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쓰다
세훈x준면
w.BM
준면은 세훈의 등에 업혀서 가게를 나올 때까지만 해도 만취해 잠이 들었었는지 얌전했었다. 한편으로 세훈은 그것이 다행이라 여기고 있을 때, 집 근처의 골목길에 다다르자 준면은 어느 순간부터 깨어났는지 대뜸 세훈의 목을 움켜잡고서는 갖은 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내려달라고 하기에 세훈이 준면을 내려주려고 자세를 낮추면 안 업어 줄 거냐며 투덜거렸고, 그래서 또 다시 업으면 몇 걸음 채 안가서 다시 내려달라고 난리였다. 슬슬 짜증이 밀려올 무렵, 준면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에 세훈은 준면이 제 풀에 지쳐 다시 잠든 모양이라고 여기며 안도의 숨을 뱉으려던 찰나, 세훈의 귓가에 준면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렸다.
“세훈아, 기억 나? 초등학생 때… 시소 타다가 넘어져서 무릎 까지니까 네가 그때도 나 업어줬잖아.”
“응… 기억 나.”
“우리 그땐 친구였지?”
“…….”
“왜 대답이 없어… 그때도 친구였고, 지금도 친구이고, 앞으로도 친구 할 거잖아…….”
“…준면아.”
“빨리 친구라고 말 해, 이 나쁜 새끼야…!”
준면이 두 주먹으로 세훈의 어깨를 내리치며 짜증을 부렸다. 만취한 사람이 때린다는 것이 뭐 얼마나 아프겠냐만, 세훈은 어쩐지 극심한 고통이 몸 전체를 휘감는 것 같았다. 친구라고 말 해, 빨리! 준면이 웅얼거리며 대답을 재촉했다. 세훈은 이를 악물고서 조금은 힘겹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친구하자.”
“정말이지? 응, 우리 평생 친구야.”
준면의 목소리가 금세 다시 밝아지더니, 세훈의 목을 끌어안고서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하더니, 다시 잠들었는지 준면의 고른 숨결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세훈은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올려다본 까만 밤하늘에 별 하나 없이 달만 둥그렇게 떠있었다. 유난히 밝은 달이 더없이 쓸쓸해 보여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세훈은 다시 고개를 수그리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안해, 준면아.”
너랑 친구 할 수 없어서.
봄의 끝자락에서 따스한 햇살이 강렬하게 창가를 비추는 한적한 토요일 오후, 준면은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무작정 입에 들이부었던 술의 후유증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없었다. 준면은 일단 갈증부터 해소해야할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나니 멍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득 부모님은 동창들과 같이 부부동반 여행을 간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갑자기 찾아온 적막에 준면은 괜히 멋쩍어져서 뒷머릴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릴없이 찬장도 열어보고 개수대 밑 서랍장도 열어보고 냉장고 문도 열어보았다. 딱히 구미를 당기는 것이 없어서 결국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넓은 베란다 창을 타고 넘어오는 봄날의 햇살에 눈이 부셨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쳤다. 햇빛은 어느 정도 가려졌지만 여전히 밝았다. 준면은 리모컨을 들고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돌려보지만 토요일 오후에 볼 만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죄다 재방송이거나 여행 다큐 프로그램이었고, 영화도 마땅히 재미있는 것을 하지 않았다. 준면은 결국 이미 재방송에 재재방송으로 봐서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알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시키고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텔레비전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웃고 있는데 물릴 때까지 봐버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딱히 웃기지가 않았다. 한참을 보다가 광고가 나올 때쯤 준면은 텔레비전 끄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다시 적막.
사실 주말에 집에 혼자 있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이토록 지루하진 않았었다. 준면은 드러누운 채로 몸을 뒤집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무난한 색의 벽지는 몇 년 전에 준면의 엄마가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바꾼 것이었다. 낡은 집이었지만 꼼꼼한 엄마의 성격 탓에 늘 새 집 같았다. 생각해보니 부모님이 결혼 하고 나서 단 한 번도 이사 간 적이 없었으니 이 집도 참 오래되었다. 뭐, 그것은 세훈도 피차일반일 것이다. 준면은 다시 몸을 뒤집어 엎드렸다. 제 팔에 턱을 괴고 있으려니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린다. 지루하다, 지루해. 준면은 크게 하품을 하고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줄곧 누워 있다가 갑자기 일어서니 머리가 빙빙 돌았다. 으, 죽겠다. 문득 준면은 자신이 일어나서 씻지 않았음을 깨닫고 욕실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야할 것 같아서 찬 물을 몸에 뿌렸다. 정신은 돌아왔지만 어딘지 멍했다. 씻고 나와서 준면은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로 화장실 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 온 몸을 덮쳐서 힘이 쭉쭉 빠졌다. 차라리 어제 밤의 일들이 기억이라도 나면 좋았을 텐데,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가 않아 모든 것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미안해, 준면아.’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세훈의 목소리에 준면은 깜짝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았다. 전후 상황을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데 오직 세훈의 사과만 떠올랐다. 괜히 슬퍼져 준면은 무릎을 끌어 모아 안으며 제 무릎 위에 얼굴을 기댔다. 다시 찾아온 무기력감. 좀체 견딜 수가 없어서 준면은 아예 완전히 얼굴을 묻어버렸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 주말에 쭉 혼자였지만 이렇게까지 무기력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주말동안 집에 혼자 있었어도 완전히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준면의 주말에는 늘 세훈이 있었다. 그것이 비단 주말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방학 때도… 일 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준면의 하루에는 세훈이 있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준면의 하루에 세훈이 있었고, 세훈의 하루에도 준면이 있었다.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으로,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고,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는 시간이 흐르면서 세훈과 준면의 곁에는 여러 사람이 왔다가 가기도 했었다. 준면의 옆에 세훈이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고, 세훈의 옆에도 준면이 모르는 세훈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절대 변하지 않았던 것은 세훈과 준면이었다. 몸이 크고 체격이 뒤바뀌어도 두 사람이 항상 함께였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준면은 이렇게 쭉, 늙을 때까지 세훈과 함께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백발의 노인이 된 세훈은 그때도 멋있을 것이라 상상해보기도 했었다.
먼 미래를 생각해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다만, 그 생각 속에는 각자의 가정을 꾸린 모습은 들어있지 않았다.
월요일이 되자 준면은 조금 늦게 등교하고 말았다. 겨우 지각을 면한 준면이 자리에 앉자마자 아침 자습이 시작되었다. 아침 자습이 끝이 나자 종현과 민석이 키들키들 웃으며 준면의 자리로 다가왔다. 준면은 또 왜 왔냐는 시선으로 두 사람을 보았고, 종현은 준면의 앞으로 제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휴대폰에선 익숙한 방의 구조가 찍힌 동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종인도 보이고 찬열도 보이고 크리스도 보였다. 그리고 기범도 보였고 자신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세훈도 있었다. 종현이 보여주는 동영상을 보던 준면의 표정이 충격으로 변하더니 곧장 종현에게서 휴대폰을 빼앗아들려 했으나, 종현은 곧장 휴대폰을 제 등 뒤로 감추며 더욱 더 장난스럽게 웃었다.
“김준면 흑역사 생성 축하 합니다?”
“야! 너 그거 안 내놔?”
“내가 미쳤니, 이걸 너한테 주게. 삭제할게 뻔한데.”
“그, 그거… 그거…….”
아연실색이 되어 표정을 일그러트리는 준면을 보며 종현과 민석은 재미있다는 듯 박장대소를 했다. 분명히 주말까지만 해도 기억이 나질 않아 고민했었는데 막상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된 제 주정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러다 문득 이것을 처음 보는 크리스에게까지 보이게 되었다는 생각에 준면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오세훈 그자식이 길바닥에 너 안 버렸나 보네.”
“어?”
“너 아주 난리였어, 오세훈한테 업어줘야 집에 가겠네, 어쩌네. 어휴, 나 같았으면 진작 너 버렸어.”
“그래도 뭐 김준면 입에서 욕 나오는 것도 보고, 나름 재미있었지.”
종현과 민석의 말에 준면은 곧장 제 머리를 감싸 쥐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던, 세훈이 미안하다고 말했던 것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제 가족인 종인은 그렇다 치고, 찬열과 기범의 얼굴을 앞으로 어떻게 봐야할지가 막막해서 준면은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술이 썼던 만큼 인생도 썼다. 준면은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엎드렸고, 세훈은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그런 준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기범은 일학년 교실을 기웃거렸다. 찬열이 몇 반인지 알 수가 없어 이 반, 저 반 다 들여다보면 찬열이 있는 반을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기범은 손에 쥔 꿀물이 담긴 유리병을 더욱 더 꼭 쥐고서 반을 기웃거리다가,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기범의 이름을 부른 것은 찬열이었다. 기범은 얼른 제 손에 든 음료수 병을 등 뒤로 감추며 찬열을 향해 웃어보였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나? 너 보러 왔지. 근데 몇 반인지 몰라서…”
“아, 저 6반이요. 무슨 일로 온 건데요?”
“여기. 이거 주려고.”
기범이 찬열에게 꿀물이 담긴 유리병을 건넸다. 찬열은 기범이 제게 건네는 것을 멍하니 보았다. 찬열은 눈을 마주하지 못 하고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 기범의 얼굴과 제게 건네진 유리병을 번갈아 보았다. 어, 얼른 안 받고 뭐 해. 기범이 조금은 민망했던지 찬열의 앞으로 유리병을 조금 더 내밀며 말을 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찬열이 고맙다고 말하며 유리병을 받아 들었다. 유리병을 건네받으며 제 손에 살짝 닿은 기범의 손으로 인해 찬열은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았다.
“아직 민증도 안 나왔으면서 벌써부터 까졌어, 찬열이.”
“아, 그, 그게……”
기범의 말에 찬열이 당황한 표정으로 횡설수설 갖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전부 듣고 있던 기범이 재미있다는 듯 작게 소리 내어 웃자, 찬열은 말을 멈추고는 기범을 보았다.
“장난이었는데.”
“아…….”
“그래도 너무 마시지는 마. 어른 되면 마시고 싶지 않아도 마시게 될 텐데.”
“네, 네! 어휴, 저도 그거 제 의지로 간 거 아니에요. 하, 하하, 선배 이거 고마워요!”
찬열이 기범에게서 받은 유리병을 흔들어 보이며 먼저 반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기범은 후다닥 사라지는 찬열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기 어린 얼굴을 지우지 않고서 있다가 제 반으로 올라갔다. 반으로 들어온 찬열은 기범에게 받은 유리병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봄이었다. 사랑이 싹트는 계절.
꺄 여러분 이거 보래요 찬열이랑 기범이 연애한대요! 77ㅑ ... ...찬열이랑 기범이 이야기 쓰면 연애하고 싶어요 막.. 막... 어워으으ㅜ어으으으으유유유ㅠㅠㅠㅠㅠ 그리고 세준도 곧! 이제 곧! 연애 시작 합니다. 껄껄. 즉, 커쓰도 이제 곧 끝이 난다는 것이죠...ㅁ7ㅁ8 생각해보면 저는 왜 10편을 못 넘기는 것인지 ... ... 허허 ... ... 아 그리고 음... 제가 사정이 생겨서 이제 일주일에 한 번 밖에 글을 못 올릴 것 같네요... ㅠㅠ 연재텀 늦어져도 이해해줘요 하트.. 사랑합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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