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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과거와 현재 시점을 동시에 그리고 있습니다. 과거/현재를 구분할 수 있도록 작게나마 표시해두었으니 읽는 데 무리 없으시길 바라요.
 

* ~ * 과거 시점
 



 



 

-
 



 



 

현재 첫사랑이 아닌 다른 이와 연애 중인 분, 또는 현재 연애중인 상대의 첫사랑이 몹시 신경쓰이시는 분, 다 지난 일에 미련 갖는 이들을 미련하게 보는 분에게는 이 글 읽기를 권유드리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첫사랑이 있고, 동시에 우리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기도 했다. 


 


 

*
 


 


 

시시콜콜한 근황 얘기를 나누다, 너무나 어색해진 우리가 어색해서- 서울에 가면 밥 한 끼나 먹자 하고 말았다. 정신 차려야지. 지금 당장은 그 애랑 무언갈 할 수가 없다.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주는 다른 사람이 있고, 고작, 고작 연락 하나 온 게 전부다. 섣불리 굴 수는 없다. 내 기억 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일 뿐이지, 이 연락 하나로 내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다거나 당장 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리워진 것 또한 아니다. 그 애도 그저 그리운 게 전부겠지. 내가 그립다기 보다는, 젊고 뜨거웠던 시절의 우리 둘이 그리웠던 거겠지. 그래, 내가 그리웠던 거라면 더 표현을 했겠지.
 


 

/전화 벨소리-/ 


 

"여보세요."
 

- 응, 어디야?
 

"어, 나 아직 집인데. 이제 나가려구."
 

- 거기 갈까. 수제비 집?
 

"음.. 아니, 오늘은 다른 거 먹자."
 

- 오늘 같은 날엔 뭘 먹으면 좋으려나. 일단 만나서 정할까?
 

"그러자. 다 와 가? 나 3분 내로 나가요."
 

- 응 주차장 들어가는 중. 천천히 와.
 


 

남자친구랑 저녁 약속이 있었다. 운 티가 나면 안 될텐데...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확인했다. 눈가가 조금 붉긴 하네. 가만히 세면대를 짚고 서서 고개를 푹 숙였다. 수제비... 그 애랑 자주 먹던 음식인데 헤어지고 나서도 혼자 좋아하다 보니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됐다. 헤어지고 나서 그 애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 둘씩 하다보니 그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됐다. 작게 타투를 서너 개쯤 새겼고, 콜드플레이 노래를 자주 듣는다. 카메라를 사서 혼자 촬영을 다니고, 향수도 좋아하게 됐다. 그 애가 좋아하는 모든 게 돼버렸다. 그냥 그렇게 돼버렸다. 오늘 같은 날 수제비를 먹는 건 남자친구에 대한 매너가 아니다. 술 한 잔 마시고 깨끗하게 잊어버려야지. 어쨌건 그 애가 용기 내주어 다시 연은 맺어졌으니, 기회가 된다면 우연히라도 만날 일이 생기겠지. 앞으로의 일들은 운명에 맡기자고 생각했다.
 


 


 

-
 


 

남자친구랑은 간단히 저녁을 먹고, 만덕산 야경을 봤다. 지금 남자친구는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 준다. 능력도 좋고, 외모도 출중하다. 매일 아침 내 출근길마다 남자친구가 데려다 주고, 그걸 하루도 빠진 적 없이 매일을 해왔다. 내게 너무 의존하지도 않으면서, 나에게 자기의 사상이나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응, 존중해." 남자친구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남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 피곤하다-."
 


 

오늘은 남자친구와 함께 있어도 종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냥, 첫사랑이라 그런거겠지. 처음으로 사랑을 알려주고, 또 동시에 처음으로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너무도 평온한 내 삶에 불쑥 나타나 버려서- 그래서 많이 혼란스러운 거겠지. 같이 길을 걷는 남자친구에겐 많이 미안했지만, 오늘은 생각이 딴 데 가있었다. 
 


 

[오빠, 오늘 너무 즐거웠어. 야경 같이 보니까 너무 좋더라. 푹 자.]
 


 

그래도, 지금 내 위치는 여기가 맞다. 
 


 


 

-
 


 


 

/전화 벨소리/
 


 

지금이 몇 신데...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머리 맡에 놓아둔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대체 이 무례한 전화의 주인이 누굴까.
 


 

'이재현'
 


 

받을지 말지 고민할 시간도 갖지 못 한 채, 그냥 손가락이 버튼을 눌러버렸다.
 


 

"응, 여보세요?"
 

- 안 자네?
 

"응.., 잠이 안 와서."
 


 

퍽이나. 쿨쿨 잘 자고 있었다. 


 

- 뭐하고 있었어.
 

"그냥, 누워서 뒤척이고 있었지."
 

- 그렇구나. 목소리가 좀 달라진 것 같아.
 

"그러게, 너도 많이 달라졌어. 다른 사람 같아."
 

- 만나보면 똑같을 걸.
 

"그러려나." 


 

너무 반가운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고, 막 싹싹하게 굴 수도 없었다.
 


 

- 전화가 좀 불편한가?
 

"아니, 그렇진 않아. 그냥, 목이 잠겨서."
 

- 그렇구나... 나 너한테 가벼운 마음으로 연락한 거 아니야. 혹시나 해서.
 

"알아. 그럴 애 아닌 거."
 

- 더 전부터 연락하고 싶었는데, 민규도 네 연락처를 모른다고 하더라고.
 

"아, 맞아. 헤어지고 바로 번호부터 바꿨으니까... 그 땐 너랑 관련된 건 다 없애려고 했어. 

-그래서 다 없어졌어? 


 

그럴 리가. 연락처를 지우고, SNS를 차단하고, 함께 아는 친구를 멀리했을 뿐 사실 그건 외부적인 요인만 차단한 것일 뿐 마음이 그 애를 안 놓아주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그리워했지. 


 

"글쎄,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아직도 네가 선물해 준 향수 뿌린다 난? 

"8년이나 된 걸 아직도? 변향 안 됐으려나." 

-관리를 잘 했지. 아까워서 못 쓰겠어. 


 

실은 나도 그 애가 마지막으로 선물해 준 립스틱을 아직까지 화장대 구석에 놓아두고 단 한 번도 쓴 적 없다. 그러는 이유 첫 번째는 - 나랑 잘 안 어울리는 색이다. 10년지기 친구랑 제주 여행 갔을 적에 내 생각이 나서 면세점에서 사왔다고 했는데, '제일 잘 나가는 색으로 주세요.' 라고 했더니 직원 분이 '칠리'를 권유해서, 그걸 그대로 사왔단다. 두 번째는 - 가지고 다니면 잃어버릴 것 같아서. 세 번째는 - 선물할 적에 립스틱 상자 뚜껑 안 쪽에 아주 못난 하트를 그려서 줬다. 내가 받은 마지막 마음처럼 느껴져서, 이걸 뜯거나 버리고 싶지 않았다. 잘 간직해두고 싶었다. 


 


 

* 

* 2016년 11월 


 


 

손톱 끝으로 피아노를 치듯 토도독- 현관문을 두드렸다. 애써 울컥하는 감정을 억누르며 밝은 척 굴어야지 생각했다. 이내 문이 열리고 어색한 웃음으로 날 맞이했다. 웃음이 안 나오면 웃질 말지. 


 

"우리 오늘은 택시타고 갈까?" 

"그래, 그러자." 

"밖에 추운데, 코트 하나가지고 되겠어?" 

"응 괜찮아. 실내에 있지 뭐." 


 

'나는 가슴이 뛰고 몸이 뜨거워지는 연애를 하고 싶은데, 이제 네가 너무 편해서 마냥 가족처럼 느껴져.' 이마저도 내 탓이다. 나는 이게 첫 연애라 처음엔 내가 생각해도 많이 서툴렀다. 연애 초반엔 그 애를 너무도 지치게 했고, 내게 주는 사랑을 수 없이 밀어내고 도망치려 했다. 그리고 저 말을 들을 즈음 이미 나는 그 애에게 긴장을 전혀 주지 않는, 지고지순하고 재미 없는 여자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해달라는 건 다 해주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했다. 지나치게 수동적이었고, 하루 끝에 그 애가 없으면 그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 해야할 지 몰라 외로워하고 힘들어했다. 


 


 

2015년 7월 


 


 

방학이라 고향인 부산에 내려왔다. 그 애는 고향인 광주에, 나는 부산에- 졸지에 장거리 커플이 되어버린 셈이다. 우린 매일 밤 통화를 했다. 연애를 시작한지는 어언 4개월이 훌쩍 넘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밤새도록 재잘대도 할 얘기가 남아서 둘 중 하나 곯아 떨어질 때까지 졸린 눈을 붙잡고 떠들어댔다. 밤 10시에 전화를 시작하면, 아침 7시-8시가 넘어서야 잠에 든다, 스르르 잠이 들어버려서 전화를 끊을 생각도 하지 못 한다. 그럼 오후 두세 시가 되도록 서로의 숨소리에 의지해서 잠을 잔다. 눈을 뜨면 통화 시간은 16시간이 훌쩍 넘어있다. 매일 그런 일상을 보냈다. 화창하고 더운 기운에 잠에서 깼다. 15:32:09 .... 잘 자는 숨소리가 들린다. 신기하게도 내가 잠에서 깨어 살짝 뒤척이면, 그 애도 잠에서 깬다. 쌔액- 쌔액, 일정했던 숨소리가 멈추고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끄응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아..., 일어났어?" 

- 으응..., 졸립다. 

"나두- 더 잘래?" 

- 아니, 너 일어났으면 일어나야지. 오늘 어디 나간댔나? 

"아니, 그냥 집에 있을 것 같은데?" 

- 잘 됐네. 우리 종일 얘기하면 되겠다. 


 

그렇게 또 재잘대다 보면 배가 고파져 전화를 끊고 밥을 먹기로 한다. 각자 TV를 보고, 컴퓨터를 하고, 운동을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또 밤이 된다. 우리의 방학은 그랬다. 


 

- 


 

그 날 밤, 시간은 밤 10시를 훌쩍 넘겼는데 밖이 지나치게 시끄럽다. 듣자하니 안방에서 무슨 일이 난 모양이다. 우리 부모님은 사이가 썩 좋지 않다. 아빤 내가 열여덟이 되던 해에 엄마에게 외도 사실을 들켜버렸다. 아빠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살 소동을 벌였다. 엄마의 첫사랑이 아빠였다. 엄마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베란다 실외기를 밟고 올라섰다. '엄마 더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어. 제발 가게 해 줘.' 엉엉 울면서 가슴을 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온 몸으로 막아내는 것 말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주방 가위로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툭 하면 내 앞에서 뛰어내리려 하는 엄마를 보며- 또 그걸 제지하지 않고 한숨만 푹푹 내쉬는 아빠를 보며- 그렇게 자랐다. 나의 유년기는 그 기억으로 얼룩졌고, 그 기억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무지 기뻤다. 계속 부산에 있으면 엄마를 나 혼자서 케어해야 하니까, 그게 내심 벅찼던 것 같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서라도 이 일을 모른 척 하고 싶었고,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에 가면, 엄마가 자살 소동을 벌여도 멀리 있단 이유로 안 올 수 있으니까... 나도 숨 쉬고 싶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지내기 시작한 뒤로는 부모님께 전화도 잘 드리지 않았다. 나라고 상처를 안 받았을까. 열 여덟, 열 아홉의 내가 견뎌내기엔 너무 가혹한 현실 속에 나 혼자 놓여있었다. 그 일을 있게 한 아빠가 미웠고, 그 일을 나까지 알게 하고 견뎌내게 한 엄마도 미웠다. 별다른 소식이 없어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2년이 지난 지금도 며칠에 한 번은 시끄러운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혼 하자고! 제발 나 좀 놓아달라고. 제발, 제발...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데." 

"왜 그러는데, 나 진짜 미치겠네. 내가 대체 뭘 했는데." 

"맨날 나만 이상한 사람이지 그래. 당신은 나 그렇게 미친년 만들면 좋아?" 

"미쳐버리겠네. 하라는대로 다 하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데!" 


 

안방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와 함께 부모님이 언성 높여 싸우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그 애 목소리에 정신을 번뜩 차리고 잠시 기다려 달란 말만 남긴 채 거실로 나섰다. 엄마가 또 베란다로 갈 모양이다. 


 

"엄마. 엄마! 제발요. 왜 그래요." 

"놔라, 네 아빠는 내가 죽어도 이해 안 되나보다. 놔라." 

"아빠! 엄마 좀 말려봐요. 제발 왜 그러는데요." 


 

엄마가 불쌍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참 불쌍했다. 아빤 귀찮다는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꿈쩍하지 않았다. 엄마가 뛰어 내렸으면, 하는 생각일까. 내심 그러길 바라는 건가. 엄마는 어김없이 베란다로 뛰쳐 나가 실외기를 밟고 베란다 창을 열었다. 나는 있는 힘껏 엄마를 끌어 내렸고 엄마 몸이 터지도록 꽉 껴안고 엉엉 눈물을 흘렸다. 


 

"엄만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엄마, 나도 진짜 살고 싶어요... 나도 진짜 죽을 것 같아요... 죽을 거면 엄마랑 나랑 아빠랑, 다 같이 뛰어내려요. 네? 아빠, 아빠 나와요. 우리 같이 죽어요." 


 

몇 개월은 이 현실을 잊고 지냈는데, 내 자리로 돌아와보니 현실은 같았다. 잠시 잊고 지냈는데, 난 이렇게 불행한 삶 속에 놓여있었다. 아빠가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엉엉 울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걸 그 애가 다 듣고 있을텐데, 정말 들키긴 싫었는데. 


 

"애 보는데 뭐하고 있는데,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아빠가 엄마의 어깨를 잡아 끌었다. 엄마는 힘없이 축 늘어진 모양새로, 또 초점 없는 눈으로 그저 아빠의 손길에 이끌려 안방으로 걸어 들어갈 뿐이었다. 그대로 자리에 앉아 엉엉 눈물을 쏟아낸 나는 얼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 완전히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제발, 제발 전화를 끊었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방으로 향했다. 


 

전화는 아직 끊기지 않은 채였다. 다 들켜 버렸네. 아, 다 들렸으려나? 


 

"응, 나 다녀왔어." 

-응. 괜찮아? 

"괜찮아. 자주 이랬어." 

-그랬구나. 내가 몰라줬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빨리 위로해줄 수 있었을텐데. 


 

서러웠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아빠가 바람을 폈어. 나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날 이후로 엄마가 자주 저래. 아빤 자꾸 자기 잘못이 없다고 하고, 엄마가 소동을 벌여도 모른 척 방관하거든." 

-... 

"내 팔에 있는 상처, 실은 넘어져서 쓸린 게 아니라 내가 내 손톱으로 긁은 거야. 하루는 엄마한테 너무 힘들다고 소리쳤더니, 엄마가 '네가 힘들어 봐야 나만큼 힘드냐.' 하면서 되려 꾸짖었거든. 화를 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풀 곳이 없으니까 나한테 풀게 되더라." 

-... 

"괜찮아, 방학 지나고 다시 서울에 가면 그냥 모른 척 지낼 거야." 

-약속 하나만 해줄래? 

"응, 뭔데?" 

-일단 내가 미안해. 내가 좀 더 빨리 너를 알았어야 했는데, 우리가 너무 늦게 만나서 너 혼자 힘들게 견디도록 둔 게 마음 아파.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할 일도 아니다. 불가항력인 걸, 우리가 초능력자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 만날 시기를 딱 정해서 서로의 인생에 나타날 수 있을까. 꺽꺽대며 우느라 대답도 잘 못 했다. 


 

"아니야, 아니야... 네가 알게 해서 미안해... 이건 내 짐인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속상하지. 

"그래도..." 

-네가 울면 얼마든 달래줄 수 있고,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줄 수 있어. 난 네 편이잖아. 맞지? 

"응, 그렇지." 

-대신 네가 네 몸에 상처 내는 건 안 돼. 네 몸은 네 거이기도 하지만, 내 거이기도 하잖아. 

"응..." 

-난 내 거 상처내는 거 진짜 싫어해. 그것만은 꾹 참기로 약속하자. 너한테 상처 내는 건, 나한테 상처 내는 거나 마찬가지야. 


 

알겠다고 연신 고갤 끄덕였다. 내가 나를 해하는 게 분명 나쁜 일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의식 중에 그렇게 행하게 되는 건 나도 막을 수 없었다.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자해를 하곤 했으니까. 


 

- 


 

그 후로 몇 개월 동안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나는 단 한 번도 내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무의식 중에 손톱으로 팔을 잔뜩 움켜쥐었다가도, 이내 그 애 얼굴을 떠올리며 몸을 덜덜 떠며 참아냈다. 분명 그 애가 아파할 거다. 그렇게 자해를 하는 습관은 완전히 고쳤다. 그 애가 나의 속사정을 알게 된 후, 처음 1-2개월은 내 자신이 너무 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애는 화목한 가정 아래 자랐다. 유복한 것은 물론이고, 부모 복도 타고났다. 아버지는 그리 다정하진 않지만 묵묵히 집안 일을 도맡아 하시고, 달에 한 번은 어머니께 꽃을 선물한다 하셨다. 어머니는 잠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말투만으로도 아주 인자하고 상냥한 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애와 날 자꾸 비교하게 됐다. 그 애의 밝은 환경을 보며 괜스레 부러워지고 또 작아지는 날 발견하게 될 때마다 그 애와 나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단 생각에 괴로워졌다. 처음엔 '나도 이렇게 사랑 받을 수 있구나.' 했던 게, '내가 뭐라고 이렇게 사랑해주지.'로 바뀌어 버렸다. 그 애가 날 사랑하는데 의문을 품게 됐다. 


 

"네가 왜 날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그러는 넌 날 왜 좋아하는데?" 

"그냥, 너무 좋은 사람이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나한테도 네가 너무 좋은 사람이야." 

"너는 집도 잘 살고, 부모님도 화목하시고, 동생이랑 사이도 좋고... 또 학교도 나보다 훨씬 좋은 곳 다니고, 키도 크고 모자랄 게 없는 걸." 

"넌 내가 되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응, 날 만나기엔 너무 과분하고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밉게도 보일텐데, 


 

"그럼 네가 더 대단한 거지.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야. 대단한 내가 좋아할 정도면 넌 얼마나 더 대단한 거야?" 


 

그 애는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애였다. 여지껏 견뎌온 아픔, 슬픔도 그 애와 함께라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곤 했다. 


 


 

* 

* 


 

지금 일하고 있는 스튜디오에서는 무슨 일을 맡아서 하고 있는지, 또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세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랑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대를 했고, 전역 후에는 고향에 있는 카페에서 일했다고 한다. 1년 정도 일하며 착실히 돈을 모아 가장 사고 싶었던 바이크를 한 대 사고, 틈틈이 국내 여행을 다니는 게 취미가 됐다고 했다. 고향이 너무 답답하게만 느껴져서 서울로 다시 올라가서 지낸지는 2년 정도 됐다고 했다. 여전히 일렉 기타를 치고, 음악 얘길 하면 조금 더 들떠하는 게 느껴진다. 처음엔 목소리도, 말투도 많이 변해버린 것 같아 어색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가 알던 그 애가 맞다. 


 

한 시간 가량 통화를 나누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음악 소리가 뚝- 멈췄다.  


 

-아, 뭐지? 갑자기 스피커 연결이 끊겼네. 

"응? 다시 한 번 해 봐." 

-왜 안 되는 거지. 연결 제대로 했는데. 

"불 켜서 한 번 봐." 

-잠깐만. 분명 다 맞게 했는데... 처음 샀을 때 여기 꽂고, 또 여기 연결하고... 아, 왜 안 되지. 

"천천히 해- 오늘 계속 노래 들어야 해?" 

-그건 아닌데... 

"그럼 내일 일어나서 설명서 찾아보고, 천천히 하자." 

-무조건 지금 해야 해. 내 성격 알잖아. 

"아, 그치." 


 

뭐 하나 틀어지는 게 있으면 자리에서 바로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내 성격 알잖아.' 그 한마디가 선명하게도 들려왔다. 우리가 얼만큼 가까운 사이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말들은, 내게 더 아프게 꽂힌다. 결국 스피커와 10분 넘게 씨름하다 다시 연결에 성공했고, 노래가 흘러 나왔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새벽 다섯시가 다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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