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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03]





  이 미친놈이. 학연은 원식을 향해 잔뜩 얼굴을 구겼다. 도둑질을 손가락질 해대는 이들은 많았다. 머리가 하늘로 뻗치고 구멍 난 옷을 감추지 못하는 동네 거지들도 학연의 행위를 보며 쥐새끼 같이 웃어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학연은 그들보다도 원식에게 더 어이없어 했다. 훔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훔쳐달라는 것. 그것도 자신을. 학연은 습관적으로 아랫입술을 씹었다. 입술을 무는 앞니가 원식의 말을 잘근잘근 씹었다.






  “나 미친놈 아니에요.”






  그래, 퍽이라도 제가 미쳤다고 말하겠는가. 학연은 실소를 지으며 머그잔을 한손으로 모아 쥐었다. 애초에 지갑이나 빨아먹고 다니는 모기새끼네 집에 찾아온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어휴, 하고 한숨을 토한 자리에 손을 짚고 일어났다. 장판이 조금 눅눅한 것이 비가 오려는 모양이다. 학연은 개수대에 머그잔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이로써, 시간 끌기는 이만이다. 어쩌다 만난 도둑새끼가 궁금했다면 내가 해줄 대답은 다 끝났다. 학연은 개수대에 기대어 섰다. 일종의 명령과도 같은 것. 내 집에서, 나가주길.






  “나 좀 도와줘요.”






  학연은 돌아서 물을 틀었다. 쏟아져 내린다, 보다는 벽을 타고 흘러내린다는 표현이 적절할 미미한 물결을 컵에 담았다. 물이 담긴 컵을 주방세제의 입구 앞으로 가져다 대었다. 끈적끈적한 주방세제가 말라붙은 주둥이를 꾹꾹 몇 차례 누르니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컵을 씻기엔 턱도 없는 양의 세제가 물에 섞인다. 학연은 괜스레 머그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할 만한 거 아니야. 당당한 적도 없고.”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이 기분 좋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도리어 남의 지갑을 뽑아 먹는 짓은 이 비뚤어진 사회에 대항하는 행위라며 저를 위로했던 적도 있었다. 어느 평범했던 날 밤, 남들 보다 조금 특별했던 그 누군가가 제 행위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학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절대 당당할 수 없는 모습 위로 뿌려진 학연 본인에 대한 조용한 거부감. 그리고 지금, 절대 당당하지 못한 모습 위로 덮이는 학연 본인에 대한 호정. 혼란스러웠다.




  담배냄새 섞인 한숨이 바닥을 쓸었다. 좁은 공간에, 학연은 그 담배냄새가 일렁임을 느꼈다. 앉아있던 원식이 일어나 점차 학연에게 다가왔다. 이만하면 갈 때도 되었지, 라고 생각하며 원식이 현관으로 나갈 줄 알았던 학연은 그가 제 앞에 서자 당황한 듯 주춤했다. 그러나 이내 곧 아무렇지 않은 듯 몸을 세우고 그를 바라봤다. 이렇다 할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내가 왜 형한테 이런 부탁 하는지 알아요?”






  학연은 속으로 대답했다. 영악스레 남의 지갑 훔쳐 먹을 줄 아니까 사람도 적당히 훔칠 줄 알겠다 싶어 그런 것 아니냐. 혼자 대답한 그 말에 기분이 나빠 얼굴을 찡그린 학연의 눈앞에 원식의 명함이 놓인다.






  “뭐든 해낼 것 같았거든.”






  학연이 명함을 받아들었다. 다시금 구불구불한 글씨체가 눈을 어지럽힌다. 찡그렸던 얼굴을 펴고 원식을 보았다. 금방 걸어올 때와는 다르게 평안한 얼굴이다. 꼭, 내가 허락이라도 한 듯이. 학연은 명함을 공중에서 팔랑거렸다. 이것을 건넨 이유는? 눈으로 물었다.






  “그 밑에 적힌 주소. 난 하루 내내 거기에 있어요.”






  원식은 제 구겨진 옷자락을 정돈했다. 몇 번의 손길이 거치니 처음 왔던 그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학연은 여전히 개수대 앞에 기댄 채 원식을 눈으로만 좇을 뿐이었다.






  “다시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







  어느 새 끼걱끼걱하며 문이 열리고 바깥을 등진 채 원식이 학연을 향해 말했다. 말도 안 되는 부탁이다. 저를 훔쳐달라니 제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웃긴 줄은 알았다. 원식은 문을 닫으며 생각했다. 내가 있는 곳까지만 와서, 같이 가자고만 해준다면. 두려웠던 순간을 나누고 행방이 묘연해진 친구의 믿기 싫은 소식조차 잊어도 좋다고 해준다면. 모든 걸 잊어버리고 평생의 죄로써 옥죄어 올 과거를 털어버리고, 그렇게 함께 가자고 해준다면. 원식은 안주머니에서 담배케이스를 꺼내 열었다. 한 개비가 비었다. 원식은 한 개비가 빈 그 자리를 웃음으로 채웠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학연은 두터운 한숨을 내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별 미친놈을 다 본 날이다. 헌데 더 욕을 할 수 없는 것이, 그놈이 나가기 전에 주절거린 말에 몸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학연은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어설픈 불꽃을 내는 가스불에 그 끝을 지졌다. 불붙은 담배를 빨아들이자 매캐한 연기가 입안을 채운다. 학연은 일어서 너저분한 이부자리로 향했다. 청소 좀 할까 싶어 발로 이불을 뒤적거리자 딱딱한 것이 발에 걸렸다. 그것을 꺼내 든 학연은 실소를 터뜨리곤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엄지 끝으로 그을음이 잔뜩 묻은 유리를 닦아냈다. 이게 몇 년 전이더라, 공장에서 일할 때의 사진이었다. 그 속에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는 놈이 밉다고 재떨이로 사용했지만.






  “아무리 더러워도 착하게 살자고, 도둑질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이제 여기 사람들은 안 털어 먹는다? 가볍게 웃은 학연은 유난히 한 곳을 정성스레 문질렀다.



  “……사람은 훔쳐본 적 없는데, 나 이제 어떡하지, 운아?”






  텁텁해진 공기에 열린 창문에 가까이 가 섰다. 당연하게도 원식의 모습은 없었다. 흙빛의 하늘에 더 까만 구름이 끼었다. 장판이 눅눅하다 싶더니 비가 진짜 오려나 보다. 아직 불이 남은 담배를 바깥에 던졌다. 비싼 놈은 맛도 좋을 줄 알았지. 비싼 놈이든 싸구려든 맛은 담배 맛이었다. 여태까지 바라보고 온 것이 무색하게도, 정말 거기서 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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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정말ㅠㅠㅠㅠ 작가님 글은 보면 볼수록 제 취향이에요ㅠㅠㅠㅠ 한 개비가 빈 자리를 웃음으로 채웠다는 부분이 정말 맘에 드네요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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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길
친애하는 독자님! 독자님 취향에 제 글이 맞았다니 너무 고맙고 좋아서 어떡하죠;ㅁ; 어떡하긴 뭘 어떡할까요 우리 독자님 마음에 더 들 수 있게 더더 좋은 글 들고 와야지ㅠㅠ 그럼 우리 독자님 더 볼 수 있으려나요 다음에 봐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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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이건 진짜ㅠㅠㅜ대박인것 같아요 표현하나하나가 고급스럽고 심오해서 계속 생각나게 되고 막 그러네요ㅠㅜ 더해서 저도 담배각의 한개비부분이 진짜 좋은것 같아요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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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길
친애하는 독자님- 너무 과분한 칭찬을 받는 것 같아 심장이 방금 막 반박자로 뛰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 심장이 아프면 전부 우리 독자님 탓일 거예요;ㅅ; 독자님 있는 곳은 날이 많이 더우려나요? 더운 날씨에 몸 안 상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에 봐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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