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을까 01]
향내는 지독하게도 집안을 헤집었다. 모든 것이 사라진, 눅눅한 공기만이 제자리를 차지한 좁은 공간은 그 매캐한 냄새를 수용하기에 알맞았다. 가느다란 향은 몸을 태워가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리저리 집안을 찔러보다 어느새 코끝에 닿은 향의 비명에 어린 소년은 울부짖었다. 너무나도 지독한 그 냄새는 숨통을 틀어막을 것만 같았다. 그는 눈물방울을 훔쳐내다가 쫓기듯 집안을 빠져나왔다. 어떻게든 숨을 이어가려는 발악이었다. 빠져나온 바깥에도 향내는 끝까지 그의 코끝을 괴롭혔다. 비집고 흘러나오는 눈물은 손으로 닦아내기에 벅찼다.
깡마른 손가락이 이리저리 배회했다. 까칠한 빵 봉지의 끝을 여러 번 쓰다듬던 그 손가락은 작은 빵 위에 멈추어 선다. 처음일수록 작은 것부터. 흙더미를 뒤집어 쓴 거리를 제집인 마냥 가볍게 쏘다니던 누군가가 알려준 것이었다. 생존하기 위한 발악을, 더 나은 삶을 위한 발걸음을. 상혁은 입을 앙다물었다. 이제 아무렇지 않은 듯 당당치 못한 손을 숨기고 가게를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가게 안에는 늙은 주인과, 하품을 늘어지게 뱉는 손님 하나 뿐이다. 자연스레 빠져나가기만 하면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고개가 절로 수그려지는 이 일을, 완벽하게 끝내고 잊어낼 자신이 있었다. 어느 큰 손이 다가와 빵이 으스러지도록 꼭 쥔 손을 감싸지 않았다면 말이다.
“할머니, 이거 다 해서 얼마에요?”
으깨진 빵을 꼭 쥔 손을 살살 달래어 빵을 빼낸 큰 손은 다른 빵을 더 집어와 계산대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상혁은 고개를 숙인 채로 들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자신의 찢어질 것만 같은 슬리퍼와, 못지않게 낡아 떨어진 운동화만이 꼭 들어찼다. 숙인 고개 아래서 무언가 울컥 올라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일을 성공시키지 못해 서럽다는 것 보다는 어떤 것이든 훔치려 들었다는 것을 남에게 들킨 수치심과 같았다.
상혁이 고개를 든 것은 가게를 나와 큰 손이 빵이 가득 든 검은 봉투를 내밀 때였다. 낡은 운동화에서 낡은 작업복, 옷차림과 대비되는 말끔한 외모. 무엇보다 익숙한 옷이었다. 상혁이 무언가를 말하고자 마른 입술을 떼어내는데 남자는 봉투 안에서 소보로빵을 꺼내어 상혁의 입에 물렸다. 갑작스레 입안에 들어찬 빵에 상혁은 제 입을 어찌 해야 할지 몰랐다.
“배고프지.”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상반된 음성이었다.
“살아도 착하게 살아야지.”
베어 문 빵이 침에 섞여 목구멍을 타고 들어갔다. 목이 메어 눈살을 찡그리며 침을 삼켜댔다. 허나 그런 상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좁다란 목구멍은 끈질기게 수분을 요구했다. 남자의 두 마디는 전혀 연결성이 없었다. 하지만 그 짤막하고 어쩌면 무신경한 어투와는 다르게 말이 닿은 상혁의 귓속에선 온함이 퍼져나갔다. 급하게 침을 넘기다 기도로 잘못 넘어간 상혁이 괴로운 기침을 뱉었다. 남자는 제 손에 들린 생수병을 상혁에게 건넸다. 생수병을 받아든 상혁은 그것을 건넨 남자의 손에서, 다시금 옷차림으로 눈을 옮겼다. 머릿속에서 다시금 향내가 피어올랐다. 벌써 삼년이 지났지만 냄새는 생생했다. 남자의 낡은 작업복이 냄새를 더더욱 짙게 상기시켰다.
“아, 아으, 아…….”
마른 목구멍은 제대로 된 소리를 내지 못했다. 혹여나 제 앞에 선 이 사람이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떠날까봐 상혁은 급히 물병을 열어 목을 축였다. 와중에도 작업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상혁이 물을 머금고 물병에서 입을 떼었다. 볼에 가득 차게 담긴 물을 삼켜내고자 했을 때, 그제야 상혁은 실로 새겨진 남자의 이름을 보았다. ‘정택운’. 기억에서 피어난 향내는 미미해져 갔다. 상혁은 입에 담긴 물을 한꺼번에 삼켜내고는 입을 열었다.
“아, 아버지…….”
다문 입술을 깨문 이사이로 피비린내가 짙게 퍼졌다. 상혁은 갈라진 입술 틈새로 새어나온 피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삼년만인가요, 아버지? 눈짓으로 그렇게 물었다. 앞에 선 택운은 그런 상혁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손을 들어 푸석한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한 번 쓰다듬었을 때 상혁은 얼굴을 일그렸고, 두 번 쓰다듬었을 때 긴 눈시울 끝에 물을 맺혔으며 세 번 쓰다듬자 간신히 서있는 것 같던 몸뚱이를 휘청거렸다. 키가 커서 잘 몰랐지만 마른 몸이었다. 택운은 상혁의 팔을 제 어깨에 두르고 한 손으로는 그의 허리께를 붙잡았다. 잔뜩 흐트러진 몸은 걷는 것조차 제대로 하질 못했다.
나이 스물다섯에 결혼도 안했는데 벌써 다 큰 아들이 생겼다. 택운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겉으로는 다른 말을 꺼냈다.
“이름이 뭐야?”
생각난 대로 뱉다보니 이상했다. 아빠가 아들의 이름을 모른다는 게.
“상혁이. 한상혁……, 아버지, 나 상혁이…….”
아들은 아버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삼년은 너무 길었잖아요. 속으로 삼키며 물었다. 말하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대신하는 아버지의 손길에 아들은 그 전처럼 울었다.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어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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