 팍 묻었다. 우리 이만 갈게! 백현의 말에 경수가 태영과 현관으로 나왔다. 오늘 종인이 거래처 돌아다니느라 힘들었을 테니까 잘 좀 챙겨줘라!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경수가 문이 닫히는 걸 보고 거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