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허각&지아 - I Need You
나 혼자만 몰래 상상을 하고 oh
# 스물 두 번째 이야기. Need you, Near you, Lik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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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로. 두구두구.
찬열이랑 내가 만난 지 백 일째 되는 날이다.
원래 정말로 기념일 이런 거 안 챙기는데, 표혜미가 부득불 이벤트를 하라고 우겨서.
나도 솔깃한 마음에 시도를 해 보는 중이다.
"표혜미. 뭐를 해야 된다고?"
"아, 너 남자 처음 사겨보냐고. 알아서 좀 해!"
"처음 사겨보잖아! 내가 어떻게 아는데!"
"말도 안 돼 진짜로… 그러니까 니가 이벤트를 해 줄 거라며. 그럼 뭘 할 지를 정하라고."
우리 집에다 표혜미를 앉혀놓고, 김치볶음밥까지 만들어주면서 꼬드기는 중이다.
정말로, 난 얘를 만나기 전까지는 제대로 누군가랑 사겨본 적이 없어서 이런 데엔 영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전에는 공원에서 촛불 깔고 장미 백 송이 주는 그런 이벤트하는 애들 보고 혀를 찼었는데, 막상 내 입장이 되니 그 애들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정말로 촛불길에 하트모양으로 장미 까는 건 정말로 쓰레기 같은데?
"걔가 뭐 좋아하지. 어.. 게임? 피씨방에다가 이벤트해야 돼?"
표혜미는 완전 '얘 병신 아냐?' 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정말 얘가 뭘 좋아하는 지를 모르겠다.
맨날 나한테 맞춰주기만 하니까 내가 얘 취향을 모르는 치명적인 사태가 일어나잖아!
"얘가 꿀 좋아한다고 꿀 한 바가지 퍼 줄 순 없잖아. 나 얘 뭐 좋아하는 지 모른단 말이야!"
"꼭 물질적인 걸 줘야 이벤트냐. 진짜 얘 또라이 아냐?"
"그럼 뭘 해야 돼. 난 냉장고 박스 안에 들어가서 토끼탈 쓰고 까꿍하는 그런 것도 싫어! 토나온다고!"
"잠깐만. 인터넷 찾아 보자."
인터넷을 뒤지며 '남친 백일 이벤트' '백일 깜짝 이벤트' 등을 검색했다.
여초 사이트에 나오는 썰들을 읽는데, 어, 그러니까…
'하얀색 레이스 달린 란제리 룩을 입구 남친 퇴근 시간에 맞춰서 와인 좀 따라놨는데… 남친이 퇴근하자마자 날 보고 안아서 방으로…'
"미친, 나보고 저런 거 하라고?"
"아 미안. 시행착오. 다른 거 찾아보자."
그 뒤로 수 차례 '빨간색 시스루 란제리' '남친의 와이셔츠' 등의 자극적인 글들을 거쳐,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이벤트를 찾았다.
'나랑 남치니랑 둘다 고딩인데 ㅎㅎ 스케치북 이벤트가 넘 식상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괜찮더라!'
스케치북은 좀 철이 지난 것 같은데.
일단 보류해두고.
'요즘 페북에 떠돌아다니는 거 있잖아. 그 사랑해 송 부르는 거! 짱귀여울 것 같음ㅋㅋㅋㅋ 내가 남자면 진짜 귀여워서 숨 넘어갈 것 같은데!'
사랑해송?
귀여운 거?
"야. 너 사랑해 송 알지. 걔, 이거 부르고 이번에 광고 찍었던 애."
"아, 그 있잖아 내가 할 말이 있어 였나?"
"어. 그거 내가 해도 귀여울 것 같아?"
한동안 표혜미는 정적을 지켰다.
무슨 욕을 장전 중이길래.. 괜히 쭈그러들어서 아무 말 없이 유튜브에서 그 원본 영상을 찾았다.
다시 봐도, 귀엽다.
"토끼 의상 입고 하면 좀 귀여울까?"
"이 날씨에?"
"어… 밤에 하면 되지 않나."
"니 맘대로 하는데, 뒤에 달달한 시간들을 땀으로 샤워한 채로 보내고 싶으면 알아서 해."
"그럼 동물잠옷!"
"맘대로 하라니까?"
그래서 표혜미를 불러놓고 요만큼의 협조도 받지 못한 채, 결국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을 짰다.
이걸 이렇게 이렇게 해서 요렇게 해 주면 좋아할까?
뒤에는 뭘 해야 되지? 선물은 뭘 줘야 되지?
전지편지를 또 써야 되나? 그거 나 중2 때 마지막으로 썼었는데? 노가다인데?
뭐라도 만들어서 줄까? 케이크 구울까? 초콜릿 만들까? 뭐하지?
표혜미는 시끄럽다며 짜증을 내다가도 결국 하나하나 사소한 것까지 도와줬다.
심지어 인터넷으로 잠옷 고를 때 귀여운 걸로 밀고 갈 거냐며 토끼랑 강아지, 호랑이를 두고 한 시간 동안 고민하기도 했고.
결국 S 사이즈로 잠옷의 주문을 마친 뒤엔 A4용지에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늘어놓으며 준비물들을 다 챙기기 시작했다.
-
역시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대한민국 대표 츤데레 (혹은 시발데레)라 불리던 표혜미 다웠다.
자기 이벤트 할 때도 도와달라는 딜을 매 문장 끝에 붙이던 표혜미는 능숙하게 검정색 전지에 하트를 미친듯이 뚫고 있었다.
나는 적어도 4절지 사이즈의 공간에 쓸 편지를 깨알 같은 글씨로 써 보고 있었고.
그리고 쿠키도 굽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노동력까지 섭외한 끝에, 모든 계획은 끝이 났다.
이제 찬열이가 떡밥만 물면! 모든 이벤트는 성공으로 끝나는 거다.
-
D-day.
바로 오늘이! 백일이다!
자정이 된 순간부터 페북에 온갖 축하글이 쏟아졌다. 나는 백일인 지 몰랐던 척 연기를 했고, 표혜미는 내 연기를 밀어주기 위해 온갖 욕을 써 줬다.
찬열이는 섭섭하다는 듯 내내 찡찡댔고, 나는 배달온 토끼 잠옷을 만지작거리며 엄청 커다란 박스에 온갖 선물들을 집어넣었다.
오늘은 일생 일대의 순간 중에서 결혼식 다음으로 예뻐보여야 하는 날이었으므로, 새벽 다섯 시에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이 짓은 졸업사진 찍을 때도 안 했던 짓인데, 싶으면서도 억지로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밀어넣었다.
아침엔 자느라 시간이 없어서 절대 못 하는 샤워를 하고 평소보다 세 배는 열심히 세수했다.
나오자마자 바로 스킨 케어를 하고, 썬크림을 펴 바른 뒤에 잠깐 고민하다가 메이크업 베이스만 요만큼 짜서 발랐다.
그 이유는.. 그러니까. 표혜미랑 내가 준비했던 가장 큰 이벤트 때문이었다.
평상시에도 화장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두껍게 발리는 기분이 별로라서.
그래서 남들 다 의무적으로 바른다는 비비크림도 없었고, 뭐 씨씨크림 그런 거 없고, 고작 있는 거라고는 파우더 정도?
그런데 그나마도 망설였던 이유는.
'너 아직도 뽀뽀 안 했지?'
'야 고딩이 무슨! 경망스럽게!'
'그냥 이번 기회에 확 해 버려. 한 번에 쫙!'
'야 나 쪽팔려…'
'아니. 그게 비장의 무기가 되는 거지! 아 생각만 해도 귀여워서 오장육부가 입으로 나올 것 같은데.'
그래.. 표혜미의 기똥찬 뽀뽀 계획 탓이다.
모공까지 보일 계획이니 최대한 화장은 얇고 깔끔하게 하라는 게 표혜미의 지시였다.
평소엔 썬크림이나 바르면 다행이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신경 써 봤자 뭐가 달라질 게 있을까..
투명한 렌즈를 몇 차례나 세척하고 나서 눈에 넣었다.
오늘 같은 날 눈이 아프면 정말로 혀깨물고 죽을까봐.
평상시에 하는 것처럼 대충 사람 같은 얼굴을 만든 뒤에,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양갈래로 땋을 거니까 아무래도 풀고 있는 게 낫겠지.
앞머리만 볼록하게 말아주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고 한 번 더 연습을 했다.
심호흡을 한 뒤, 쇼핑백에 찬열이에게 줄 선물상자와 잠옷을 담았다.
이건 표혜미가 우리 집에 와서 가져갈 계획이다. 왜냐하면 이건 깜짝 이벤트니까, 예상도 못하게 하려는 표혜미의 철저한 수법이었다.
교복 안에 하얀색 무지 티를 받쳐 입고, 간만에 느긋하게 꼼꼼히 교복도 다린 뒤 입었다.
단추도 끝까지 꼭 잠구고 치마 끝 길이도 앞뒤가 맞게 내렸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계란까지 부쳤다가, 이내 밥을 잘 못 챙겨먹는 찬열이를 기억해서 두 개를 더 깼다.
원래 찬열이가 우리 집에 오는 시간이 워낙 여유가 있어서 밥 먹을 시간은 좀 남으니까. 같이 먹고 가려고.
평소엔 찬열이가 와야 겨우 일어나는 탓에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둘 다 우리 집에서 엄마가 주는 감자나 고구마 같은 걸 챙겨들고 가기 일쑤였다.
그리고, 어김없이. 왔다. 찬열이가.
찬열이는 일단 문을 연 것이 나라는 것에 한 번,
그리고 준비를 다 마쳤다는 것에 두 번,
그리고 밥까지 준비를 해 놨다는 것에 세 번 놀랐다.
"웬 일이야? 오늘 일찍 일어났어?"
"응. 먹고 가."
먹을 건 없었지만 고맙게도 찬열이는 잘 먹어줬다.
물에 빈 그릇들을 꼭꼭 잠근 뒤 침대 위에 아까 그 커다란 쇼핑백을 올려놓고, 혜미한테 문자를 보냈다.
'야. 쇼핑백 침대 위에. 우리집 비번 알지 가져가'
'ㅇㅇ~ 나 오늘 담임한테 아파서 좀 늦을 것 같다고 함 내가 다 준비할 테니까 넌 못하겠다고 찡찡대지 말고 잘 해야돼 이년아!'
어쨌든, 방문을 꼭 닫고 찬열이와 집을 나섰다.
벌써부터 웃음이 피실피실 샜다. 그러자 찬열이가 물어왔다.
"왜 웃어. 뭐 기분 좋은 일 있어?"
"아니. 아니 그냥, 박찬열씨 백일 축하한다고요."
"아 예. 고맙네요."
"여자친구가 누구길래 그렇게 예쁘대요? 어휴 참."
"우리 징어 많이 아프나봐?"
"미안. 아 맞다 찬열아. 우리 오늘 거기 가자. 그, 요 앞에 서가앤쿡 새로 생겼대."
"오늘 야자 없지. 언제?"
"음… 내가 예약해 놓을게. 내가 너네 집 앞으로 갈 테니까 일곱 시에 너네 집 앞에 놀이터에서 만나자."
"웬 일이야? 니가 날 픽업해 가고?"
왜긴 왜야. 앞에서 판을 벌여야 되니까 그렇지.
뒷말은 삼키고 그냥 웃었다.
-
"이야 오징어 볼만하다!"
표혜미는 끝나고 페이스북에 올릴 거라며 깔깔대며 내 몰골을 찍고 있었다.
진리는 학교가 마치자 마자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은 먼저 가, 찬열아~'라고 외쳤다.
찬열이는 영문도 모른 채 김종대에게 피씨방에 가자며 끌려갔고.
진리랑 수정이는 날 구석 화장실에 데려와 양갈래로 머리를 땋기 시작했다.
"야. 이거 완전 복고 풍인데? 존나 촌스럽잖아."
"그럼 애교머리를 좀 뺄까?"
"…야 있어도 똑같은데?"
"그럼 니가 촌스럽게 생긴 거야. 어쩔 수 없어."
표혜미는 가져온 동물잠옷을 꺼내 입혔다.
안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얇은 크롭티와 5부 바지를 입힌 뒤, 나중에 데이트를 갈 때는 동물 잠옷을 벗으라며.
그리고 진리는 뭔가 티가 나지 않게 내 얼굴을 손보고 있었다.
"야. 코에다가 뭐해."
"섀딩."
"뭐하는데!"
"콧대 만드는데."
"이건 또 뭔데?"
"눈썹 그려."
"나 앞머리도 있는데?"
"바람 불까봐."
"야 그걸 왜 입술에 발라?"
"틴트 말고 립스틱 바르라고."
"미친놈이..?!"
"됐어. 예뻐지고 있어. 오징어가 드디어 사람 되고 있잖아!"
정말로. 사람이 되었다.
예뻐졌다. 눈도 왕방울 만큼 커지고, 콧대도 살아나고 뭔가 모르게 얼굴이 작아졌다.
뭘 한 건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어쨌든.
표혜미가 변신을 하고 있는 날 다 찍고 나서야 표혜미의 가시거리에 들어온 수정이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몇 시에 약속 잡았다고?"
"일곱 시."
"야 남을 것 같은데? 뭐 깔아야 될 거 있어?"
"아니. 그냥 가서 선물 상자만 대충 꺼내고 얘가 노래 부르면 됨."
"야, 부럽다 진짜. 나는 언제 남친 생김?"
수정이의 마지막 말에 진리가 고개를 저었다.
"우린 누구 사귀면 안 돼. 데뷔하면 막 과거로 떠돌아다닐 걸."
"존나… 그래 그냥 성공해서 결혼이나 잘 해야지."
표혜미는 주섬주섬 뭔가를 다 정리하더니 꼭 전장에 나선 장군처럼 우렁차게 외쳤다.
"자. 그럼 가자."
-
나를 넓은 놀이터 위에 뚝 떨어뜨리고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마 여기저기서 내 사진을 찍고 있겠지. 벌써 삐릭 하는 동영상 촬영 시작음이 울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하트 모양의 상자에 든 것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손가락으로 쪼끄맣게 다시 외웠다.
이거 진짜 괜찮겠지?
그리고, 일곱 시가 되기 5분 전에 찬열이가 나타났다.
바로 벤치 뒤에 숨어서 찬열이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이거 진짜 심장 떨린다. 이거 망하면 진짜 나 자살할 것 같은데.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뿅 일어났다.
"찬열아!"
찬열이는 놀란 듯 눈을 한계까지 크게 떴다.
나는 얼굴을 가렸던 손을 빼꼼 펼친 뒤 말했다.
"백일 축하해."
있잖아 내가 할 말이 있어.
사실은 내가 너를 좋아해!
하면서 수없이 하트를 그리고 쏘고 만들자 찬열이는 부끄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지막으로, 내가 너를 사랑해! 라고 외친 뒤 하트를 뿅 쏘고, 하트 모양 상자를 찬열이에게 안겨 주었다.
"내가 많이 좋아해, 찬열아!"
쪼그맣지만 나름대로 크게 말한 뒤 까치발을 들어 찬열이의 볼에 슥 입술을 갖다댔다.
차마 용기가 없어 눈을 꾹 감고 정말 입술을 '갖다댄' 뒤 떼어냈는데.
눈을 살짝 떴을 때, 찬열이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야유 소리, 그리고…
"나도."
찬열이의 목소리까지.
☆★☆★☆★
김베브입니당.
백일이 된 찬녀리와 징어 ㅠㅅㅠ..
22편인데 아직두 백일...
쪼끔 많이 오글거리지만..!
요즘 고딩 연애가 오글거리는 맛이잖아요 ㅠㅠ 이해해주세요!
(사실 제가 이런 이벤트를 안 해 봐서... 저는 기념일 챙기는 성격이 아니라서...ㅠㅅㅠ)
엑소 내가 많이 사랑해~ *_*
이 글을 읽으실 분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지만 ㅠㅠ.... 글을 읽는 동안만큼은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암호닉 ////
소문 / 푸우곰 / 비타민 / 망고 / 준짱맨 / 챠밍 / 홈마 / 눈두덩 / 러팝 / 판다 / 지안 / 이리오세훈 / 길라잡이 / 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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