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브 투게더 !
: 같이 살다, 함께 지내다
" 택배 아니고 하숙생인데요 "
남자는 내 얼굴에 멈춰있던 눈동자를 집 안으로 찬찬히 굴렸다. 무언가 여유로워 보이면서도, 새로운 집에 대한 어색함이 뭍어났다. 나는 그런 남자를 보며 ' 아, 죄송해요. 이리 들어오세요 ' 라며 가식을 떨어댔다. 속으로는 택배아저씨가 아니라 하숙생이라는 것에 대한 욕을 백번 천번 하고 있었지만.
" 저..근데 되게 일찍 오셨네요 "
" 네. 집이 빨리 팔려서 "
" 아... "
어색함도 이런 어색함이 없었다. 나는 죽을만큼 어색함이 감도는 집에서 뛰쳐 나가고 싶었지만, 남자가 짐 가방 두 손에 든 채로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며 차마 그럴순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만 들릴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 쉬고 남자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짐가방을 냉큼 낚아채고 거실 한쪽에 내려 놓았다. 그러자 곧이어 남자가 왼손에 들려있던 짐을 쾅 소리와 함께 내려 놓았다.
" 제 방은 어디에요? "
" 저기 오른쪽 방이에요 "
" 아, 그럼 지금 짐 풀어도 되죠? "
" 네. 푸세요 "
남자는 내가 내려놓았던 짐과 자신이 내려놓았던 짐을 다시 들고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나는 남자가 방 문을 닫을 때까지 멍하니 서있다가 소파 가장자리에 살짝 앉았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걱정투성이였다. 밥은 어떻게 해줘야 하는거고, 티비는 어떻게 같이 봐야 하는거고…. 하지만 나보다는 꽤 여유로워 보이는 남자를 보니, 굳이 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거 같았다. 더군다나 지금은 내가 갑이고, 저 동그랗게 생긴 남자가 을이므로.
" 저기.. "
" 계약서 부터 쓸까요? "
" 네? 계약서요? "
" 네. 계약서요. 다르게 말하면 서로 지켜줘야할 규칙이요 "
남자는 아까보단 한결 편해진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내 말을 무시한채로 A4용지를 내밀었다. 나는 아무 표정 없는 남자에게 이상한 위압감을 느껴, 찍소리도 못하고 계약서를 두손으로 받았다. 사실 계약서라기엔 좀 거창했지만.
" 그 종이에 제가 이 집에 살면서 지켜줬으면 하는거 적으면 되요 "
" 몇개요? "
" 그냥 쓰고 싶은 거 다 쓰세요 "
남자와 나는 조용하고 어색한 집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열심히 계약서, 아니 규칙을 적어 나갔다. 사실 난 별로 바라는게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써내려갔다. 분명 갑을 관계이고 내가 갑인데, 왠지 모르게 내가 을이 된 기분이다.
" 제꺼 읽어보세요. 저도 그쪽꺼 읽어볼게요 "
" 네 "
<계약서>
을 = 김민석(하숙생)
1. 을의 사생활에 참견하지 않는다.
2. 갑과 을은 같은곳에 사는 것 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3. 을의 방에는 을의 허락을 받지 않은 이상 절대 들어오지 않는다.
계약서를 보며, 내 얼굴이 화끈해짐을 느꼈다. 쉽게 말하자면 조금 화가났다. 첫문장은 고개까지 끄덕이며 참견하지 않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화가 난 부분은 두번째 문장. 마치 내가 하숙생, 아니 을을 좋아하는 것 처럼 쓰여놓은게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게 바로 김칫국을 마신다는 건가?
" 저는 제 계약서나 그쪽 계약서나 이상한 부분은 없는거 같은데, 혹시 이상한 부분 같은거 있으세요? "
" ....아뇨. 없는거 같네요 "
" 그럼 이거 잘 보이는곳에 걸어 둘게요 "
남자는 내 굳은 얼굴 따윈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서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벽에 계약서를 열심히 붙였다. 속으로는 이미 왜 두번째 문장이 그따구냐며, 왜 너 혼자 김칫국 마시냐며 욕이란 욕은 다 하고 있었는데, 괜히 남자와 처음부터 싸우고 싶진 않았다. 앞으로 몇달을 같이 살지, 몇년을 같이 살지도 모르는 사이인데 말이다. 싸워서 어색한것 보다는 처음 만나서 어색한게 훨씬 나은거 같다.
아직 남자를 몇시간도 보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남자의 행동과 말투를 대충 유추해보면 성격이 그닥 좋지는 않은거 같다. 그리고 사실 나는 처음 문을 열고 남자를 봤을때 부터 그닥 좋게 보지는 않았다. 올라간 눈꼬리며, 무표정한 얼굴이며, 딱딱한 정장이며. 하나도 맘에 드는게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보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나? 하지만 저 계약서를 붙이고 있는 남자는 그런거 따윈 없는듯 했다. 그냥, 나랑 친해지기 싫다고 티를 팍팍 내는거 같이 보인다.
" 다 붙였어요 "
" 아, 네. "
" 그럼, "
" 잠시만요, 밥은 드셨어요? 벌써 저녁인데 "
" 아, 먹고 왔어요. 오늘은 그쪽 혼자 드세요 "
" 저기요 "
" 네? "
화가 벌컥 솟아 올랐다. 아까부터 참고 있었던 건데, 남자의 예의없는 말투에 그만 터져버렸다. 나는 처음부터 남자가 나에게 자꾸 그쪽, 그쪽 하는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분명 내 이름을 알고 왔을텐데, 멀쩡한 이름 안부르고 그쪽이 어쩌구저쩌구. 듣기 싫었다. 특히 저 남자가 하는거면 더더욱.
" 아니에요. 잘 주무시라구요. 불편하실텐데 "
" 아, 감사합니다. 그쪽도요 "
화가 나면 뭐하나, 말하질 못하는데. 나는 결국 입안에만 맴돌던 말을 다시 삼키고 애써 좋은말을 내 뱉었다. 그러자 남자가 희미하게 웃으며 가식적인 인사를 건네왔다. 내가 혐오하는 그쪽이라는 말과 함께.
* * *
' 띵동 '
피곤에 절여있는 눈을 간신히 떴다. 눈을 뜸과 동시에 핸드폰을 주섬주섬 찾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손을 휘적이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홀드 키를 누른채로 내 얼굴 앞으로 갖다 대었다. 으, 눈부셔. 나는 실눈보다 더 작게 눈을 뜨고 핸드폰 시계를 쳐다 보았다. 4시다. 오후 4시가 아니라, 새벽 4시.
나는 잠귀가 밝은 편이다. 아니, 매우 밝은 편이다. 그래서 한번도 엄마나 아빠와 함께 자본적이 없다. 옆 사람이 조금만 움직여도 눈이 떠지기 때문에 도통 잠에 이룰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옆 방에서 자그마한 소음이 생겨도 눈이 떠진다. 그런데 옆방엔 아무도 없고, 옆옆옆 방에 남자가 있었기에 간만에 조용히 자보나 했는데 이 예의없는 초인종 소리는 도대체 뭘까. 그것도 새벽 4시에.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머리를 이리저리 매만졌다. 도대체 누굴까, 엄마일까? 아빠일까? 짐을 놓고가서 다시 온건가.
" 누구... "
경쾌한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무겁게 열렸다. 그런데 내가 예상했던 모든 인물들을 다 빗겨가고, 생전 처음보는 얼굴의 여자가 서있었다. 여자는 민낯으로 서있는 내가 민망해 질 정도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온통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었다. 안꾸민 부분을 찾을수 있을 정도로. 여자는 나 만큼이나 놀란 눈치였다. 집을 잘못 찾은건가.
" 여기 민석오빠네 아니에요? "
" 아...그게, 맞긴 맞는데 "
" 맞다구요? "
" 네. 저희집 하숙생이에요 "
" 아... "
여자의 목소리는 애교가 섞여 있었다. 조금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소리가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런 여자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땅으로 꽂았다. 쌩얼에 수면바지에 헝클어진 머리로 서있는 내가 너무 초라해져서.
" 그럼 혹시 들어가도돼요? 민석 오빠 방에만요 "
" 어... "
" 안돼요? "
" 아뇨, 안될것 까지야 없죠. 들어오세요 "
여자는 내가 안 들여보내주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것 같은 표정이라, 내 잠을 깨운것에 대한 짜증을 꾸욱 누르고 여자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러자 여자는 활짝웃으며 빠르게 구두를 벗고, 내 손가락이 가르키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아직 잠이 덜 깨긴 했지만,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는 대충 파악할수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 집에 들어온 하숙생은 여자를 쉽게 집에 들이는 사람인거 같다. 분명 좋은 쪽으로 들이는건 아닐 테지만.
내 추측으론, 전에 하숙생이 살던 하숙생의 집에 몇명이 들락날락 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하숙생의 방으로 들어간 여자를 보면 그리 좋은 여자들이 들락날란 한건 아닌듯 했다.
여자가 방 문을 쾅 닫자마자, 하숙생의 방에서 여자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남자의 목소리도 간간히 들려왔고. 하지만 남자는 나에게 사과를 하러 나오지도, 변명을 하러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불 꺼진 거실에서 멍 하니 서있었다. 사과를 바랬던건 아니지만, 적어도 변명은 해야하는거 아닌가. 분명 이 집의 주인은 나이고, 저 남자는 고작 하숙생일 뿐인데. 나는 서서히 밝아지는 바깥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한달만 참자. 한달만. 아니면, 계약서 내용을 추가 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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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별명이에요. 오늘 내용에서는 민석이가 여자를 집에 들이는 장면이 나왔죠? 여기서 독자님들께서 알고 계셔야 할 사실은! 저는 민석이를 그리 나쁘게 쓰진 않을거에요..ㅎㅎㅎ 민석이는 소듕하니까요 ㅠㅠㅠ! 다음편에서는 여주와 민석의 성격을 알려드리고, 내용을 이번 글보단 조금 더 많이 쓸 예정이에요. 오늘도 더 쓰려 했는데 제가 졸거 같아서..ㅠㅠㅠㅠ 그럼 저는 옆집쓰러 갈게요! 오늘도 제 글 봐주신 모든 독자님들 애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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