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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열이 뛰어내렸다 

[ 있잖아 ] 

[ 여기로 지금 올래? ] 

 박찬열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운동화를 챙겨 신고, 우산도 챙기지 못한 채로 밖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엘리베이터는 13층에 머무르고 있다. 이 미친 상황에 엘리베이터는 딱히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엘리베이터 옆으로 난 비상계단으로 뛰어내려와, 아파트 단지에서 뛰어나왔다. 

[ 경수야 ] 

 운동화 안으로 물이 차올랐다. 덕분에 운동화를 밟을 때마다 물이 함께 밟혔다. 내가 뛰고 있는 길 위로 비가 뿌려졌다. 길 옆으로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운동화는 다시 젖기를 반복했다. 박찬열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오직 그 사실만으로 나는 계속 뛰었다. 우리 집에서 박찬열네 아파트까지 걸리는 시간은 걸어서 십 분, 걸었다 뛰었다를 반복하면 약 칠 분이 걸린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박찬열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 있잖아 ] 

 박찬열은 자꾸 나를 애 타게 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박찬열은 과연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박찬열은 전에도 몇 번 자살을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불안하지 않다면 미친놈이다. 박찬열의 아파트 입구가 보였다. 최대한 질러가는 아파트 놀이터 계단을 뛰어 올랐다. 놀이터의 부드러운 모래까지 함께 내 신발에 들어왔다. 뛰는 속도가 아까보다 현저히 더뎌졌다. 아파트 놀이터 앞을 지나던 할머니가 나를 미친 놈 보듯 쳐다봤다. 

[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 

 진짜 미친놈은 내가 아니고 박찬열인데. 나는 박찬열이 자기 집보다는 옥상에 있을 것 같아서, 옥상을 올려다봤다. 박찬열은 옥상에 있었다. 박찬열은 웃는 얼굴로 울었다. 꼭 저 위에 있는 박찬열의 눈물이 떨어져서 나한테 닿을 것 같았다. 박찬열의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박찬열을 붙잡으러 올라가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한 지 몇 초 만에 문자가 도착했다. 

[ 내가 떨어지면 안아 줄 거야? ] 

 나는 고민 없이 답장했다. 

[ 아니. ] 

 사실은, 미친놈은 내가 맞다. 

 박찬열은 곧 떨어졌다. 쿵 소리에 나는 고개를 숙여 확인할 수 없었다. 두렵다. 대체 뭐가? 이기심으로 물들어 잡아 주지 않겠다고 하던 나 자신이? 비를 맞아 축축하게 늘어진 앞머리가 눈을 찔렀다. 떨어진 건 박찬열이 아니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눈 앞에 놓인 박찬열의 가방에 다가가서 발을 내딛은 순간, 또 한 번 쿵 소리가 들렸다. 박찬열이 떨어졌다. 진짜로. 

 그리고 나서 나는 뭘 해야 되냐는 생각을 했다. 나는 비겁했다. 그래서, 그래서 왔던 길을 거슬러 뛰었다. 마지막으로 본 박찬열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울고 있었다. 집에 도착할 즈음 나는 경찰에 전화해 말할 수 있었다. 

"저기요, 아까 어떤 사람이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졌, 아. 아는 사람이요? 네, 맞아요. 친구는……, 아니에요. 그냥 알던, 네. 수고하세요." 

 나는 다시 한 번 박찬열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쩌면 우는 게 아니라 나를 원망하는 것일 지도 몰랐다. 서러웠을까? 아마도 나를 죽이고 싶었겠지. 나는 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었다. 잘 보니 피가 튀어 있었다. 바지는 아예 버렸다. 

 들리는 말로, 박찬열은 사귀던 여자 애한테 차였고 그래서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그게 차라리 마음 편했다. 박찬열은 나랑 사귄 적도, 나한테 차인 적도 없다. 나는 박찬열과 사귄 적도 박찬열을 찬 적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박찬열이 뛰어 내린 것에 연관되지 않았다. 사실은 그러고 싶을 뿐이다. 소문은 소문대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 소문이 사실이 될 리는 없었다. 

 소문은 곧 변질돼 박찬열이 오세훈과 사귀다가 차였다고 다시 퍼졌다. 나는 거짓 덩어리인 학교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왔다. 막상 학교에서 나오고 보니 할 게 없었다. 그래서 박찬열의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양심 같은 건 쥐의 코딱지만큼도 없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그게 차라리 마음 편했다. 나는 비겁하다. 

 학교에 다녀온다고 입었던 교복은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박찬열이 뛰어내렸을 때 입었던 옷은 아직 세탁기에서 건조를 하고 있었다. 병원까지는 택시를 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에 나는 생각했다. 박찬열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박찬열의 병실 앞에서 나는 과연 내가 여기에 들어가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309호 병동. 박찬열 말고도 다섯 명이 더 있다. 혹은 더 많은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갔다. 박찬열은 울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뛰쳐 나가고 싶었다. 목적지가 학교든 집이든 아무 곳이나 좋았다. 박찬열만 없으면 될 것 같다. 

 나는 침착하게 박찬열의 침대로 가 앉았다. 박찬열이 나한테 할 말이 두려워서 숨이 덜컥 넘어 갈 것 같다. 사실 나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병문안을 온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곧 그 결정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애들이 네 얘기 많이 하던데." 

 박찬열은 흐릿한 시선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밖에 지나다니는 차 말고는 볼 게 없을 텐데. 상관은 없어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여자 애한테 차여서 그랬대. 그거 아니지?" 

 내 말에 박찬열의 눈동자에 초점이 맞춰졌다. 박찬열이 고개를 조금 돌려 나를 올곧은 시선으로 쳐다봤다. 나는 진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박찬열이 입을 뗐다. 

"아니면? 대답해 줄래? 너는 왜 나 버리고 갔어?" 

 박찬열의 마지막 말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할 말이 없었고 있더라도 할 수가 없었다. 상처투성이인 박찬열과 눈을 마주치던 순간 나는 그 때처럼 또 달려야만 했다. 병원에서 뛰쳐나와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나에게 장애가 있는 건 아닐까 심각하게 의심했다. 

 소문은 곧 사실과 비슷해졌다. 다리가 다 나아 학교에 나온 박찬열은 오세훈과 붙어 다녔다. 박찬열이 오세훈과 사귀다가 차여서 뛰어내렸는데 극적으로 살아나서 둘이 다시 사귄다. 소문은 곧 사실로 굳어졌고 애들은 모두 그 사실을 믿었다. 정작 오세훈과 박찬열은 그 소문이 돌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렇게 지내면 다 잘 될 줄 알았다. 사실은 그게 아니다. 소문은 사실이 아니고 그걸 깨 부순 것도 내가 아니었다. 

 중학교 이학년 때 같은 반 여자 애의 엠피쓰리를 훔친 적이 있었다. 그 여자 애는 단지 자기랑 사이가 안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남자 애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소문은 사실로 굳혀졌고 그 남자 애는 정말 많이 혼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애는 결국 전학을 가버렸다. 사실은 진실이 아니라는 건, 나 혼자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 난 거지만, 그 전학 갔던 남자 애 이름이 오세훈이었던 것 같다. 나는 생각하면서 창밖을 쳐다봤다. 오세훈이 박찬열과 함께 걷고 있었다. 순간 박찬열과 내 눈이 마주쳤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것 같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아, 이건 불안한 거다. 박찬열이 뛰어내린 것과 내가 얽혀 있다는 진실이 알려질까 봐. 

 나는 차에 치여 보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누군가가 나만 보는 앞에서. 단순히 내 앞에서 옥상에서 떨어졌던 박찬열의 기분이 어땠을 지 궁금해서였다. 건너편에는 오세훈이 서 있었다. 잠깐 선 버스에 도로가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나도 저쪽에서 달려오는 차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나는 버스 뒤편에서 차가 오는 소리를 듣고 조금 급하게 버스 앞으로 걸어갔다. 

 소리를 들어 보니 이건 조금 큰 차다. 아닌가? 차에 치이면 무슨 기분일까. 생각한 순간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길게 났다. 소리와 함께 연기도 엄청 많이 났다. 하지만 그 차는 결국 나를 쳤다. 나는 차에 치이고,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이 차는 박찬열이 탄 엠뷸런스다. 

 나는 박찬열과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 그 '박찬열 말고도 다섯 명'에 내가 포함된 거다. 박찬열은 또 손목을 그었다고 했다. 그래서 박찬열 엄마는 엠뷸런스를 불렀고, 그 엠뷸런스에 내가 치인 거다. 나는 별로 안 다쳤다. 근데 의사는 나더러 입원하라고 했다. 엄마도 그랬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내가 입원하고 나서 엄마가 침착하게 물었다. 

"왜 달리는 차에 뛰어들었니?" 

 나는 똑같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뛰어든 게 아니고 버스에 가려져 있어서, 차랑 내가 서로 못 봐서 그런 거예요."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안 했다. 병실은 조용했다. 왜 엄마는 내가 그 밤에 밖에 나갔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박찬열은 나한테 어쩌다가 차에 치였냐고 물었다. 같은 병실이라서 엄마랑 내가 대화하는 걸 들었을 텐데 왜 또 묻냐고 하니까 박찬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냐는 의미로 인상을 찌푸리자 박찬열이 입을 뗐다. 

"너한테 직접 듣고 싶어서." 

 꼭 계집애나 할 법한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복도에서 박찬열네 엄마와 우리 엄마가 하는 얘기가 들렸다. 우리 엄마는 박찬열네 엄마한테 보험금을 지급 받았다고 자랑했다. 내가 성적을 잘 받아 왔을 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내 존재는 미치도록 가벼웠다. 박찬열에게만 빼고. 

"존나 불쌍하네." 

"네가 제일." 

 박찬열은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내가 박찬열에게 궁금했던 걸 물었다. 

"너 오세훈이랑 사귀냐?" 

"아니. 근데 너 그 날 나 왜 버리고 갔냐고." 

 박찬열은 이번엔 조금 덜 궁금해 하는 투였다. 그래서 나도 그냥 지루하게 대답했다. 

"무서워서." 

"뭐가?" 

"네가 만약에 죽었으면 나 때문에 죽은 거잖아." 

"안 죽었잖아. 그리고 난 너 때문에 뛰어내린 거 아니야." 

 박찬열의 말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박찬열이 뛰어내린 이유는 알 수 없게 된다. 나는 다시 박찬열에게 지루하게 대꾸했다. 

"네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그러겠냐? 도경수가 안 죽였다고 믿겠냐고. 근데 그럼 대체 왜 뛰어내린 건데." 

"그냥." 

 박찬열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러고 보면 차에 치이려고 했을 때, 그리고 치이고 나서도, 나도 아무 생각 안 한 것 같다. 

 박찬열은 오세훈과 안 사귄다고 했다. 나는 박찬열보다 하루 먼저 퇴원했다. 그래도 학교는 안 갔다. 엄마는 그래도 좋다고 웃었다. 보험금이 꽤 많이 나왔나보다. 박찬열은 그 다음 날 퇴원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미친 듯이 미친 놈 같다. 박찬열이 뛰어내리려고 한 날 나는 뭐 때문에 비를 맞고 뛰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박찬열과 마주치고 나서 알았다. 조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박찬열을 무슨 이유로 몇 번이나 붙잡았을까? 그 전에도 박찬열은 죽으려고 할 때마다 나한테 전화했다. 아니면 문자. 박찬열은 나를 좋아해서 그런 걸까? 나는 박찬열에게 바로 물었다. 

"너 나 좋아하냐?" 

"어." 

 머리를 뭔가로 얻어맞은 것 같다. 그 뭔가를 콕 찝어서 말하자면 빗자루로. 박찬열은 단정하게 교복을 갖춰 입고 자리에 앉았다. 약간 구부러진 다리가 박찬열의 옆자리에 걸쳐졌다. 

"왜?" 

"네가 나 좋아하는 것 같아서." 

 아…….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박찬열을 좋아하는구나. 그럼 그 전에 자살한 건 대체 뭐고 떨어졌을 때 운 건 뭐냐는 거다. 나는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다. 박찬열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야?" 

"아니, 맞아." 

 박찬열이 웃었다. 오랜만에 박찬열이 웃는 걸 보는 것 같다. 

 박찬열이랑 영화를 봤다. 그것도 단 둘이서. 그 영화관 근처 국밥 집은 박찬열네 엄마가 일했던 데라서 좀 싸게 준다고 했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국밥을 먹었다. 어울리진 않지만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러다가 박찬열이 국밥 집에 휴대폰을 놔두고 왔다고 해서 찾으러 갔다. 걸으니까 또 배가 고파서 떡볶이를 먹었다. 떡볶이를 먹고 나서 박찬열이 일어날 때 말했다. 

"이제 집에 가자." 

 나는 이건 확실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너 좋아해." 

"그래?" 

 박찬열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박찬열은 가방을 집어 들고 나한테 말했다. 

"나도." 

 내일 학교에 가면 사실 엠피쓰리는 내가 훔쳤다고 오세훈에게 말해야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소문은 똑같다. 소문이 말하는 사실은 진실이 아니다. 

 박찬열은 곧 그 '소문'이라는 게 저와 오세훈을 가리킨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얘기해 줬을 땐 관심 비슷한 것도 안 보이더니. 박찬열은 그 소문을 퍼뜨린 놈을 찾아냈다. 그리고 난 그동안 오세훈을 찾아가서 옛날 일은 미안했다고 말했다. 오세훈은 괜찮다고 나한테 웃어 줬다. 그리고 자기는 맹세코 박찬열이랑 안 사귄다고 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알겠다고 했다. 

 박찬열의 말에 의하면, 그 소문을 퍼뜨린 건 변백현이라고 했다. 나는 변백현이 그럴 애였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박찬열이 틀렸을 지도 모른다. 정말 어쩌면, 그 소문을 퍼뜨린 게 변백현이 아닐 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밥 먹을 거야?" 

"아니." 

 박찬열은 무슨 위장염이랑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째 거의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 그게 안쓰러워서 뭐라도 사 주려고 하면, 박찬열은 먹는 걸 극구 거부했다. 저러다가 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더 이상 소문은 퍼지지 않았다. 이미 퍼질 대로 퍼진 탓도 있지만, 박찬열이 말한 덕분인지 애들이 쉬쉬하면서 지들끼리만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친했던 애들은 나랑 지나다니는 박찬열을 보면 박찬열에게 괜찮냐고 묻는다. 나더러도 괜찮냐고 묻는다. 둘이 같은 병실 썼다던데 진짜 친하구나? 저 미친 년 놈들은 우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방정 떨고 다닌다. 

 응, 우리 병원에서 친해졌어. 박찬열은 무슨 생각인지 읏으면서 대답해 준다. 

 나도 위장염에 걸렸다. 엄마는 또 보험금이 나왔다고 좋아했다. 박찬열은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차마 박찬열에게 너에게서 옮은 것 같다고 할 수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박찬열은 아무래도 나 때문인 것 같다며 미안해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일단 엄마가 좋아했고, 하루 종일 박찬열과 둘이서 병원에서 있을 수 있어서였다. 박찬열은 기지개를 켰다. 저렇게 아무것도 안 먹고도 잘만 움직이는 걸 보면 나 몰래 뭐라도 먹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박찬열에게 좋아한다고 했다. 박찬열도 나를 좋아한다고 했고, 뭐 하여튼.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우리 둘은 서로 좋아한다. 근데 안 사귄다. 과연 이건 무슨 관계일까?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 박찬열에게 물었다. 

"우린 왜 안 사귀어?" 

"사귀자고 안 했으니까." 

"왜 사귀자고 안 하는데?" 

"넌 왜 안 하는데?" 

 말문이 막혀버렸다. 지금 나는 박찬열과 사귀고 싶은 걸까? 아마 그렇겠지. 나는 박찬열의 물음을 무시하고 박찬열의 손을 끌어 꽉 잡았다. 

"나랑 사귀자." 

"그래." 

 박찬열은 언제나 쉽고 가볍다. 그러면서도 무겁고 어둡고, 또……, 하여튼. 박찬열도 힘없는 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박찬열의 손은 힘이 없어서 꼭 곧 죽을 사람이 잡은 것 같아 무섭다. 비쩍 말라서 더 그렇다. 그래도 나는 박찬열의 손을 꽉 잡았다. 

  박찬열은 오늘따라 예민하게 굴었다. 평소에 굶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하여튼 좀 그랬다. 박찬열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하면 박찬열은 곧바로 정색을 했다. 

"오늘 너 좀 예민한 것 같아. 괜찮아? 자꾸 안 먹어서 그런 거 아냐?"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이나 해." 

"왜 신경질이야? 너 요새 진짜 이상한 것 같다." 

"신경 쓰지 말라고, 도경수." 

 박찬열은 짜증을 냈다. 만약에 기분을 그린 그래프가 있다면 아마 지금 내 기분은 그래프 바닥 아래까지도 추락했을 것이다. 박찬열이 나를 귀찮아한다. 왜? 나는 왜 박찬열에게까지 귀찮게 여겨져야 할까? 박찬열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왜 얘랑 이러고 있어야 하냐는 느낌. 서로에게 그런 게 든 것 같다. 

 박찬열은 더 이상 손목을 긋는다거나 뛰어내린다거나 하지 않는다. 나도 더 이상 박찬열을 보면 뛰어서 도망치지 않는다. 박찬열이 뛰어내렸던 봄과 여름 사이는 너무 축축했고 또 어렸다. 박찬열을 만나러 병원에 갔을 때 박찬열은 내게 문자를 보냈다. 

[ 있잖아 ] 

[ 여기로 지금 올래? ] 

 뭔가 이상하다. 어쩐지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저 문자는 저번에 박찬열이 뛰어내리기 십 분쯤 전에 내게 보낸 문자였다. 이상하다, 진짜. 한 번 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닌 것 같고, 무엇보다도 박찬열이 그 때와 똑같은 문자를 보냈다는 게 이상하다. 박찬열이, 이상하다. 그 생각을 되풀이했다. 

[ 경수야 ] 

 그 때와 완전히 똑같은 문자다. 설마 박찬열이 전에도 내게 저랬었나? 나는 박찬열을 잡으러 가는 것보다는 일기장을 뒤지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그 전에도, 혹은 그 전에도. 박찬열은 내게 저런 문자를 보낸 적이 있을까? 있다면 그걸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 나는 머리를 짚고 일기장을 펼쳤다. 2012년 5월 1일. 박찬열이 뛰어내렸다. 그게 그 날 일기의 제목이었다. 그 때 나는 고등학교 일학년이었다. 

2012년 5월 1일 날씨 비 

박찬열이 뛰어내렸다 

 박찬열과 내가 친해진 건 영어 교실에서였다. 고등학교 입학 첫 날 영어 교실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본 건 영어실 구석에 작게 그려진 낙서였다. 피아노와 연필을 스케치해 둔 게 썩 잘 그린 그림은 아니었지만 괜찮은 편이라 밑에 '잘 그렸네'라고 써 뒀더니, 그 다음 시간에 갔을 때는 그 밑에 지휘자인 것 같은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낙서로 친해졌고 나중에는 영어 교실에서 나오던 박찬열과 영어 교실로 들어가던 내가 마주쳤다. 박찬열의 교과서 뒷면에 그려진 우산을 보고 나는 직감적으로 그 낙서를 그린 게 박찬열임을 예상했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친해졌고 알고 보니 박찬열은 내 옆 반이었다. 삼월이 다 가도록 친구를 사귀지 못한 박찬열은 줄곧 나와 점심시간을 보냈고, 그건 사 월 초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친구 관계가 딱히 안 좋은 편이었던 박찬열은 수련회를 다녀온 후 자주 우울해져 있었다. 원만하지 못한 학교생활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박찬열은 자주 울었고 그만큼 영어 교실에도 오래 머물렀다. 낙서하는 빈도는 점점 잦아졌고 나는 그런 박찬열과 자주 소통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로 박찬열과 나는 번호를 교환하고 가끔 밤늦게까지 문자도 했다. 박찬열이 내게 보낸 문자 중에서도 우울한 문자가 7할쯤이었다. 나는 그런 박찬열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애썼고, 그 다음 날인 오늘 박찬열이 뛰어내렸다. 

[ 있잖아 ] 

[ 여기로 지금 올래? ] 

[ 경수야 ] 

[ 있잖아 ] 

[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 

[ 내가 떨어지면 안아 줄 거야? ] 

 대략 이런 문자 메세지들을 나한테 보냈었던 것 같다. 평소 박찬열의 집에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터라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박찬열네 집으로 뛰기 시작했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문자에 답장을 안 해서일까? 박찬열은 뛰어내릴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떨어진 박찬열을 끌어안고 112에 전화를 하고 난 후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 내가 박찬열을 밀었다고 오해하면 어쩌지?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박찬열을 바닥에 내려두고 근처 복지관에 들어왔다. 박찬열은 땅에 떨어질 때 먼저 부딪힌 갈빗대가 아팠는지 몸을 웅크렸다. 저러면 더 아플 텐데…….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박찬열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렇다고 해서 겨우 몇 발자국 떨어진 박찬열에게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집으로 뛰어 왔다. 박찬열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것만 확인하고 바로 집으로 뛰었다. 뜀박질을 하는 동안에도 죄책감에 목이 턱턱 막혀 왔다. 

 일기를 전부 읽고 나서도, 두 번 세 번 되새기고 나서도 나는 그 사실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을 잊은 걸까? 그럼 그 이 년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 

[ 이제 안 와 주는구나 ] 

 박찬열의 그 문자를 끝으로 더 이상의 문자는 오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과 함께 창밖이 잿빛으로 흐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앞으로는 박찬열을 내 눈에 담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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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와.... 이걸 왜 이제 봤지.... 분위기가 약간 어두운듯하면서... 와 짱이에요... 작가님.....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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