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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눈 떠봐요.” 낯선 느낌에 한참을 끙끙대다 눈이 부신 듯 인상 쓰며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은 흐릿하게 보이지만 1년 만에 다시 앞을 보는 거라 무척 감격스러웠다. 아직은 흐릿할 거란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히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곰 인형에 시선이 닿자 조심히 끌어안고 웃었다. “다행히 잘 보이는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은 조심해야 하고, 오늘 외출은 금지. 눈이 부시면 선글라스라도 끼고 있던가 하면 되고, 눈에 자극 주면 안 돼요.” 남우현이라고 했던가, 여기 병원 의사들 중 젊은 것 같던데 언제부터 날 봤다고 처음부터 친근하게 구는지. 지금처럼 간호사들과 같이 있을 때면 존댓말하며 의사답게 행동했지만 가끔 쉬는 시간이라며 놀러올 땐 친구와 만난 듯 장난치기 바빴다. 날 처음 봤을 때, 너무 우울해보였다나 뭐라나. 그렇게 우현은 수술이 잘 돼서 다행이라며 병실을 나갔고, 내 눈은 다시 곰 인형으로 향했다. “보고 싶다.” 이젠 인형을 마주보고 혼잣말하는 버릇까지 생겼는지, 대답할리 없는 인형만 물끄러미 쳐다봤다. * 그가 남기고 간 메모를 집어 들었다. 보고 싶을 때 연락하라며 적어준 전화번호. 이젠 제법 앞이 잘 보였고 눈이 시리지도 않았다. 다리만 완벽히 다 나으면 좋을 텐데.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는 게 고작이었다. 한참을 메모만 쳐다보다 올해 핀 꽃을 보려 막 목발을 잡았을 때, 병실 문이 열렸다. “와. 생각보다 더 예쁘네.” 일어나려 목발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듣기 좋은 목소리에 반했던, 언제나 다정하게 말해주던 그가 눈앞에 서 있었다. 연락도 안 했는데 갑자기 무슨. 놀라움에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도 잠시, 황급히 이불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쳤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반칙이라며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나에 비해 가만히 웃기만 하던 그가 다가와 침대 끝에 앉았다. “갑자기 왜 왔어요. 진짜 이러기에요?” “미안. 나 이제 프로젝트 준비 들어가서 많이 바빠질 거야. 그래서 미리 찾아온 거고.” “그럼 이제 자주 못 와요? 이제 안 와?” “아니, 전처럼 자주 보지는 못할 뿐이야. 예쁘기만 한데 얼굴 좀 보여주지?” 늘 이런 식이야. 이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천천히 이불을 내렸다. 옥상에 갈 거라고 선크림을 미리 발라둔 게 다행이었나. 침대에 기대 세워놓았던 목발을 다시 제자리에 두려 손을 뻗었다. 내 행동을 따라 가만히 눈으로 쫓던 그가 내 손을 저지시켰다. “밖에 나가려고 했어?” “아, 옥상에요. 요즘 꽃 많이 피었다 길래.” “그럼 가자.” 곧 휠체어를 빌려 온 그가 날 태우고 옥상으로 향했다. 무릎에 덮어 준 담요를 꽉 쥐고 출입문에서부터 천천히 느껴지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 웃었다. 옥상 한 편엔 꽃과 같이 사진 찍는 사람, 난간에 기대 얘길 나누는 사람들이 많았다. 덩달아 미소를 짓고 그를 올려다봤다. 바람에 흐트러져버린 머릴 정리 해주던 그가 한 쪽으로 이끌었다. 구석 화단에 이제 막 피려는 듯 옹기종기 모여 있는 꽃이 참 예뻤다. 절로 감탄이 나왔고 그런 날 흐뭇하게 지켜보던 그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렇게. 사진 찍자, 웃어봐.” “사진?” 고갤 끄덕이며 각도를 맞추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던 그가 날 보며 웃었다. 카메라 앞에 선 어색함도 잊고 그를 보며 따라 웃자 찰칵 소리와 함께 그가 다시 허릴 폈다. 나 말고 카메라를 보라며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다 다시 찍자며 폰을 들이댔을 땐, 어색함에 어찌 할 줄 몰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 보였다. 지워달란 내 말에도 이게 참 마음에 든다며 핸드폰을 다시 정장 안주머니에 넣어버린 그를 흘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돌려버렸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 마시니까 기분 좋지?” “네, 진짜 좋아요. 다리도 재활 치료 받고 있으니까 곧 걸을 수 있어요.” “가고 싶은 곳 생각해놔.” 병원 옥상을 한 바퀴 쭉 돌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기분이 한결 나아져 그가 사온 과일도 한 번에 다 먹어버리고 이젠 손을 꼭 붙잡은 채,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늘어놓기 바빴다. “시간나면 그 때 또 올게.” “알았어요. 밥 잘 챙겨먹고, 일도 잘해요.” “응, 갈게.” 아프지 않게 볼을 살살 꼬집던 그가 일어나 나가는 그 순간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이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나와 혼자 실실 웃어대다 침대 맡에 둔 그의 지갑이 보여 서둘러 목발을 찾아 복도로 나왔다. 벌써 내려갔을까. 좀처럼 앞으로 빨리 나아가지 않아 답답해하며 막 코너를 돌았을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선 남우현과 그가 보여 웃으며 다가서려했다. “아 그래서 잠깐 보러온 거냐? 이젠 누나한테 간다고?” “어, 이제 많이 바빠져서 미리 가 봐야지. 그동안 안 찾아가서 좀 찝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니까.” 누구 얘길 하는 건지 살짝 진지해 보이는 그들에 다가가지 못하고 다시 코너를 돌아 벽 뒤로 숨었다. 그럼에도 들리는 대화에 가만히 고갤 숙였다. 그냥 별 얘기 아닐 수도 있는데, 왜. “아까 만나보니 어떻든? 난 뭐 볼 수가 있어야지.” “담당의사 아니었어?” “잠깐 맡았었지, 지금은 아니고. 무튼 좋아 보여?” “응, 아까 옥상에도 데려다줬고.” 그 말에 짧게 휘파람 소릴 내던 우현이 둘이 무슨 사이냐며 장난을 걸었다. 그 말에 가만히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벽에 딱 붙어 숨죽였다. 왠지 그의 대답이 궁금하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 했지만 진심을 알고 싶었다. 그간 우리 둘 사이를 보면 누가 오해할 법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확실히 말하면 우린 남들이 말하는 그런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확실히 정의 내리고 싶어 얘길 꺼내려다 다시 삼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여자들은 이런 거 딱 정하는 걸 원하지 않는가. “무슨 사이긴. 그냥 내가 도와주고 있는 동생이지.” “에이. 누나 때문에 그렇게 챙겨주는 거야?” “그렇기도 하고. 누나가 저지른 일이기도 하니까. 따지고 보면 그렇잖아, 걔 눈 저렇게 만든 건 누나 때문이지. 나 좀 냉정하냐?” “너답게 참 현실적이다. 다음에 연락해, 밥이나 먹자.” 벽을 타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대화가 끝난 듯 저 멀리 희미해져가는 발소리를 가만히 듣다 고개를 숙였다. 그가 말한 ‘누나’는 누구고, 날 이렇게 만들었다니. 그럼 그 차량 주인이 그가 말한 ‘누나’란 말이잖아. 무슨 관계인지 궁금했다. 친누나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고, 현재 내가 알기론 그는 여자친구가 없다. 그럼 대체 누구일까. “어, 너 여기서 뭐해. 어디 아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코너를 돌 던 우현이 날 발견해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맞췄다. 그의 목소리에 안정이 되진 않고 오히려 손이 떨렸다. 천천히 고갤 들어 우현을 쳐다봤을 때, 그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 “아, 이거 놓고 가서.. 전해주려고 했는데. 둘이 아는 사이인지 몰랐네. 전해줘..” “야 잠깐만. 너 다 들었어?” 말없이 우현의 손에 지갑을 쥐어주고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날 바로 잡아 주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그냥 걸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밀려오는 고통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뭔가 머리를 맞은 것처럼 띵했다. 이제 그를 어떻게 봐야할까, 바빠진 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화가 났다. 그냥 놀아난 것 같은 기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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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어떡하지.. 결말을 어떻게 하지 @.@
암호닉♥
도끼, SZ
+아 매번 흔적 남겨주는 텐더님도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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