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야.
멍하니 앉아서 제 손 끝만 내려다보던 경수는 고개를 돌려 백현을 바라봤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방 분위기와 맞지않게 백현의 눈은 자신을 태워버릴듯이 이글이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똑딱똑딱.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고, 멍하니 백현을 바라보며 머리속으론 초를 세던 경수의 머리카락을 틀어잡은 백현은 경수의 귓가에 나즈막히 속삭였다.
경수야.
잡힌 머리는 하나도 아프지않았다. 오히려 경수는 제 얼굴에 닿는 백현의 숨이 달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도경수.
피식피식 올라가는 입꼬리를 백현은 숨기지않았다. 바르르 떠는 경수의 어깨를 부셔버리고 싶었다.
너도 내가 무서워?
경수는 그 짧은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애정과 원한의 실
w.다정
" 어때? 입에 딱 맞니? 엄만 좀 짠거같기도 한데.. "
" 딱 맞아요 어머니."
사실 국은 경수에 입맛엔 항상 짜기만했다. 그럼에도 항상 간은 딱 맞다며 웃어보이는 경수의 말을 계모는.. 우습게도 정말 믿었다. 백현이 짜게 먹으니까. 그게 경수가 국이 짜다 말할 수 없는 이유였다. 경수의 친모는 항상 간을 싱겁게 했다. 물론 그게 건강에 좋다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경수가 고혈압이 있단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눈치없는 계모께서는 자신이 고혈압이 있어서 간을 싱겁게 해야한다는 것은 물론이요 그것 때문에 밥을 계속 걸러 살이 빠진 것 조차 모르고 있다. 그냥 겉으로만 속 좋은 여자인척, 저를 위해주는 척 하고 있을것이다. 제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아들이라서, 단지 그뿐이었다. 한번도 경수는 계모의 아들인적이 없었다.
" 백현이가 왜 이렇게 안내려올까.. 경수야 네가 좀 깨우러 갈래? "
" ... 죄송해요, 저도 늦어서 빨리 먹어야 되겠어요. "
" 아, 음.. 어, 그래.. "
미쳤다고 내가 그 방에 들어가나.. 속마음을 주저없이 상대방에게 다 내뱉었다면 세상은 일찍히 멸망했을 것이다. 잠깐의 틈이라도 주면 무시무시한 악담이 튀어나올꺼같아서 경수는 크게 밥을 떠서 입속에 우겨넣었다. 짠 김치, 짠 나물들, 짠 국까지 어느 하나 도저히 먹을 마음이 들지않아서 그 뻑뻑한 밥을 경수는 묵묵히 씹어삼켰다. 눈치가 있다면 계모도 알 것이다. 이 상황이 얼마나 조용하고 단조로운지, 그래서 변백현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겠지만. 지 아들이라는 놈을 내 건너편 의자에 앉혀놔야 마음이 편해지려나.. 세차게 우물대던 입이 비로소 밥을 다 넘겼을때, 백현의 유유히 주방으로 들어와 경수를 지나쳐 돌아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오늘 아침 뭐야? 바쁜 시간에 덜 매진 제 넥타이를 고치며 묻는 백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경수는 아까 삼켰던 밥이 목에 걸리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우리 백현이가 좋아하는 굴국이야, 시원하겠지? 언제 어색한 웃음을 지었는지도 모르게 환하게 웃는 계모의 얼굴에 이 짜디짠 국을 부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경수는 제 주먹을 꽉 쥐었다.
" 잘 먹었습니다. 먼저 갈께요 어머니. "
" 어머, 경수야 조금 더 먹지 그러니.. 밥이 저렇게 많이 남았는데.. "
" 괜찮아요. "
사람 좋은 척하면서 웃어보였다. 언젠가는 분명 이 어색한 분위기는 깨지고 저 음식들이 짜서 못 먹을정도라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 백현이 우리 백현이, 니네 백현이 데리고 우리 집에서 썩 꺼져버리라고 이 첩년아.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인줄 알아? 니 얇고 하얀 목에 걸려있는 진주 목거리는 분명 우리 아버지가 사다준거지. 그대로 저 목거리를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경수는 참고 또 참았다.
경수는 재빨리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토기가 올라왔다.
" 우욱- "
" 어, 어머 경수야! "
경수는 그대로 욕실로 달려가 변기를 부여잡고 토하기 시작했다. 먹은게 없으니 나오는 것도 없었다. 위액만 웩웩거리며 토하던 경수는 문득 제 등 위로 올려진 손을 힘껏 바닥으로 내쳐버렸다. 더럽게.. 어디다 손을 올려. 손등으로 제 입술을 닦고 일어난 경수는 바닥에 그대로 웅크려 제 손만을 바라보는 계모를 내려봤다. 우리 엄마가 생각나지? 니가 니 아들 백현이를 끌고 우리 집에 쳐 들어온 그 날, 내 손을 잡으려던 니 손을 우리 엄마가 내팽겨쳤잖아.
입안이 텁텁해져왔다. 고개를 들어 욕실 문을 쳐다봤을때, 백현은 단정한 넥타이 차림으로 경수를 쳐다보고있었다.
뭘봐, 시발.
조용히 입모양으로 물은 경수는 눈썹을 끄떡거리더니 뒤를 돌아 입을 행궜다. 계속 주저앉아있을 기세였던 계모는 백현이 뒤를 돌아 주방으로 들어가자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사라졌다. 네가 앉아있던 자리를 밟기도 싫어. 경수는 신발을 가지런히 앞쪽에 놓은 뒤, 폴짝폴짝 뛰어 욕실 밖으로 벗어났다.
***
" 경수야, 안색이 안좋다. 오늘도 밥 안먹었어? "
" 응, 토했어. "
" 그냥 먹지는.. "
" 드럽게 짜더라고. 그 여잔 눈치를 줘도 병신인건지 아니면 모르는척 하는건지.. "
찬열이 손을 들어 경수의 볼을 감싸쥐었다. 갈수록 말라가는게 꼭 제 탓같아서 안쓰러웠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는 보이지않는 서러움이 물씬 느껴졌다.
저의 이모, 그러니까 경수의 엄마가 죽어버리자 경수는 저의 집으로 오기를 간곡히 바랬었다. 찬열아.. 나 더 이상 살고싶지않아.. 장례식날. 제 허리에 팔을 두르고 고개를 묻으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들었을때 찬열이 그대로 입을 맞춰 버릴 뻔 한걸 경수는 알고 있을지, 안다면 더이상 저를 보지않을껄 알고있으니 시도조차 할 수도 없었다.
양호실가서 누워있어, 내가 선생님께 말해놓을께.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위태롭게 저를 쳐다보는 경수를 찬열은 꼭 안았다. 경수의 어깨는 가녀렸고 또 얇았다. 제 품에 꼭 들어오는게 자신의 사람인거 같아서 찬열은 잔인하지만 이모가 죽어서 조금은 행복하다고 느꼈다.
" 니네 게이냐? "
백현의 목소리.
찬열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백현을 바라봤다. 깔끔하게 머리를 정리한 백현이 피식 웃으면서 유유히 제 자리로 걸어갔다. 그대로 얼굴을 뭉게버리고 싶단 기분에 경수는 찬열의 마이자락을 꾹 쥐었다. 드러운 새끼.. 조그만 경수의 속삭임에 찬열은 경수의 주먹을 꼭 감싸주었다.
" 드러우니까 말 걸지마. "
" 니네가 드러운건 아니고? "
" 뭐? 저 새끼가.. "
찬열이 그대로 일어나 백현에게 달려들려는 것을 경수가 잡았다. 참아 찬열아. 제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는 행동에 찬열은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결국엔 그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일어나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교실은 미칠듯한 답답함으로 꽉 차있었다. 그러나 경수도 백현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에는 공기가 너무 무거웠다. 경수는 고개를 돌려 제법 먼 자리에 앉은 백현을 쳐다봤다. 백현 또한 경수를 묵묵히 쳐다봤다. 욕실에서 경수를 쳐다보던 그 눈길로.
" 첩년 자식이 어딜 말 걸어. "
" ... 저 미친년이 "
" 넌 니가 좀 덜 더러운거같지? "
" 안 닥쳐? "
" 니네 엄마가 첩질한거지 넌 첩질한거 없으니까 좀 덜 더러운거같지? "
백현은 그대로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나 경수에게 달려와 멱살을 틀어쥐었다. 닥쳐, 닥치라고 이 씨발.. 경수는 자신이 왜 백현이 화내고 지랄하는 모습이 좋은건지 알 수 가 없었다. 그냥 제 말에 반응하고 미친 것처럼 구는게 참 보기좋았다. 눈을 마주한채 경수는 맑게 웃었다. 그 모습에 백현의 가슴이 쎄게 울려서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리고 멱살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 야, 변백현. "
" .... "
" 쓰레기에 급이 어딨어, 다 똑같이 냄새나고 존나 썩었는데. "
백현은 참지못하고 경수의 뺨을 내려쳤다. 날카롭게 살과 살이 마찰되는 소리가 울렸고 경수의 뺨이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린채 아직도 미소짓던 경수는 제 멱살을 잡고있는 백현의 고운 손을 잡았다.
넌 손도 참 곱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쌩뚱맞은 경수의 말에 백현은 헛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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