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l조회 684l 1
이 글은 1년 전 (2023/3/16) 게시물이에요
본인표출 이 글은 제한적으로 익명 본인 표출이 가능해요 (본인 표출은 횟수 제한이 있고, 아이템 미사용시 표출 금지)
이전 :  

https://instiz.net/name/53591201 

 

01. 그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허승.  

 

그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태생이 다정해 오해를 종종 사곤했지만, 그걸 무기로 쓰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다정함은 늘 적당한 온도를 유지했었다. 타인은 구별할 수 없는 본인만의 세밀한 온도. 사람 체온보다 살짝 낮은 그래서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담 없는 그런 온도. 

 

허승은 늘 자기와 비슷한 온도를 찾고 있었다. 적당히 따듯하고 적당히 시원한 그런 중간의. 다수가 그렇듯 본인과 맞는 적정 온도의 사람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믿고 있었다.  

 

어딘가에 나와 딱 맞는 온도가 있을 것이라. 

 

사람들은 대게 이런 허승을 보고 미이라며 혀를 내둘렀지만 한편으론 그의 낭만을 존중해주기도 했다. 존중을 넘어 약간은 부럽기까지 했다. 낭만을 바치며 나이를 쌓아 올린 사람들은 말 속에 얕은 질투심을 깐 채 허승을 나무랬다. 

 

점점 무뎌지는 감정들. 여러 색을 지닌 감정을 집어넣어도 도통 검은색만 뽑아내는 사람들에게 무지개 빛은 그저 허무맹랑한 괴담이었다. 그럼에도 다채롭겠노라 말하는 그가 어리숙해 보일법도 했지만 그의 나이 32였다. 

 

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낭만을 쫒기에 제법 현실적인 나이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낭만이라 부르지 않았다. 나름의 어설픈 축복이라 생각했다. 그가 자라온 시간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화학과를 졸업했다. 부모님의 선택이었지만 그게 곧 본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평범한 그의 대학생활은 그의 인생에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새내기.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들어간 대학은 알콜과 함께 섞이며 빠르게 증발해버렸다.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다 붙였다. 과제 제출일을 헷갈려 학점이 아작이 나서, 어떤 날은 교수님께 뒤지게 혼이 나서, 헤어진 cc의 숙명이 본인과 뭔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기가 헤어져서. 심지어는 날이 좋아서. 그냥 술이 먹고 싶다는 건 왜인지 입밖으로 꺼내기 꺼려졌다. 다양한 변명은 다채롭게 허승을 술통에 담갔다. 그렇게 제법 허승은 1학년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콜이 휘발한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출석이 좋지 못해 F를 받는 일도 종종 있었다. 가끔 과제를 하다가 피곤하면 동기와 몇시간 노가리를 까다가 결국 하룰 다 보내는 일도, 동기따라 억지로 들어간 스터디가 실은 캠퍼스의 비밀스런 동물의 왕국이었던 것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자연의 섭리를 관망하며 삶의 부질없음을 말하는 것도 어느덧 신물이 났다.  

 

그렇게 그는 인생의 가치를 논하며 비관적이고 타협적인 삶의 방식을 배워갔다. 특히 몇날 며칠을 꼴딱 새며 쓴 졸업 논문이 단 30분도 안 되어서 걸레짝이 되었던 날. 그는 논문 속에서 삶을 찾았다. 풀린 눈으로 인생을 한탄하며 사라진 의미를 되찾기 위해 그는 군중 속으로 숨어들었다. 지독한 본능이 들끓는 곳에서 그는 순한 양이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그를 집어삼켰다. 각종 향수 냄새와 뒤섞인 담배 연기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그다지 싫지도 좋지도 않은 그저 몽롱한 상태. 환락이 주는 안락함 속에 그는 현실과 허상의 차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되려 이제와 그게 뭐가 중요하겠냐며. 괜히 삐딱해진 감정은 자기합리화로 모든 걸 덮어나갔다. 그는 신나게 몽롱한 감정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모르는 사람과 입술을 부딪히고, 괜히 더 크게 웃으며, 부러 더 추잡하게 본인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눈이 맞으면 취한척 품에 안겼다. 

 

과했다. 그는 그가 만든 공허함에 과하게 취해있었다. 더 독한 술을 찾고 더 독한 상황에 본인을 내던졌다. 스스로의 그릇을 모르는 것처럼 그는 술을 쏟아 부었다. 아슬히 쏟아질듯한 술잔을 한 손으로 쥐고 그는 열심히 입술을 부비고 있었다. 그래 과했다. 그는 속이 메스꺼운 것 역시도 공허의 한조각이라며 우수로 축축히 젖은 입술을 부비기 바빴다. 

 

 

 

그리고 얼마안가 

 

토했다. 

 

오색 김치전이 상대의 입술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끔은 더욱 가혹한 현실에 그저 기절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잠시 그대로 굳어있던 그녀는 이 상황을 믿지 못하는 건지 뭔지 그대로 몸을 떨기만 했다.  

 

" 이 샊…ㅣ ㅇ…" 

 

짧은 욕지거리를 마무리 짓지도 못한 채 그녀 역시 속을 게워냈다. 

 

 

 

두 사람이 빚어낸 허영이 바닥에 깔렸다. 썩은 허영을 뱉어내고 나서야 맑아진 정신으로 그는 어서 빨리 그곳을 탈출했다. 그가 유일하게 지성인으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모든 허영을 토해낸 그에겐 적어도 나와 같은 온도를 찾겠다는 건 헛된 낭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기회는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추천  1

이런 글은 어떠세요?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날짜조회
감성하루 04.11 01:2835 0
감성단 한 명의 팬 04.13 02:2922 0
감성변덕쟁이 필경사 04.01 00:1627 0
        
        
저주 받은 야수의 장미 07.02 00:57 138 0
약에 취한채 적는 글 2 06.30 23:02 463 1
행시 받을 사람! 06.23 01:44 106 1
명命을 살아가다 06.11 15:39 169 0
이름행시 써드립니다2 05.14 18:06 350 0
가까운 일상에 연락해줘 04.22 15:58 346 2
본인표출01. 그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03.16 20:02 684 1
00.그는 사랑을 했다. 03.16 04:27 320 0
캔디팡 03.14 21:20 262 0
이거 무슨 뜻인 것 같아? 나 이해 안 되어서 ㅠㅠ5 03.14 07:50 909 0
开花 02.15 02:13 388 4
이름행시 써드림4 02.11 20:22 498 2
善心 3 01.13 23:08 567 5
키워드 몇개만 던지고 가주라~5 01.05 23:03 527 1
의주4 12.22 21:30 590 5
단어 던지고 가주라11 12.20 02:09 259 2
이름행시 써줌9 12.11 22:24 340 1
펑펑 울 수 있는 소설책 뭐가 있을까?4 12.08 00:21 1037 1
해류를 거스르면서1 12.04 17:18 489 3
잠이 안와서 44페이지까지 읽었어 3 12.03 04:51 425 1
전체 인기글 l 안내
4/28 18:56 ~ 4/28 18:58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감성 인기글 l 안내
1/1 8:58 ~ 1/1 9:00 기준
1 ~ 10위