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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전체글ll조회 297l 2

 

 

꿈을 파는 가게

4. 꿈을 사주세요.

 

 

 도하의 눈물이 묻어 젖어버린 카운터가 마르고 또 얼마만의 시간이 흘렀을까. 얼마 전부터는 날짜 세는 것을 포기했다.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님도 오지 않고 할 일 없이 멍하니 있으니, 하제가 일어나서 진열장에 진열되어있는 물건들을 손수건으로 뽀득뽀득 닦기 시작했다. 파란색 줄넘기에 빛이 나는 자동차 모형 구석구석까지 열심이었다. 이 곳에 온 첫 날부터 하제는 저런 행동을 했었지만, 그 때는 그냥 먼지가 안 쌓이게 하려고 닦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진열장의 물건들이 눈에 익숙해지는 지금은, 아무리 하제가 열심히 먼지를 치워도 어차피 먼지가 쌓이고 낡은 물건들은 깨끗해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어떤 상태의 물건이든간에 하제가 닦기 전과 닦은 후의 차이는 없었다. 진열장에는 많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깨끗한 물건과 너무 깨끗해서 빛이 나는 물건, 그리고 사람 손때가 묻어있는 물건, 먼지가 쌓여 더이상 그 물건으로서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물건들도 있었다. 평소 귀찮은 건 나에게 모두 맡겨오던 하제가 저건 나한테 안 맡기고 굳이 자신이 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못 미덥나하는 서운함 반과 굳이 닦는 이유 반이 합쳐서 하제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제, 진열된 물건들은 왜 닦는 거예요?"

 "그냥…까먹었을까 싶어서."

 "뭘 까먹어요?"

 "자기 꿈."

 

 물건들을 닦는 이유가 주인들이 자신의 꿈을 까먹었을까 싶어서라니. 자세히는 물어보지 못 했지만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열심히 손을 놀리는 하제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길래 더 궁금한 게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힘들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서 도와주려다가 괜한 참견인 것 같아서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가 도로 앉았다. 그러고보니 나는 처음부터 쭉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하제도 그렇고. 이 곳은 이상한 곳이니 상관 없으려나. 손님도 안 오고 하루에 한 번 하제가 자신의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는 귀중한 시간이니 할 일이 없어 주위를 둘러보다 하제의 의자가 눈에 띄었다. 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하제에게 물었다.

 

 "오늘 손님은 안 올까요?"

 

 내 의자에서 벗어나 하제의 의자에 앉았다. 항상 하제가 하던대로 카운터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고 있으니 열심히 일하는 하제가 보여 살풋 웃었다. 하제가 일하는 장면은 정말 볼 때마다 신선했다. 항상 보이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밖이 모두 보이는 커다란 창문을 바라보니 오늘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하늘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게 맑은 하늘이니 분명 내 마음도 어느샌가 맑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올 거야. 게다가 네가 아주 좋아할 걸."

 "정말요!?"

 

 하제는 대답이 없었다. 하제를 보니 여전히 물건들을 닦고 있었다. 그래도 손님이 온다는 말에 기분이 금세 좋아져 신나는 목소리를 내버렸지만 좋았다. 게다가 내가 아주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에 달라진 것 없는 내 원피스를 다시 한 번 살피며 어디 이상한 곳은 없는가 점검했다. 언제 손님이 올지 몰라서 얼른 내 의자로 돌아갔다. 내가 앉아있다가 손님을 맞으면 내가 카운셀링을 해야하니 그건 좀 부담스러웠다. 손님이 오는 시간도 모르면서 하제는 여전히 물건을 닦고 있었다. 준비성이 없다며 하제에게 속으로 혼을 내며 가만히 있자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가 없어서 가늠하긴 힘들었지만 꽤 지난 것 같았는데. 하제는 어느새 진열품들을 모두 닦은 듯 한숨을 쉬며 카운터로 걸어왔다. 이 많은 물건들을 모두 닦았다면 꽤 시간이 흘렀을 터인데 아직 손님은 올 기미도 안 보였다. 설마 거짓말을 친 것인가 싶어 하제를 쳐다봤지만 하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빛으로 평소대로 자신의 의자에 앉을 뿐이었다. 속으로 1000까지 세도 안 오면 하제한테 다시 한 번 물어보자는 생각으로 710까지 셌을 때쯤, 가게의 문이 열렸다. 기쁜 마음에 고개를 숙였던 걸 번쩍 드니 대학생인듯한 여자가 쭈뼛쭈뼛 서 있었다. 아홉 번째 손님이었다. 이번에는 꿈을 팔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처음의 슬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그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어떤 꿈을 찾으세요?"

 "아, 저…… 그냥… 좋은 회사 취직해서 가정 꾸려서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같이 사는 게 꿈인데요……."

 "……."

 

 정적이었다. 하제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간에 짜증을 내며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저렇게 두루뭉술한 꿈에는 뭘 가져와야 할 지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제의 다음 말이 들려왔다.

 

 "이름이 뭐예요?"

 "수경…인데요.

 "대학생?"

 "네…."

 "어디 다녀요? 무슨 과? 몇 학년? 성적은 어느정도 해요? 얼굴은 중간은 가는 것 같고, 몸매도 그렇네요. 근데 얼굴이 좀 사납게 생겼다. 성형 고민은 해봤어요?"

 "……네?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왜요, 어디 잘못 됐어요?"

 

 천연덕스럽게 수경의 말을 받아치는 하제에 기가 막혔다. 보통같으면 이름을 물어본 다음에 나오는 질문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뭐냐 이런 거였다. 하다못해 좋아하는 계절이 뭐냐고 나올 정도로 어이없었지만 그래도 순수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 수경에게 쏘아대는 하제의 질문들은 다 날이 서있었다. 내가 들어도 너무하다 싶었고, 지극히 외관에 집중되어 있었다. 수경도 어이가 없는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좋아요. 다시 물어볼게요. 어떤 꿈을 찾으세요?"

 "……."

 

 수경의 입이 꾹 닫혀 열리지 않았다. 설마, 꿈이 없는 걸까. 수경은 바닥만 쳐다보며 하제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말 못 하겠죠 수경씨?"

 

 하제의 날이 선 화살이 고개 숙인 수경의 머리에 깊숙이 박혔다. 하제가 그런 수경을 비웃으며 말했다. 처음보는 하제의 표정이었다.

 

 "당연하죠. 당신이 말 할 수가 없어요. 고등학교때, 주위의 조언과 인터넷에서 얻은 명언같은 건 모두 모아두면서 정작 당신은 안 깨우쳤죠? 그래서 공부 안 했잖아요. 맨날 안 해놓고서는 성적이 나쁘면 난 죽어야한다. 쓸모가 없다. 라면서 말하다가도 공부는 꾸준히 안 했어요. 그쵸? 그렇게 해서 얻은 성적으로 아무도 안 알아주는 대학 가서 다니고 있죠. 부모님 돈만 축내면서. 혹시 제 말에 틀린 곳이 있나요?"

 "당신이 뭔데 제 사정을 멋대로 판단하죠? 처음 봤으면서, 뭘 안다고 저를 마음대로 평가하시는 건데요!"

 "이건 판단이나 평가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저는 지금 사실만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수경씨는, 제가 사실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이건 내가 끼어들어서 말린다고 되는 수준을 떠난 카운셀링이었다. 수경씨에게 나의 의자를 주는 타이밍을 놓쳐버려 수경씨는 지금 참을 수 없는 기분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손톱만 깨물며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당신은, 그래도 좋은 대학 생활을 꿈꿔요. 그리고 안심해요. 그 대학교에 입학생이 당신만이 아니라는 것에요. 그리고 대학 생활을 하지만, 당신은 고등학교때부터 계속 해온 버릇을 놓을 수가 없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시간을 헛되이 날리는 버릇이에요. 주위 사람들도 사정은 똑같죠. 다 당신들과 비슷한 급이니까. 수경 씨는 그래서 또 놀아요. 학점도 좋을 리가 없죠. 안 그래도 안 알아주는 대학인데 학점도 안 좋고, 그래서 면접에 들어가면 소극적이죠. 하지만 바로 뒤 돌면 대학 급이 안 좋아서 떨어진 거다 뭐다. 이 생활이 계속 반복 돼요."

 "……."

 "아직도 제가 판단하고 평가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말을 하는 제가 화나요?"

 "………글쎄요."

 "누구한테도 말 안 했었죠? 고등학교때 친했던 친구한테도."

 

 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제의 표정에 불만스러움이 가득했다. 수경의 치부를 다 들춰낸 것 같음에도 불후하고 뭐가 그렇게 불만스러울까. 여느 성적 안 좋은 학생들은 다 이러지 않았을까. 자신이 공부를 못 하고 노력도 안 한다는 걸 알지만 노는걸 참을 수 없어서 놀았다. 그래서 성적이 좋지 않았고, 급이 낮은 대학에 가는 것도 수긍했다. 하지만 대학생이라고 하면 몰려드는 어느 대학이냐는 주위의 시선이 점점 짜증났고 부담스러웠겠지. 면접을 가서도 옆 사람보다 자랑스러울 수 없는 자신의 학교가 부끄러웠겠지. 나도 여기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제는 물끄러미 수경을 쳐다봤다. 민망스러움과 부모님을 향한 죄송함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있는 수경이다. 취직은 취직대로 안 되고, 집에서는 취직 안 한다고 난리고. 등록금이 비싸다며 한숨을 쉬시지만 딸이 대학을 다녀서 좋다는 부모님의 말에 장학금 한 번 타다줄 수 없는 미안한 마음에 부모님과 대화도 끊은 지 오래였다. 고등학교때 정말 친했던 한 친구는 교대에 들어가서 지금 임용을 준비하고 있었고, 고등학교때 정말 열심히 했던 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수경이기에 기쁜 축하를 해줬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착잡함이 깊숙이 깔려있었다. 이력서에 적힌 학교만 보고 자르는 곳도 있었고, 허술한 자기소개서에 탈락을 줬던 곳도 있었고, 우리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준비한 활동이 뭐냐는 면접 질문에 무작정 이력서를 찔러넣고 봤었기에 대답할 수 없어 불합격이 된 곳도 있었다. 그 때마다 술을 들이키며 혼자 조용히 눈물을 흘렸더랬다. 하제는 수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물을게요. 어떤 꿈을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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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진짜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ㅠㅠㅠㅠㅠㅠ너무 좋아 러뷰러뷰..♡ㅠㅠ 이것도 잘 보고가!!!!!!
9년 전
글쓴이
4편은 조금 맘에 안 들었었는데 항상 댓글 고마워!!!
9년 전
독자2
좋다좋아진짜ㅠㅠㅠㅠㅠㅜ♡♡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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